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런 기억들을 가지고 14일날 오전에 옥스포드 역에 도착했습니다. 책 대여섯 권과 옷 한벌, 신발 한켤레, 세면도구, 헤어젤과 기타 잡동사니들을 쑤셔넣은 가방을 들고 말이죠.
옥스포드 역에 도착해서 역내 카페테리아에 가방을 두고 똥누러 갔다가 나오니 unattended luggage는 없애버린다고 혼내던 직원 생각이 납니다^^
옷은 인터뷰 때 입으려고 학교에서 교복으로 입는 양복을 그대로 입고왔습니다.
와이셔츠 위에 조끼, 조끼 위에 마의, 마의 위에 코트를 입으니 짐들고 조금만 걸으니까 땀이 비오듯 쏟아지더군요. 읽지도 않을 책을 괜히 잔뜩 넣어갖고 와서 괜히 고생했습니다.
버스정류장 쪽에 있는 ODEON 근처까지 겨우 몸뚱아리 끌고 와서 택시를 잡아탔죠.
‘St.Anne’s 가 어딨는지 난 몰라… 라고 자기합리화 시키면서 말이죠…’ (실제론 Prospectus에 있는 지도를 봐서 어디쯤 있겠다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택시 타고 가니 멀지도 않더군요. 그래서 인터뷰 끝나고 올때는 택시 안잡고 걍 죽어라고 끌고 왔습니다
세인트 안스에 도착해서 lodge로 가니 포터가 이름확인하고 열쇠를 주더군요. (신분확인할 것 같아서 여권까지 갖고 왔는데 그런건 확인 안하더군요) 제가 배정받은 방은 세인트 안스 컬리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주택 (주택이 아니라 기숙사더군요) 중의 하나 안에 있는 방이었죠…
방은 평범하더군요. 빛 잘들어오고 침대 하나, 옷장 하나, 책상, 서랍 두개 등등… 약간 좁은 듯 했습니다.
마침 세인트 안스가 확장공사중여서 아침엔 드릴소리가 절 깨웠죠^^
참고로 인터뷰 일정은 14일부터 17일까지로 무려 3박 4일이나 되었습니다. 옥스포드 모든 학과중에서도 최장(=최악)이었죠.
첫날 (14일, 일요일)
방에 짐을 풀고 학부학생들을 위한 일종의 거실인 JCR (Junior Common Room)에 가보았습니다.
JCR 밖 게시판에 인터뷰 일정이 프린트 되어있더군요.
15일날 인터뷰 2개 있음을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안에 학생들이 몇 명 있더군요. 여러 과목 인터뷰를 병행하기 때문에 전날부터 와 있었던 학생도 있었습니다. 2명이었는데 둘이서만 신나게 떠들고 나머지 신참(?) 들은 그냥 멍~ 한 표정으로 앉아있었죠.
그러다가 그 두명이 자기들끼리만 떠드는게 좀 뭣했던지 갑자기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쭈~욱 했습니다.
보니까 저랑 같은 과목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많더군요. 한명한명 자기가 무슨과 지원한다고 말할 때마다 ‘아악~ 안돼 경쟁자가 또 늘어나잖아’ 하는 표정들..
사실 제가 나중에 인터뷰 시간표에서 일일이 학생수를 세 보니 제 과는 25명 정도 되더군요. 대략 대여섯명 뽑는다고 하니 4.5명중에 한명 뽑는 꼴입니다.
이걸 알아내고는 비탄에 잠겼습니다-.- 애초에 오퍼 받아내기 힘들다는거 알았으면서도…
어쨌든!
친구를 몇 명 사귀었습니다. 컴퓨터/수학과 지원하는 (컴퓨터사이언스와 수학 50%씩인 과입니다) 땀냄새 정말 심하게 나는 흑인애 한명, 같은과 지원하는 인도애 두명 (국적은 영국인데 생긴건 인도쪽입니다. 영국에 그런애들 많죠)
심리학과 지원하는 애도 있었는데 학교에서 억지로 보내서 왔다고 하더군요. 제 혼자 생각으로 심리학과는 약간 또라이들이 올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더군요. 예쁜 애들도 많이 있고… (윽…심리학과 부럽…)
어쨌든 컬리지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2시에 2시간 반짜리 시험을 보았습니다.
시험은 한 방에 모여서 봤는데 학생이 감독하더군요.
