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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한국 사회는 분명 유능하다. 연구개발 투자도 크고, 교육 수준도 높고,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익히는 능력도 뛰어나다. 실제로 한국은 OECD 국가 가운데 연구개발 투자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이고, 반도체와 ICT 같은 핵심 분야에서 강한 경쟁력을 보여 왔다.[cite:229][cite:230]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한국이 “새로운 길을 먼저 내는 사회”라기보다 “정해진 길을 누구보다 빨리 따라잡는 사회”에 더 가깝다고 느낀다. 자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미 있는 능력과 지식을 서로 연결해 전혀 새로운 문제와 해법을 만들어내는 힘이 약하다는 뜻이다.[cite:230]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개념이 폴리매스다. 폴리매스(polymath)는 여러 분야에 관심과 능력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지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을 이어 보고 통합하는 능력이다.[cite:228][cite:231][cite:141] 다시 말해 폴리매스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를 이어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cite:142][cite:233]
물론 엄격한 의미의 폴리매스는 매우 드물다. 오늘의 한국 사회가 당장 필요로 하는 것도 그런 희귀한 천재 몇 명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여러 분야를 오가며 서로 다른 언어를 이해하고, 전문가들 사이를 잇고, 흩어진 지식을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묶어낼 수 있는 다분야·연결지능형 인재의 층을 두껍게 만드는 일이다. 앞으로의 혁신은 바로 이 층이 얼마나 넓고 두터워지느냐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cite:228][cite:233]
다분야 인재의 역할
새로운 혁신은 대개 한 분야 안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수학과 컴퓨터공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반도체, 언어, 디자인, 법과 윤리까지 엮여 있고, 기후위기는 과학과 산업, 금융과 정책, 생활양식과 지역 문제를 함께 건드린다. 이런 시대에는 한 분야를 깊게 아는 전문가가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서로 다른 분야의 언어를 알아듣고, 한쪽의 아이디어를 다른 쪽의 현실에 맞게 번역하며, 각기 따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한 문제 위에 모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cite:142][cite:147][cite:233]
회사로 치면 개발팀과 영업팀, 현장과 본사, 기술과 규제를 동시에 이해하는 사람이 이런 역할을 한다. 대학으로 치면 공학과 경제, 철학과 정책을 함께 읽고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여기에 가깝다. 이런 사람은 어느 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는 아닐 수 있지만, 여러 전문가가 각자 따로 움직일 때 생기는 틈을 메우고, 서로 다른 관점을 만나게 해 준다. 바로 그 틈에서 새로운 제품이 나오고, 새로운 서비스가 생기고, 전혀 다른 해법이 등장한다.[cite:228][cite:142]
문제는 이런 인재의 가치가 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한 분야를 깊게 파고든 사람의 성과는 비교적 분명하게 평가된다. 반면 여러 부서를 이어 주고, 다른 전공의 사람들끼리 말이 통하게 하고, 흩어진 아이디어를 하나의 기획으로 정리하는 사람의 기여는 종종 “잡다한 일”처럼 취급된다. 하지만 앞으로의 혁신에서 이 역할은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핵심적인 것이 된다. 스페셜리스트가 혁신의 부품이라면, 다분야 인재는 그 부품들을 움직이게 하는 연결 장치에 가깝다.
한국 사회의 문제 요인
한국 사회의 약점은 똑똑한 사람이 부족하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많은 능력과 전문성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데 더 가까운 문제가 있다. 교육은 일찍부터 문과와 이과를 나누고, 대학에 가면 전공 중심 구조가 더 강해진다. 다른 분야를 깊이 있게 접하기보다는 자기 전공을 빠르게 완성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이런 구조에서는 넓게 배우고 나중에 연결하는 사람보다, 빨리 한 줄로 정리되는 사람이 인정받기 쉽다.[cite:234][cite:235]
직장에 들어가면 상황은 더 분명해진다. 평가와 승진은 대개 “자기 분야에서 무엇을 얼마나 했는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반면 여러 부서와 분야를 잇는 사람은 “애매한 사람”, “기획형 사람”, “지원형 사람”으로 분류되기 쉽다. 그래서 어렵게 형성된 다분야 인재도 가장 중요한 자리에 가기보다 변두리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회사에서는 여러 팀을 이어 줄 수 있는 사람을 프로젝트의 중심에 세우기보다, 잡다한 조정 업무를 맡기는 경우가 흔하고, 대학과 연구기관에서는 두세 분야를 넘나드는 사람이 오히려 어느 한 전공에도 깔끔하게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애매한 위치에 놓이기 쉽다.
