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주역이 도꾸가와 요시도시(德川好敏;1884-1963) 중장.
도꾸가와는 일본 국내에서 비행기로 최초로 하늘을 난 사람이다.
1903년 육사를 졸업, 공병소위가 된 그는 노일전쟁 때 소대장으로 참전했는데 그가 항공분야에 뛰어든 것은 육군 포공항교 고등과를 졸업후 기구부대에 배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비행기 조종술을 배우기 위해 프랑스에 유학했으며 1차 대전 때는 청도 전투에도 참가, 아까노 비행학교장, 도꼬로자와 비행학교장을 거쳐 중일전쟁 때는 항공병단 사령관으로 활약하다 중장으로 예편되었으나, 1944년 3월 다시 현역 복귀(재소집), 육군 항공사관학교장을 지내다 패전을 맞았다.
그건 그렇고,
그가 일본 최초로 비행했던 광경을 살펴보기로 하자.
때는 1910년 12월 15일. 한일합방이 있던 해다.
장소는 도꾜 요요기(代代木) 육군 연병장.
비행기는 프랑스에서 수입한 앙리 파르만 기.
오전 중에 기체와 엔진 조정, 시운전을 종료하고 오후에 활주 시험에 들어 가기로 했다.
당시 프로펠러는 손으로 돌려 시동해야 했는데 아주 위험한 작업으로 오시마 기사부로라는 병사가 이 작업을 맡았다.
도꾸가와는 일반 군복(당시엔 비행복이 별도로 없었다)차림에 군모를 뒤로 돌려 쓰고 턱끈을 조인 후(비행모도 없었다) 조종석에 앉았다.
신호에 따라 오오시마는 있는 힘을 다해 손으로 프로펠러를 돌리자 엔진 시동, 스로틀레버를 약간 열어 회전 수를 증가시켰다.
드디어 지상 활주, 그러나 지면이 울퉁불통 해 그 충격으로 앞바퀴가 빠져 튕겨 나가 프로펠러를 손상시켰다. 시험 중지. 예비품이 없어 고민 중 다른 수입 기종의 프로펠러를 떼어 교체하고 다시 시작.
또 문제가 발생했다. 엔진이 전혀 시동되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축전지(바테리)고장. 아까의 충격으로 축전지 내의 황산이 새어 나와버린 것이다. 다시 축전지 교체. 결국 해가 넘어 가 버렸다.
그 다음 날 2일간은 강풍이 불어 시험 중지. 12월 19일을 맞았다.
날씨는 추웠지만 바람은 없고 하늘은 개어 있었다.
군모를 돌려 쓴 묘한 모습의 도꾸가와가 조종석에 안고 심호흡을 했다. 건장하고 씩씩한 오오시마가 앞에서 힘차게 프로펠러(당시 구로펠러라 했다 한다.검은색(구로)으로 페인팅했다고 그렇게 불렀다는 것이다)를 돌리자 엔진 시동.
도꾸가와는 조종간을 중립으로 놓고 스로틀을 풀 오픈.
이윽고 조종간을 앞으로 약간 밀자 기체 꽁무니가 들린다. 다시 조종간 중립. 활주 개시.
적절한 타이밍에서 조종간을 끌어 당긴다. 기체가 뜨기 시작한다. 이륙 시작이다.
비행기는 명치신궁 상공을 통과, 좌로 돌아 연병장 을 한 바퀴 돈 후 착륙했다.
비행시간은 달랑 3분, 비행거리 3000 미터, 고도는 70 미터였다.
때는 1910년 12월 19일. 일본 항공, 육군 항공의 시작이다.
아이러니의 하나는 이해 한일합방의 주역이며 초대 조선 총독으로 취임한 데라우찌 마사다께가 육군 항공의 실질적 공훈자이자 후원자였다는 사실이다.
첫댓글 육군항공의 시작이 저 분이었군요... 「추하지」라는 사람도 이 분야에서 알려져 있다고도 하는데, 공식 기록은 아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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