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산성 (서울 23)
《바보들이 만드는 세상》
예전에 어느 한 동네에 두 집이 가까이 살고 있었는데 한 집은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대가족 이었고, 다른 한 집은 젊은 부부만 사는 가정이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대가족이 사는 가정은 항상 화목하여
웃음꽃이 피는데, 부부만 사는 가정은 부부싸움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젊은 부부는 이웃집의 화목한 모습을 보고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 우리는 둘만 사는 데도 매일 싸우고, 이웃집은 여럿이 함께 모여 사는데 저토록 화목한 것일까?
그래서 어느 날 젊은 부부는 과일 한 상자를 사 들고 이웃집을 찾았습니다.
다과를 나누며 그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댁의 가정은 대가족인데도 웃음이 떠날 줄 모르고, 우리는 둘만 사는 데도 매일 싸우는데, 선생님 댁이 그렇게 화목하게 지내시는 비결이 무엇인지요?
이웃집 주인이 대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네! 그것은 당신네 두 분은 모두 훌륭 하시고, 우리 가족은 모두 바보들이기 때문이죠!"
그 말을 들은 젊은 부부는 되물었습니다.
"아니 그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그러자 그 집 주인은 말하기를
"오늘 아침에 있었던일입니다. 내가 출근하다가 물을 엎질렀습니다.
그때 나는 내 아내에게 내 부주의로 물을 엎질러 미안 하다고 하며 용서를 빌었지요. 그랬더니 내 아내는 '아니예요' 하면서 생각이 모자라 물그릇 을 그곳에 놓아두었으니 자신의 잘못이라고 하며 오히려 나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런데 옆에 계시던 저의 어머니께서는 '아니다, 나잇살이나 먹은 내가 그것을 보고도 그대로 두었으니 내 잘못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위해 바보가 되려고 하니 싸움을 할 수가 없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조직이 똑똑한 사람들의 의해서 움직이고 성장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은 바보처럼 우직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의해서 유지되고 성장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뉴톤, 아인슈타인, 백남준, 스티브 잡스 등 모두가 대단한 성과를 이룬 천재들입니다만 이들이 한 때 "바보"라는 소리를 듣거나 "또라이", "이단아"로 불리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큼니다.
정용철의 ''사랑의 인사''에 나오는 말을 소개합니다.
"다른 사람을 높이고 나를 낮추면 손해보는 것 같습니다. 남을 배려하고 남 뒤에 서면 뒤쳐지는 것 같습니다. 양보하고 희생하면 잃기만 하고 얻은 게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바보라 부릅니다.
정말 그럴까요?
짧게 볼 때는 바보같지만 길게 보면 이런 사람이야 말로 삶의 고수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러한 사람이 남에게 인정받고 좋은 사람이라 불립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빛나는 멋진 바보가 되어 보십시다. 양보하고 희생하는 그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합니다."
사랑합니다! 응원합니다! 함께합니다!
큰 돈을 사회에 기증하고 멋진 은퇴로 인생의 대미를 장식한 나훈아도 바보일가요?
그가 부른 노래가사입니다.
공(空)
살다보면 알게 돼, 일러주지 않아도~
너나 나나 모두가 어리석다는 것을~
살다보면 알게 돼, 알면 웃음이 나지
우리 모두 얼마나 바보처럼 사는지~
잠시 왔다 가는 인생
잠시 머물다 갈 세상
백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 것처럼~
살다보면 알게 돼,버린다는 의미를~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
집앞 호수 초등학교.
육교.
우리집에서 여기까지 2km.
농수로 물길.
요진아파트 주변.
비닐하우스(열무재배)
북한산(836m)
맨 가은데가 우리 아파트.
지하통로.
초병 모습.
금계국도 지기 시작하는구나!
직선길.
썰물일때는 보이지 않던 모래섬.
김포대교와 수중보.
김포대교.
자유로.
평화누리길
인천 계양산(395m)
김포대교.
일요일이다 보니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많았다.
김포대교.
아라뱃길 수문.
한강공원.
계양산(395m)
행주나루터 접근.
전호산(72m)
계양산(395m)
행주대교.
행주대교.
개화산(128.4m)
방화대교.
어젠 산악인 문정남씨 빈소를 다녀왔다.
생전 산 하나라도 더 오려르고 그렇게도 안간힘을 쓰더니 죽고나니 하나 소용없는 일이더라.
난 이전부터 (산줄기종주를 모두 끝낸 후)운동을 전제로 한 산행을 원칙으로 했지만 그분은 봉우리 숫자 하나 더 올리려고 안간힘을 쓰며 무리하다보니 생명까지 단축하게 된것으로 보아지는것이다.
방화대교.(행호루에서)
행호루.
행주산성 역사공원.
방화대교.
개화산(128.4m)
행주대교.
계양산(395m)
빨랫돌머리.
행주산성 둘레길 입구.
방화대교.
행주대교.
초소 전망대.
산성둘레길.
진강정.
방화대교.
덕양정 수리중.
행주대첩비.
충의정.
서울 23 삼각점.
행주산성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347,670㎡이다. 정확한 축성연대와 목적은 알 수 없으며, 임진왜란 때 장군 권율(權慄)이 대첩을 이룬 싸움터이다.
1592년(선조 25) 7월 8일 이치(梨峙)에서 왜적을 격멸한 권율은, 12월 수원 독산성(禿山城)에서 다시 적을 물리친 뒤 서울 수복작전을 개시, 조방장(助防將) 조경(趙儆)과 승장 처영(處英) 등 정병 2,300명을 거느리고 한강을 건너 행주 덕양산(德陽山)에 진을 치고 서울 수복을 노렸다. 이때 왜군 총수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秀家]는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 등의 부하 장성을 거느리고 3만여 병력으로 공격해왔다. 권율은 이들을 처절한 접전 끝에 크게 무찔렀다.
지금 산허리에 목책(木柵) 자리가 남아 있고, 삼국시대의 토기 조각이 출토되는 것을 보면 임진왜란 이전에도 중요한 군사기지였음을 알 수 있다. 1603년(선조 36)에 세운 행주대첩비와 1963년에 다시 세운 대첩비가 있으며, 1970년 권율의 사당인 충장사(忠莊祠)를 다시 짓고 정자와 문을 세웠다.
권율장군 동상.
대첩문.
평화누리길.
능곡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