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인비는 말했다.
"인류의 문명은 동에서 서로 이동해갔다."
이른바 '문명서천설(文明西遷說)'이다.
아닌게 아니라 현 사학계에서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고 일컬어지는 수메르 문명(메소포타미아)의 불씨가 이집트를 거쳐 페르시아, 그리이스, 로마 등으로 이어지고, 다시 신성로마제국(유럽)에서 영국, 그리고 대서양을 건너 미대륙으로 이어지는 궤적을 보고 있자면 과연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미국에서 다시 태평양을 넘어 일본이 그 문명의 불꽃를 화려하게 피워냈던 것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싣고 황도를 동에서 서로 내달렸던 아폴론의 불마차는 어쩌면 문명의 또 다른 이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더하여 수메르인들은 스스로를 동방에서 온 자들이라고 했다.
수메르인들에 관한 사료를 보면, 교착어를 사용했고 검은 머리, 단두(短頭; 유럽인들은 長頭에 해당)에 12진법과 태음력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아무래도 몽골 계통으로 보인다.(이를 '동이족'이라는 표현을 쓰면 유달리 편협한 국수주의 발상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있어서 '몽골'이라 함)
이 외에도 풍습이나 언어 등에서도 이쪽과 상당한 유사점을 보여준다.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는가.
왜 고리타분하게 지나간 세월 타령인가.
아니다.
정말 아니다.
지금 이 세상을 나름대로 이리저리 재단하고 있는 수많은 가치관들은 결국 온전한 역사관 정립에서만 비로소 제자리를 잡고 하나됨을 모색할 수 있다.
난 지금 고작 한민족의 정체성 차원을 가지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지하는가.
과거 100여년 동안 이 행성이 어떠한 역사정신을 품고 둥글러왔는지 그대는 인지하는가 말이다.
나아가서 현 문명의 근 일만여년 역사가 어떤 고갱이를 틀어앉고 이만큼 왔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굴러갈 것인지 그걸 서늘하게 열린 가슴으로 한번 궁리해보았는가.
과거 100년은 바로 이 행성이 하나의 문명권이 되는 진통과정이었다.
몇세기 전 영국과 프랑스가 100년동안 전쟁을 치룰 때에도, 그것은 그들만의 일이었다.
물론 그 여파가 분명히 이쪽 세상에도 전해온 바는 있었겠지만 아무튼 그들과 우리는 시차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조그만 사건이 그날로 이 땅의 주식상황판을 춤추게 한다.
촌동네 삼식이 할배 회갑이 고을 잔치되듯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역사란 이 문명이 흘러온 물길을 보는 것이다.
그걸 봄으로써 앞으로 이 물길이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역사는 인류가 현현해온 모든 인문영역의 산실이다.
그 어떤 깨달음, 진리도 그 시대의 역사정신 안에서만 그 틀이 제대로 보인다.
지상을 왔다간 수많은 선철들은 바로 역사속의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그 시대정신 속에서 밥먹고 똥싸고 배우고 깨닫고 외쳤다.
진실로 그분들의 가르침의 정수를 알고자 한다면 먼저 그 시대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역사를 알고자 하는, 알아야 하는 절대절명의 이유이다.
그 어느 누가 역사 바깥에 서 있을 수 있는가.
누가 역사를 하찮은 지식놀음이라고 하는가.
역사를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 어떤 분이 어떤 말을 했느니, 안 했느니 하는 것은 심하게 말해서 전부 반 사기꾼이다.
모든 이의 진리는 하나가 되어야 하고 하나가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옛 성인이 전하신 사사무애가 아니던가.
그러기 위해서 유일하고도 가장 확실한 방법이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역사정신을 그대로 느끼는 것이다.
진실로든 거짓으로든 역사를 논하지 않는 자, 그는 진리를 모르는 자이다.
진리를 모독하는 자들이다.
아, 역사혼의 부활이여!
모든 거짓과 왜곡을 잠재우라.
지구인
덧붙임: 혹자는 이러한 역사바로세우기가 일제, 나찌, 유대 시오니즘의 폐쇄적 우월사상과 뭐가 다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다르다.
나부터도 그런 덜떨어진 제국주의 선민사상은 경멸한다.(사실 그런 쪽으로 흐르는 사람들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밝히도록 하겠다.
아랫글은 이 까페의 [한민족의 역사, 철학, 사상]에 있는 글입니다.
