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제목; 내 마음의 풍경
그 여행을 가지 않았으면 어땟을까?
나는 왜 생전 안가던 그 여행을 갔을까
아침에 잠이 깨면 일어 나기 전에 왼쪽 눈을 손으로 가린채
눈을 떠본다.
깜깜한 암흑이다.
빛 한줄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나에게 기적은 일어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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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년
대한민국 전체가 암울했던 518 사건이 있었던 그해
내가 대학2학년때 였다
겨울방학이 끝나갈 무렵2월에 선배들의 졸업 기념으로
해마다 동아리에서 선후배 친선 여행을 가는것이 전통 이었다
늦게 까지 게임과 포카를 즐기고 대둔산밑 민박집에서 늦은 잠을 자고 일어나니
온세상이 모두 설국이 되어 있었다
마당에 나가보니 발목까지 푹푹 잠기는거 보니 어림짐작 20센티는 쌓였는데
누구도 그 등산을 말리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20 여명의 대학생들은 겁도 없을뿐 혈기로 가득했었다
낡은 천운동화 하나로
스틱이 있는줄도 모르는 시절
겁도 없이 일행은 김밥 몇 줄 둘둘 말아 그렇게 설국이 된 대둔산을 올랐다
그저 신이 났다
개척탑에 올라 찬바람에 입이 벌어지지 않아 김밥도 먹는둥 마는둥
그 하얀 설국에 그저 환호할 뿐이었다
2월 중순이 지난 날씨는 오후가 되니 눈이 녹기 시작 했지만
이미 오래전에 얼어버린 길위에 눈이 덮혀 녹기 시작하니
그 길은 더욱더 미끄럽다
그럼에도 하산길을 젊은 혈기들은
조심하기는 커녕 미끄럼 타기를 하다보니 중간쯤 내려왔을 즈음에는 너무나 재미있게 즐기게 되었다
한사람이 다리뻗고 앉으면 뒤에서 한사람이 밀어준다
지나가는 어른들이 학생들 조심하라 했지만
아무도 그 말을 귀 기우린 사람은 없었다
거의 대충 내려왓다고 생각했을 즈음에
내가 다리 뻗고 앉았고 어느 남학생이 쎄게 밀었는데
그 힘이 너무 쎄다고 느낄 틈에 몸이 휘청 하더니
나는 길을 벗어났고 정신없이 곤두박질 치면서
바위 절벽으로 굴렀던거 같다
그림제목; 모정
당시 서울 종로 이화여자대학 옆 공안과 라고 기억이 된다
그 유명한 공병우 박사의 손에 눈수술을 했다는데
그 의사가 아버지에게 하는 이야기를
붕대로 칭칭 감은채로 들었고
나는 지금도 뚜렸이 기억이 난다
"젊은 여학생인데 참 안됐습니다
앞으로 30년 후 쯤이라면 이 눈을 살릴수 있을텐데
지금은 도저히 살려낼수가 없습니다"
솔직히 겁이 났지만
정확히 그게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몰랐다
그 여행은 나의 인생에 혹독한 절벽을 주는 여행이 되어 버렸다
1년간 휴학하고
다시 복학해도 내 젊은 학창 시절은
길가다가 옆사람에게 부딯히면
"눈을 얻다 뒀냐" 소리 듣기 일수였고
지하도 계단 내려가다 넵다 굴르기도 여러번
어둑해지면 아예 집밖에 나가기도 어려웠다
매일 밤마다 기도를 하고
아침에 잠을 깨면 한쪽눈을 가리고
나에게 기적이 오기를 기도했지만 기적은 오지 않았다
암울하고 힘들었던 나의 대학생활
세상 모든것을 원망과 아픔으로 꽁꽁 싸매고 있던 어느 가을날 오후에
대구시에 당시 한국사회사업대학(현 대구대학교) 에는
맹아 학교가 있었다
한무리의 교복입은 학생들이 밀려 나왔고 그중 한학생이
지팡이를 들고 다가온 버스를 향하여
"신천동 가는 차 입니까" 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나도 모르게 달려가 그 남학생을 126번 버스를 타는데 도와 주었다
학생은 앞자리에 앉아 창을 향해 활짝 웃었다
하얀 얼굴에 반이상 감아 보이지 않는 눈으로
환하게 웃은 그 맑디 맑은 웃음
나는 그 웃음을 보는 순간
눈물이 주루룩 흘러 내렸다
버스가 떠나고 혼자 걷는 서쪽하늘의 노을이 그렇게 이쁠수가 없었다
그 아름다움에 한없이 울었다
그래
나는 저 하늘을 볼수가 있어.
