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남단 환상의 섬, 마라도(馬羅島)탐방
마라도(馬羅島)는 제주도에서 남쪽으로 약 11km 떨어져 있으며, 한국의 최남단(북
위 33˚06′)에 해당한다. 사람이 처음으로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1883년 김(金)·
나(羅)·한(韓) 등 3성(姓)의 몇몇 영세농민이 들어오면서부터이며, 당시 이들에 의
한 화전으로 삼림지대가 모두 훼손되었다고 한다. 섬 안에 34m 의 작은 구릉이 있
을 뿐 대부분 저평하다. 해안은 암석해안이 대부분이며, 곳곳에 깎아 세운듯한 해식
애와 해식동굴이 많다. 기후는 대체로 온화하며, 특히 겨울에는 기온이 높아 따뜻하
다.
식생이 다양하여 약 96종의 식물이 서식한다. 농경지는 초원지대가 대부분이므로
집 앞에 소규모의 유채밭과 고구마밭이 있을 뿐이며, 주민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한
다. 연안 일대에서는 자연산 미역· 전복·소라·톳 등이 채취된다. 선착장이 2군
데 있으며, 모슬포와는 정기여객선이 왕래한다. 마라도 등대가 있으며,면적 0.3㎢,
해안선길이 1.5km, 인구 100여명이 살고 있다.
♣ 고구마 형태를 닮았다는 마라도, 애기업게의 슬픈 전설
수백 년 전, 가파도에도 마라도에도 사람이 살지 않았던 시절, 모슬포에 살고 있는
이씨 부인은 어느 날 물을 길러 가다가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게 된다. 울음소리
를 좇아가니 태어난 지 3개월도 채 안된 여자아이가 수풀 속에서 울고 있었다. 백방
으로 수소문해 보았지만 아이의 부모를 찾을 수 없게 되자, 이씨 부인이 딸처럼 기
르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이씨 부인에게도 태기가 있어 첫아이를 낳았고, 여자아이
는 자연스럽게 아기를 봐주는 애기업게가 되었다.
사람이 살지 않았던 시절의 마라도는 금단의 땅이었다. 섬 주변에는 각종 어류며 해
산물들이 풍부 했지만, 그것들을 잡으면 바다의 신이 노해서 거친 바람과 흉작 등으
로 화를 입힌다고 여겨 사람들이 접근을 꺼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매년 봄, 망종으
로부터 보름 동안은 마라도에 건너가는 것이 허가되던 때였다.
어느 해 봄, 모슬포 잠수해녀들은 마라도 '섬비물'해안에 배를 대고 물질을 시작했
다. 바다는 매우 잔잔했고, 날씨도 좋아서 소라, 전복 등이 많이 잡혔다. 그러다 보
니, 어느새 이레가 지나고, 가지고 들어온 양식도 다 떨어지고 말았다.
"이번 물질은 잘도 푸진게, 이제 그만하고 오늘랑 돌아갑주." 잠해녀수들이 섬을 떠
날 채비를 하자, 갑자기 바람이 불고, 잔잔했던 바다가 거칠어졌다. "잔잔해지면 가
야되큰게" 그런데, 바다가 참으로 이상했다. 떠날 것을 포기하고 배를 묶어 놓으면
잔잔해 지고, 배를 타려고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거칠어졌다.
"이거 틀림없이 바다신이 노한거라. 이제 살앙 돌아가긴 틀린 거 닮수다." 물이고
양식이고 다 바닥이 난 날 저녁, 잠수들은 다음날에는 죽을 각오로 떠나기로 뜻을
모았다. 떠나기로 한 날 아침, 가장 나이 많은 잠수해녀가 선주(船主)에게 지난밤
의 꿈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어젯밤 꿈에 누가 나타나 이르기를 애기업개를 두고 가야지 데리고 가면 모두 물
에 빠져 죽을거랜 합디다. 어멍도 아방도 없는 아이니 두고 가야쿠다."
신기하게도 부인 역시 똑같은 꿈을 꾸었다고 했다. 일행들은 의논 끝에 애기업게를
희생시키기로 하고 떠날 채비를 했다. 어찌 갈등이 없었으랴만, 더 이상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배를 띄워 사람들이 오르자, 잔잔했던 바다에 다시 바람
이 일기 시작해면서 거칠어질 조짐을 보였다. 아기 어머니가 애기업게에게 말했다.
"아이고, 얘야, 아기 기저귀 널어놓은 것을 잊어버리고 안 걷어 와졌구나. 저기 저
바위 위에 하얀 걸렁이 보이지? 얼른 가서 좀 걷어 오너라."
애기업게가 기저귀를 가지러 간 사이에 배는 바다 가운데로 빠져나갔다. 뒤늦게 눈
치를 챈 애기업게는 목이 터져라 울부짖었다. "나도 데려가 줍서! 제발 데려가줍
서!"
그러나 무정하게도 배는 뒷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바다는 더 이상 거칠어지지 않았
다. 배에 탄 사람들은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 차마 뒤를 돌아
볼 수도 없었다. 그 뒤 3년 동안 사람들은 무서워서 마라도 쪽으로 가지 못했다.
3년이 지난 뒤 마라도에 들어간 사람들은 모슬포와 가파도가 가장 잘 바라다 보이
는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모슬포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가 외로움과 굶주림에 지쳐서 죽은 애기업게의 뼈를 볼 수 있었다.
잠수부들은 애기업게의 뼈를 그 자리에 곱게 묻어 장례를 치러 주었다. 그리고 애기
업개를 위해 그 자리에 당을 만들었다. 그리고 매달 7일과 17일, 27일에 제를 지내
고 해상의 안전을 기원하였다. 그 이후로는 사람들이 바다에서 죽는 일이 드물어졌
다고 한다. (e)
▼ .모슬포 송악산 선착장에서 유람선(송악산 2호)을 타고 마라도를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