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계 자료
- 국명: 벨라루스공화국(Republic of Belarus)
면적: 207,600 sq km (80,964 sq mi) 인구: 1020만명 수도: 민스크(Minsk; 인구 170만명) 인종: 벨라루스인(80%), 러시아인(13%), 우크라이나인(4%), 폴란드인(3%) 언어: 벨라루스어, 러시아어 종교: 동방정교회기독교, 로마카톨릭 정체: 공화국
- 지리 및 기후
- 벨라루스는 영국보다 약간 작으며, 북쪽과 동쪽으로 러시아가, 북서쪽으로는 라트비아(Latvia)와 리투아니아(Lithuania)가 접해있고, 폴란드는 서쪽에 우크라이나(Ukraine)는 남쪽으로 접하고 있다. 벨라루스는 저지대 국가로 가장 높은 언덕인 드자르진스카야(Dzjarzhinskaja)의 높이가 겨우 345m이다. 지형은 작은 호수들이 산재되어 있고 폭넓은 저습지를 가르는 낮은 등성이들로 이루어져 있다. 드냐프로(Dnjapro)강이 이곳 주요강으로 러시아의 스몰렌스크(Smolensk)에서 벨라루스 동부로 흐른다. 벨라루스는 예전에 한번 숲으로 완전히 뒤덮혀 있었다. 16세기까지 대부분 지역이 농사를 위해 개간되었지만, 큰 숲은 특히 남쪽에서 다시 성장해왔다. 가장 일반적인 나무로는침엽수, 참나무, 너도밤나무와 은빛자작나무가 있다. 벨라베즈스카야푸쉬챠 자연보호지(Belavezhskaja Pushcha Nature Reserve)는 폴란드국경에 있으며, 유럽에서 가장 큰 혼합원시림의 일부로 유럽들소의 왕성한 무리가 서식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벨라루스의 다른 자연보호지들에는 엘크사슴(elk; 유럽산 큰사슴), 사슴, 멧돼지, 늑대, 여우, 다람쥐, 담비, 산토끼, 비버, 수달, 밍크와 오소리가 서식하고 있다. 농경지는 곡식과 아마(린네르(linen)의 원료)를 생산하는데 쓰여지고 있다. 우아한 푸른 아마꽃이 피어있는 광활한 들판은 시선을 고정시킬 정도의 광경을 이룬다. 벨라루스는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더욱 극단적으로 혹독해지는 대륙성기후를 가지고 있다. 1월 평균기온은 -4°C에서 -8°C 사이이며, 1년중 7, 8개월은 땅에 서리가 내린다. 가장 따뜻한 달은 7월로 기온이 보통 19°C(66°F)에 이른다. 6월과 8월이 가장 비가 많고, 12월에서 4월까진 눈으로 뒤덮힌다.
