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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외자언(可畏者言)
두려워할 만한 것은 말이다.
可 : 옳을 가(口/2)
畏 : 두려워할 외(田/4)
者 : 놈 자(耂/4)
言 : 말씀 언(言/0)
출전 : 정약용(丁若鏞)의 혼돈록(餛飩錄)
1779년 5월 나는 새를 떨어뜨린다던 홍국영(洪國榮)의 누이 원빈(元嬪)이 갑작스레 세상을 떴다.
송덕상(宋德相)이 상소를 올렸는데, 서두에 '원빈께서 훙서(薨逝)하시니 종묘사직이 의탁할 곳을 잃었다'고 썼다.
당시 정쟁에 밀려 숨죽이며 지내던 채제공이 낮잠을 자다가 집사가 가져다준 그 글을 보았다.
채제공이 서두를 읽다 말고 놀라 말했다. '해괴하다. 원빈이 죽었는데 어째서 종묘사직이 의탁할 곳을 잃는단 말인가? 400년 종묘사직이 과연 일개 후궁에게 힘입어 의탁했더란 말인가? 게다가 후궁이 죽었는데 어째서 서거(逝去)라 하지 않고 훙서(薨逝)라 하는가?'
그가 이같이 혼자 중얼거렸을 때 그 자리에 가까운 친지 한두 사람이 함께 있었다.
채제공은 한동안 더 낭패의 세월을 보내다가 형조 판서에 제수되어 입시했다.
정조가 그를 환영하며 말했다. '근래 시끄럽던 일 말고도 경이 또 위태로운 처지를 겪어 거의 면치 못할 뻔하였소. 내가 각별히 보호한 덕분에 겨우 면한 것을 알고 있소?'
채제공이 영문을 몰라 '무슨 말씀이시온지요?' 하자 정조가 말했다. '송덕상이 흉측한 상소를 올렸을 때 경이 그 상소문의 첫머리 글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한 일이 있었소?'
그러면서 정조는 낮잠을 갓 깨어 혼잣말처럼 했던 그 말을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세하게 얘기하는 것이었다.
채제공이 놀라 과연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자 정조가 다시 말했다. '그날 해가 지기도 전에 그대가 한 말이 홍국영의 귀에 들어가 그가 펄펄 뛰면서 들어와 온갖 방법으로 죄를 뒤집어 씌워 분풀이 하려는 것을 내가 간신히 말렸소.'
채제공이 이 말을 듣고 물러나와 얘기했다. '아! 내가 이제껏 생각해 봐도 누가 이처럼 쏜살같이 얘기를 전했는지 알 수가 없다. 두려워할 만한 것은 말이다(可畏者言也).'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혼돈록(餛飩錄)에 나온다.
그때 사랑방에 위로차 찾아왔던 가까운 친지 중 한 사람이 그 말을 듣자마자 그 길로 홍국영에게 달려가 고자질을 했다. 예나 지금이나 말 간수를 잘못해 벌어지는 사달이 꼬리를 문다. 말이 참 무섭다.
정치가 바로 서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각자의 생업에 충실하면서 현재의 생활수준에 만족할 수 있다면 어느 백성이 정치하는 이를 원망하고 지탄하겠는가.
인평불어(人平不語)
수평불류(水平不流)
사람 사는 세상이 평등하면 원망의 말이 적고, 수면이 잔잔하면 한쪽으로 물길이 쏠리지 않는 법이다.
이러쿵저러쿵 백성들의 불만이 많으면 난세다. 산골 촌로의 입에서 나라를 향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장터의 아주머니들의 표정이 밝지 않으면 잘못된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당 태종의 치적을 기록한 정관정요(貞觀政要)에 이런 대목이 실려 있다. 태종은 어느 날 가까운 신하 위증을 불러 물었다. “어떤 임금을 가리켜 밝은 군주라 하고, 또 어떤 임금을 어리석은 군주라 하는가?”