한국의 “융합” 역시 자주 반쪽짜리에 머문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융합학과와 융합연구는 늘었지만, 대개는 이과 내부의 결합에 그친다. 공학과 데이터과학, 생명과학과 AI의 결합은 활발하지만,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 윤리와 깊이 있게 맞물리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기술은 빨라지는데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거나 사회 전체의 방향을 설계하는 힘은 약해진다. OECD도 한국이 높은 연구개발 투자와 기술 역량에도 불구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ICT와 비ICT, 도시와 지역 사이의 격차가 크고,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폭넓은 혁신 비전과 기술 확산이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cite:230]
한마디로 말해, 한국 사회는 스페셜리스트를 길러내는 데는 강하지만, 스페셜리스트들 사이를 연결하는 사람을 키우고 쓰는 데는 약하다. “팔방미인 굶어죽기 쉽다”는 오래된 감각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얕게 이것저것 건드리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은 어느 정도 필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깊이를 가진 연결자, 곧 다분야·연결지능형 인재까지도 같은 눈으로 보는 데 있다. 여기에서 한국 혁신의 구조적 한계가 생긴다.
해소 방안
해법은 단순히 융합이 중요하다고 외치는 데 있지 않다. 다분야 인재를 실제로 키우고, 눈에 잘 띄는 자리에 세우는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 먼저 교육에서 문·이과의 이른 분리와 전공 중심 구조를 완화해야 한다. 대학에서는 교차 과목을 몇 개 듣는 정도를 넘어, 서로 다른 분야를 함께 배우고 한 문제를 여러 관점에서 다루는 과정이 더 많아져야 한다. 폭만 넓고 깊이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한 분야의 깊이를 갖춘 채 다른 분야와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야 한다는 뜻이다.[cite:228][cite:231]
둘째, 조직의 평가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 지금처럼 “자기 분야 실적”만 보는 방식으로는 연결하는 사람이 계속 손해를 본다. 여러 팀을 묶어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고, 서로 다른 전문성을 번역해 실제 문제를 풀어낸 사람에게도 분명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개발과 영업, 연구와 정책, 기술과 현장을 잇는 사람을 주변 지원 인력이 아니라 핵심 리더 후보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셋째, 한국 사회에는 깊이를 담당하는 기관과는 다른 성격의 공간이 필요하다. 자연과학, 공학, 사회과학, 인문학, 예술을 함께 묶어 문제를 정의하고 장기 방향을 설계하는, 일종의 연결지능형 메타지능 플랫폼이 있어야 한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전문성을 생산하는 일만이 아니다. 이미 있는 전문성들을 어떻게 연결하고, 어떤 사람에게 그 연결의 책임을 맡길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지식은 많지만 서로 만나지 못하는 사회를 넘어서려면, 지식을 모으는 기관을 넘어 지식을 연결하는 기관이 필요하다.[cite:179][cite:180][cite:230]
AI 혁명의 도전과 기회
여기서 한 가지 큰 변수가 더 있다. 바로 AI 혁명이다. 많은 사람들은 AI가 전문가의 일을 대신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AI는 다분야·연결지능형 인재에게는 엄청난 기회가 될 수 있다. AI는 방대한 정보를 빠르게 요약하고, 낯선 분야의 기본 개념을 짧은 시간 안에 익히게 해 주며, 서로 다른 분야 사이의 연결 가능성을 훨씬 쉽게 탐색하게 만든다. 최근 연구들은 AI가 학제간 학습, 복합 문제 해결, 설계 사고, 협업의 질을 높일 잠재력이 크다고 보고한다.[cite:249][cite:256][cite:259]