삼독(三毒)과 외래종교의 폐해
우리 민족의 역사가 상실되고 왜곡된 까닭은 다음과 같다.
※보다 상세한 내용은 증산도 사상연구 제4집「9000년 역사의 뿌리를 찾아서」 190-208쪽과 안원전저 「통곡하는 민족혼」 396-432쪽을 참조바람.
1. 중독(中毒 중국해독; 사대주의 사관): 우리민족이 예로부터 중국에 예속되어 중국에 조공이나 바치며 살아온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는 신라 무열왕 김춘추가 648년 패강 이북의 땅을 당에 바치기로 하고 나당밀약을 맺은 것과 진덕여왕 4년(650년)부터 당의 연호를 쓰기 시작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에 당, 송, 명을 숭상하는 것이 국시(國是)로 자리잡은 결과, 주체성을 상실한 사대주의 유학자들에 의해 우리 역사가 왜곡되게 쓰여졌다.
중독(中毒)의 대표적인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김부식의 삼국사기: 환인, 환웅, 단군의 역사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않음.
일연의 삼국유사: 환국을 불교의 제석환국(帝釋桓國)으로, 신시 태백산을 묘향 산으로 왜곡, 단군 왕검의 도읍지 아사달을 평양으로 축소, 위만 조선을 고조선의 후계왕국인 것처럼 조작.
2. 왜독(倭毒 일본해독; 식민주의 사관): 식민사관의 폐해는 고대사 말살, 특히 환인·환웅·단군의 신화화, 반도사관(半島史觀) 주입, 한사군 설치, 임나일본 부 조작, 광개토왕 비문의 조작 등이다.
일제는 조선 사람들이 자신의 역사, 전통을 모르게 하여 민족혼과 문화를 상실하게 함은 물론, 더 나아가 결점만을 들추어내 과장하여 스스로 경시·멸시하게 만든 후, 일본의 우수성을 부각하여 반(半)일본화하고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합리화하려고 하였으니 이것이 일제 식민사관의 골자이다.
일본의 식민사관 정책은 매우 철두철미하게 추진되었다.
ⅰ) 일제는 우선 우리 역사를 날조하기 위해 모든 역사책을 약탈하고 불태워 없앴다(중요한 책들은 일본으로 운반, 황실문고에 비밀 보관중이다).
ⅱ) 다음에는 고대 7천년의 위대했던 상고사(환국, 배달국, 단군조선)와 국조를 신화화하여 없애고, 한사군과 임나일본부설을 조작하여 뿌리도 임자도 없는 한(漢)의 식민지, 일본의 식민지였던 나라로 날조 비하시켰다.
ⅲ) 동양사의 주체요, 종주국이었던 한민족의 역사를 한반도 안으로 압축시켜 버려, 반도안에서 움추린 채 기를 못폈던 소국의 역사로 만들었다.(한민족의 주활동 무대였던 중국 동북부와 만주를 한민족사에서 지워버렸다)
ⅳ) 예로부터 제대로 완전히 독립해 본적이 없는, 분열과 사색당파만 일삼고, 무능하고 부패한 미개민족인 것처럼 꾸몄다. 예컨데, 삼국사는 민족분열과 동족상잔의 역사인 것처럼, 고려사는 기강없는 음탕한 역사인 것처럼, 조선사는 탐관오리와 사색당쟁으로 일관된 역사인 것처럼 날조했다.
상기 역사날조 작업의 선봉장에는 '석유환국(昔有桓國)'을 '석유환인(昔有桓因)'으로 변조한 일제 식민사학자 이마니시류(今西龍)가 앞장섰고, 어찌된 영문인지 한국사람(?) 이병도(李丙燾)는 이마니시류의 주구(走狗: 앞잡이)로서 적극 가담했다.
8.15 해방후 한국역사를 주체적으로 연구한 사람은 거의 전무했고, 일제의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일하던 이병도나 친일 사학자들 밖에는 없었다.
박은식, 신채호 같은 분은 이미 일제의 탄압으로 타계하신 뒤였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민족사학자 정인보 선생은 6.25때 납북되었으며, 육당 최남선은 일제때 부역을 했기 때문에 반민특위에 걸려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리하여 친일 사학자 이병도의 독무대가 되었으며, 그가 S대에서 길러낸 수많은 제자들도 모두 그의 일제 식민사관에 따라 교육받고 그의 영향력 안에 있었다.
