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글 네편을 옮깁니다.
1. 丁茶山의 사람냄새
(아래 글은 茶山이 젊은 시절에 지은 <南孤歎>이란 詩에 담긴 茶山의 사람냄새를 맡아보고자 산문형식의 이야기로
옮겨 봅니다. 이 내용은 [다산문집]을 박무영선생이 옮긴 <뜬 세상의 아름다움>이란 책에서 발췌했습니다.)
1784년 여름,장마가 열흘 넘게 계속되던 날이다. 장마로 온통 진창이 되어버린 서울 회현동 골목을 23세의 다산이
들어서고 있었다. 대문을 들어서자 분위기가 여느 때와 다르다. 계집종 하나가 눈물을 찔끔거리며 서 있고,
아내 홍씨는 상기된 표정이다. 바지런하고 웬만해선 마음에 드는 것이 없는 깐깐한 성품의 홍씨지만,그렇다고
아랫사람을 함부로 다루는 일도 없는 사람이다.
사연인즉, 오랜 장마로 끼니가 끊긴지 오래,호박죽을 끓여서 연명했는데,그나마 호박도 남은 것이 없었다.
옆집 텃밭에 열린 탐스런 호박 하나를 발견한 계집종은 얼른 그 호박을 따왔다. 죽을 끓여 주인께 올렸으나,
대쪽같은 성품의 홍씨는 매를 들었다. "누가 너더러 도둑질을 하라더냐?" 젊은 다산은 그만 무안해져 버렸다.
이 일대의 '文苑의 奇才'요 '장래 재상감'은 예상치 못한 대답을 한다. "아서라 그 아이 죄없다. 꾸짖지 말라."
그리고는 속으로 탄식한다. "만권 책을 읽은들 아내가 배부르랴,두이랑 밭만 잇어도 계집종이 죄짖지 않아도 될것을",
"나도 출세하는 날 있겠지.하다못해 안되면 금광이라도 캐러 가리라."
젊은 다산은 가장으로서 식솔들의 굶주림을 외면하고서 하는 독서,치국평천하의 포부가 얼마나 허상인지,배고파
고작 호박 하나를 도둑질한 어린 계집종을 윤리를 들어 꾸짖고 매질한다는 짓이 얼마나 가증스런 위선인가를
외면하지 않고 고백한다. [貧]이란 시에서 솔직히 말한다. "안빈낙도하리라 말을 했건만,막상 가난하니 '安貧'이
안되네. 아내의 한숨소리에 그만 체통이 꺽이고,굶주린 자식들에겐 엄한 교육 못하겠네."
- 하 략 -
2. 완당선생 제문
(이 글은 유홍준선생이 쓴 <완당평전> 두권을 읽고 말미에 있는 초의스님의 [완당선생 제문]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戊午年 2월 청명일에 方外의 친구 초의는 한잔의 술을 올리고서 김공 완당 영전에 고하나이다.
엎드려 생각건대,좋은 환경에 태어나서 어찌 굳이 좋은 때를 가리려 했나이까. 신령스런 서기로서, 어두운 세상에
따랐으면 그게 곧 밝은 세상이었을 텐데, 이를 어기고 보니 기린과 봉황도 땔나무를 하고 풀이나 베는 나무꾼의 고초를
겪은 것입니다...
슬프다! 선생은 天道와 人道를 닦아 여러 학문을 체득하시고,글씨 또한 조화를 이루어 왕희지,왕헌지의 필법을 능가하고,
詩文에 뛰어나 세월의 영화를 휩쓸고,金石에서는 작은 것과 큰 것을 모두 규명하여 중국에까지 이름을 떨치셨나이다.
달이 밝으면 구름이 끼고,꽃이 고우면 비가 내립니다...
슬프다! 선생이시여,사십이년의 깊은 우정을 잊지 말고 저 세상에서는 오랫동안 인연을 맺읍시다. 생전에는 자주 만나지
못햇지만,도에 대한 담론을 할 제면 그대는 마치 폭우나 우레처럼 당당했고,정담을 나눌 제면 그대는 실로 봄바람이나
따스한 햇볕 같았지요. 손수 달인 雷莢(뇌협)과 雪乳(설유)의 차를 함께 나누며,슬픈 소식을 들으면 그대는 눈물을 뿌려
옷깃을 적시곤 했지요. 생전에 말하던 그대 모습 지금도 거울처럼 또렷하여 그대 잃은 슬픔 이루 다 헤아릴수 없나이다.