- 역사
- 벨라루스에 인간이 출몰한 증거는 초기 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동부 슬라브민족이 슬라브민족 팽창기 동안인 AD 6세기에서 8세기까지 이곳에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1240년 키에프(Kiev)에서 몽고족이 이 지역 슬라브 군주들을 굴복시킨 후, 많은 벨라루스 마을이 타타르인 지배하에 있게 되었다. 14세기동안 이 지역은 리투아니아가 차지했고, 그 후 400여년을 거치며 벨라루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는 다른 문화적인 개체가 되었다. 1569년 폴란드가 리투아니아와 합쳐졌을 때 폴란드 문화는 벨라루스에서 더욱 더 출중해졌고 벨라루스교회는 로마교황청의 권위아래 놓이게 되었다.폴란드가 휘청거리기 시작한 18세기 말 러시아가 벨라루스를 차지해 버렸다. 러시아는 벨라루스를 러시아의 일부로 만들려고 결심했으며, 따라서 벨라루스어로 출판되는 것을 금했고 러시아정교회가 세워졌다. 19세기동안 벨라루스는 농업경제에서 산업화된 경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1860년대 농노들이 해방되었지만 교외지역의 빈곤상태가 심했기에 세기의 전환기무렵 백오십만명의 사람들이 이주해 버렸다. 러시아가 유대인들에게 지정구역에서 - 그중 한곳이 벨라루스이다 - 살도록 요구한 이래로, 19세기동안 도시유대인 인구수는 급속도로 증가했고, 몇몇 마을은 반 이상이 유대인으로 구성됐다. 대부분 도시지역들은 주로 유대인과 러시아인들로 채워진 반면 벨라루스인은 정치적 영향이 적게 미치거나 수도, 전기 등의 자원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곳에서 머물게 되었다.세계 1차 대전 중 러시아 독일간의 많은 전투가 벨라루스에서 치뤄져 수많은 지역이 파괴되었다. 독일이 벨라루스를 차지했지만 1921년 벨라루스는 폴란드와 볼셰비크러시아(Bolshevik Russia; 러시아 사회민주당내의 과격파로 그 다음해에 USSR(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소련 사회주의공화국 연방)이 된다) 사이에서 나뉘게 된다. 벨라루스의 소련측 구역은 1930년대 동안 숙청과 농업집산주의 아래 있었고, 벨라루스의 문화와 독립성은 억압을 받았다. 수 천명의 벨라루스인들이 처형당했는데 이는 주로 민스크 외곽 숲 속에서 일어났다.1939년 폴란드가 독일과 USSR에게 침공을 당했을 때 USSR은 벨라루스의 폴란드측 구역을 되차지했다. 불행히도, 벨라루스인들은 1941년 독일이 USSR을 침략했을 때 다시 전쟁에 휩싸이게 되었다. 독일의 점령은 잔혹했으며 유격대의 저항운동이 넓게 퍼졌다. 1944년 독일군은 붉은 군대(the Red Army; 소련 정규군)에 의해 축출되었으나 벨라루스는 시간이 흐를수록 파괴되었고 민스크에선 간신히 돌맹이하나 남겨질 정도였으며, 벨라루스 전체인구의 4분의 1이 죽었다. 많은 사상자들이 나치(Nazi)수용소에서 그들의 최후를 맞이하거나 USSR에 의해 추방되거나 처형되었다.첫 번째 전후 5개년 계획으로 많은 전쟁의 흉터가 아물었고 민스크는 USSR의 산업중심지로 발전해 나가면서, 사람들이 도시로 모여들었고 많은 러시아인들이 산업노동력을 지원하기위해 이주해 왔다. 1980년까지 벨라루스정치인들은 독립국가로서의 벨라루스와 소련품 안에서 안전하고 편안히 지내는 벨라루스 사이에서 훌륭한 노선을 걸어왔다. 그렇지만 벨라루스는 소련공화국들에서 가장 엄격한 공산주의 중 하나라는 평판을 갖고 있었다.1986년 우크라이나의 체르노(Chornobyl) 원자력발전소가 녹아내렸을 때 벨라루스가 우크라이나보다 더 심하게 타격을 받았다. 