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갑 주말
십이월 둘째 목요일이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새날은 밝아왔다. 아침 식후 와실에서 미적대며 출근길 산책은 줄이고 학교로 향했다. 이른 시각 배움터 지킴이는 가스난로를 켜 놓고 학생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현관에서는 보건교사가 열화상카메라라 노트북을 설치했다. 나는 문화보건부실로 들어 실내등을 켜고 난방기를 돌렸다. 노트북을 꺼내 인터넷 뉴스를 몇 줄 검색해 봤다.
일과가 여유가 생겨 느긋했다. 2학년은 정기고사를 치르고 1학년과 3학년은 원격수업에 들어갔다. 일부 교사는 감독을 지원하고 시험시간과 1․3학년 원격수업 일과가 맞지 않아 과제 제시형이라 매 시간 줌 회의실에 들어가 학생들을 만나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3학년 전담이라 고사 감독에서도 제외 받았다. 하루를 우두커니 보내려니 시간이 지겨울 수 있으나 소일거리를 찾았다.
먼저 어제 오후 다녀온 장승포 해안 사진을 보면서 시조를 한 수 남겼다.“ 닻 내린 경매장엔 비릿한 생선내음 /오목한 포구 바깥 지심도 빤히 보인 / 고깃배 물살 가르며 분주히도 오간다 // 해안로 언덕에는 동백꽃 필 듯 말 듯 / 탁 트인 수평선에 검푸른 대한해협 / 양지암 등대 가는 길 저녁놀이 비친다” - ‘장승포’- 전문. 주중 연사에 머물면서 가끔 산책을 다녀오는 곳이다.
위 시조를 폰 카메라에 담아온 해안 풍경 사진과 함께 몇몇 지인에게 카톡을 날려 보냈다. 멀리 떨어져 지내지만 내가 보내는 생활을 소개했다. 지난 주 수능으로 자가 연수와 연가를 내어 창원 근교 강가를 트레킹하면서 남긴 사진을 다시 살펴봤다. 새벽에 본포로 나가 학포에서 벼랑길을 걸어 창녕함안보를 건너왔다. 다음날엔 수산에서 유등을 거쳐 한림 강둑을 걸어 역으로 갔다.
그날 새벽 본포에 나가 담아온 여명의 빛이 서린 풍광을 시조로 남겼다. “새벽에 길을 나서 본포를 찾았더니 / 잎줄기 빛이 바래 야위진 물억새는 / 강바람 아랑곳 않고 밤을 새워 지켰다 // 어둠이 걷혀가는 낙동강 물줄기로 / 아득한 동녘에는 서기가 비치면서 / 일출은 어제와 같이 어김없이 솟는다” - ‘본포 여명’ 전문 - 아마추어가 전문 사진작가 흉내를 내어 봐 머쓱했다.
어디나 코로나 청정지역은 없다. 거제는 코로나 감염자가 드문드문 나왔다. 지난 팔월 하순엔 내가 근무하는 학교 근처 경로당에 확진가가 퍼져 걱정을 많이 했다. 지난봄부터 주말에 창원으로 복귀하지 않고 거제에 머문 적이 가끔 있다. 수능을 앞둔 십일월엔 연속 두 주 거제에 머물렀다. 덕분에 남부면 망산을 다녀오고 계룡산과 이어진 선자산과 칠천도 옥녀봉에도 올라가 봤다.
수능이 끝나고 나니 코로나 확산이 더 신경 쓰인다. 고현의 삼성중공업 조선소에 감염자가 속출해 지역사회가 술렁였다. 며칠 간 조선소가 폐쇄되어 근로자들이 작업장으로 출근하지 못해 영업 손실이 컸지 싶다. 학교로선 교조선소로 출근하는 근로자 자녀가 많아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관리자와 보건교사는 방역 당국과 인근 학교와 정보를 공유하며 민첩하게 대응했다.
지난 일요일 거제로 건너오면서 코로나 확산이 누그러지지 않아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오른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때는 경남에서는 하동과 사천에 이어 진주에서 감염자가 많이 나왔다. 창원에서도 감염자는 꾸준히 나왔다. 거제로 왔더니 여기는 여기대로 코로나 감염자가 계속 나와 신경 쓰였다. 고사 기간 오후는 틈이 나도 대중교통 이용이 께름칙해 퇴근 후 동선을 좁혀 지낸다.
내일모레면 십이월 둘째 주말이다. 이웃 학교 지기와 카풀로 창원으로 가도 되나 그냥 여기 눌러 지낼까 한다. 창원으로 가도 갇혀 지내기는 마찬가지다. 코로나가 잠잠하면 산천을 주유해도 되겠으나 이런 상황에서는 남들에게 만용으로 비칠까 저어하다. 그렇다고 주말 이틀을 좁은 연사 와실에서만 머물 수만 없다. 연초호 둘레길을 걸어보거나 칠천도라도 들어가 트레킹을 해보나. 20.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