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불견눈 익자삼우 친구,
목[木] : 목수도 아닌 어미가 손수 원두막 얽어 세워 불[立] : 불편한 도회지로 떠난 어머님 자식 발자국 견[見·见] : 견고하게 지어진 곳에 올라 동구밖 보면 눈[淚] : 눈물로 고별하던 정겨운 자네와 나의 모습
익[益] : 익히 우리는 알고 있잖은가 자[者] :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삼[三] : 삼고초려 해가면서 변치 않을 우[友] : 우리 서로 듬직한 벗으로 남세,
친[親] : 친구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려 구[舊] : 구만리 인생길 어둠 속 빛이 되어준 부모님 잊지 마세.
내 새끼 언제 오려나 이제나 저 재나 하며 기다리다 눈이 빠질 듯한 어머님의 마음,
먼 길 떠난 자녀가 어디쯤 오고 있는지 쓰러진 나무 엮어 마당에 드높이 세워놓고 마을 어귀만 연신 두리번거리는 어머님의 숨결
그 순간 공기를 머금은 바람이 떠돌다가 멀리 떠난 자녀를 그리는 어미를 휘감네.
간절함은 기다림의 다른 이름 긴 그리움은 끝을 모르는 마음
어둠 속에도 찬 이슬 맞는 새벽녘에도 어머니는 언제나 그 자리에 계셨다지.
목[木]이 뿌리를 내리면 립[立]은 하늘을 향해 치솟으며 견[見·见]은 끝없이 멀리 닿아 보고자 하고 눈[淚]은 물기가 쉼 없이 흘러 마를 날이 없네, 그 합이 더해지면 세상을 두려움 없이 살게 되네.
친구여, 우리도 나무가 될 수 있다면 절박한 이를 위해 가지처럼 손을 내밀어 주고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이를 위해 그늘이 되어주세.
누군가 어둠속 걷는 길에 작은 등불로 그들이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게 말일세.
친(親)은 곁에 있어 주길 바라는 것보다 멀리 있는 벗을 향한 반가운 걸음 이제나 저재나 목빠지는 어머님 마음
우리가 살아가는 길 위에서 싹튼 친밀함은 뿌리처럼 서로를 얼어매면 언젠가 큰 숲이 되리라는 것을 믿고 싶네. @@@@@@@@@@@
親(친)의 본질과 나와 타인의 관계를 짚어 본다.
친(親. 혈연관계로 맺어진 또는 친할 뜻의 친하다와 사랑하다.)이가 되어)이라는 한자는 흔히 가족과 친구의 관계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 기원에는 어머니와 아들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나무 위에 올라 아들을 기다리던 어머니의 간절함이 親 자를 탄생시켰다. 나무[木], 올라서[立], 바라보는[見] 눈물, 빠르게 흐르는 모양[淚] 이 네 요소는 단순히 자식에 대한 마음을 넘어서, 진정한 관계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하지만 우리가 親을 대하는 방식은 종종 일방적이다. 관계를 통해 얻는 이익에 초점을 맞추거나,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을 친구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親이란 상대방을 향한 순수한 애정에서 비롯된다. 어머니가 아들을 기다릴 때, 그녀는 보상을 바라지 않았다. 단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랐다.
이 시점에서 親의 의미를 확장해보자. 親은 단순히 나와 가까운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나 자신이 먼저 관계의 시작점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나무 위에 오른 어머니처럼, 내가 먼저 다가가고, 내가 먼저 기대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타인을 대하는 태도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관점이다.
현대 사회에서 親은 단순한 유대감을 넘어서 공감의 실천을 뜻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배경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연결되기 위해 노력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는 것. 親은 동질성에 의존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질성을 존중하며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힘이다.
어머니가 아들을 기다리며 보여준 親의 마음은 사실 모든 관계에 적용될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이의 삶에 애정을 기울이고, 나무 위에 올라 그들의 존재를 바라보며, 다가올 순간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런 태도가 우리의 관계를 더 깊고 진실되게 만들 것이다.
친구여, 親의 본질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러한 태도가 나 자신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나무 위에 올라 세상을 바라보듯,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나와 타인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자. 진정한 親은 거기에서 시작되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