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의 각종 비리들(손대길)
(글: 손대길)
~~~~~~~~
■■'이 희 호'■■
좌파라도 고인에게는 왠만하면 비난 글을 안남기는데,
반면 (작금의 이희호의 시체팔이 분위기가 대대적으로 연출되는거 같아)
이에 조소 및 분노를 금치못하는 마음에,
아래의 관련 팩트 글들을 서술해봅니다.
■부패와 논란■
이희호는 생전 (‘길을 찾아서-이희호 평전’)와 한 인터뷰에서
《“내 양심에 비추어 일생을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운동가·민주화운동가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핵돼중과의 삶에 대해선 이렇게 회고하기를,
《“참 좋은 분을 만나서 내 일생을 값 있고 뜻있게 살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과연 그녀의 말대로 정말 값 있고, 뜻이 있는 삶이였나?
암튼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핵돼중의 반민족적 만행과
이희호의 친인척 망국급 비리를 돌아본다면,
단연코!! 지나가던 개가 방귀 뀌고 소가 웃을 일이다.
●1. 일단 지난날 이희호는 원래 계훈제와 사실상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
서울대 출신 엘리트인 계훈제는 당시 좌익계의 주동급으로써
잦은 투옥 생활을 하게 되며 폐결핵이 심해졌다.
이에 이희호는 그에게 종종 면회를 갔고, 이때 핵돼중이가 동행을 하였다.
그런데 왠 걸!! 결혼을 약속한 남자(계훈제)에게 면회가다가
같이 동행하던 핵돼중과 속궁합이 맞아버린다.
이후 이희호는 미국 유학을 다녀와 YWCA 총무로 일하던
점인 1962년 5월 41세의 나이로 연하 39세의 핵돼중과
결혼하였고, 다음 해인 1963년 11월에 아들 김홍걸을 낳았다.
암튼 그리고나서 시간이 지나 핵돼중과 결혼한 이유를
사람들이 묻자 이희호는 왈, 《"잘 생겼잖아요!!"》라며
4차원적 대답을 한다.ㅋ (이러한 이희호의 대답은 실화!!)
그나저나 이희호는 자신의 이러한 비상식적 비윤리적 결혼에
대해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고백하기도 했었다.(이 또한 팩트!!)
결국 옥중, 그것도 병환에 있는 약혼자를 버리고,
동시에 속궁합에 바람나서 다른 남자와 연을 맺은 것이다.
그것도 면회가는 길에 속궁합이 맞아버린 ........
(즉, 지극히 일반인들의 보통 양심과는 매우 괴리가 크다)
●2. 핵돼중 정권 출범 후, (사실상 이희호의 주도 아래)
부패의 상징!! 여성가족부를 출범시켰다.
현 여가부의 매년 천문학적 혈세낭비와 병폐를 생각한다면!!
정말 이희호는 '부관참시'감이지 않을까?
●3. '이희호'의 친인척 각종 비리.
※첫째: 이상호.
이희호의 남동생 민주사랑회 회장 '이상호'는 알선수재
및 미성년자 원조교제 혐의로 구속되었다.
(미성년자 원조교재? 참 기가 찬다!!)
※둘째: 이형택.
이희호의 조카 이형택은 수십조원을 관리하는 공공금융기관인
예금보험공사의 전무로 있으면서 기록한 공적자금 실적이
환수율이 15%에 불과해, 방만한 관리를 했다는 의혹을
받게 되었다. (사실상 이때 총손실금이 무려 81조!! 팩트!! /
아직까지도 대다수 회수 불능!!)
또한 이형택은 이용호 게이트 수사과정에서 산업은행에게
부실 건설사를 250억에 인수하도록 압박 + 국정원의 보물탐사
+ 벤처기업 주가조작의 혐의로 구속돼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이로 인해 손실을 본 수많은 서민들은
지금까지도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셋째: 이형작.
이희호의 조카 이형작은 경기은행 퇴출 관련 수사가
이루어질 당시 해외도피 의혹을 받았다.
※넷째: 김홍걸, 조풍언
강원랜드 메인시스템 입찰에서는 이희호의 친아들인
김홍걸의 후견인이자, 김대중 일가의 재산관리자으로
주목받은 조풍언이 대주주로 있는 대우정보시스템이
승리하였다.(시스템 조작으로 얼마든지 돈세탁 가능하다.)
그리고 조풍언은 김대중 정권 동안 26건의 군납을 따냈으며,
김홍걸의 미국 저택의 주인이기도 하였다.
(문산당은 이런 거는 적폐청산 조사 안하나?)