그런데 생각보다 시험보는 애들이 너무 많아서 비탄…
그리고 제 옆에 앉은 여자애는 시험 끝나기 30분전에 다 풀고 놀고 있어서 또 비탄…
마지막으로 다섯 파트중 마지막 파트가 해답이 안보여서 절망…
시험 끝나고 나서 JCR에서 TV를 보면서 열심히 잊을려고 하던 중에 저희 학교 선배를 만났습니다. 작년에 제가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 졸업한 베트남 여학생입니다.
제가 지원한 과랑 같은과 다니고 있죠. 마침 컬리지도 제가 걸린 컬리지에 있더군요 (보통은 지원할 때 컬리지 고르지만 전 고르기 귀찮아서 그냥 오픈 컬리지로 넣었습니다. 오픈으로 넣으면 컴퓨터가 알아서 섞어서 배정해줍니다)
마침 잘됐다 해서 작년 인터뷰때 교수들이 뭐 물어보더냐, 어렵냐, 모르면 어떻게 해야 되냐 뭐 이런거 열심히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뭐 쉽다, 몰라도 다 가르쳐 준다, 조금만 머리 굴리면 된다, 그러더군요-.-
‘이쒸 나는 머리가 너처럼 좋지 않단 말이다!!’
결국은 이 교수는 아주 마음씨가 착하고 이 교수는 눈이 좀 이상해서 무섭게 생겼고 이러한 정보들만을 얻게 되었습니다--;
첫날은 JCR에서 죽치고 있다가 다 보냈습니다. 대부분이 그러하더군요. (저녁때쯤 되서 JCR이 꽉 찰 정도로 학생들이 많이 왔습니다)
쬐끄만 티비를 보면서 저마다 생각에 잠겨있거나 모발폰 붙들고 문자보내고 있거나 재미도 없는 잡지를 들고 읽고 있거나 아님 저처럼 멍하니 아무데나 보고 있거나… (물론 허공에… 시비 붙으면 별로 안좋으니까)
몇몇은 벌써 친구들 그룹을 만들어서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긴 했습니다만……
내일 드디어 인터뷰구나… 난 주그따… 이런 걱정을 하면서 제 방으로 돌아와 잠이 들었습니다.
둘째날 (15일, 월요일)
제가 지금 기억하기로는 이날 인터뷰가 12시쯤 하나, 2시쯤 하나 있었습니다.
이런 날은 꼭 6시에 깨서 다시 잠도 안오죠. 12시가 되기까지 초조하게 기다렸습니다.
9시에 제가 지원한 과 지원한 학생들을 모아서 어디론가 데려가더군요. 새로 지은 강의실이었는데 거기서 학생들을 인터뷰할 교수들을 만났습니다. (서너명이 늦게 들어왔는데 아주 미안해서 죽을라고 하더군요)
두명은 무섭게 생겼고 (그 눈이 이상하다는 할머니 포함) 나머지 두명은 덜 무섭게 생겼더군요… (그 마음씨 착하다는 교수 포함)
어쨌든
제 인터뷰 시간이 되자 JCR에서 인터뷰 담당자가 제 이름을 부르고 컬리지 학생 한명을 붙여서 절 인터뷰할 교수 방으로 데려가게 했습니다
(참고로 JCR 안에는 빨간 옷을 입은 컬리지 학생들이 어슬렁거리다가 인터뷰 시간이 된 학생이 있으면 교수 방까지 데려다 줍니다. 그런데 그 인터뷰하는 학생이 좀 예쁘다거나 하면 갑자기 경쟁이 생깁니다. 대놓고 ‘She’s mine! I’ll take her’ 이러죠…)
제 첫번째 인터뷰는 그 눈이 이상한 할머니 교수님이 맡았습니다--; 영국에 왜 왔냐 한국의 교육방식이랑 어떻게 다른 것 같냐 뭐 이런거 물어보다가 종이 하나를 슬쩍 밀어주면서 하나 골라서 풀으라고 하더군요.
보니깐 초록색 종이에 문제가 1~7번까지 7개가 있었습니다. 뭘 골라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죠.
‘쉬운거 골라도 되요? -.-‘
맘대로 하라더군요…
괜히 어려운거 골랐다가 못풀면 곤란하고… 쉬운걸 고르자니 아무래도 옥스포드인만큼 ‘나도 어려운거 풀 수 있따!’ 라고 보여줘야 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결국 가장 쉬워보이는 7번문제를 골랐습니다.