위증이 대답했다. “밝은 군주란 각계각층의 여론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임금이고, 어리석은 군주란 한쪽 말만 듣는 임금입니다”
위증은 또 어느 날 태종에게 이런 고자질을 한다. “백성들 중에 폐하를 비방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그러자 태종은 태연하게 말한다. “나에게 덕이 있어 비방을 듣는다면 조금도 언짢을 게 없다. 그러나 덕이 없으면서 칭찬을 듣는다면 도리어 그게 탈이 아니겠느냐?”
국가의 지도자나 정치인들이 칭찬에 중심을 잃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하트마 간디는 ‘질서가 잡힌 나라에서는 발전을 부로 측정하지 않는다. 국민과 지도자의 순결만이 국가의 진정한 재산이 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순결은 사회 윤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다시 말해 국민 소득이 높은 나라가 강국이 아니라 신뢰가 형성된 나라가 진정한 강국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 나라 국민의 생활수준보다는 국가 지도자의 청렴 수준이 높을 때 그 나라는 희망이 있는 국가이다.
경제정의란 무엇일까? 돈의 흐름이 투명하게 쓰이는 사회를 말한다. 돈의 흐름이 투명하지 못하면 그 나라에는 부패의 곰팡이가 자라기 때문이다.
한 나라 때 양진(揚震)은 청렴한 관리였는데 자신에게 뇌물을 바치려는 자들에게 ‘사지(四知)’에 대해 설명하면서 충고하였다고 한다. 즉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안다는 것이다.
영국 총리를 지냈던 처칠은 ‘과거와 현실이 싸움을 하면 미래가 손해를 본다’고 했다. 한 나라의 잠재력의 힘을 과거사에만 집중하고 오늘을 허술하게 지나치면 미래를 위해서는 투자 할 수 없다.
우리말에 ‘어지간히 해 두라’라는 표현이 있다. 무엇이든 극한과 막장으로 가는 싸움은 좋지 않다. 전 정부 때 해 놓은 것들이 잘못되었다고 때려 부수는 것은 혹시나 한쪽의 주장만 귀를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 번 되돌아 보았으면 한다. 국력의 낭비가 얼마나 심한가?
미국 건국의 아버지, 정치가, 외교관, 작가, 발명가로 평가받는 벤자민 프랭클린(1706~1790)은 우편제도 개혁과 미국 철학협회 창설과 펜실베이니아 대학을 설립하고 피뢰침을 발명하고 안경을 제작하고 인쇄기를 개량했다.
그가 피뢰침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출했다가 몽상가라는 조롱만 듣고 말았으며, 논문은 학회 회보에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그가 인쇄소 견습공 시절인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그는 이웃집에 놀러갔다가 그 집 주인이 일러준 지름길을 따라 올라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가 막 담을 지나려는데 이웃집 주인이 머리를 숙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길 중간에 키 보다 낮은 들보가 가로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서 아무 생각 없이 걷던 그는 들보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이웃집 주인은 프랭클린의 머리를 만져주면서 친절한 어조로 말했다.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머리를 자주 숙이게, 머리를 숙일수록 부딪치는 일이 적어질 걸세.”
이런 일이 있은 후 프랭클린은 평생 겸손을 제1의 덕목으로 삼았다. 그는 평소 상대를 노하지 않게 하면서 공통의 결론에 도달하는 기술이 뛰어나, 미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의원들도 그의 ‘회화술’을 배우려고 했다.
그는 이와 관련하여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다만 상대방이 말한 것을 강력하게 반대하거나, 내 의견을 단정적으로 주장하는 일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것이 습관화 되면서 과거 50년 간 나의 입에서 단정적인 말을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는 말솜씨가 없어 언제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꾸물거리곤 했지만 그래도 내 의견은 대부분 통했다”
재벌 총수와 고위 공직자들의 검찰 조사를 지켜보면서 재산과 명예가 없어서 오히려 속 편할 때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언격(言格)을 높이자
조선왕조는 태조의 건국부터 1910년 한일합방까지 모두 519년 동안의 왕조를 지켜온 나라이다. 500년이 넘는 왕조의 정통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지근거리에서 왕이 자경(自警)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 사관(史官)이 있었기에 가능하기도 했다.