이렇게 해서 1945년 해방과 함께 우리의 행정기관, 종교, 한글, 창씨등은 바로 해방되었지만, 유독 우리 한민족의 진정한 역사만은 40년이 지나도록 해방되지 않은채 오늘날까지도 그 막심한 폐해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매국노 이병도도 죽을 때 되어서는 천상의 국조3위 성조와 조상들 얼굴 보기가 두려웠던지, 죽기(1989) 6년전에는 단군조선의 역사가 신화가 아니고 실존의 역사라는 논문을 쓰고, 자신의 제자들에게도 단군역사가 사실임을 누누히 강조하였다.
3. 양독(洋毒, 서양해독): 일제에 의해 고대사 자료가 망실된 상태에서 해방 후 고고학, 문헌 고증을 위주로 하는 서양 실증주의 사학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바로 잡는데 큰 독소이다. 특히 서구의 물질적 사상의 확산으로 인해 전통문화와 민족정신이 붕괴되었다.
4. 외래종교의 폐해
유교의 폐해: 유교는 중국이 인류의 중앙이라는 중국 중심주의를 제창하며, 유교를 숭상한 조선때 우리 민족의 역사, 철학, 종교, 문학의 중요한 사료를 말살했다.
불교의 폐해: 불교의 교리는 공(空)을 추구하고 개인주의적이어서 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바로 잡는데 등한히 하였다. 특히 승려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환인을 제석환인(帝釋桓因)이라하여 한낱 불법(佛法)의 수호신으로 오인하게끔 기술했다.
기독교의 폐해: 기독교는 우상숭배라는 미명하에 단군은 신화의 인물이고 우상이라고 매도한다. 한국 근대화 과정의 민족선각자라고 불리는 인사들의 상당수(이승훈, 이상재, 안창호, 서재필, 이승만, 조만식 등)는 기독교로 개종한 서구적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 독실한 기독교 사상가인 함석헌은 「성서적 입장 에서 본 조선역사(뜻으로 본 조선역사)」를 통해 비주체적 반민족관과 반역사관을 지향하고 있으며, 그의 영향을 받은 김동길 또한 단군역사를 부정하고 있다.
하찮은 사기꾼이나 얼마 전에 잡힌 탈주범으로 신창원과 같은 살인강도보다도 더욱 무서운 죄는 민족혼의 주춧돌을 무너뜨리는 말을 함부로 하여 역사왜곡을 하는 것이다.
이완용은 이조 500년만 말아먹었지만 이러한 식민사학자, 비주체적인 서양사학자들의 말은 7천년의 역사를 말아 먹기 때문이다.
99.7월초 경기도 여주군 초·중등학교에 세워진 단군상의 목이 일부 기독교인들에 의해 잘려져 나간 사건은 외래종교에 의한 역사왜곡의 실상을 다시금 극명하게 잘 증명한 사건이었다.
1990년대 초 우리 정부는 해외 각국의 교과서, 자료, 사전 등에 왜곡되어 기술되어 있는 우리 역사, 지명의 내용을 바로 잡는 사업을 추진한 적이 있다.
이러한 노력도 필요할지 모르나 더욱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우리 역사에 관해 잘못 기술된 국내에 있는 교과서와 자료부터 우선 바로 잡는 일이다.
우리 정신부터 바로하는 일이다.
잃어버린, 빼앗긴 7000년의 역사를 되찾는 일이다.
BC 58년 북부여를 계승한 고주몽성제는 처음 임금이 되어 '다물(多勿)'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BC 37년 북부여에서 '고구려'로 국호를 바꾼 때에는 '평락'이라는 연호를 사용)
다물은 순수한 우리말로써 '되물린다' 또는 '되찾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남북 2만리, 동서 1만리의 아시아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위대한 시대였던 단군조선 제38대 단군「다물」때의 우리나라 본래의 모든 영토를 되찾자는 뜻이다.(진정한 의미에서의 '다물'은 후천개벽과 함께 이룩된다)
이웃나라 일본은 일부러 엉터리 역사를 자기 나름대로 좋게 꾸미고 만들어서까지 교육하고 있는 실정인데 유독 우리나라는 위대하고 훌륭한 한민족사가 있는데도 불고하고 이를 바로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있으니 이 어찌 애통한 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