이 말은 곧, 원래부터 폴리매스적 문제의식과 기본 소양, 잠재력을 가진 사람에게 AI가 강력한 증폭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중간에 포기했다. 그러나 AI는 초기에 필요한 정보 탐색, 개념 번역, 자료 정리, 시뮬레이션, 초안 작성의 부담을 크게 줄여 준다. 덕분에 한 사람이 여러 분야의 문턱을 넘는 속도가 빨라지고, 일정 수준의 폭과 깊이를 갖춘 뒤 통합 능력으로 나아가는 길도 훨씬 짧아질 수 있다.[cite:256][cite:262][cite:263]
이 변화는 단지 개인 몇 명의 생산성 향상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다분야·연결지능형 인재가 어느 정도 두터운 층을 이루면, 사회 전체의 혁신 방식도 달라진다. 서로 다른 분야의 언어를 알아듣고, 아이디어를 빠르게 조합하고, 실험을 돌려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혁신은 일부 천재의 번뜩임이 아니라 집단적 역량이 된다. 어느 순간 이런 인재층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혁신성과는 점진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도약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 복잡계에서 말하는 임계 전환과 비슷한 현상이 지식과 혁신의 영역에서도 가능하다는 뜻이다.[cite:212][cite:215][cite:262]
한국은 이 점에서 의외로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디지털 인프라가 강하고, 교육열이 높고, 새로운 도구를 빠르게 익히는 사회적 속도가 빠르다. 최근 정부도 AI 기본법 시행, AI 인재 양성, AI 교육 확대, AI 인프라 확충, 산업 전환 로드맵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cite:252][cite:251][cite:260][cite:261] 물론 아직 경직된 대학 구조와 전공 중심 제도는 큰 장애물로 남아 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AI는 한국에 “늦었지만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준다. 한국의 제2의 도약은 반도체나 제조업만이 아니라, AI를 통해 다분야 인재층을 폭발적으로 늘리고, 이를 바탕으로 폴리매스적 혁신을 사회 전체로 확장하는 데서 올 가능성이 크다.[cite:255][cite:260][cite:261]
맺음말
한국 사회는 지금도 충분히 유능하다. 문제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능력들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앞으로의 혁신은 더 똑똑한 전문가 몇 명을 추가하는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서로 다른 분야를 잇고, 다른 언어를 번역하고, 전문가들의 힘을 한 방향으로 묶어내는 다분야·연결지능형 인재를 얼마나 키우고, 또 얼마나 중요한 자리에 배치하느냐에 달려 있다.[cite:228][cite:142][cite:233]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AI 혁명은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라 문명적 전환의 기회가 된다. AI는 폴리매스적 잠재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빠른 학습, 더 넓은 탐색, 더 깊은 통합의 도구를 제공함으로써, 과거에는 소수만 가능했던 상승 경로를 훨씬 넓은 층에 열어줄 수 있다.[cite:256][cite:262][cite:263] 한국이 이 기회를 살린다면, AI 혁명은 곧 폴리매스 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지점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추격형 성공을 넘어 새로운 제2의 도약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맥점일지 모른다.[cite:252][cite:260][cite:261]
폴리매스의 눈으로 본 한국 사회와 AI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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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연구개발 투자와 교육 수준이 높고, 반도체·ICT 같은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나라다.[cite:229][cite:230]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한국이 “새로운 길을 먼저 내는 사회”보다는 “정해진 길을 빨리 따라잡는 사회”에 가깝다고 느낀다. 자원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있는 능력과 지식을 서로 엮어 전혀 새로운 문제와 해법을 만드는 힘이 약하다는 뜻이다.[cite:230]