※다섯째: 이윤복
이희호의 처조카 사위 이윤복은, 핵돼중 정권 시절
처음 생긴 강원랜드 서울지사 사장으로 임명되는
특혜를 받기도 하였다.(강원랜드는 돈세탁의 근원지)
●4. 형평성을 안드로메다로 보내고, (김영삼의 처와 달리)
이희호 자신은 죽기 바로 직전까지 청와대 경호를 고수하였다.
당시 김진태 의원이 이에 대해 법적 이의를 제기했으나,
문산당 정권하에 '법제처'는 이희호의 손을 들어줌!! ㅋ
(이로 인해 국민 혈세 낭비!!)
●5. 무엇보다!! 이희호의 배우자 핵돼중이라는 간첩으로 인해,
자유민주 대한민국의 기틀이 그때부터 송두리채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리글■
암튼 공식적으로 드러난 것만 이정도이고, 이희호 연관
여타 짜잔한 부정부패까지 다 쓸려면 끝도 없고,
비공식적 드러나지 않는 비리성 의혹까지 더하면 실록급 대편찬이 된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이희호는 《"내 양심에 비추어 일생을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운동가·민주화운동가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라고
할 수 있는가?
한 《"좋은 분을 만나서 내 일생을 값 있고 뜻있게 살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도 말할 수 있는가!!
※참조 자료: 일반적으로 좌편향이라 일컫어지는
《위키백과, 나무위키》에서 뽑은 팩트 자료들이기에 객관성 바탕함.
~~~~~~~~
(손대길님의 페북 글 펌)
========================
●이희호의 남편은 3명/
계훈제(이희호의 전 남편)+이희호+김대중
+차용애(김대중의 본처,자살) 관계
~~~~~~~
이희호 남편은 3명인데
첫번째 남편은 서울대 정외과 출신입니다. 이름을 알 수 없구요.
두 번째 남편은 계훈제씨이고 세번 째가 김대중 입니다.
계훈제씨는 재야 운동가로서 언재나 고무신과 한복을 입고
김대중을 따라다니면서 용돈을 타쓰던 사람으로서
재야 운동가로서 손꼽는 인물이었는데
약 6년 전(1999년)에 작고했습니다.
이희호는 기자들이 물으면 처녀의 몸으로 김대중에게
시집 간 것처럼 말하는데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이희호는 어떻게 김대중을 만났을까요?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여기에 공개합니다.
1960년대 중반 때는 재야인사들이 주로 명동 성당
건너편에 있는 YWCA에서 활동을 하였지요.
쉽게 말해서 YWCA가 데모꾼들의 집합소였습니다.
그 때 계훈제씨가 반공법 위반으로 형무소에 가게 되었고
부인(차용애씨)이 자살한 김대중은 이휘호와 함께
감옥에 갖혀있는 계훈제씨를 면회가곤 하였습니다.
거기에서 김대중이 이희호와 눈이 맞아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지요.
감옥게 갇힌 사람(계훈제씨)의 부인을 채트린 겁니다.
아주 부도덕한 짓이었지요.
김대중의 부인이었던 차용애씨는 왜 자살했는지 아십니까?
김대중 때문이었습니다.
김대중이가 25세 때 강원도에서 국회의원을 꿈꾸고 있을 때
식모를 두었습니다.
하루는 식모가 흐느끼며 울기에 차씨가 왜 우느냐고 하니까
대답을 안 하다가 김대중이 덮쳤다고 고백하였고
식모는 겁이 나서 고향에 있는 작은 아버지에게 실토하니까
작은 아버지가 김대중 집으로 찾아와 난리를 쳤다고 합니다.
그 충격으로 차씨가 뒷동산에 올라가 목매 자살하였습니다.
이렇게 김대중과 이희호는 부도덕한 인물이었습니다.
식모를 덥치고 남의 부인을 빼앗고,
자기 남편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남의 남자 품에 안기고...
근본이 이런 두 사람(김대중,이희호)이 한통속이 되어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고 국가의 운명을 뒤바꿔놓은 것입니다.
역사가들이 이런 역사를 제대로 기록할 지
왜 사람들은 이런 사실이 잘 모르는지...
정말로 답답합니다.
*출처: https://t.co/zY7b1PjRAE
●김대중의 가면을 벗긴다!
(링크 보세요)
https://t.co/hQHlRdfk6Y?
●[김대중 출생의 비밀 10년 추적자] 손창식씨 인터뷰
김대중의 본성은 "제갈"
<월간조선 2005년 1월호, 우종창 기자>
https://t.co/72rZVyEBFq
●김대중의 종북 공산주의 반역 정체
~김일성이 고용한 간첩이었다!
(링크 보세요)
https://t.co/AemobqMvT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