국토의 약 5분의 1이 심각하게 방사능에 오염되었고 정치적 의견의 조류는 소비에트연방의 회원국으로 유지하는 것에 반하게 되었다. 1988년 벨라루스 인민전선(Belarusian Popular Front)이 형성되었고, 체르노빌사건으로 떠오른 이슈들과 벨라루스어의 사용감소에 대해 발언하게 되었다. 그 이듬해부터 국수주의적 정서가 자라났으며 1990년 7월 27일 벨라루스공화국은 USSR안에서 주권선언을 공표했으며, 1991년 8월 25일 공산당에서의 완전한 국가적 독립 선언을 공표한다.물리학자로서 체르노빌 직무과실에 대한 캠페인활동을 벌였던 스텐니슬라우 슈시케비츠(StanislaShushkevich)는, 구공산주의 옹호자와 혁신주의 인민전선사이에서 중도주의 노선을 추구한 첫 번째 국가원수였다. 1990년대 초반 경제개혁이 느리게 진행되었고 공산주의자들은 슈시케비츠의 의지에 반하는 러시아와의 많은 유대관계를 다시 설립했다. 슈시케비츠는 1994년 물러나게 되었으며, 벨라루스 최초의 대통령 직선제를 통해 알렉산더 루카쉔카(AlexandLukashenka)가 뒤를 이었다. 루카쉔카는 물가상승 억제, 민영화 금지, 부패 근절, 조직범죄 타도를 강조하며 러시아와 더욱 가까운 유대관계를 발전시킬 것을 공약했다
- 경제
- 국내 총생산 GDP : US$ 603 억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 US$ 4,641 연 성장률: -10% 인플레이션: 244% 주요생산품: 식품, 화학제품, 섬유, 농기계류, 목재 주요교역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독일, 영국
- 문화
- 벨라루스의 출판사업은 주목할 만한 영향을 끼쳐왔다. 벨라루스어 성서는 동유럽에서 인쇄된 최초의 서적 중 하나이며, 17세기 벨라루스 시인인 폴라트스크의 시메온(Symeon)은 러시아에 바로크양식 문학을 소개했다. 벨라루스의 현대문학은 19세기에 창시되었다. 야쿠브콜라스(Jakub Kolas)는 고전문학의 개척자로, '푸른 하늘아래'(Beneath the Blue Sky)의 저자 나탈라 아르센네바(Natalla Arseneva)는 20세기 문학의 모범으로 알려져 있다. 소련의 점령은 지방작가들의 숨통을 조였었지만 문학의 장은 지금 부흥기를 겪고 있다.벨라루스는 강력한 음악적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많은 12세기 정교회 찬송가와 설교는 벨라루스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벨라루스 민속음악은 아주 유명한데, 만약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절대 놓치지 말자. 현대식 민속음악은 의식을 위한 예식이나 교회음악에서 비롯되었고 16세기 이후에 대단히 발전하게 되었다. 20세기에 이르러 벨라루스의 클래식음악은 두각을 나타나게 되었으나, 국제적인 평판을 얻고있는 민스크의오페라와 발레극단들을 앞지를 정도는 아니다.벨라루스는 우크라이나처럼 항상 로마카톨릭과 동방정교회 기독교사이에서 교차로역할을 해왔다. 약 70%의 벨라루시아인들이 동방정교회지만, 상당한 수의 로마카톨릭인구(이들이 성직자들을 조정한다)도 폴란드 통치기 때부터 유래해왔다. 또한 신교도(한때 지배적인 독일인구의 자취로 남은), 이슬람교도(주로 타타르인)와 유대교도들도 있는데, 이들 중 다수는 이민을 가고 있다.벨라루스어는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의 동족인 동부슬라브어이다. 벨라루스어는 주로 키릴문자(Cyrillic)로 쓰여지며 드물게 로마벨라루스알파벳(Roman Belarusian alphabet)도 쓰여진다. 소련의 지배하에 있을 때는 80%의 벨라루스 어린이들이 오직 러시아어로만 교육되어 왔고, 러시아어가 모든 비즈니스와 정부업무의 공식어로 사용되었었다. 