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봄내음 맡으려 고려산과 석모도를 유람하고
인생의 의무감이 줄어들면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60대 후반은 누구나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더 좋은 꿈을 실현하고 싶어 한다. 이제는 벚꽃나무에서 꽃비가 내린다. 목련도 지난 눈비에 백옥 같은 꽃잎이 지저분하게 변색되었다. 시골 뒷동산에 피었던 다복한 분홍색 진달래 군락이 아련하다. 우리부부는 휴일이 겹치는 날을 이용해 서로의 기억 속에 그려진 진달래 추억을 찾아서 봄내음이 화려한 그곳으로 출발했다. 그곳은 고향이 아니고 일산에서 가까운 강화 고려산과 석모도다. 강화 고려산 진달래축제는 4/17~4/22일 까지라고 사거리에는 현수막으로 시내버스옆구리에는 포스타로 걸고 부쳐서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고 있다. 항상 그러듯이 축제기간동안 차량과 사람으로 인한 그 복잡함은 방문객들로 하여금 진절머리 나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피해 조금 일찍 4/12일에 강화 고려산으로 나들이 나갔다.
고려산 정상은 데크길에 경사가 급해 부인의 다리로는 무리였기에 포기하고 산 초입에서 진달래 맛만 보고 하산키로 했다. 평일임에도 사람과 차량들은 붐빈다. 오르는 길은 강화도 고려산 61번 길이다. 산길을 오르다 잠시 옆으로 빠져 진달래 군락에 들어서 사진을 몇 장 기념으로 찍고 그리고 5천원주고 산 쑥떡을 어느 묘지 옆에 앉아서 서로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느 부인이 이쪽을 바라보고 우리가 있음을 알고 분위기에 방해될까봐 주춤거렸다. 이내 우리가 일어나자 부인이 다가오면서 우리부부가 너무나 보기 좋다고 혼잣말을 하고 반복해서 ‘정말 너무 좋네요.’ 보기에 너무 좋아요. 하면서 우리가 앉았던 자리로 걸어갔다. 우리는 혼잣말에 아무 대꾸도 않고 길을 따라 하산했다. 그 부인은 같이 온 이도 없는 홀로였다. 추정컨대 사별한 남편을 추억하면서 우리를 바라보았던 소소한 그림이 행복의 모습으로 비춰졌던 모양이다. 마음 한 구석이 짠해져 올라온다. 나는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주변에 여러 무리들이 곳곳에서 자리를 펴고 웃음과 즐거움으로 먹고 마시면서 담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좋은 운명도 피치 못하는 숙명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감돈다.
하산 길에는 바람이 서늘하다. 이렇게 우리부부는 봄에만 맛볼 수 있는 꽃구경을 즐기려 여기까지 왔다. 젊어서 바라보는 꽃과 인생후반에 바라보는 꽃의 의미는 다르다. 젊어서는 아름다운 희망의 눈빛으로 개괄적인 색깔에만 감탄하고 응시하지만 인생후반의 눈빛은 좀 더 구체적이며 세밀하게 응시하며 관찰한다. 사라져갈 인생이 새로 피어나는 새 생명에 대한 동경과 사랑이 사무치고 이런 모습을 또 볼 수 있을지 그 운명을 알 수 없기에 한 세상을 일 년간 살기위해 피어나는 꽃들은 소중하고 너무도 예쁘게 보인다. 봄에 피어나는 꽃과 자라나는 풀이 잘 피어나고 자라기만을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한마음이다. 특히 봄이 오는 4월이 되면 나에게는 부인에게 신혼여행을 갔다 오지 못한 아쉬움이 항상 가슴 한 구석에 응어리로 잡혀간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하나 그 심상은 보상할 수 없다. 아름다운 노래도 젊은이에겐 흥겹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듯이 그래서 ‘부드럽게 사는 것이 최선이다.’ 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이런 문제들을 희석하려는 타협적인 억지도 합리적인 논리도 아니지만 삶의 복잡성과 다양성에대한 겸허한 인식과 시원하게 인정하려는 노력이 나에게는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오늘날까지 응어리를 삭이며 어렵게도 여기까지 왔다. 서로가 만나서 추구하는 이상을 실현코자 노력하며 살아온 삶의 궤적이 비록 어긋났지만 서로가 믿고 사랑한다는 용기 있는 고백으로 서서히 우리는 무탈하게 노년으로 접어들고 있다.