이 지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개념이 폴리매스다. 폴리매스(polymath)는 여러 분야에 관심과 능력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지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을 이어 보고 통합하는 능력이다.[cite:228][cite:231][cite:141] 이런 사람은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는 아닐 수도 있지만, 전문가들 사이를 이어 주고, 서로 다른 관점이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 준다. 복합 문제가 늘어난 시대에는 이런 “다분야·연결지능형 인재”가 있어야 새로운 해결책이 등장한다.[cite:142][cite:147][cite:233]
문제는 한국 사회가 이런 인재를 기르기도 어렵고, 어렵게 생긴 인재를 제대로 쓰지도 못한다는 점이다. 교육은 일찍부터 문과·이과를 나누고, 대학에서는 전공 중심 구조가 강해 다른 분야를 깊이 있게 접하기 어렵다.[cite:234][cite:235] 직장에서는 평가와 승진이 “자기 분야에서 무엇을 했는가”에 맞춰져 있어서, 여러 부서를 잇고 다른 전공 사람들끼리 말이 통하게 하는 역할은 “기획형”이나 “지원형”으로 취급되기 쉽다. 과학기술 분야의 융합도 주로 이과 내부 결합에 머무르고, 인문·사회·예술·윤리와 깊이 있는 연결은 드물다. 그래서 기술은 빠르지만, 문제를 새로 정의하거나 사회 전체의 방향을 설계하는 힘은 약한 상태가 반복된다.[cite:230]
이 한계를 넘기 위해서는 융합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수준을 넘어, 다분야 인재를 실제로 키우고 중요한 자리에 배치해야 한다. 교육에서는 한 분야의 깊이를 유지하되 다른 분야와의 연결을 구조적으로 요구하는 커리큘럼이 필요하고, 조직에서는 여러 팀·전문성을 잇는 사람의 기여를 핵심 성과로 인정해야 한다.[cite:228][cite:231] 또한 한국에는 기초과학연구원처럼 “깊이”를 담당하는 기관뿐 아니라, 자연·사회·인문·예술을 가로지르는 문제를 정의하고 장기 방향을 설계하는 “지식 연결·메타지능 플랫폼”이 필요하다.[cite:179][cite:180][cite:230]
여기에 AI 혁명이 새로운 변수로 등장한다. AI는 방대한 정보를 빠르게 요약하고, 낯선 분야의 기본 개념을 짧은 시간 안에 익히게 해 주며, 서로 다른 분야 사이의 연결 가능성을 탐색하게 해 준다.[cite:249][cite:256][cite:259] 이는 원래부터 폴리매스적 문제의식과 잠재력을 가진 사람에게 강력한 증폭기가 된다. 과거에는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폭과 깊이를 동시에 쌓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AI는 정보 탐색과 번역·정리의 부담을 줄여 다분야·연결지능형 인재의 상승 전환을 가속한다.[cite:256][cite:262][cite:263]
다분야 인재가 일정 층을 이루면, 혁신은 일부 천재의 번뜩임이 아니라 집단적 역량이 된다. 복잡계 연구에서 말하는 임계점처럼, 이런 인재층이 어느 순간 문턱을 넘으면 혁신성은 점진적 증가가 아니라 도약에 가까운 변화를 보일 수 있다.[cite:212][cite:215][cite:262] 한국은 디지털 인프라와 교육열, 새로운 도구를 빠르게 익히는 문화 덕분에 이 변화를 맞이할 준비가 잘 된 사회다. 정부도 AI 기본법, AI 인재 양성, AI 인프라 확충, AI·6G 국가 로드맵 등을 통해 AI 기반 혁신 생태계를 키우려 하고 있다.[cite:252][cite:251][cite:260][cite:261]
결국 한국의 제2의 도약은 더 많은 스페셜리스트만으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이미 있는 전문성들을 AI와 함께 연결하고 번역하고 재구성하는 다분야·연결지능형 인재, 그리고 이런 인재를 중심에 놓는 사회·제도 설계에서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AI 혁명은 단지 자동화의 위협이 아니라, 한국이 폴리매스적 혁신을 폭발적으로 늘릴 수 있는 드문 기회일 수 있다. 이 기회를 살릴 수 있느냐가, 추격형 성공을 넘어서는 한국 사회의 다음 도약을 가를 중요한 갈림길이 될 것이다.[cite:255][cite:260][cite:26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