「호박죽을 먹으며..」
며칠 감기로 약을 먹다가 약기운에 몸이 더 가라앉았다. 입맛 없어 하는 날 보고 남편이 호박죽과 팥죽을 사 왔다. 호박죽은 어머님이 지금도 좋아하시고 아버님은 두 가지 모두 좋아하셨다. 두 분이 겨울 감기를 앓아 내실때 호박죽과 팥죽을 사다 드리면 잃었던 입맛을 되살려 내곤 하셨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오래전 내 사업장을 지나칠때 시장에서 커다란 솥단지에 모녀가 직접 죽을 끓여 내던 가게였다. 아버님의 긴 병원 생활중에 가끔 그곳을 이용했다.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호박죽은 가을날 노랗게 익어가는 은행잎을 닮아 있었다. 하얗게 피어 오르는 김을 멍하니 바라 보며 가수 윤도현이 부른 <가을 우체국 앞에서> 속 내용의 주인공을 가끔 떠올리곤 했다.
화자는 그대라는 대상의 기다림으로 스쳐가는 발자국들 속에 노랗게 익어 가는 단풍잎들이 떨어져 없어지는 것을 본다. 한여름 소나기에도 굳세게 버텨 내는 꽃들. 찬겨울 눈보라 속에서도 우뚝 솟아 있는 나무들. 하늘 아래 그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자신도 모르게 우연히 불러운 깊은 생각속에 빠져 들고 만다. 세상에 머물러 영원히 아름답게 남아 있는 것들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찬 겨울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솥단지 앞에서 깊은 생각들이 스쳐 지났다. 아버님은 이 겨울이 끝나기 전 호박죽을 몇 번이나 더 드셔 주실수 있을까. 그 가게를 나는 몇번이나 더 올 수 있을까. 발걸음이 여러 차례 더 드나들길 속마음은 그랬다. 아니면 이 겨울만이라도 이기를 바랬다. 숨 쉬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화자의 생각들을 떠올렸다.
그 다음해에 짧았던 겨울이 끝나고 아버님의 봄도 더이상 오지 않았다.
호박죽을 드시며 아버님은 어떤 생각을 숟가락위에 올려 놓으 셨을까. 그 마음을 다 말씀하지 않으셔도 나는 다 알고 있었다. 드시면서 고맙고 미안하단 말씀을 아버님이 늘 내게 하셨다. 단 몇번도 안되지만 맛있게 드셔 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 속에서 나는 또 죄송하고 미안했다.
그해 아버님께 다 전해 드리지 못했던 호박죽을 오늘 내가 먹는다. 찬겨울날 죽을 포장 하려던 발걸음이 호박죽속을 서성인다. 다 펴지 못하고 떠난 당신의 겨울이 죽속에서 몽실몽실 하얀 김으로 퍼져 오른다. 아직도 당신의 모습은 내게 환하다.
아버님께 전해 드리고 싶다. 당신께서 빚어 놓고 간 나의 계절 이어서 가을날은 여전히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고~... ♧
♬ - 우리사랑, 노래-조영남&패티킴
< 눈 내리던 날의 왕곡마을 >
눈송이가 한가득 내리던 어느 겨울 아침, 나는 분주한 도시를 뒤로한 채 조용한 왕곡마을로 향했습니다. 길가에 쌓인 눈은 마치 순백의 이불처럼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었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고요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마을에 도착하자, 작은 골목마다 옛 정취가 묻어나는 한옥들과 웃음 가득한 이웃들의 인사가 반겨주었습니다. 눈에 덮인 기와지붕과 서서히 걸어가는 발걸음 소리가 어우러져,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 속에서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조용한 공존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왕곡마을에서 보낸 하루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잔잔한 울림을 남겼습니다. 눈 내리는 날의 고요함과, 마을 사람들의 따스한 정이 어우러져, 일상의 소란 속에서 잊고 지냈던 소중한 여유와 평화를 되찾게 해주었습니다. 그날의 설경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첫댓글
네...
눈 내리날의 풍경들이 참으로 장관입니다
호박죽을 먹었던 추억인가요
부지런히 다니세요
전엔 호박죽도 잘 해 먹었는데
이젠 해 먹는 것도 게을러진 즘이네요ㅎ
부디 보람된 주말 되세요.
음력으로 스무사를 하현달이 중천에서
오늘 뜨려고하는 햇님을 기다립니다요.
옛날에는 참으로
많이도 먹었지요.
지금생각 해 보니
구황작물들이 우리의
건강을 지켜 주는
보약이었습니다.
요즘은 차로 마실 수 있게
간편 포장으로 나와서
농막에서 간식으로
즐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