이들은 비록 낮은 벼슬의 직급이었지만 지존(至尊) 또한 두려워하는 존재였다. 2인 1조로 짝이 되어 각각 왕의 오디오와 비디오를 담당하면서 왕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연산군도 세상에 그 누구도 무서울 것이 없었지만 자신의 언동을 기록하는 사관들만은 늘 껄끄러운 존재였음을 '오직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人君所畏者, 史而已)'라는 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소한 말과 행동 하나가 거대한 참화(慘禍)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좌전’에서도 영원히 썩지 않는 삼불후(三不朽) 중 하나로 언(言)을 거론했을 정도로, 말에는 항상 책임감과 진정성이 따라야 한다. 진실함을 담은 신뢰의 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이 곧 사람인 셈이다.
공자도 삼부지(三不知) 중에 하나로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不知言, 無以知人也)고 하였다.
맹자 또한 한쪽으로 치우쳐 편파적인 피사, 큰소리로 함정에 빠진 음사, 정도에서 벗어난 사사, 책임을 전가하는 둔사의 말들을 경계하였다. 말이 지닌 위대함과 무게감을 설파한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말만 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나라의 녹봉을 받는 분들은 더하다. 서로가 상면(相面)하고 자신의 말만 쏘아 올리다가 허공에서 부질없이 충돌할 뿐 애초 들을 마음도 없다.
벼락이 산을 깨도 귀막은 자는 듣지 못하는 것처럼, 오직 자신의 귀를 막고 말폭탄만 쏟아붓는 모양새다. 공격적으로 내던지는 말이다 보니, 상대에 대한 예의나 좋은 말이 나올 리도 만무하다.
일반적으로 혼자 하는 말은 '언(言)'이고 타인의 말에 대답하는 것을 '어(語)'라고 한다면, 이들의 말에는 '언'만 있다.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선택적 지각'을 하면서, 오로지 아무말 대잔치만 난무(亂舞)하다.
말의 품격을 '언격(言格)'이라고 한다면, 이들의 말은 속되고 저속한 말인 '언격(諺格)'에 지나지 않을까.
말은 귀천을 가리지 않기에 누구나 조심하고 신중해야 하지만, 특히 지도자나 위정자의 말에는 더욱더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어야 한다. 사소한 말 한마디도 모두 역사의 기록이므로, 여반장의 식언처럼 흘리지 말아야 한다는 경계의 의미도 담기 때문이다.
국민이 잠시 빌려준 자리임을 명심하고, 타인의 말을 이해하고 곡직(曲直)을 구분하여 치정(治政)의 혜안을 갖추는 것이 지도자에게는 필요한 것이다.
말은 단순히 음성언어만의 스킬이나 테크닉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성품과 가치관, 나아가 본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삼사일언(三思一言)의 신중함을 갖춘다면 우리가 하는 말의 품격이 선비의 언격(彦格)으로 바뀌지 않을까 한다.
