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달이 사라진 자리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건 목성이다
가을걷이가 막 끝난 고랭지 육백마지기 산마루
게으른 고집불통의 건축가가 짓다 말았을 너덜겅
밭두둑을 따라가면 해거리로 놀려둔 목초지 둔덕이 펼쳐지고
어스름에 붉은 칠이 바스러지는 헛간 벽 틈에 번지는 어둠
그 너머로 쏟아지는 은하수
어느 계곡으로는 양들이 떼를 지어 몰려가는가
지분거리다가도 우지끈 이마를 치받는 굉음 바람은
호주머니 속에서 맞잡은 손아귀 사이로 잦아드는데
언덕 너머 구름장 아래로 우박과 서리를 퍼부을 듯
별이 진다, 뿔 하나 돋지 않았을 밋밋한 이마
웅크리고 잠든 양들의 등성이에도
별은 지고
내 삶에도 언젠가 한 번쯤
간절한 기도가 있었다 다만 내 몫으로
두 손 마주 잡은 온기와 불빛들 나란히 서서 보면
은은하게 별자리를 그려왔을 다정한 이름들
그 곁에서는 여행마저 일상이다v
기억을 믿지 않았고 회감을 돌보지 않았다
뼛속까지 지쳤지만 위로는 멀었다 그러한
보잘것없는 어느 사이에도 도둑처럼
서정이 깃들이곤 했다 안반데기 은하수
안온한 빛을 품어오는 것들은
결코 혼자 오지 않는다는 걸 일깨우려는 듯
저 별빛 가시고 나면
얕은 골짜기를 골라 디뎌 물 위를 걸어가리라
은하수 건너 건너 내게로 온 당신으로 하여금
이 비릿한 숨 더운 피
마저 건너시라고 우리 언젠가
*천 개의 바위를 덮은 흰 눈을 함께 보리라고
*「벽암록」51칙, 頌.
-『내외일보/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2023.08.10. -
헛간 갈라진 벽틈으로 은하수가 쏟아집니다. 저편 계곡을 건너 양들이 떼 지어 집으로 돌아가고 난 뒤, “가을걷이가 막 끝난” 산마루에 어둠이 깔리고 “호주머니 속에서” 간절히 맞잡은 손이 떨립니다. 어둠 속에서 별을 마주 보면 서로에게 간절해지던 하늘 가까운 마을. 별빛이 가시고 나면 물 위를 걸어갈 수 있을 것만 같고, 둘이 함께라면 눈 덮인 천 개의 바위를 헤치며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곳. 별이 지고 오랜 시간이 지나 “내 삶에도 언젠가 한 번쯤/ 간절한 기도가 있었”음을, 마주 잡은 온기가 사라진 뒤에도 은은한 별자리처럼 머리맡에 반짝이는 다정한 이름이 있었음을 기억하게 만드는 곳. 갈라진 벽틈으로 쏟아지는 은하수처럼 고단한 삶에 기적처럼 깃들던 “서정”의 순간을 만나게 되는 곳. 그곳이 안반데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