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7일(수)
* 시작 기도
(렘 35:16)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자손은 그의 선조가 그들에게 명령한 그 명령을 지켜 행하나 이 백성은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도다.
주님...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자손은 그 선조가 명한 명령을 지켜 행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부름 받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쉐마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했습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과 불충이 바로 나의 모습임을 고백합니다.
한낱 인간으로서의 조상이 명한 명령도 목숨 걸고 지키는데 어찌 하나님의 백성인 자들이 감히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단 말입니까?
그런데 그들을 탓할 수 없음은 내 안에 그들의 죄악과 불순종 그리고 완악함이 고스란히 들어 있음을 보기 때문입니다.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죄가 되어 죽으셨습니다.
이 진리를 믿는 믿음이 내 안에 있음은 이것 역시 은혜입니다.
하여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이렇게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나는 주의 것이며 주의 소유이오니 주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
이 하루도 주님과 온전히 연합하여 동행하기 원합니다.
나의 걸음 하나, 생각 하나까지 돌봐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하 20:1-11
제목 : 내가 네 날에 15년을 더할 것이며
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4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3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6 내가 네 날에 15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7 이사야가 이르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상처에 놓으니 나으니라.
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3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표가 있나이까 하니
9 이사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부터 왕에게 한 징표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10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10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하니
10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10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 할 것이 아니라 10도가 뒤로 물러갈 것이니이다 하니라.
11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해시계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10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더라.
* 나의 묵상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당신이 죽을 것이니 집안을 정리하라고 전하였다.
히스기야가 면벽하고 자신이 주 앞에서 행한 일과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여 주실 것을 통곡하며 간구하였다.
이렇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더러 히스기야에게 전하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낫게 하겠고 네가 3일 만에 성전에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그의 목숨을 15년간 연장시켜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또한 예루살렘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나와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 성을 보호하시겠다고 하셨다.
이사야가 사람을 시켜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게 하여 상처에 바르자 상처가 곧 나았다.
히스기야는 자신의 병이 낫는 것과 또 자신이 3일 만에 성전에 올라갈 수 있다는 표적을 보여달라고 하였다.
이사야가 해시계의 그림자를 10도 앞으로 가게 할 것인지 아니면 뒤로 물러나게 할 것인지 결정하라고 한다.
히스기야는 뒤로 물러나게 해 달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이사야가 하나님께 기도하였더니 아하스의 해시계 그림자가 10도 뒤로 물러나게 하셨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아담은 하나님의 품속에 거하면서 하나님과 교제 가운데 있다가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품속을 떠나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그는 하나님의 품속에 있던 실존(實存)에서 하나님의 품을 떠나 하나님과 분리된 실존(失存)이 되고 만 것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는 이 말씀이 의미하는 죽음은 하나님과의 분리에 있다.
그는 그 열매를 먹는 순간 하나님과 분리되어 죽은 자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신실하시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죽은 아담을 위하여 복음을 들고 찾아가신다.
그 복음은 두 차원이다.
첫째는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으로써 죽은 너를 살릴 것이다(존재복음).
둘째는 하나님께서 친히 가죽옷을 지어 오셔서 그의 무화과 옷을 벗기시고 입혀 주신 것이다.
여자의 후손이 존재로 오시는 복음과 그 존재이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를 용서해 주시는 행위로써의 복음을 들고 오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미 허물과 죄로 인하여 죽은 자들이다.
(엡 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런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독생자이신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심으로 이미 죽은 우리를 살리셨다.
히스기야의 목숨은 15년을 연장시켜 주셨으나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생명은 영생을 누리는 존재로 삼아 주셨다.
우리의 몸은 아직 구속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제한된 시간을 살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의 목숨은 이미 죽었으나 하루하루 연장시켜 주시는 것이다.
그 하루하루 연장되는 시간 안에서, 창세전에 아들이 보았던 그 영광을 우리도 맛보는 것이다.
제한된 몸이요 제한된 시간이기에 완전한 영생은 아니지만 그 영생을 맛보는 순간순간 아버지와 아들이 보았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이다.
