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공책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루카 6. 27-28)
폴틴은 열아홉 살이었을 때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폴틴은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기고하던 아버지의 일을 자주 도와드
리곤 했다. 아버지가 쓴 글을 타이프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료정리, 청소
까지 도맡이 하였다. 그렇게 자주 아버지의 서재를 들락거리다 보니 어
떤 책이 꽂혀 있는 가부터 아버지의 개인노트의 위치까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밤 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있곤 했다. 유일하게 밤 시간만은
폴턴이 서재에 들어가지 못하는 때였다. 폴탄은 가끔 새벽까지 환히 밝
혀져 있는 서재를 보며 도대체 아버지가 무얼 하고 계시는지 궁금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폴탄은 아버지의 서재를 둘러보았다. 폴탄은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는 책상에 앉아 깊은 생각에 빠졌다.
"아버지는 이 책상에 앉아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폴턴은 책상서랍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책상 깊숙한 곳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공책 한권이 들어 있었다. 이상하게도 폴턴은 가슴이 뛰기 시
작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첫 장을 열었을 때 아버지가 즐겨 쓰던 초록색
잉크가 눈에 들어왔다.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애써 참고 다음 장을 넘겼
다. 거기에는 어머니의 이름과 가족들의 이름, 그리고 친숙한 이웃과 친
구들의 이름이 차례로 적혀 있었다. 그런데 다음 장엔 이제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들이 쓰여 있었다. 폴턴은 그 공책을 들고 어머니에
게로 갔다.
"이 공책은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인데 어머니는 어떤 것인지 아세요?"
공책을 건네받은 어머니는 공책을 한 장 한 장 열어 보이며 말했다.
"이것은 네 아버지의 기도 노트란다 매일 밤 한 사람씩 이름을 짚어
가며 조용히 기도를 올리셨단다."
"그런데 이분들은 누구죠?"
"그들은 아버지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