1990년에 벨라루스어가 국가 공식언어로 채택되어 현재, 거리의 이름들이 개명되고 있으며, 교육은 벨라루스역사와 문학을 역점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어가 아직도 가장 많이 퍼져있는 언어이다.벨라루스인들은 버섯요리를 좋아하는데, 버섯을 채취하는 것은 일종의 지역의식과도 같다. 많은 요리들이 어떻게든 버섯을 주재료로 사용하며, 풍부하게 소스를 곁들이거나 크림을 채워 넣어서 혹은 버섯 그 자체만으로 요리한다. 유명한 음식으로는 흐리비브슴타네(hrybi v smtane; 시큼한 소스를 곁들인 버섯요리), 흐리브노이수프(hribnoy sup; 버섯과 보리수프)와 코틀레타 포크레스탼스키(kotleta pokrestyansky; 버섯소스를 곁들인 얇게저민 돼지고기)가 있다. 그밖의 중요한 음식재료로는 마늘, 생선, 캐러웨이(caraway; 미나리과의 식물)가 있고, 인기있는 음료로는 크바스(Kvas)가 있는데 맥아가루, 설탕, 박하와 과일로 만든다
- 축제 및 행사
- 작곡가들은 국립벨라루스 작곡대회(National Convention of Belarusian Composers) 기간이 열리는 1월동안 민스크로 몰려든다. 4월에는 민스크에서 국제언어 페스티발인 엑스포링궈(Expolingua)가 열리며, 6월에는 스비탸즈호수(Lake Svityaz)에서 시페스티발(Festival of Poetry)이 열리는데 벨라루스와 러시아의 기라성같은 시인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벨라루스 음악의 가을축제(Belarusian Musical Autumn)는 민스크에서 11월 하순 열흘동안 열리며 민속, 클래식 음악과 춤의 향연이 펼쳐진다
- 여행자 정보
- 비자: 모든 외국여행자는 비자가 필요하다 - 벨라루스 국경에서 취득하는 것보다 타국에서 취득하는 것이 훨씬 쉽다.
보건위생: A형, B형 간염, 장티푸스, 진드기전염 뇌염 시간대: 벨라루스가 한국보다 7시간 느리다. 벨라루스가 아침 9시면 한국은 오후 4시이다. (크리미아(Crimea)는 한국보다 6시간 느리다) 전압: 220V, 50Hz 도량형: 미터제(도량형 환산표 참조)
- 경비 및 환전
- 통화: 벨라루시안 루블(Belarusian rouble)
일반경비 저렴한 현지 식사: US$1-3 중급 레스토랑에서 식사: US$3-5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 US$5-10 저렴한 숙박지: US$5-20 중급 호텔: US$20-50 고급 호텔: US$50-80
벨라루스에서 여행하는데 주로 드는 비용은 숙박비이지만, 그 밖의 모든 것은 매우 싸다. 정식은 US$6 이상을 넘지 않고, 한밤에 오페라를 구경하는 것은 US$1을 넘지 않는다. 국내열차요금도 싸다. 예산은 저렴하게 여행한다면 하루 약 US$30 정도이고, 수준 높은 편안함을 원한다면 하루 US$75 정도이다.신용카드와 여행자수표가 휴대하기에 가장 편리하고 안전한 방법이지만 사용할 수 있는 장소가 광범위하지 않다는 것이 단점이다. 이러한 단점 때문에 부피는 많지만 현금으로 가지고 가는 것이 낫다. 미국달러와 독일마르크가 가장 널리 사용되는 통화이다. 은행 뿐 아니라 간이환전소에서도 환전이 가능하다.몇몇 최고급 호텔들은 호텔 계산서에 5-15%의 팁이 추가된다. 포터에게는 US$1-2의 팁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며, 웨이터들은 식사요금의 5-10%의 팁을 기대한다. 상점은 정찰제이지만, 공예품 시장에서는 흥정도 가능하다.
- 여행 시기
- 벨라루스는 항상 비수기이므로 북적대는 사람을 피하기 위해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여름은 따뜻하지만 습기가 많고 겨울은 우중충하고 혹독한 추위를 보이므로 늦은 여름이나 봄이 기후상 최적의 시기가 될 것 이다.