▶️ 可(옳을 가, 오랑캐 임금 이름 극)는 ❶회의문자로 막혔던 말이(口) 튀어 나온다는 데서 옳다, 허락하다를 뜻한다. 나중에 呵(訶; 꾸짖다), 哥(歌; 노래) 따위의 글자가 되는 근본(根本)이 되었다. 또 나아가 힘드는 것이 나갈 수 있다, 되다, 그래도 좋다, 옳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可자는 ‘옳다’나 ‘허락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可자는 곡괭이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可자는 본래 농사일을 하며 흥얼거린다는 뜻으로 쓰였던 글자였다. 전적으로 노동력에 의존해야 했던 농사는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런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이겨내고자 흥얼거리던 노래가 바로 농요(農謠)이다. 그래서 可자는 곡괭이질을 하며 흥얼거린다는 의미에서 ‘노래하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可자가 ‘옳다’나 ‘허락하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입을 벌린 모습의 欠(하품 흠)자를 결합한 歌(노래 가)자가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可(가, 극)는 (1)옳음 (2)좋음 (3)성적이나 등급 따위를 평점하는 기준의 한 가지. 수,우,미,양,가의 다섯 계단으로 평점하는 경우에, 그 가장 낮은 성적이나 등급을 나타내는 말 (4)회의(會議)에서 무엇을 결정하거나 어떤 의안을 표결할 경우에 결의권을 가진 사람들의 의사(意思) 표시로서의 찬성(동의) (5)…이(가)됨, 가능(可能)함의 뜻을 나타내는 말로서 동작을 나타내는 한자어 앞에 붙음 등의 뜻으로 ①옳다 ②허락하다 ③듣다, 들어주다 ④쯤, 정도 ⑤가히 ⑥군주(君主)의 칭호(稱號) ⑦신의 칭호(稱號) 그리고 ⓐ오랑캐 임금의 이름(극)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시(是), 옳을 의(義),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不), 아닐 부(否)이다. 용례로는 할 수 있음을 가능(可能), 여러 사람의 의사를 따라 의안을 좋다고 인정하여 결정함을 가결(可決), 변화하거나 변경할 수 있음을 가변(可變), 움직이거나 이동할 수 있음을 가동(可動), 대체로 합당함을 가당(可當), 가능성 있는 희망을 가망(可望), 두려워할 만함을 가공(可恐), 하고자 생각하는 일의 옳은가 그른가의 여부를 가부(可否), 얄미움이나 밉살스러움을 가증(可憎), 불쌍함이나 가엾음을 가련(可憐), 눈으로 볼 수 있음을 가시(可視), 나눌 수 있음이나 분할할 수 있음을 가분(可分), 어처구니 없음이나 같잖아서 우스움을 가소(可笑), 참고할 만함이나 생각해 볼 만함을 가고(可考), 꽤 볼 만함이나 꼴이 볼 만하다는 뜻으로 어떤 행동이나 상태를 비웃을 때에 이르는 말을 가관(可觀), 스스로 생각해도 우습다는 뜻으로 흔히 편지에 쓰이는 말을 가가(可呵), 법령으로 제한 금지하는 일을 특정한 경우에 허락해 주는 행정 행위를 허가(許可), 옳지 않은 것을 불가(不可), 인정하여 허락함을 인가(認可), 아주 옳음이나 매우 좋음을 극가(極可), 안건을 결재하여 허가함을 재가(裁可), 피할 수 없음을 불가피(不可避),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불가능(不可能), 될 수 있는 대로나 되도록을 가급적(可及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을 가시적(可視的), 현상이나 상태 등이 실제로 드러나게 됨 또는 드러나게 함을 가시화(可視化), 침범해서는 안됨을 불가침(不可侵), 의안을 옳다고 결정함을 가결안(可決案), 옳거나 그르거나를 가부간(可否間), 불에 타기 쉬운 성질을 가연성(可燃性), 높아도 가하고 낮아도 가하다는 가고가하(可高可下), 동쪽이라도 좋고 서쪽이라도 좋다는 뜻으로 이러나 저러나 상관없다는 말을 가동가서(可東可西), 머물러 살 만한 곳이나 살기 좋은 곳을 가거지지(可居之地), 어떤 일을 감당할 만한 사람을 가감지인(可堪之人), 그럴듯한 말로써 남을 속일 수 있음을 가기이방(可欺以方) 등에 쓰인다.
