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미래와 오케이목장의 결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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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영화 가운데 1957년 개봉한 「오케이 목장의 결투」가 있다. 애리조나 툼스톤의 작은 목장에서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와 닥 할리데이, 그리고 클랜턴 일가가 맞붙는 총격전을 그린 작품으로, 한국의 많은 TV 영화 세대에게는 정의가 끝내 승리하는 서부극의 대명사로 기억된다.
필자에게도 이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경험이 있다. 1999년 여름 하와이대 마노아 캠퍼스에서 KDI와 East-West Center가 공동으로 연 「21세기 산업의 세계화: 한국과 동아시아의 과제」 세미나가 그것이다. 한국 측에서는 박준경 박사를 팀장으로 필자를 포함한 KDI 연구진이, 해외에서는 LSE의 Stopford와 버클리대학의 J. Zysman 등 국제경제와 산업구조에 관한 유력 학자들이 참석했다. 당시 국제사회에는 1994년 Foreign Affairs에 실린 크루그먼의 아시아 성장 회의론이 널리 퍼져 있었고,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도 대체로 냉소적이었다.
cooperative-individu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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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은 분명했다. 서구 전문가들은 세계 산업이 이미 대규모 M&A와 재편의 국면에 들어간 만큼 한국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전자와 자동차처럼 선전하는 산업도 결국 글로벌 자본과 기술 재편의 압력 앞에서 독자성을 지키기 어렵다는 비관론이었다. 그러나 KDI의 판단은 달랐다. 성장모델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전자와 자동차는 이미 단순한 추격 단계를 넘어 혁신 역량을 축적하고 있다고 보았다. 반도체는 빠른 세대 전환과 생산기술 고도화를 통해 경쟁력을 키우고 있었고, 자동차 역시 엔진 개발과 품질 혁신, 부품 국산화와 플랫폼 역량 축적을 통해 독자 브랜드의 토대를 다지고 있었다. 이 부문은 매각이나 축소의 대상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할 산업이라는 판단이었다.
다른 산업도 모두 포기할 대상은 아니었다. 제철, 조선, 기계, 석유화학은 취약성을 안고 있었지만, 구조조정과 기술 축적, 외국 자본과의 결합을 통해 혁신지향형 부문으로 재편할 수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한화기계 베어링부문은 1998년 독일 FAG와의 합작을 통해 재편됐고, 이는 국내 최초의 특정 사업부문 합작 매각 사례로 기록됐다. 같은 해 볼보는 삼성중공업 건설기계부문을 인수한 뒤 창원공장을 글로벌 생산기지로 키웠고, 이후 볼보 내부에서도 대표적 성공 사례로 평가됐다.
han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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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적어도 전자와 자동차를 둘러싼 대목에서는 KDI 쪽 판단이 현실에 더 가까웠다. 전자와 자동차는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양대 축으로 성장했고, 세계적 기업도 실제로 한국에서 탄생했다. 다른 산업들도 아직 반도체나 자동차처럼 안정적 선도권에 이르렀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더 이상 단순 추격산업에 머물고 있지는 않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한국은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함께 갖춘 드문 산업 포트폴리오를 가진 나라이고,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충격도 비교적 탄력적으로 넘겨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단기적 경기 부침에 흔들리고, 구조적 원인보다 드러난 문제에 대증적으로 대응하는 냄비식 경제운용의 경향이 다시 강해지고 있다. 강한 산업 기반과 불안한 정책 반응이 충돌하는 지금, 한국 경제는 AI 혁명과 산업 재편의 거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지금 다시 1999년과 같은 논쟁이 열린다면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될까. 외국의 저명한 전문가나 OECD, IMF, Brookings 같은 해외 기관이 한국 경제를 관측하고 평가할 수는 있어도, 한국 산업의 실체와 미래를 대신 진단해 줄 수는 없다. 그들의 진단은 중요한 거울이지만 어디까지나 외부의 시각일 뿐이다. 필요한 것은 국내 산업과 경제 전체를 면밀히 분석하고, 어떤 전략과 제도가 필요한지 끝까지 따져 묻는 내부의 지적 인프라다. 외부의 판단을 흡수하되 스스로를 진단하고 교정할 수 있는 힘을 보강하지 못하면, 한국 경제는 방향을 잃고 표류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야말로 글로벌 선도국으로서 우리의 위상을 지키기 위한 핵심 과제다.
2026.7.26 접수 From 우천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