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군 최남단에는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이 주둔했던 포구, 미조항이 있다. 치열했던 전장엔 군함 대신 만선의 꿈을 품은 어선이 드나들고, 수산물 경매장과 맛집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남해의 어업을 견인하는 대표 항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는 옛 냉동창고를 리모델링한 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 미조가 들어서면서 청년들의 발길도 늘었다.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 관광지로서 활기를 띠게 된 이유다.
낡은 냉동창고에서 남해의 핫플레이스로
남해군 최남단에 있는 포구 미조항
남해의 대표적인 관광지를 꼽을 때 미조항을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다. 독일마을, 보리암, 다랭이마을 등 로컬 스토리가 살아있는 유명한 관광지가 이미 여럿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조항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새벽마다 경매가 열리고, 항구에 늘어선 식당들은 신선한 해산물로 손맛을 낸다. 이곳을 거닐다 보면 남해 어민들의 일상, 삶의 한복판에 선 듯하다.
냉동창고를 리모델링한 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 미조
이런 미조항에 유달리 돋보이는 건물이 하나 있다. 4층 규모의 복합문화공간 미조 스페이스다. 이곳은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미조항 어부들의 냉동창고였다. 새로운 냉동창고가 건설된 이후로 옛 냉동창고는 방치되었고, 남해군이 이 건물을 매입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높은 층고를 활용한 전시 공간
냉동창고로 활용될 당시 사용했던 냉각용 열교환기
스페이스 미조는 ㈜아랑지가 도맡아 운영한다. 주축은 도시계획가 양승희 소장(양지 도시건축연구소). 전국 각지의 옛 마을을 재생해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왔던 그는 높은 층고와 탁 트인 내부 구조, 항구와 맞닿아 있는 건물 위치 등 냉동창고의 여러 특성을 십분 활용해 스페이스 미조를 다듬었다.
스페이스 미조에서 열린 클래식 공연
전시물을 관람하는 모습
냉동창고 안에 얼음이 아닌 예술 작품이 놓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스페이스 미조는 매주 수준급 전시와 공연, 다양한 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클래식 공연이 열릴 때에는 스페이스 미조만의 장점이 극대화된다. 넓은 내부 공간이 하나의 거대한 울림통이 되어 소리를 한층 풍성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클래식 공연은 꽤 인기가 많은 편이다.
스페이스 미조의 문을 두드린 작가도 있다. 구름을 만드는 예술가, 베른나우트 스밀데(Berndnaut Smilde)가 대표적이다. 그는 습도와 조명, 온도를 조절해 인위적으로 몇 초간 구름을 만들고, 이를 순간 포착해 사진을 촬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23년 초, 이곳에서 베른나우트의 한국 첫 전시회가 열렸을 때 전시 기간이 짧았음에도 수많은 관객이 다녀갔으며,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 각국 대사관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
이주요 작가의 작품 ‘스토리 버스’
올해 여름부터는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받은 이주요 작가의 작품, ‘스토리 버스’를 전시중이다. 그는 친숙한 플랫폼 위에 새로운 작품을 배치해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는 식의 작업을 즐긴다. ‘스토리 버스’ 역시 지역 주민과 방문객이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실제 작품 제작 및 전시에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 그 자체다. 낡은 일상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점에서, 그의 전시는 스페이스 미조의 정체성과 똑 닮아 있는 듯하다.
지역과 상생하는 스페이스 미조
남해산 멸치를 넣은 앤쵸비 파스타
섬 브라우니와 해당화 에이드
스페이스 미조와 지역 주민이 개발한 멸치액젓
스페이스 미조는 타 지역에서 찾아오는 방문객에게 미조항 고유의 가치를 소개하기도 한다. 카페테리아 메뉴에 남해의 청정 자연에서 자라는 참다래와 해당화로 만든 에이드, 남해산 멸치액젓을 사용한 앤쵸비 파스타를 넣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주민들과 함께 개발한 남해산 멸치액젓도 판매하는데, 1인 가구의 소비 성향에 맞추어 젊은 감각으로 소포장한 점이 눈에 띈다.
미조항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테라스
전시가 열리는 날이 아니더라도, 스페이스 미조의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있다. 4층 테라스에서 미조항 풍경을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지역색이 담긴 체험 키트를 구매해 시간을 보내도 좋다.
미조항의 해상산책로
스페이스 미조를 충분히 즐겼다면 미조항 산책에 나서 보자. 관광지가 아닌, 지역 주민들의 삶이 녹아 있는 정겨운 풍경이 오히려 두 눈을 즐겁게 한다. 최근에는 미조항과 방파제 사이를 잇는 해상산책로가 설치되어 바다 위를 걷는 기분도 느낄 수 있다.
스페이스 미조(주식회사 아랑지)
- 위치 : 경상남도 남해군 미조면 미조로 254
- 문의 : 0507-1350-8072
- 운영시간 : 목~월요일 11:00~19:00, 매주 화~수 휴무
- 홈페이지 : https://instagram.com/space.mijo
‘스페이스 미조’ 주변 가볼만한 곳
조용하고 한적한 천하몽돌해수욕장
해변에 밀려온 파도
#천하몽돌해수욕장
남해에는 파도가 드나들 때마다 도르르 굴러가는 듯한 소리가 나는 몽돌해변이 많다. 그중 천하몽돌해변은 미조항과 가까운 조용한 마을에 위치해 바다가 들려주는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좋은 곳이다. 카페나 횟집 등 주변 시설이 거의 없지만, 접안시설마저 없는 덕분에 계곡처럼 투명하고 맑은 바다를 만날 수 있다. 해수욕장과 접한 천하마을은 올 여름 방영된 <언니네 산지직송> 남해 편 촬영지이기도 하다. 출연진이 다녀간 흔적을 찾아보고 남해 멸치 요리도 맛보며 ‘언니들’처럼 짭조롬한 어촌 여행을 즐겨도 좋다.