그 문제를 풀고 나서 약간의 토의(?)를 하고… 다음문제로 넘어가고… 그렇게 해서 문제를 한 5개 정도 풀자 30분이 다되더군요. 그 할머니 교수님 말고도 다른 심각하게 생긴 교수님이 같이 있었는데 그 교수는 옆에서 아무말도 안하고 가끔 고개만 끄덕거리면서 엄청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였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까 어떤 인터뷰를 가든 그런 역할을 하는 교수가 꼭 한명씩 있더군요
첫번째 인터뷰는 그렇게 지나갔고 뭐 저로썬 대략 만족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두번째 인터뷰는 그 마음씨 좋다는 교수님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별로 긴장을 하지 않았죠.
그런데 이 교수가 처음에 한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자기소개서에 뻔지르르하게 써 놓은 것 중 하나에 대해서 물어봤는데 거기에 제대로 답을 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가슴이 철렁~ 했죠
사실 자기소개서에 관한 질문은 대학교 인터뷰에서 자주 하기 때문에 저도 나름대로 준비 했다고 생각(?) 했습니다만… 이건 마땅히 좋은 대답이 떠오르지가 않더군요…
아간드 다이어그램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뭔가 대답은 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만…’ 하면서 다시 질문하더군요… 컥…
그래서 저도 ‘그렇지만…’ 하면서 다시 아간드 다이어그램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랬더니 그냥 넘어가 주더군요… (제가 모르는 것을 알아챈 듯)
그 교수님도 시종일관 표정이 굳은 얼굴이고 저도 당연히 그 다음 문제들을 제대로 풀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은 똥 씹은 표정으로 나왔죠… 크흑
마음씨 좋은 교수님한테 잘 보여야 되는건데 이거 작전에 차질이 생겨버렸습니다-.-
그렇게 패배를 곱씹고 있는데 홍콩애들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같이 밥이나 먹자는 거였죠.
저희 학교에서 이번에 옥스포드 지원한 홍콩애들이 꽤 됩니다.
학교 전체에서는 25명이 지원했는데 이번에 옥스포드에서 보니까 홍콩애들 6명이 지원했더군요. 그중에 3명은 저와 같은 과를 지원했습니다.
어쨌든
6명에 저, 그리고 작년까진 저희 학교를 다녔으나 지금은 옥스포드에 살고 있는 일본애 한명 그렇게 8명이서 중국 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었습니다.
물론 다들 인터뷰 얘기를 했죠…
모두들 말로는 아무래도 잘 안된 것 같다고 하면서도 웃는 얼굴로 밥을 맛있게 먹는 거 보니까 다 잘된 모양입니다. 괘씸한 것들
제가 제 2번째 인터뷰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니까 모두들
‘자식 불쌍하다 벌써부터 아웃인가’
이런 표정들을 짓고 앉아있습니다.
어쨌든 모두들 밥을 다 먹고 트리니티 칼리지에 지원한 애 방에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트리니티 칼리지가 끝내주더군요
겉으로 봐서는 전혀 모르는데 (모든 칼리지가 다 그렇긴 하지만, 건물로 둘러싸여 있어서…)
안쪽에 들어가니까 건물도 멋있고 널찍하고 좋습니다. 제가 배정받은 칼리지보다 훨씬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 애 방에 들어가고 나서 훨씬 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인트 안스 칼리지 방들보다 훨씬 크더군요. 넓이는 둘째치고 나무로 된 마룻바닥에 소파, 탁자, 냉장고, 전화기, 벽 모서리 쪽은 커다란 유리로 되어 있는데 컬리지 내부 전경이 보입니다.
방으로 들어가는 현관이 따로 있고 침대가 있는 작은 방도 따로 있습니다.
햐 대단하다… 혹시나 붙었을 때를 대비해서 이런 칼리지에 지원할걸…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나 그날 있었던 2번째 인터뷰를 기억해내곤 다시 비탄에 잠김… 임페리얼의 기숙사는 더 좋겠지 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그밖에도 St. Edmund’s, St. Peter’s 칼리지들도 가봤는데 모두들 제 St. Anne’s 보다는 나아 보이더군요.
St. Edmund’s 칼리지 안에 잔디밭에는 우물이 하나 있는데 생긴 게 링 에서 나온 우물이랑 똑같이 생겨서 밤이 되면 언제라도 귀신이 기어나올 듯이 보입니다.
두번째 날은 이렇게 지나갔습니다. 이미 스케쥴 된 인터뷰 2개는 지나갔고, 아직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두번째 칼리지에서의 인터뷰가 남았죠.
(제가 지원한 과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무조건 칼리지 두군데서 인터뷰를 봐야 합니다. 첫번째 칼리지에서 두번, 두번째 칼리지에서 한번 이렇게 무조건 적어도 인터뷰 3번 이상씩은 보게 되어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