- 주요 여행지
- 민스크( Minsk )
- 민스크의 거의 모든 빌딩들은, 1944년 소련군이 탈환한 후 돌맹이조각만 간신히 남겨놓았던 때 이 후 세워진 것들로, 이 도시는 아마도 소련의 대규모 계획중 가장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민스크는 노동자 유토피아건설을 시도했으며, 일률적으로 기념비적인 외관은 넓은 거리와 상쾌한 공원들로 부드러운 분위기를 갖는다. 국제적이고 떠들석한 분위기의 이 도시는 이전의 여느 다른 소련도시들보다 깨끗하고 밝은 느낌을 준다.민스크의 주요거리인 프라스페크트 스카이니(praspekt Skaryny)는 크고 북적대는 산책길이다. 이 거리의 남서쪽 끝에는 500m(1640ft) 길이의 독립광장, 플로쉬챠 네짤레즈나스트시(ploshcha Nezalezhnastsi)가 있는데 정부빌딩들과 매력적인 성 시몬 폴란드카톨릭교회(Polish Catholic Church of St Simon)로 둘러 싸여있다. 파크 잔키쿠팔리(Park Janki Kupaly)는 푸른 나무들이 상쾌하게 뻗어있는 곳으로 구불구불한 스비슬라치강(Svislach River)과 일부 접해있다. 이곳에서 노 젓는 배를 빌리거나 러시아공산당이 1898년 불법적으로 설립의회를 열었던 저택을 구경할 수 있다.벨라루스 국립역사문화박물관(Belarus National Museum of History and Culture)에서는 벨라루스의 험난했던 역사가 전시되 있으며, 벨라루스 국립미술박물관(Belarusian State Art Museum)에는 17세기에서 20세기까지 회화들이 소장되어 있다. 위대한 애국전쟁박물관(Museum of the Great Patriotic War)은 세계 2차대전의 공포를 생생하게 전달하며 벨라루스가 과거 전쟁에 사로잡혀왔음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가장 오싹한 것은 전쟁포로에 대한 전시물과 처형되고 있는 유격대원 사진들이다.프라스페크트 스카이니의 서쪽은 구시가로, 성 듀크호스키 바로크대성당(Baroque Cathedral of St Dukhawski)이 있는 곳이다. 이 대성당은 예전에 폴란드 베르나르딘수도원(Polish Bernardine convent)에 속했는데, 이전 수도원 건물은 복원되었고 현재는 음악학교가 들어서 있다. 민스크가 과거에 어떠했는지를 보려면 17세기와 18세기풍으로 재건축된 스비슬라치강의 동쪽지구를 돌아보자. 이곳은 독특하고 작은 규모로 카페, 바, 레스토랑과 기념품점들이 산재해 있다. 1847년에 지어진 성 메리 메그델라인교회(St Mary Magdeline Church)에는 뾰족한 8각형의 종탑과 웅장한 돔이 있다.
- 카틴 (Khatyn)
- 1943년 나치는 카틴촌락을 완전히 태워 버렸다. 이 곳은 현재 유일한 생존자인 유지프카민스키(Yuzif Kaminsky)를 모델로 한 조각물을 중심으로 기념된 장소이다. 또한 이곳에는 독일군에 의해 전몰된 185개의 다른 벨라루스 마을을 기리는 마을묘지(Graveyard of Villages)가 있으며, 추가로 파괴되었지만 복구된 433개 마을을 기념하는 생명의 나무들(Trees of Life; 실제로는 콘크리트 기둥들이다)과 벨라루스 내의 나치수용소와 몇몇 수용소 희생자들을 기록해 놓은 기억의 벽(Memory Wall)이 있다.민스크에서 북쪽 60km(37마일) 거리의 카틴까지는 대중교통수단이 없고, 별도 투어에 참가하는 것과 수도에서부터 택시를 타는 것인데 왕복요금이 그다지 비싸지 않다.