고려산 진달래 구경을 마치고 석모대교를 건너 석모도로 바람을 씌러 달렸다. 이 섬은 지난해만해도 강화 외포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야 석모도를 갔다. 지금은 2017년 6월 28일 개통된 석모대교를 이용한다. 석모도 산에도 봄의 여왕 진달래는 지천으로 피었다. 봄의 기지개를 피며 살아 움직이는 석모도의 대지가 무채색에서 푸른색으로 채색되어진다. 재작년 외포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보문사와 온천을 다녀온 경험이 있어 석모도의 새로운 봄의 모습을 감지할 수 있었다. 석양으로 해는 기울고 달리는 도로는 한적하다. 피로에 겹친 부인이 옆자리에서 졸고 있다. 이제는 나홀로 달리는 석모도 해변길이다. 왼쪽으로 석모도 상리들판이 널따란 평야로 그 크기가 대단하다. 이곳의 강화 석모도와 교문도 쌀은 김포 쌀 못지않게 밥맛 좋기로 유명하다. 강화도에서 운영하는 석모도 미네랄온천도 사람이 꽤 찾는 곳이다. 이곳의 지명이 좀 어감상 고약하다는 느낌이드는 삼산면 매음리다. 보문사 앞의 서북쪽으로 미네랄온천에는 오후라 그런지 입장객이 뜸하다. 부인은 깊은 잠에 들고 나는 홀로 석모도 주변 길을 드라이브한다. 한계상황의 삶을 감지하며 조금도 주저함이 없는 마음으로 앞으로의 삶을 세월에 맡기려 마음먹는다. 심신의 제약으로 퇴화되는 기억력과 심해지는 건망증 그리고 이로 인해 생활의 불편을 느끼지만 숙명으로 받아드려야 한다.
시간은 3시를 지나 4시를 향한다. 논, 밭두렁에서는 쑥과 씀바귀 민들레 냉이 등이 보이고 나뭇가지에는 푸른 새순이 보인다. 삶의 리듬이 있듯이 곡절도 있다. 인생의 채색도 나이 따라 변한다. 지나간 세월을 말없이 보내고 다가오는 세월을 말없이 맞이한다. 한때는 아름다운 청춘이었건만 오늘의 석양에 지는 해같이 우리의 시대도 저물어간다. 달리는 차창 옆으로 잘 다듬어진 산소가 눈에 들어온다. 묘지 옆에 검은 비석은 읽어줄 이 없건만 글씨는 한자로 빽옥하다.
누 십년 누워있는 고인이 잠에서 깨어나
아름다운 이봄에 바람과 수작(酬酌:술잔을 주고받음)하고
검은 비석은 고요한 밤에 달님과 대작(對酌)하니
지난세월 그대의 노래는 그윽한 석모도 파도치는 소리요
또 다시 잠에 취해 봄꿈을 꾸는 그대는
봄 하늘을 헤매 도는 흰 구름과 같이 놀고
그 세월 끝이 없어 비석에 이끼만이 자랐네.
모든 생명의 무상을 일컫는 묘비 앞에
부와 명예와 권력은 부질없고
미인과 젊음이 순간임을 깨닫게 되네.
우리의 오늘도 내일이면 과거가 되고
인생도 수많은 세월 뒤엔 그림자조차 없을 지니
한때의 즐거움이 그 자체가 행복의 표상이 아니겠나.
메마른 황무지에 봄의 햇살이 다가와 새싹을 틔우라고 채근해대기에 4월의 봄은 아무리 몸부림쳐도 희망의 잎을 내고 꽃을 피운다. 4월은 대지의 희망의 달이다. 4월의 희망이 우리에게도 희망이 되길 갈망한다. 부인이 잠에서 깨어날 즈음에 우리는 한강을 건너고 있었다. 평범한 하루를 소박하게 보내는 소박한 삶이 우리부부에게는 한때의 즐거움이었다.
2018년 4월 13일
율 천
첫댓글 여행기념글을 정말 정갈있게 잘 쓰셨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