▶️ 畏(두려워할 외)는 ❶회의문자로 田(전)+삐침별(丿; 삐침)部(불; 귀신머리, 죽은 사람의 머리)과 化(화; 죽음)의 합자(合字)이다. 음산(陰散)하고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것에서 전(轉)하여, 무서워하며 조심하다, 황공(惶恐)스럽게 여기다의 뜻이 있다. ❷회의문자로 畏자는 ‘두려워하다’나 ‘경외하다’, ‘꺼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畏자는 田(밭 전)자와 疋(필 소)자, 人(사람 인)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畏자의 갑골문을 보면 가면을 쓴 사람이 몽둥이를 들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고대에는 제사장이 가면을 쓰고 제를 지냈다. 그러니 畏자는 가면을 쓴 제사장이 주술 도구를 들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신과 소통을 대변하던 제사장은 사람들에게 경외와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畏자는 ‘두려워하다’나 ‘경외하다’, ‘꺼리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畏(외)는 ①두려워하다 ②경외(敬畏)하다 ③꺼리다 ④심복(心服)하다(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성심을 다하여 순종하다) ⑤조심하다 ⑥으르다(무서운 말이나 행동으로 위협하다), 위협(威脅)하다 ⑦죽다 ⑧두려움,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공경하고 두려워함을 외경(畏敬), 매우 두려워함을 외포(畏怖), 무서워하고 두려워함을 외구(畏懼), 두려워하여 복종함을 외회(畏懷), 말을 무서워함을 외마(畏馬), 두려워 엎드림을 외복(畏伏), 남이 두려워 복종함을 외복(畏服), 두려워하고 존경하여 섬김을 외사(畏事), 존경하여 사랑함을 외애(畏愛), 가장 아껴 존경하는 벗을 외우(畏友), 추위를 두려워함을 외한(畏寒), 친구끼리 상대편을 극히 대접하여 부르는 말을 외형(畏兄), 두려워하고 꺼림을 외기(畏忌), 몹시 두려워하고 언행을 삼감을 외신(畏愼), 두려워서 몸을 움츠림을 외축(畏縮), 두려워하고 겁냄을 외겁(畏怯), 송장을 무서워함을 외시(畏屍), 침 맞기를 두려워함을 외침(畏鍼), 여름철에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을 외경(畏景), 여름 해를 외일(畏日), 두려워할 만함을 가외(可畏), 공경하고 두려워함을 경외(敬畏), 두려워함을 담외(憺畏), 두려워함을 기외(忌畏), 두려워함을 늠외(懍畏), 두려움이 없음을 무외(無畏), 징계하여서 두려워하게 함을 징외(懲畏), 근심하고 두려워함을 우외(憂畏), 공경하고 두려워함을 인외(寅畏), 높이러 공손히 함을 존외(尊畏), 미워하고 두려워함을 시외(猜畏), 두렵고 무서움을 포외(怖畏), 남이 알게 되는 것을 꺼리고 두려워함을 외수외미(畏首畏尾),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경외지심(敬畏之心), 매사를 소홀히 하고 경솔함은 군자가 진실로 두려워하는 바임을 이유유외(易輶攸畏), 젊은 후학들을 두려워할 만하다는 뜻으로 후진들이 선배들보다 젊고 기력이 좋아 학문을 닦음에 따라 큰 인물이 될 수 있으므로 가히 두렵다는 말을 후생가외(後生可畏) 등에 쓰인다.
▶️ 者(놈 자)는 ❶회의문자이나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者(자), 者(자)는 동자(同字)이다. 원래의 자형(字形)은 耂(로)와 白(백)의 합자(合字)이다. 나이 드신 어른(老)이 아랫 사람에게 낮추어 말한다(白)는 뜻을 합(合)하여 말하는 대상을 가리켜 사람, 놈을 뜻한다. 또는 불 위에 장작을 잔뜩 쌓고 태우는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❷회의문자로 者자는 ‘놈’이나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者자는 耂(늙을 노)자와 白(흰 백)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者자는 耂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노인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者자의 갑골문을 보면 이파리가 뻗은 나무줄기 아래로 口(입 구)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탕수수에서 떨어지는 달콤한 즙을 받아먹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사탕수수’를 뜻했었다. 후에 者자는 ‘놈’과 같은 추상적인 대상을 지칭하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본래의 의미는 더는 쓰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者(자)는 (1)어떤 명사(名詞) 아래에 붙여, 어느 방면의 일이나 지식에 능통하여 무엇을 전문적으로 하거나 또는 무엇을 하는 사람임을 뜻하는 말 (2)사람을 가리켜 말할 때, 좀 얕잡아 이르는 말로서, 사람 또는 놈 이란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놈, 사람 ②것 ③곳, 장소(場所) ④허락하는 소리 ⑤여러, 무리(모여서 뭉친 한 동아리) ⑥이 ⑦~면(접속사) ⑧~와 같다 ⑨기재하다, 적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병을 앓는 사람을 환자(患者), 신문이나 잡지 따위에 글을 쓰거나 엮어 짜냄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기자(記者), 학문에 능통한 사람이나 연구하는 사람을 학자(學者), 책을 지은 사람을 저자(著者), 살림이 넉넉하고 재산이 많은 사람을 부자(富者), 힘이나 기능이 약한 사람이나 생물 또는 집단을 약자(弱者), 그 사업을 직접 경영하는 사람을 업자(業者), 달리는 사람을 주자(走者), 어떤 종교를 신앙하는 사람을 신자(信者), 어떤 일에 관계되는 사람을 관계자(關係者), 물자를 소비하는 사람을 소비자(消費者), 근로에 의한 소득으로 생활하는 사람을 근로자(勤勞者), 해를 입은 사람을 피해자(被害者),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을 노동자(勞動者), 희생을 당한 사람을 희생자(犧牲者), 부부의 한 쪽에서 본 다른 쪽을 배우자(配偶者), 그 일에 직접 관계가 있는 사람을 당사자(當事者), 권리를 가진 자 특히 선거권을 가진 자를 유권자(有權者),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결자해지(結者解之),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근묵자흑(近墨者黑), 붉은빛에 가까이 하면 반드시 붉게 된다는 근주자적(近朱者赤) 등에 쓰인다.
