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잠(玉簪)은 다년생(多年生) 초본 백합과(百合科) 식물이다. 원산지는 중국과 일본이다.
옥잠의 뿌리는 굵고 단단하며 잎은 넓다. 매년6, 7 월 꽃대가 잎사귀들 틈 사이에서 올라와 매 꽃대 마다 십여 개의 꽃 봉오리가 매달려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을 피운다.
본초품회정요(本草品匯精要)에 보면”옥잠화(玉簪花) , 묘고척여(苗高尺餘) , 엽생경단(葉生莖端) , 담록색(淡綠色) , 육칠월추경분지(六七月抽莖分枝), 생수예(生數蘂), 장이삼촌(長二三寸), 청향영백(淸香瑩白), 형여관잠(形如冠簪), 고명옥잠화야(故名玉簪花也)” 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옥잠화는 한자 남짓한 새 줄기가 올라와 담록색 잎을 만들고 6, 7, 월에 여러개의 꽃대가 분지하여 올라오고 그 끝에 여러개의 2, 3 촌 되는 꽃술을 형성한다. 꽃은 수정같이 밝고 깨끗하며 향기가 난다. 꽃의 모양이 머리비녀와 흡사하므로 옥잠화란 이름을 얻었다.” 는뜻이다.
꽃은 꽃줄기 끝에 여러 송이가 모여서 달리고 연한 자주색과 흰색의 두 종류가 있다. 옥잠화는 백옥(白玉)을 조각해서 만든 비녀 같다.
전설에 의하면 한(漢) 나라 무제(武帝)의 총애를 받는 왕비(王妃) 이부인(李夫人)은 항상 옥잠비녀를 머리에 꽂고 다녔다. 궁녀들이 이 부인의 옥비녀를 모방한 옥비녀를 서로 앞을 다투어 머리에 꽂고 다녔다. 이때부터 이 꽃의 이름을 이 부인의 옥비녀와 비슷하게 생겼다하여 옥잠화라고 칭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옥잠화의 꽃이 백학(白鶴)과 닮았으므로 백학화(白鶴花) 또는 백학선(白鶴仙)이라는 별칭도 있다.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하나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옥잠은 또 최생초(催生草)라고도 부른다.
먼저 간단한 역사를 소개한다.
기원전(紀元前) 16 세기 부터 기원전(紀元前) 11 세기 까지 존재했던 상조(商朝)의 초대 왕 탕왕(湯王) 부터 18 대 왕 양갑(陽甲) 때 까지는 상(商) 나라로 부르다가 19 대왕 반경(盤庚) 때 부터 국호를 은(殷) 나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은(殷) 나라 제 3 0 대 왕 주왕(紂王)은
은(殷) 나라의 마지막 왕으로써 하(夏) 나라(BC 21 세기 BC 11 세기) 마지막 왕 걸왕(桀王)과 더불어 대표적인 폭군(暴君)으로 일컬어 지고있다.
주왕(紂王)의 사랑하는 왕비 장부인(張夫人)은 모든 꽃을 사랑했다. 그런데 꽃 중에서도 유독 옥잠화를 가장 사랑했다.
어느 해 장부인이 임신했다. 10 개월이 지나 분만 날짜가 닦쳐왔다. 낮이 지나고 밤이 돌아왔는데도 아기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장부인은 매우 불안한고 초조하였으며 자신이 이대로 아기를 보지 못하고 죽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죽기 전에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옥잠화를 한 번만 더 보고 죽어야 겠다고 궁녀에게 말했다. 장부인은 궁녀가 옥잠화를 화분에 담아들고 장부인의 방안으로 들어 올때 아름다운 옥잠화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이윽고 장부인은 ”새 하얀 눈꽃송이 같은 순결한 백옥(白玉) 처럼 생긴 옥잠화야! 지금까지 너와 나는 가장 친한 친구였지? 오늘 내가 너를 마지막으로 보고 간다.! 잘있거라! 나는간다! 친구야!” 라고 옥잠화에게 말했다.
장부인이 마지막 인사말을 옥잠화에게 끝마치자 마자 즉시 쉬잇! 소리가 나더니 옥잠화가 몇 송이 꽃을 활짝 피웠다. 잇따라 계속하여 “응애!” 하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장부인의 뱃속에서 옥동자(玉童子)가 태어나왔다.
주왕(紂王)은 옥잠화가 옥동자를 분만시켰다는 소식을 듣고나서 ”옥잠화가 최생초(催生草)아니냐?” 고 물었다.
