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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역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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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조선,부여,발해 등 고대사토론방 Re:북옥저동부여설 비판적 검토
明治好太王 추천 0 조회 296 12.03.06 00:55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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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3.06 07:19

    첫댓글 제가 명치호태왕님의 견해에 반론을 제기한 부분도 김태식 기자의 주장 부분에 국한된 것입니다. 나머지 부분까지 현재로서는 태클을 걸 생각은 없습니다. 뭐 그것도 반드시 님의 주장이 옳다고 느끼기 때문만은 아니지만 말이지요. 자연석에다 새긴 것이 졸속과정이라...석공의 역량을 기본적으로 파악 못할 정도로 엉망으로 비문이 무계획적으로 새긴 것이라...탁본을 받아보기 위해 비문을 만들었고 삼엄한 경비...? 님의 주장에 따르면 대충 만든 비문인데 왜 삼엄한 경비를 할까요? 탁본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하시는 말씀인지...?

  • 12.03.06 07:21

    물론 능비의 내용을 모든 백성들이 한자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다 이해를 못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만 글쎄요...저도 딱히 대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님의 답변을 보니 더 이상 토론을 해봤자 평행선만 달릴 뿐이라는 것을 재삼 느꼈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 12.03.06 13:09

    일단 질문에 대한 것은 답변 드리겠습니다. 원석을 다듬는 기술이 있음에도 원석에 새긴 것에 의문이 있어 졸속으로 추정한 것입니다. 석공의 역량은 원석에다가 예서체를 새길 정도이니, 기본적으로 뛰어난 편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글자크기의 조절을 수월하게 할 정도까지의 역량은 부족한 것으로 봅니다. 원석인 탓이 크겠습니다만. 사실 비문의 석공은 영락 6년조에서도 성 2, 3개를 기재하지 않는 실수를 하기도 하는데, 그 역시 사람이기에 실수를 했을 것입니다. 삼엄한 경비는 그래도 일국의 군주의 비인데,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문은 인위적이든 자연적이든 훼손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경비를 했을 것 입니다.

  • 작성자 12.03.06 13:11

    또한 크기에 의한 과시용일 수도 있는 만큼 경비도 붙여서 위엄을 돋보이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만들어놓고 경비도 없이 방치한다는 것이 더욱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탁본의 근거는 태왕의 훈적을 비를 세움으로써 후세에 알리고자한다는 비문의 내용에서 힌트를 얻은 것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광개토태왕비의 글자는 아무리 한문에 능숙한 사람이더라도 육안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비문의 내용을 전하려면 탁본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특히 수묘인 내용은 관리들에게 하는 경고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꼭 탁본이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비문의 내용을 전할 수 있겠지만 탁본도 그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되기에 언급한 것입니다.

  • 작성자 12.03.06 12:34

    저 역시 토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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