- 브레스트 (Brest)
- 동유럽에서 가장 바쁜 도로와 철도국경지점 중 하나인 브레스트는 바르샤바(Warsaw)에서 200km(120마일), 민스크에선 350km(215마일)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폴란드국경하고 바로 접해 있다. 모든 국경지대마을이 그렇듯이 이곳도 힘차고 분주한 분위기로 국경을 넘어 잽싸게 물건을 사오는 벨라루스인들로 우글거린다. 브레스트 도심은 기차역에서 무카벳츠강(Mukhavets River)까지 남에서 동으로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뷸릿트사 사벳트스카야(Vulitsa Savetskaja)가 이곳의 중심가이다. 브레스트는 2차대전 시 소비에트연방의 11개 '영웅도시들'('Hero Cities')중 한 곳으로, 1941년 6월 독일군이 침략했을 때 브레스트 요새(Brest Fortress)는 한 달 동안 버텼던 곳이다.부강(Buh River)과 무카벳츠강 합류지점에 있는 브레스트요새는 브레스트에서 가 봐야할 곳이다. 1838년과 1842년 사이에 마을전체는 이 육중한 요새에 길을 내주기 위해 동쪽으로 이동되었다. 1941년 이곳은 폐허가 되었는데, 요새 바로 서쪽에 부분적으로 파괴된,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니콜라이브스키교회(Nikolaivsky Church)가 있다. 한때는 큰 수도원의 일부이기도 했던 이 교회는 1941년 포위되어 공격당할 때 내부가 파괴되었다.다른 교회로는 매력적으로 세밀하게 건축된, 200년이 지난 성 니콜라이브교회(St Nikolaiv Church)로 전통적인 정교회의 미학을 가지고 있으며, 강렬한 금빛을 발하는 17세기의 성 시몬정교회 대성당(St Simon Orthodox Cathedral)도 있다. 베레스테 고고학박물관(Bereste Archaeological Museum)은 13세기 브레스트 장인지구의 유적지 위에 세워졌다.
- 벨라베즈스카야 푸쉬챠 자연보호지역 (Belavezhskaja Pushcha Nature Reserve)
- 캄야뉴키(Kamjanjuky)시에서 북쪽으로 펼쳐져 있고, 브레스트 북쪽 약 40km(25마일)에 떨어져있는 이 보호지역은 유럽 원시림의 약 1300평방킬로미터(507평방마일)를 포함하고 있다. 폴란드에도 이 보호지가 조금 미치며 벨라루스와 함께 공동으로 관리한다. 큰사슴, 사슴, 스라소니(살쾡이의 큰종류), 멧돼지, 야생말, 늑대, 오소리, 흰담비, 담비, 수달, 밍크와 비버 등 약 55종의 포유류가 이곳에 살고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20년대 거의 멸종위기를 당했던 유럽산 들소로 약 1000여 마리가 있다.이 보호지에는 자연박물관과 들소, 사슴, 멧돼지 등의 동물들을 볼 수 있는 안전지대가 있다. 브레스트에서 이곳까지 매일 버스가 운행되며 허가를 받으면 자동차로 올 수도 있다.
- 흐로드나 (Hrodna)
- 흐로드나는 민스크에서 서쪽으로 280km(175마일) 떨어져 있으며, 아마도 벨라루스에서 가장 그림같이 아름다운 도시일 것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게, 이 도시가 다른 어느 곳보다 전쟁에서 살아남았으며 역사적 건물들도 더 많이 온전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고대로부터 정착되어온 흐로드나는 14세기 주요방어요새가 되었을 때 리투아니아에 흡수되었고, 그 후로는 폴란드에게 흡수되었는데 폴란드는 이곳에 궁전과 여러 교회들을 세웠다. 흐로드나는 2차대전에서 쉽게 함락되었으며 건물의 손상은 미미했지만 이곳 인구의 대부분을 잃었다. 오늘날 이곳은 국제적 도시의 분위기로 산업과 문화의 중심지이다.뷸릿트사 사벳트스카야(Vulitsa Savetskaja)는 걸어다니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진기한 상점들과 카페가 줄지어선 기분 좋은 자갈길과 서쪽 끝으로 나무들이 빽빽한 공원이 있다. 