▶️ 言(말씀 언, 화기애애할 은)은 ❶회의문자로 辛(신)과 口(구)의 합자(合字)이다. 辛(신)은 쥘손이 있는 날붙이의 상형이고, 口(구)는 맹세의 문서의 뜻이다. 불신이 있을 때에는 죄를 받을 것을 전제로 한 맹세로, 삼가 말하다의 뜻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言자는 ‘말씀’이나 ‘말’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言자의 갑골문을 보면 口(입 구)자 위로 나팔과 같은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을 두고 생황(笙簧)이라고 하는 악기의 일종을 그린 것이라는 설도 있고 나팔을 부는 모습이라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말소리가 퍼져나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言자는 이렇게 입에서 소리가 퍼져나가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부수로 쓰일 때는 ‘말하다’와 관계된 뜻을 전달하게 된다. 참고로 갑골문에서의 言자는 ‘소리’나 ‘말’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래서 금문에서는 이를 구분하기 위해 여기에 획을 하나 그은 音(소리 음)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言(언, 은)은 ①말씀, 말 ②견해(見解), 의견(意見) ③글 ④언론(言論) ⑤맹세(盟誓)의 말 ⑥호령(號令) ⑦하소연(딱한 사정 따위를 간곡히 호소함) ⑧건의(建議), 계책(計策) ⑨허물, 잘못 ⑩혐극(嫌隙: 서로 꺼리고 싫어하여 생긴 틈) ⑪이에 ⑫요컨대, 다시 말하면 ⑬여쭈다, 묻다 ⑭기재하다, 적어넣다 ⑮소송하다 ⑯이간하다(離間; 헐뜯어 서로 멀어지게 하다) ⑰알리다 ⑱예측하다 ⑲말하다 ⑳조문하다, 위문하다 그리고 ⓐ화기애애 하다(은) ⓑ화기애애 하면서 삼가는 모양(은) ⓒ위엄(威嚴)이 있는 모양(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말씀 화(話), 말씀 설(說), 말씀 어(語), 말씀 담(談), 말씀 사(辭), 말씀 변(辯),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글월 문(文), 호반 무(武), 다닐 행(行)이다. 용례로는 말로나 글로써 자기의 의사를 발표하는 일을 언론(言論), 어떤 일과 관련하여 말함을 언급(言及), 사람이 생각이나 느낌을 소리나 글자로 나타내는 수단을 언어(言語), 말과 행동을 언행(言行),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을 언중(言衆),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을 입으로 나타내는 소리를 언사(言辭), 말로 한 약속을 언약(言約), 말을 잘 하는 재주를 언변(言辯), 입담 좋게 말을 잘 하는 재주를 언설(言舌), 말로써 옥신각신 함을 언쟁(言爭), 상대자가 한 말을 뒤에 자기가 할 말의 증거로 삼음을 언질(言質), 말과 글을 언문(言文), 말 속에 뼈가 있다는 언중유골(言中有骨), 여러 말을 서로 주고 받음을 언거언래(言去言來), 서로 변론 하느라고 말이 옥신각신 함을 언삼어사(言三語四), 말하고 웃는 것이 태연하다는 언소자약(言笑自若)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