이와같은 소식이 궁내에 퍼졌다. 이후로 부터 부녀자들이 난산(難産)으로 고통받을 때 옥잠화를 최생에 사용했더니 영험(靈驗)한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옥잠화를 최생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곽말약(郭沫若)은 옥잠화에 대하여 ”유백색적옥잠(乳白色的玉簪), 취삽재벽옥초두(聚揷在碧玉梢頭), 일화사료(一花謝了) , 일화우개(一花又開), 편형적녹엽파향풍선득화유(扁形的綠葉把香風扇得和柔), 보지결백(保持潔白), 교기교기도불감유(驕氣嬌氣都不敢有)…” 라고 평했다. 다시 말하면 ”유백색 옥잠화는 꽃줄기 끝에 백옥을 모아 꽂아 넣은 것 같고 꽃이 하나 피었다 지고나면 또 하나가 피고 넓고 납작한 보드라우면서도 연약한 초록색 잎사귀는 향기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부채와 같이 생겼으며 백옥과 같이 하얀 꽃은 순결과 결백을 상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거만하게 뽐내거나 아양을 떨거나 교태를 부리는 것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 는 뜻이다. 수 많은 고대 시인들이 옥잠화를 시(詩)로 써서 읊어 찬미하였다.
옥잠화의 꽃과 잎과 뿌리를 모두 한약으로 사용한다.
옥잠화의 성(性)은 양(凉)이며 미(味)는 감(甘)이다. 소종이뇨(消腫利尿) 작용과 청열해독 작용이 있으므로 인후종통(咽喉腫痛)과 소변불리(小便不利)와 통경(痛經)의 치료에 사용하며 화상(火傷)에 꽃잎을 부쳐두면 치료된다.
또 분류본초약성(分類本草藥性)에 옥잠화는 유정(遺精)과 토혈(吐血)과 기종(氣腫)과 백대(白帶)와 인후홍종(咽喉紅腫)을 치료해 준다고 기록되어 있다.
영남채약론(嶺南采藥論)에는 옥잠화는 윤폐지해혈(潤肺止咳血), 해반모독(解斑)毒)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옥자화를 참기름 속에 담구어 두었다가 그 물로 화상(火傷)을 치료하면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임상보도가 있다. 특이한 것은 단 시간 내에 지통(止痛) 효과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옥잠화의 잎사귀의 미(味)는 감신(甘辛)이며 성(性)은 한(寒)이다. 옹종(癰腫)과 정창(疔瘡)과 사충교상(蛇蟲咬傷)을 치료해 준다.
중국약식도감(中國藥植圖鑑)에 보면 ”여성들의 유옹정창(乳癰疔瘡)에 옥잠화 전초(全草)를 짛이겨 부쳐두면 치료되며 완고성 궤양도 치료해 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본초재신(本草再新)에 보면 ”옥잠의 뿌리는 심장과 간으로 들어가며 창독(瘡毒)을 치료해 주며 파혈소종(破血消腫)과 배농산풍(排膿散風)작용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옥잠화의 뿌리를 갈아서 즙을 만들어 한참 동안 입안에 머금고 있다가 입안을 가셔내면 치통(齒痛)이 사라진다.
이빨을 빼고 싶은 사람은 옥잠의 뿌리를 갈아서 즙을 만들어 한달 동안 매일 한 두차례씩 입안에 머금고 있다가 입안을 가셔내면 통증없이 이빨 전체가 한 개도 남지않고 통증없이 모두 다 빠져 버린다.
소변불통에는
(1) 옥잠화 6g, 사태(蛇) 6g, 정향(丁香) 3g을 가루내어 매복 3g 씩 술과 함께 복용하면 치료된다.
(2) 옥잠화 3g, 편축(蓄) 12g, 차전초(車前草) 12g, 등심초(燈心草) 3g을 수전복(水煎服)한다.
치통(齒痛)에 옥잠화 60g을 물속에 넣고 끓인 다음 그 물을 입안에 머금고 있으면 치통(齒痛)이 가라앉는다.
월경통에는 옥잠화 12g, 홍당(紅糖) 15g, 달걀 3 개를 함께 물속에 넣고 끓여 달걀도 먹고 국물도 마시면 치료된다.
창옹종독(瘡癰腫毒)에는
(1) 옥잠화 뿌리 10g, 신선한 포공영(蒲公英 : 민들레) 10g 을 함께 짛이겨 상처에 부쳐두면 치료된다.
(2) 신선한 옥잠화 전초(全草) 20g 을 깨끗이 씻은 다음 짛이겨 환처에 부쳐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