흐로드나에 있는 교회로는, 화려한 제단과 성자들이 있는 인상적인 바로크 파니 대성당(Baroque Farny Cathedral)과 르네상스 베르나딘교회와 수도원(Renaissance Bernardine Church & Monastery), 그리고 12세기 목조건물인 성 보리스와 성 흘립교회(Church of Saints Boris & Hlib) 등이다.최근 새롭게 수리된 18세기 궁전 안에 있는 종교역사박물관(The History of Religion Museum)에는 폴란드 카톨릭과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을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부식판화와 공예품들, 그리고 유대인 전시물들이 있다. 14세기에 지어진 흐로드나의 오래된 성, 스타리자막크(Stari Zamak)에는 현재 몇 구역의 성벽만이 남아있고 성부지에 있는 박물관에는 시간을 9세기로 되돌린 듯한 흥미로운 전시물들이 있다. 바로 가까이에 있는 새로운 성, 노비자막크(Novi Zamak; New Castle)는 1737년에 지어진 것으로, 원래는 다채로운 로코코양식으로 지어졌지만 후에 새롭게 개조되었다. 현재는 문화부의 본부이자 박물관이며 도서관으로 이용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 냐스비찌(Njasvizh)
- 냐스비찌는 민스크에서 남서쪽으로 120km(75마일) 떨어진, 벨라루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중 하나이다. 이곳의 역사는 13세기부터 시작되지만, 16세기중반 이곳을 지배하던 상인들이 냐스비찌를 진보된 요새방어시스템 도시로 재건했을 때 절정에 달했었다. 수세기에 걸친 전쟁, 화재, 소홀로 이 도시의 지위는 축소되었고, 오늘날 이곳은 채색된 목조오두막과 아름다운 16세기 건축물이 산재된 작은 마을이다. 16세기에 지어진 시청은 벨라루스에서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로, 낡고 퇴색되었지만 흥미로운 디자인을 갖고 있다. 슬럿트스크 게이트(Slutsk Gate)도 16세기에 지어졌는데 2세기가 지난 후 바로크양식으로 새로 개조됐다. 크고 거무스름한 파니폴리쉬 로마카톨릭교회(Farny Polish Roman Catholic Church)는 초기 바로크양식으로 훌륭하게 균형잡힌 외관이 특징이다. 이 교회 너머로 래드찌윌 궁전요새(Radziwill Palace Fortress)가 있는데 이탈리아 건축가 베르나르도니(Bernardoni)에 의해 16세기 설계된 이 곳은 오늘날 심장병환자와 신경질환 환자들을 위한 요양소가 위치하고 있다.
- 폴라트스크(Polatsk)
- 민스크 북쪽 260km(160마일)에 위치한 폴라트스크는 풍부한 역사를 지닌 조용한 강변 도시이다. 이 도시의 역사는 6세기 바랑인(Varangian)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3세기 몽고유목민들에게 약탈당하는 것은 면했지만, 후에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에 흡수당했고 폴라트스크 시민들은 농노가 되었다. 폴라트스크는 강 항구도시로서 번영했지만 옛러시아의 황제들과 폴란드 국왕사이의 다툼 속에서 끊임없이 이리저리로 내던져졌고, 여러번 폐허로 몰락했었다. 이곳에는 특별하게 볼만한 것은 없으며, 여러 전쟁과 영웅의 기념비들이 산재한 전형적인 소련의 혁명적 계획도시이다. 11세기에 지어진 성 소피아대성당(St Sophia Cathedral)은 이곳의 하이라이트로, 원래 키에프(Kiev)의 성 소피아대성당을 모델로 해서 지어진 것이다. 그러나 11세기의 특징은 남아있지 않고, 15세기 때 화재로 손상되어 군본부로 변형되었으며, 18세기에는 바로크 카톨릭대성당(Baroque Catholic cathedral)으로서 재건축되었다. 내부의 박물관에는 건축당시 대성당의 모델이 있으며 지하실에서 11세기 건축의 토대를 볼수있다. 그 외 볼만한 것들로는 역사적인 서적과 출판물 박물관인 뮤제이 벨라루쉬카 크니하드루카반니(Muzey Belarushka Knihadrukavanni)와 매력적인 옛 목조오두막들이 늘어선 지역역사박물관(Regional Historic Museum)이다.
