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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역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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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조선,부여,발해 등 고대사토론방 북옥저동부여설 비판적 검토
明治好太王 추천 0 조회 681 12.03.05 11:39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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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3.05 19:43

    첫댓글 그래도 장수왕이 부왕의 훈적을 기리어 만든 석비인데 찬자가 아무런 계획도 없이 써내려가다가 그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했다구요? 참 내...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 작성자 12.03.05 20:09

    비문의 글자 크기는 평균 14, 15cm이며 가장 작은 것은 11cm이고 가장 큰 것은 16cm이라고 합니다. 가장 작은 글자와 큰 글자의 크기 차이가 무려 5cm이며 평균크기와도 2, 3cm입니다. 이 정도 차이면 찬자가 계획성있게 글씨를 쪼아내렸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광개토태왕비 자체도 그렇습니다. 고구려는 동시기에 만들어진 장군총에서도 볼 수 있듯이 상당히 깔끔하게 돌을 다듬는 기술이 이었음에도 광개토태왕비는 그야말로 원석에 가깝습니다. 이는 어딘가 졸속으로 비를 건립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할 정도입니다.

  • 작성자 12.03.05 20:16

    솔직히 비문과 비석 둘 다 그 자체로만 봤을 때 그다지 치밀한 흔적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물론 최소한의 규칙성이 있겠습니다만... 그리고 김태식 기자에 의하면 광개토태와비의 성격이 부왕의 훈적을 알리기 위한 것은 페이크고 실상은 수묘인제도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려는 장수태왕의 의도가 숨어있는 것으로 파악했는데, 실제로 오로지 훈적비로만 보기에는 비문에서 수묘인제도에 대한 내용이 약 3분의 1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인터넷 카페라도 명색이 토론방인데, 표현을 좀 더 부드럽게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장문의 글을 쓴 이의 성의를 봐서라도 말입니다.^^;

  • 12.03.05 21:10

    단순히 글자 크기를 가지고 계획 운운한 것이 아닙니다. 저 김태식 기자 말에 따르면 찬자가 원석에 전체적인 내용을 다 넣을 수 있을지도 제대로 판단을 못한 것으로 말하니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하는 말입니다. 거기에 님이 찬동하셨으니 제 답변의 모양새가 좀 이상하게 되었네요. 석비가 자연석에 만들었기 때문에 글자크기가 고르지 못한 것은 납득이 됩니다만 졸속으로 만들었다고 치더라도 명색이 부왕의 훈적을 기록한 것인데 김태식 기자의 주장은 오버가 심하다고 생각합니다.학계에선 수묘비라 보기도 합니다만 수묘제에 대

  • 12.03.05 21:11

    해 적은 것도 태왕의 치적의 일부로 볼 여지도 있는 듯 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주장하시는 학자분들도 꽤 있구요. 제 표현이 과격했다면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하다못해 안악 3호분의 묵서만 보더라도 전체 벽의 크기를 감안해 거기에 내용의 분량을 맞춰 쓴 흔적이 보이는데 하물며 만인이 두고두고 볼 왕의 석비에 그런 시행착오가 있다고요? 게다가 비문 자체의 세련된 문장력과 표현 등은 이미 학계에서도 인정할 정도로 공들인 것이 충분히 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쓴 비문이 써야 할 전체적인 내용을 다 못쓸 정도로 무계획적으로 기본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주장은 좀 받아들이기가 힘들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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