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숙 글 | 정지혜 그림
176쪽 |13,000원 | 2021년 3월 12일|135*205mm
ISBN : 979-11-85934-59-4 03990
분야: 사회과학, 사회운동가
주제: 반핵인권운동가, 사회운동가, 원폭피해2세, 원자폭탄피해자
“아픈 사람은 아프다고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핵 없는 세상과 원폭 2세 환우들의 인권을 위해 불꽃처럼 살다 간
원폭 피해자 2세이자 반핵인권운동가 영원한 청년 고(故) 김형률의 삶
“핵 없는 세상을 일구기 위해 삶은 계속 되어야 한다”
이 문구는 고(故) 김형률 묘비에 새겨 있는 문구입니다. 김형률은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의 2세로 태어나 35살 짧은 생애동안 원폭 피해와 원폭 피해 2세 환우의 인권, 핵의 무서움, 핵 없는 세상을 끊임없이 외치며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반핵인권운동가입니다.
김형률은 33살이 되는 2002년 3월 22일 한국청년연합회 대구지부에서 자신이 ‘원폭 피해자 2세이며 원폭 후유증을 앓고 있고 원폭의 고통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세상에 알렸습니다. 김형률의 기자회견은 우리 사회에 원폭과 핵의 위험성에 대해 알리는 커다란 충격파를 던져주었습니다. 이때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원폭 피해자가 있다고 상상도 못 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으로 해방 이후 60년 동안 땅속 깊이 묻혀있던 진실이 처음으로 파헤쳐진 것입니다. 원자폭탄 피폭 후유증이 부모의 몸을 통해 자식의 몸으로 유전된다는 사실을 세상에 처음 알린 김형률의 기자회견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김형률은 폐기능이 보통 사람의 30%정도에 해당하는 폐활량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걷는 것, 짧은 한 마디 말을 하는 것조차 힘겨웠습니다. 김형률은 그런 몸으로 일본과 미국 정부가 지난 60년간 원폭에 대한 유전 문제를 왜곡하고 은폐하며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해 왔던 현실을 온몸을 바쳐 사회에 외쳤습니다. 김형률은 자신이 원폭 2세 환우라는 것 그리고 핵의 아이로 태어났다는 걸 안 뒤로, 같은 원폭 2세 환우의 인권과 원폭 피해와 핵이 없는 세상을 사회에 끊임없이 외쳤습니다. 어느 한 개인의 인권 문제가 아닌, 인간의 생명권과 생존권을 지키는 반핵인권운동가의 삶을 살았습니다. 김형률은 부산에서 서울, 합천, 우리나라 곳곳과 일본까지 다니며 외쳤습니다.
김형률의 활동으로 국가인권위에서 원폭피해자와 2세에 대한 실태조사가 이루어졌고, 인권시민단체와 시민들이 함께하는 연대의 틀을 단단히 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졌습니다. 고(故) 김형률이 아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뒤이어 ‘원자폭탄피해자특별법’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형률》는 이런 김형률의 삶을 소설가 김옥숙 작가를 통해 감동적으로 복원한 책입니다. 이 책을 통해 고(故) 김형률이 바랐던 핵 없는 세상과 아프면 아프다고 말 할 있는 생명권에 대해 생각해 보고, 다른 사람의 고통과 우리 역사의 아픔을 잊지 않고 평화의 씨앗을 가슴 속에 간직했으면 합니다. 책에는 고(故) 김형률의 생애를 담은 연보와 활동을 한 사진을 수록하여 고(故) 김형률의 삶을 들여다보는 데 도움을 줍니다.