히스기야는 자신이 나아서 3일 만에 성전에 올라갈 수 있다는 표적을 보여달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아하스가 만든 해시계의 해그림자가 10도 뒤로 물러나게 하시는 것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증명해 주셨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유월절이 가까웠을 때 성전을 청결케 하는 작업을 하셨다(요 2장).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이런 일을 행하는데 우리에게 무슨 표적을 보이겠는가?” 하며 표적을 요구하였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그러면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겠다.”고 하셨다.
(요 2: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그들은 눈에 보이는 건물 성전인 예루살렘 성전에만 꽂혀 있었기 때문에 그 이상의 것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건물 성전이 아닌 성전된 자신의 육체를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이었다.
(요 2: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결국 예수님은 그 일이 있은 지 3년 후에 성전을 허무셨고(죽음), 다시금 그 성전을 세우셨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다시금 부활하신 것이다.
해시계의 그림자가 10도 뒤로 물러나는 표적을 봄으로써 히스기야가 3일 만에 성전에 올라갈 수 있다는 확증이 되었다.
그런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셨다가 3일 만에 살아나시는 표적을 통하여 이를 믿는 자마다 그 죄가 깨끗하게 되어 죄 사함을 받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런 우리가 영생을 얻은 자로서 주를 모시는 성전이 된 것이다.
나는 주님이 그토록 보여주시기를 원했던 영생의 표적이 아니라 땅의 표적만을 구하는 자였다.
주님은 존재를 주기를 원하시는데 나는 존재물에 치심하여 그것에 만족을 누리며 사는 자였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온전한 구속의 사건, 즉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시며 부활하셔서 우리의 삶에 나타나신 메시야로서의 복음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 복음만 알았기에 회개하면 항상 에덴동산으로 회귀하는 종교적 현상이 반복되곤 하였다.
다른 종교에도 나름대로 죄를 씻는 비법(?)이 있다.
불교는 죄를 지은 만큼 물고기나 자라 등을 방생하므로 죄를 씻는다.
힌두교는 자신들의 어머니 강이라 믿는 겐지스 강에 들어가 자신의 몸을 씻음으로 죄 용서를 받는다.
그들은 죄를 지으면 이러한 행위를 통하여 죄 씻음을 하고 마음의 부담을 털어내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종교 행위에 빠져서 죄 짓고 회개하고 죄 짓고 회개하고를 반복하였다.
이는 생명을 가진 자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종교 활동을 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허물어져야 하는 건물 성전에 대하여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거기에 천착하여 참 생명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나를 바라보시며 주님은 얼마나 아파하셨을까?
참 성전이 되어야 할 내 몸은 오히려 주님이 거하실 수 없는 돼지우리와 같은 실존(失存)이 되어 버렸다.
주님 앞에서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낯이 뜨뜻하여 주님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자였다.
그런 나를 주님은 복음으로 찾아 오셨다.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에게 예수님을 내어 주었다.
대제사장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내어 주었다.
빌라도는 군병들에게 예수님을 내어 주었다.
군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내어 주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나무에 못 박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저주 받은 자로 확증하고자 했다.
(신 21:23)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이들이 예수님을 나무 십자가에 매달아 죽임으로 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할 나를 살리신 것이다.
그렇게 예수님은 죄가 되어 죽으신 것이다.
나는 나의 죄로 인하여 죽은 자이나 십자가로 인하여 살아났다.
그 은혜는 히스기야가 15년 간 목숨의 연장을 받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조에)을 주셨으며 또한 주님과 연합하여 새 생명으로 살아간다.
내 평생의 소원은 주님과 함께하며 주님이 창세전에 아버지께 받으신 그 영광을 함께 날마다 보는 것이다.
(요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의 몸은 죄 짓는데 빨라 세속을 향하여 달려가나이다.
그러나 날마다 주의 십자가에 연합하여 나를 십자가에 매달고 오직 주의 능력과 성령의 충만함으로 선한 일에 열심하는 주의 자녀가 되기 원합니다.
땅의 표적만을 구했던 이 죄인이 이제는 하늘의 표적, 성전 삼으신 주님을 구합니다.
또한 내 몸이 성전된 표적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옵소서.
내가 주를 의뢰하나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리나이다.
오직 주님으로 만족한 하루가 되게 하소서.
나를 성령의 줄로 묶어 주님과의 교제가 끊어지지 않게 하소서.
주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