천하몽돌해수욕장
- 위치 : 경상남도 남해군 미조면 송정리 1379
- 문의 : 055-862-5734
- 운영시간 : 상시 개방
- 이용요금 : 야영장 이용료 20,000원(비수기), 30,000원(성수기)
남해 등대를 형상화한 남해보물섬전망대
유리 덱을 걷는 클리프워크 체험
#남해보물섬전망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히는 물미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아찔한 절벽에 자리한 남해보물섬전망대를 만나게 된다. 원통형의 건물은 남해를 비추는 등대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360도 뻥 뚫린 시원한 전망을 선사한다. 건물 외부에 조성된 유리 데크를 걷는 클리프워크 체험도 가능하다. 하네스와 로프에 몸을 의지한 채 허공에 몸을 기대면, 스파이더맨이 된 듯 신나면서도 손에 땀을 쥐는 스릴감을 맛볼 수 있다.
남해보물섬전망대
- 위치 : 경상남도 남해군 삼동면 동부대로 720
- 문의 : 055-867-6022
- 운영시간 : 09:00~19:00 ※ 계절별 변동
- 이용요금 : 스카이워크 기본코스 13,000원, 특별동작 5,000원, 사진촬영 10,000원
- 홈페이지 : https://instagram.com/namhae_cliffhill
독일마을
독일식 돈가스 슈니첼
#독일마을
남해독일마을은 6~70년대 파독 근로자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남해군이 단지를 조성하고, 귀국한 파독 근로자들이 독일식으로 집을 지어 오늘에 이르렀다. 하얀 외벽에 주황색 지붕을 얹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인 마을 풍경은 독일의 시골 마을처럼 이국적이다. 마을 곳곳에 카페, 식당, 기념품점은 물론 파독 근로자의 힘겨운 삶을 소개한 전시관이 있어 즐길거리가 풍부하다. 나라별 테마에 맞춰 정원을 가꾼 원예예술촌과도 맞닿아 있으니 하루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독일마을
- 위치 : 경상남도 남해군 독일로 89-7
- 문의 : 055-867-8897
- 홈페이지 : https://german-village.kr/
◆ 새로운 지역관광의 미래를 그리다, 산학연관 이을 프로젝트
‘이을 프로젝트’는 산학연관(지역 내 관광 산업체, 학교, 연구소, 지자체)이 협력해 하나의 사업단을 구성하고, 지역의 자원을 활용해 독창적인 여행 상품을 개발하는 사업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2019년부터 공모전을 통해 숨은 지역 관광자원을 발굴하고, 매력적인 콘텐츠를 비즈니스의 기회로 발전시키는 데 힘썼다. ‘이을 프로젝트’ 사업단과 함께 여행자에겐 색다른 경험을, 주민에겐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는 ‘상생’의 가치를 온 몸으로 느껴보자.
◆ 산학연관 이을 프로젝트 기사 보기
- 누구에게나 활짝 열린 부산 바다를 위하여
복지플랜주식회사 | 2020년도 이을 프로젝트에 선정되었으며, 수상 휠체어 등 관광 약자를 위한 무장애 여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 부산 바다 위에 나만의 공간을 띄우다, 블루윙 패들보드 체험
블루윙(주) | 2022년도 이을 프로젝트에 선정되었으며, 다양한 해양 레포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 영양 산골 오지에서 즐기는 별빛 샤워
㈜별따는영양 | 2023년도 이을 프로젝트에 선정되었으며, 천문 관측과 자연 체험을 결합한 별빛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 남해의 멋과 맛을 저장한 냉동창고, 스페이스 미조
주식회사 아랑지 | 2022년도 이을 프로젝트에 선정되었으며, 지역 자원을 활용한 전시·공연·문화 체험이 결합된 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 미조를 운영하고 있다.
- 귀촌 선배의 생생한 경험담이 솔솔, 이야기가 있는 산촌의 일상 속으로
㈜한국농산어촌네트워크 | 2019년도 이을 프로젝트에 선정되었으며, 지역 농산어촌을 기반으로 체험형 산림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 원주 피노키오숲에서 누리는 산림 치유의 힘
피노키오숲사업단 | 2023년도 이을 프로젝트에 선정되었으며, 자연과 산림을 활용한 숲 치유와 한방 의료를 결합한 웰니스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 나의 작은 가족, 댕댕이와 함께 떠나는 시골 여행 ‘뚜렁이 페스타’
주식회사플라이투게더 | 2023년도 이을 프로젝트에 선정되었으며, 반려견과 반려인이 함께하는 시골 여행 ‘뚜렁이페스타’ 등 다양한 로컬 여행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 글, 사진 : 김정흠 여행작가
※ 위 정보는 2024년 11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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