전태일의 또 다른 이름,
원폭 2세 환우의 인권과 핵 없는 세상을 위해 불꽃처럼 살다 간 반핵인권운동가 김형률
김형률은 전태일이 노동자의 권리, 인간의 생명권을 지키기 위해 불꽃처럼 살다 분신했던 1970년에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히로시마에서 피폭된 원자폭탄 피해자입니다. 한날 태어난 쌍둥이 동생은 태어난 지 1년 6개월 만에 폐렴으로 죽었습니다. 김형률은 어릴 때부터 유달리 몸이 약하고, 병치레가 많았습니다. 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여러 번 죽음의 고비를 넘나드는 위기를 겪었습니다. 김형률은 자신의 병이 ‘선천성면역글로불린결핍증’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김형률은 자신의 병의 원인을 찾다, 선천성면역글로불린결핍증이 원폭 피해로 유전적으로 체내의 면역력을 높여주는 면역글로불린이 결핍되어 생긴 것으로 면역력이 약해 세균에 쉽게 노출이 되다보니 기관지 폐색이나 폐렴에 쉽게 걸리고 심하면 각혈로 목숨까지도 위험하게 되는 병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김형률은 보통사람보다 폐의 기능이 30%밖에 되지 않습니다.
김형률은 병의 원인을 찾다, 자신의 병이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역사적’ 문제라는 인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폭 피해자이자 핵의 아이로 태어났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바로 살아있는 증거였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김형률은 병의 원인이 된 원폭 피해와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1세와 2세들의 고통스러운 삶과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해결할 방법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이어 자신이 ‘원폭피해2세’라는 것을 스스로 세상에 밝히고, 원폭피해자와 원폭피해2세들에게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인권과 생명권이 있다는 걸 우리 사회에 외칩니다. 김형률은 원폭피해2세 환우들의 인권회복과 생존권보장을 위한 싸움을 시작합니다. 여러 시민단체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게 됩니다. 김형률은 태어난 지 12,725일 되는 2005년 5월 29일 새벽에 35살에 불꽃같은 삶을 마칩니다.
김형률이 못 다 이룬 꿈은 아버지와 김형률의 뜻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 지금도 이어서 원폭피해자와 원폭2세환우의 인권과 핵 없는 세상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활동으로 부족하지만 ‘원자폭탄피해자특별법’이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전태일이 1970년 노동자 인권을 위해 분신한 뒤로도 우리 사회와 주변에는 수많은 전태일이 있었습니다. 김형률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다른 전태일입니다.
작가의 말에서
김형률 님은 그 아픈 몸으로 원폭 피해의 참상과 고통을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핵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외치다 서른다섯의 나이에 붉은 꽃처럼 뚝 떨어져 버렸지요.
핵을 이겨 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생명에 대한 사랑, 평화를 지키려는 고귀한 마음입니다. 평화는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대신 지켜 주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핵을 사라지게 만들 평화의 꽃 한 송이, 이제는 우리 손으로 피워 내야 하지 않을까요. 평화가 눈부시게 피어난 세상은 가장 아름다운 세상이니까요.
- 김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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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원자폭탄 피해자와 피폭자가 많은 나라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 수 만 명이 희생된 1945년 8월 뜨거웠던 여름을 많은 이들이 모르고 있거나 기억에서 지워져 버렸습니다. 김옥숙 작가는 “아픈 사람은 아프다고 이야 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온몸으로 외치다 불꽃처럼 사라져 간 핵의 아이 김형률 의 삶을 감동적으로 복원해 냈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역사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이 책부터 펼치기를 진심으로 권합니다.
-한홍구(성공회대학교 교수)
전태일이 노동자의 권리, 인간의 생명권을 지키기 위해 불꽃처럼 살다가 분신했던 1970년, 그해에 원폭 2세 환우의 인권과 핵 없는 세상을 위해 불꽃처럼 살다 간 김형률이 태어났습니다. 35세의 짧은 인생이었지만 또 다른 김형률, 2세 환우들 과 그 뜻을 이어 가는 이들이 있기에 김형률의 삶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책에 서 김옥숙 작가님이 뿌린 평화의 씨앗 역시 김형률의 삶을 이어 가며 또 다른 소 중한 평화의 불꽃으로 되살아나길 바랍니다.
-강제숙(김형률추모사업회 운영위원장, 합천평화의집 운영위원장)
김형률 님이 반핵 평화 운동에 나섰던 가장 큰 이유는 핵이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알뜰하게 꾸려 나갈 수 있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원합니다. 그것은 바로 김형률 님이 꿈꾸던 세상입니다.
- 전진성(부산교육대학교 교수, 김형률을 생각하는 사람들 회원)
차례
프롤로그_ “합천으로 가야 해!”