하늘이 볼수 있다는 사실 하나가 감사해본것이 처음이었다
마음의 눈을 하나 만들면 돼
남들이 두눈으로 세상을 보면 나는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이후
나는 아동미술학원을 시작했고
어느때 부터 다시 붓을 잡았으며
남들이 두눈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을 그리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2019년
나는 시각장애인 화가지만 장애인 그룹에 들어가지 않고
일반 화가들과 어깨를 겨누어 뒤지지 않게 중견화가로서13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나는 나의 장애로 인해 엄청 많은 서러움과 무시함과 시샘도 받았다
그러나 지금 당당하게 내 삶에게 외칠수 있다
세상 사람들 시선으로는 내가 부족할수 있어도
나는 세상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는 삶을 열심히 살았노라고...
가끔 그림그리는 화가들중 눈에 이상이 생겨
안대를 해보신 분들은 꼭한마디 해주신다
"이 선생 정말 대단해~~!"
네 음유시인님 감사합니다
늘 눈팅으로 많은 감동 받았는데 그런 사연에 참 대단한 분이라는 걸 느낌니다.
응원합니다.
날마다 좋은날
원하시는 삶이 되시기를요~~~
그냥 주어진 하루 하루
상처 덜 받고 살으려면 내면의 깊이와 인내가 필요했지요
성실히 잘 살아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날 되세요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다시 봐도 안타깝습니다.
부드러운 색감을 화사하게 펼쳐놓는
이젤님의 그림을 좋아하는데
기회가 안되네요.^^
네 다음에 전시 할때 또 알려 드릴께요
이젠 전시회도 자주 안하려구요...내 인생작 몇개 만들어도 족할거 같습니다
날씨 추워요
건강히....행복한 날 되세요
마음의 눈을 뜨고
그 심미안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그려 내신
작품 하나 하나
너무나 소중하고 빛나 보입니다
역경을 예술로 승화 시키신
이젤님의 삶에 경의를 표합니다~^^
부족함 많은 저를 따뜻이 평가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미술대학은 한쪽 시력이 없으면 들어가지 못한대요
그래서 대학원은 포기했지만
나름 부족함없이 노력한 저에게 토닥토닥 하며 살았어요
감사합니다
ㅁ본문이나 댓글로 봐선 참 밝고 이성이 맑은 분이다 생각 했어요,카페에 가입한지 얼마되질 않아서 얼굴도모르고 ,
그렇게나 가슴 아픈 사연이 있을줄은 상상도 못하지요.만약 제가 그런 사고를 당했다면 막살지 않았겠나 싶어요.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건강 지키십시요,언제 얼굴 보면 술한잔 올리겠습니다.존경의 의미로
가장 민감한 나이에 다가온 장애라는 편견이 제 스스로도 힘들기도 했지만
그만큼 내면의 기초가 필요했던거 같아요
따뜻한 마음의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그림에서 나오는 알수없는 빛으로 감동하며 읽었어요
이선생 대단해~
정말 대단하셔요
몽환적이고 흉내 낼수 없는 이젤님 만의 그림
이제 확실히 알겠어요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뒷페이지로 넘어간 제 글 까지 이렇게 찾아 보시고 댓글 주시는 아름다운 리즈향님 감사해요
부끄러울수 있는 고백입니다
저희도 이웃학원에 확진자 나와서 주변 학원 한주간 휴강이에요
리즈향님 학원도 많이 고전하지요?
저는 이제 학생들 연연하지 않고 노후를 보내는 작업실로만 생각하며 편하게 지내기로 마음먹었어요
월세만 나오면 된다는...정도로
우리 어려운 시기 잘 이겨내요
젊음이 한창인 때 무서운것이 없는 아름다운 나이에 그런 불행을 겪게 될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래도 마음으로 아름다운 그림으로 승화시키시여 모든 이에게 선물하시는 좋은 화가가 되시었으니 노력이 대단 하십니다
대둔산 저도 두번 가봤는데 아주 가파고 오르기도 힘든 산이더군요
바위도 아름답구요
마음에 나래를 펴시여 더욱 아름다운 작품으로 승승장구하시길빕니다.
산 나리님의 귀한 댓글 감사 합니다
대둔산은 정말 아름다운 산이에요
바위들이 병풍처럼 펼쳐져서...
대둔산이 아름답다는 것은
제가 대전에 터잡고 살면서 야외스케치를 대둔산에 가서야 알게 되었답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