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퀴
~ 이재무
흙도 가려울 때가 있다
씨앗이 썩어 싹이 되어 솟고
여린 뿌리 칭얼대며 품속 파고들 때
흙은 못 견디게 가려워 실실 웃으며
떡고물 같은 먼지 피워 올리는 것이다
눈 밝은 농부라면 그걸 금세 알아차리고
헛청에서 낮잠이나 퍼질러 자는 갈퀴 깨워
흙의 등이고 겨드랑이고 아랫도리고 장딴지고 슬슬 제 살처럼 긁어주고 있을 것이다
또 그걸 알고 으쓱으쓱 우쭐우쭐 맨머리 새싹들은
갓 입학한 어린애들처럼 재잘대며 자랄 것이다
가려울 때를 알아 긁어주는 마음처럼
애틋한 사랑 어디 있을까
갈퀴를 만나 진저리치는 저 살들의 환희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사는 동안 가려워서 갈퀴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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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퀴’는 마른 잎이나 지푸라기 따위를 긁어모으는 농기구로 주로 벌초 후 뒷정리를 할 때에 많이 사용한다.
그렇다고 긁어모으는 일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밭에 씨앗을 뿌리고 흙을 덮어줄 때에도 사용한다.
어느 종자인가에 따라 사용하는 농기구가 다르지만 흔히 들깨의 경우 씨를 뿌리고 갈퀴로 흙을 긁어 덮어준다.
이재무의 시 <갈퀴>에서는 이 갈퀴가 ‘효자손’으로 둔갑한다.
즉 가려운 곳을 긁는 역할이다.
첫 행에 ‘흙도 가려울 때가 있다’고 전제하고는 그 때는 바로
‘씨앗이 썩어 싹이 되어 솟고 /
여린 뿌리 칭얼대며 품속 파고들 때’라고 한다.
이 때가 되면 ‘흙은 못 견디게 가려워 실실 웃으며 /
떡고물 같은 먼지 피워 올리는 것이’란다.
이럴 때에 농부는 어떻게 해줘야 할까.
흙이 가렵다고 하니 긁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눈 밝은 농부’들은 흙이 가려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헛청에서 낮잠이나 퍼질러 자는 갈퀴 깨워 /
흙의 등이고 겨드랑이고 아랫도리고 장딴지고 /
슬슬 제 살처럼 긁어주고 있을 것이’란다.
흙에도 등, 겨드랑이, 아랫도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시인의 시선이 따뜻하다.
마치 제 몸을 긁듯이 흙의 구석구석 잘 찾아 긁어주는 시인 - 참된 농부이지 않은가.
이렇게 흙을 긁어주면 아직 싹이 완전히 솟지 않은 ‘맨머리 새싹들은 /
갓 입학한 어린애들처럼 재잘대며 자랄 것이’란다.
그렇지 않겠는가.
한창 싹을 틔워 자라야할 때, 간지러움을 느끼고 꿈틀될 때, 농부가 알아서 갈퀴로 긁어주니 얼마나 시원하겠는가.
싹들은 이제 활짝 눈을 틔워 쑥쑥 자랄 것이 분명하다.
이런 갈퀴질을 시인은 사랑으로 표현한다.
바로 ‘가려울 때를 알아 긁어주는 마음처럼 / 애틋한 사랑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 사랑을 받은 흙은 어떠할까.
바로 ‘갈퀴를 만나 진저리치는 저 살들의 환희’가 된다.
여기서 시인은 갈퀴질을 일반화시킨다.
즉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 사는 동안 가려워서 갈퀴를 부른다’는 말이 그것이다.
어디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갈퀴질이 꼭 밭에만 있는 일이겠는가.
흙만이 아니라 인간이나 동물도 가려울 때가 있다.
이때 누군가 옆에 있어 긁어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런 행위는 ‘가려울 때를 알아 긁어주는 마음’이요 그것은 바로 ‘애틋한 사랑’이리라.
흙을 사랑하는 농부의 마음이요 옆에 있는 이를 사랑하는 우리네 인간들의 징표일 것이다.
그러니 갈퀴는 효자손이요, 그것으로 흙을 아니 등을 긁어주는 행위는 사랑하는 마음임이 분명하다.
농부의 아들이라는 시인 - 농사를 지어보지 않고는 갈퀴의 기능 나아가 흙의 이런 마음을 알지 못할 것이리라.
그런 경험이 이런 아름다운 마음을 만들어낸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