히로시마가 고향인 아이, 곡지
무서운 예방주사
반짝반짝 빛나던 야학 시절
핵의 아이, 비로소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다
새로운 길로 첫발을 내딛다
처음 터져 나온 그날의 목소리
원폭 2세 환우회 첫 모임을 갖다
아버지 등의 무거운 가방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리는 싸움
붉게 타오른 마지막 불꽃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작가의 말
김형률, 그 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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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률 생애와 연보
본문에서
“으아악!”
교실에 간호사가 들어오자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습니다. 형률은 가슴이 콩닥콩닥했습니다. 예방주사만 맞으면 이상하게 몸이 심하게 아팠으니까요.
아이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먼저 주사를 맞고 난 아이들은 히죽히죽 웃기도 했습니다.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는 아이도 있었지요.
형률은 반에서 가장 몸집이 작고 약했습니다. 차례가 다가오자 형률은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형률은 겁쟁이라 놀림당하기 싫어 꾹 참고 주사를 맞았어요.
“보기보다 씩씩하네!”
약골인데도 아프다는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간호사는 형률을 칭찬했습니다. 형률은 그 칭찬이 하나도 좋지 않았습니다.
예방주사를 맞고 난 다음 날이었어요. 형률은 몸에 열이 심하게 올랐습니다. 온몸이 덜덜 떨리고 아파서 학교에 갈 수가 없었지요. 형률은 끙끙 앓으며 꼼짝 못 하고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 18-19쪽
“이야! 해냈다. 형률이가 해냈다.”
“형률이 최고!”
“김형률 만세!”
친구들이 자기 일처럼 기뻐했습니다. 형률은 천왕봉 정상에서 한 점 그늘도 없이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찍은 사진 속의 형률은 햇살처럼 빛났습니다. 친구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는 기쁨이 얼굴에 가득했지요.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친구, 마음을 나눌 친구들이 곁에 있었으니까요.
야학 시절은 형률에게 활짝 핀 꽃밭 같은 한때였습니다. 어두운 인생에 처음 찾아온 반짝반짝 빛나는 시절이었지요.- 32쪽
방사능! 원폭! 히로시마!
우연히 보게 된 의학 논문에 병의 원인을 찾아낼 실마리가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땅속 깊이 파묻혀 있던 비밀이 머리를 드러내려는 것 같았어요. 칠흑같이 캄캄한 동굴 속에 가느다란 빛이 한줄기 스며든 것만 같았습니다.
어머니 이곡지는 원폭 피해 1세였습니다. 아들 형률은 원폭 피해 2세, 그리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늘 아픈 환자였습니다. 운이 나빠 우연히 생긴 병이 아니었습니다. 원폭 피해 때문에 생긴 유전병으로 평생 병에 시달린 거였지요.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온다는 사실만큼이나 분명한 진실이었습니다.
거울에 비친 삐쩍 마른 몸, 야윈 얼굴의 청년. 형률은 비로소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았습니다. 자신이 바로 가여운 핵의 아이였음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핵의 아이였다는 사실을!-44쪽
작가 소개
글_ 김옥숙
1968년 경상남도 합천에서 태어났습니다. 2003년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낙타〉가 당선되고, 같은 해 제12회 전태일문학상에 소설 〈너의 이름은 희망이다〉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지은 책으로 《희망라면 세 봉지》, 장편소설 《식당사장 장만호》, 《서울대 나라의 헬리콥터 맘 마순영 씨》, 《흉터의 꽃》이 있습니다. 2020년 10월에 첫 시집 《새의 식사》을 냈습니다.
그림_ 정지혜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고, 대학에서 만화예술을 공부했습니다. 그림책을 만들면서 그림으로 아이들과 소통하는 다양한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그린 책으로는 《호프가 여기에 있었다》, 《일 층 친구들》, 《혼자되었을 때 보이는 것》, 《생각한다는 것》, 《탐구한다는 것》, 《구스범스 호러특급 시리즈》, 《몬스터 바이러스 도시》, 《보이지 않는 적》, 《룰레트》, 《연보랏빛 양산이 날아오를 때》 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