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장>
마지막 인사
모임득
나의 보석 복선아 병수야!
대지랭이 뒷산에 나뭇잎이 하루가 다르게 색깔을 달리하며 크고 있구나. 이 화려한
봄을 보는 것도 엄마에게는 마지막이 될 듯싶어서 쌍둥이에게 유언장을 쓰게 되는구나.
엄마가 십년 만에 너희들을 낳기까지는 제발 아들이건 딸이건 상관없이 자식만 있게
해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단다. 그만큼 자식에 대한 소원이 간절했고 자식만 주신다면 이
몸 다 바쳐서 정말 열심히 키우겠다고 산신할머니께 부처님께 빌고 또 빌었었지. 그런
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이제 여섯 살이 된 우리 복선이 병수한테 엄마가 너무나 미안
하고 또 미안하구나.
저녁이면 말 태워주고 배 태워달라 버스타고 놀고 싶다는 너희들의 청을 엄마는 피곤
하다는 이유로 "내일 놀아줄게" 하였지. 그 내일은 그 다음 내일이 되고 내일이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구나. 시간이 영원한 줄 알았고, 엄마 곁에는 언제까지나 너희들이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하고 살았으니 이제 와서 후회한들 지나간 시간은 되돌아오질 않는
구나.
엄마를 용서해 다오. 사람의 손길을 받고 모양도 때깔도 예쁜 배보다, 야산에서 산새
들의 노랫소리와 비와 바람을 맞고 자란 돌배나무처럼 키우겠다는 생각에 너희들을 방
치한 듯싶구나. 다시금 생각해 보면 돌배나무처럼 이라는 그럴싸한 단어에 엄마의 의무
를 저버린 것 같다. 저녁이면 책을 읽어달라는 쌍둥이에게 책 두어 권 읽어주는 걸로 엄
마의 할 일을 다 한 듯 너희들은 TV나 보게 하고 엄마는 엄마 책만 읽었었지. 올챙이 잡
는다고 개울가를 다 뒤집고 다닐 때면 초봄이어서 추울 텐데도 방목해서 키워야 좋다는
자기암시로 너희들을 내버려두곤 했었지. 이제와 후회한들 무엇 하나 싶다.
엄마가 돈을 벌겠다고 생각한 것은 복선이 병수를 늦게 낳은 만큼 한살이라도 젊었을
때 돈을 벌어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환갑이 되면 너희는 그때 스무 살이 되지.
너희들이 성장했을 때 좀 더 풍족하게 해 주고 싶어서 돈을 번다고는 하지만 그 일 때문
에 복선이 병수하고 잘 놀아주지도 못했고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공연히 화를 내곤 하였
었다.
엄마가 없으면 우리 예쁜 아들 딸 누가 키울까. 소풍갈 때 누가 김밥 싸서 같이 가고,
아침이면 졸립다고 투정하는 우리 병수 누가 깨워줄 것이며 여자는 머리가 길어야 된다
고 머리를 안 잘라서 치렁치렁한 우리 복선이 머리는 누가 예쁘게 매어줄까. 그나저나
서서 똥 누어서 물휴지를 들고 살아야 하는 우리 병수. 똥꼬는 누가 닦아줄까. 얼른 고
쳐야 할 텐데 학교에 가서 친구들이 놀리면 어떡하지 우리병수. 엄마가 대변가리기 훈
련을 어렸을 때 시켰어야 하는데 쌍둥이 키우기 힘들다는 이유로 못 해 주어서 그런 걸
어떡하니 엄마 잘못이다. 엄마를 원망 하거라.
엄마가 유능하지를 못해서 돈도 많이 벌어 놓은 것도 아니고, 어느 민족 교육방식대
로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일찍 낳아
서 너희들을 많이 키워 놓은 것도 아닌데 엄마가 저 세상으로 가게 되어서 어떡하니.
엄마 없어도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말씀 잘 듣고, 친구들하고도 기죽지 말고 씩씩하고
밝게 놀아라. 엄마 없이 커서 버릇없다는 소리 듣지 않게 항상 바른 생활을 하고. 엄마
의 육체는 복선이 병수 옆에 없고 하늘나라로 돌아가도 엄마는 항상 너희들이 하는 말,
행동을 보고 있단다. 산자락에 진달래가 꽃을 피우고 바람이 살랑이면 엄마가 너희들에
게 주는 봄소식이려니 생각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살거라. 뙤약볕에 땀이 줄줄 흘
러서 몹시도 더울 때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는 엄마가 잘 커주는 쌍둥이가 고마워서 흘
리는 눈물이려니 생각하고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살고, 뒷산에서 야물게 여문
개암이며 돌배, 생밤은 엄마가 주는 간식이구나 생각하고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거라. 우리 예쁜 아들딸은 눈이 내리는 걸 좋아하지. 눈 비비고 일어났을 때 산과 들
장독대, 나뭇가지들이 온통 하얀 세상으로 바뀌어 있을 때면 엄마가 주는 깨끗한 마음
이려니 생각하고 항상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살도록 하여라.
엄마에게 일년 아니, 한달이라도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일분일초가 아까운 듯 우리
쌍둥이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업어주면 좋아하는 쌍둥이 업어주고, 안아주고,
말태워주고 어딘들 못갈까. 공부하기 좋아하는 우리 병수. 밤새도록 책 가지고 씨름해
도 옆에서 같이 있어주고, 노래 부르고 동화 읽어주는 걸 좋아하는 우리 예쁜 딸과 함께
들길을 거닐며 새소리에 장단 맞추어 같이 노래 부르고 옛날이야기도 들려주고 싶구나.
엄마가 일을 조금 못하더라고 복선이 병수가 즐거운 일이라면 무엇이든 같이 해 주고
들어주련다. 왜 진작 못했을까. 따지고 보면 우리 예쁜 아들딸을 즐겁게 해 주는 일이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닌데 말이야. 이제 와서 땅을 치고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겠니.
거듭 부탁한다. 할머니 할아버지 말씀 잘 듣고 아빠 말씀 잘 듣거라. 그래야 우리 복
선이 병수가 귀여움을 받을 수 있어. 복선이 병수 뒷바라지도 못하고 먼저 가는 엄마를
용서해 줘.
사랑한다. 복선아 병수야. 엄마는 너희들이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 천상병 시인은 이
세상에서 소풍 잘 했노라고 했지만 엄마는 보석 같은 복선이 병수와 보낸 시간이 정말
꿈만 같았어. 왜 진작 그 시간이 행복한지 깨닫지 못했을까. 진작 알았더라면 더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을 텐데…………
엄마 딸 아들이 되어주어서 고맙다. 복선아 병수야.
2005/ 23집
첫댓글 사랑한다. 복선아 병수야. 엄마는 너희들이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 천상병 시인은 이
세상에서 소풍 잘 했노라고 했지만 엄마는 보석 같은 복선이 병수와 보낸 시간이 정말
꿈만 같았어. 왜 진작 그 시간이 행복한지 깨닫지 못했을까. 진작 알았더라면 더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을 텐데…………
엄마 딸 아들이 되어주어서 고맙다. 복선아 병수야.
^^ 예전 수업 시간에 유서, 조문 써보기 했던 것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