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무역입국으로 성장하면서..경영인이나 무역 상인들의 비중이 과거 조선시대에 비하면 아주 크죠..
화가 루벤스의 작품 '한복 입은 남자'를 볼 때마다..항상 떠오르는 생각이..
조선이 중국의 간섭에서 벗어나 바다로 진출하지 못한 것이 정말 안타깝다는 거죠.
안토니오 같은 인재가 조선이 아닌 유럽에 와서야 자기 능력을 충분히 발휘했다는 사실..정말 화가 납니다.
조선시대에 장영실, 이순신 등 출신성분에 상관없이 걸출한 인재들이 나와도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기가 힘들고..성공했다 해도 오래 못가서 비참한 죽음을 당하기 십상..
현재 대한민국도 뿌리깊은 사농공상(士農工商) 문화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고..
따돌림 당하지 않으려면 잘난 척 해서 눈 밖에 나는 일이 없도록..약삭빠른 처세술이 요구되죠..
여담이지만 고대 로마도 원래 토지를 중시하는 농업형 국가였습니다. 조선처럼 사농공상이죠..
로마인은 중국인처럼 농경민족답게 비옥한 영토에 대한 탐욕이 컸죠.
그러나 조선과 달리 공업과 상업을 진흥시켰습니다. 경제인이라는 기사계급이 원로원 계급에 버금가는 계층으로 성장할 수 있었지만..
하여튼..인재를 소중히 여기는 나라가 융성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
코레아씨 [Corea]
요약
이탈리아 남단 카탄차로시(市) 34km 떨어진 알비시를 중심으로 분포하는 한국계(系) 성씨.
본문
그 시조는 정유재란 때 끌려가 노예로 팔린 조선 소년 안토니오 코레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안토니오 코레아에 대해 진단학회의 《한국사》 제4권 〈근세 후기편〉은 "세계를 일주하고 있던 이탈리아 전도사(사실은 무역상인) 카를레티는 일본에서 조선인 포로 5명을 노예로 사서 세례를 받게 한 뒤, 그 중 1명을 1606년 피렌체로 데려가니, 이 소년은 그뒤 로마에 정주(定住), 그곳에서 교회일에 종사하여 안토니오 코레아로 불리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안토니오 코레아를 이탈리아로 데려간 카를레티도 1606년에 발행된 그의 여행기 《라조나멘티》에서 피렌체에 도착한 카를레티는 안토니오에게 '코레아'라는 성을 주고 곧 석방하였다고 적고 있다. 그후 안토니오는 이탈리아 여인과 결혼하여 조선의 지형과 기후가 비슷한 알비에 정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탈리아 코레아씨의 집성촌(集姓村)으로 코레아 마을로도 불리는 알비시에는 300여 명의 코레아씨가 거주하고, 그 인근의 카탄차로·타베르나·마지사노·체르바·셀리아·세르잘헤·시메리크리키 등지에도 흩어져 살고 있으며, 로마에도 20명 이상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04년 20여 명이 미국에 이민갔고, 1950년경부터 40여 명이 미국·캐나다·라틴 아메리카 등지로 이주하여, 이탈리아 코레아씨는 아메리카 대륙에도 퍼져 있다. 알비시의 코레아 광장에는 태극 등의 한국적인 것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안토니오 코레아가 매장된 산타마리아 지하묘지는 사적지로 지정되어 있다.
첫댓글 저도 그소설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바다를 차지하는 자가 세계를 얻는다..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지요
흠,,,갑자기 포르투갈이 생각나는군요,,육지로 뻗어나갈길이없자 바다로 뻗어 나간게
뭐.. 코레아 남자들의 유전자(또는 염색체)의 어느정도가 한국인과 일치하다는..
대항해시대를 해보면 '코레아'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또, 체게바라 평전에 보면 '라몬 코레아'라는 사람도 나오구요.. 아, 비슷한 케이스로는 터키가 동로마 멸망시킬때, 선봉에선 '알 윤'이란 사람도 있다는...
안토니오 코레아같은 경우느 어느정도 학문적 실증이 있었지만... 알비의 코레아 집성촌은 사실이 아니라고 알고있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