- 비트셉스크 (Vitsebsk)
- 민스크 북쪽 277km(172마일)에 위치한 비트셉스크는 과거, 30개가 넘는 교회들과 번영하는 문화의 광경을 자랑하던 곳이었다. 칸딘스키(Kandinsky), 말레비치(Malevich)와 샤갈(Chagall)이 종종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세계2차대전과 소비에트연방시절 그들은 이 곳에 올 수 없었으나, 구시가지 곳곳에는 아직도 엘레강스한 분위기가 남아있다.시티미술박물관(City Art Museum)에는 18세기에서 20세기까지 유럽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옛시청이 근처에 있으며 그 건너편에는 역사적인 비트셉스크 벽화가 있다. 뷸릿트사 수바로바(Vulitsa Suvarova)가 구시가의 주요거리이다. 이 길을 따라 중간쯤 가면 1812년 프랑스-러시아전쟁 기념비가 있는 조그만 공원에 닿게되며, 기념묘지를 건너면 계곡너머로 전망이 펼쳐진다. 근처에 있는 우아한 옛 궁전은 현재 KGB의 본부이다. 비트셉스크에서 태어난 샤갈을 기념해 샤갈박물관 건립 계획이 추진 중이다.
- 레저스포츠
-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은, 폴란드와 접한 서쪽 국경에 있는 벨라베즈스카야푸쉬챠 자연 보호 지역을 방문하면 좋다. 이곳은 유럽 원시림 중 가장 큰 지역으로 과거 거의 멸종할 뻔한 유럽들소의 주요무리들이 사는 곳이다. 차로 여행한다면, 벨라루스 북쪽의 푸른호수(Blue Lakes)지역이 이곳의 자연미로 유명하며, 캠핑과 하이킹 장소로도 인기 있다. 벨라루스의 실타래 같은 호수와 강줄기들은 낚시를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 벨라루스로 가는 길
- 대부분의 국제선은 민스크 동쪽 40km(25마일)에 있는 민스크-2 국제공항(Minsk-2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한다. 여기에서 베를린, 베이루트, 프랑크푸르트, 라나카(Larnaka), 모스크바, 뮌헨, 세인트페테르츠부르그(St Petersburg), 탈린(Tallinn), 텔아비브, 비엔나, 바르샤바, 취리히 등으로 연결된다. 이보다 작은 민스크-1 공항(Minsk-1 Airport)은 도시 남쪽 3km(2마일)에 있으며, 키에프, 모스크바와 세인트페테르츠부르그로 연결된다. 이 외 벨라루스의 다른 국제공항은 브레스트에 있으며, 여기서는 모스크바, 세인트페테르츠부르그, 키에프, 바르샤바와 오데사(Odessa)로 가는 비행기들이 연결된다.가장 유명한 국제버스노선으로는 민스크와 빌니우스(Vilnius; 리투아니아의 수도), 민스크와 비알리스토크(Bialystok; 폴란드)사이를 잇는 노선들이다. 기차는 라트비아(Latvia), 리투아니아, 폴란드, 러시아, 우크라이나에서 10개의 국경교차점을 경유하여 벨라루스로 들어오며, 또한 개인차량으로 통행할 수 있는 10여개의 국경교차점들이 있다
- 국내 교통편
- 원칙적으로는 민스크, 브레스트, 호멜(Homel), 흐로드나, 마힐레우(Mahileu), 마찌르(Mazyr)와 비트셉스크사이에 국내선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연료제한 때문에 아주 적은 수의 국내선만 실제로 운항된다. 주요도시들 사이에는 기차가 자주 있고 상대적으로 싸다. 버스 또한 풍부하게 있지만 지저분하고 초만원이 될 수 있으며 차표를 구하는 것이 호된 시련일 수도 있다. 자동차를 렌트 하는게 택시를 대절하는 것보다 더 저렴할 수 있지만 벨라루스에서 운전하는 것은 불안하다. 연료와 예비부품을 구하는 것이 어렵고 도로상태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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