슬프다! 노란 국화꽃이 찬 눈에 쓰러졌는데 어쩌다 나는 이다지 늦게 선생의 영전에 당도했는가? 선생의 빠른 별세를
원망하나니,땅에 떨어진 꽃은 바람에 날리고 나무는 달그림자 끝에 외롭습니다.
선생이시여! 이제는 영원히 회포를 끊고 몸을 바꿔 시비의 문을 벗어나서 歡喜地에서 자유로이 거니시겠지요.
연꽃을 손에 쥐고 安養을 왕래하시며 거침없이 흰 구름 타고 저 세상으로 가셨으니 누가 감히 막을 수 있겠습니까?
가벼운 몸으로 부디 편안히 가시옵소서. 흠향하소서. ([초의선집])
3. 無心(경허스님)
( 경허 큰 스님의 <無心> 중에서..)
인생은 세상에서 마음 알아주는 것이 제일 귀하니
이미 지나간 힘들었던 자취 다시 더듬어 무엇하리
비록 뜬 구름은 조석으로 변하지만
산봉우리는 고금에 푸르지 않던가
무성한 여름숲도 소나무의 푸르름만 못하고
온갖 봄새들 지저귀나 학의 울음만 못하네
고요한 양쪽 강변 밤에
다시금 거칠은 시구로 신선의 금도를 펼치네.
4. 남의 허물을 감싸주고 용서합시다.
(이 글은 04/04/18. 길상사 법회에서 法頂스님께서 말씀하신 법어를 간추린 것입니다.)
"남의 허물을 감싸주고 용서합시다. 용서는 사랑과 이해의 문을 열어 줍니다."
봄을 맞아 온 천지에 피는 꽃과 같이 사람들도 철마다 새롭게 태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선의의 충고는 물론 필요합니다. 하지만 남의 잘못을 일일이 들추고 꾸짖는다고 고쳐지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고 원한까지 사게 되는 일이 허다합니다.
남의 결점이 눈에 띌때 내 결점은 없는지 먼저 되돌아 봐야지요.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장왕은 한 신하가 후궁을 희롱한 잘못을 덮어주는 관용을 베풀었습니다.
이에 감복한 신하는 뒷날 진나라와의 전쟁에서 장왕을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용서가 갖는 힘은 무한합니다.
法句鏡에 '남의 허물을 보지말고 다만 내 자신이 지은 허물만을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처지에 서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이 왜 잘못했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그래서 용서가 필요합니다.
용서는 맺힌 것을 푸는 열쇠입니다. 마음의 닫힌 문을 열고 상대를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이 성장하고
윤회의 그물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자존심을 내세우지 말고 오늘 당장 맺힌 것을 풀어 버리세요."
남개연(외개연)
* 옮긴글 네편은 02년도 부터 시작한 sfm홈피에 제가 실은 오래 된 글들을 묶음으로 데려왔습니다.
첫댓글 내용 하나 하나가 모두 훌륭하고 소중한 글이다.
"안빈낙도하리라 말을 했건만, 막상 가난하니 '安貧'이 안되네.
아내 한숨소리에 체통이 꺽이고, 굶주린 자식들에겐 엄한 교육 못하겠네."
"달이 밝으면 구름이 끼고, 꽃이 고우면 비가 내립니다."
"인생은 세상에서 마음 알아주는 것이 제일 귀하니,
이미 지나간 힘들었던 자취 다시 더듬어 무엇하리"
"남의 허물을 감싸주고 용서합시다.
용서는 사랑과 이해의 문을 열어 줍니다.
자존심을 내세우지 말고 오늘 당장 맺힌 것을 풀어 버리세요."
...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살아가는 것은 크게 다를 바 없으니..
시대를 이어가는 소중하고 귀한 말씀 가슴에 새겨 실천합시다.
[마음에 담아 둡니다.]
.....
그 사람의 처지에 서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이 왜 잘못했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그래서 용서가 필요합니다.
용서는 맺힌 것을 푸는 열쇠입니다.
마음의 닫힌 문을 열고 상대를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이 성장하고 윤회의 그물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명
심
보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