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뉴스가 떴다.
북한, 백신 지원하겠다는 한국 방역 '평가'.."방역실패 지적하는 목소리 커져"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내용이다.
나는 제목만 읽었다. 본문은 아직 안 읽었다. 제목으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나라(남한)에서는 요즘 날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1,000명이 넘게 발생하며, 지금껏 사망한 사람이 아마도 739명을 넘을 게다.
<내 코가 석자>인데도 우리(남한)한테 총뿌리를 겨냥한 북한한테 '코로나 백신'을 나눠주겠다고?!
통일부장관 이인영.
내 입에서는 '다쳤미'라는 말이 내뱉어진다.
만나이 일흔한 살을 오래 전에 넘긴 늙은이인 내가 이런 말을 내뱉다니...
지금은 2020년 연말이다.
신종 괴물들이나 사는 세상인가 보다.
나는 <코로나>가 무서워서 바깥 외출을 자제하고 있으며, 코로나 백신 주사를 맞지도 않았다.
우리 남한사람들도 백신주사를 아직껏 맞지 않은 사람들이 수두룩한데도 통일부장관은 위와 같이 북한에 백신을 나눠주겠다고?
'대한민국'이란 한 지붕 아래에서 산다는 게 정말로 이상하다.
2020년 6월 16일.
북한 제2인자인 김여정이는 남한이 지어준 <남북한연락사무소>을 폭약으로 폭파했고, 최근에는 그 폭파해버린 잔해물을 남한이 치우라고 요구했다는 기사가 떴다.
북한 땅(개성)에 지어서 운영하던 <남북한연락사무소>을 폭파한 지 며칠이 지났다고?
납득이 안 된다.
'이갱빨'이가 따로 없다
* 화해의 상징으로서 H빔으로 단단히 지어진 4층짜리 건물의 폭파 장면
인간과 집단의 심성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사례들은 숱하게 많을 게다.
내 책꽂이 서가에는 산골마을의 내력을 소개한 책자가 있다.
구한말에 조선조 사람들이 어떻게 친일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일제식민시대에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에 시골의 무지랭이들이 엄청나게 많이 태평양으로, 일본 북해도 탄광으로 끌려갔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슬쩍 언급되었다. 그런데 배운 자들은? 가진 자들은 어디에 있었을까?
또한 한국전쟁(1950년 6월) 당시에 인민군들이 산골마을에 까지 내려와 어떤 행위를 했으며, 마을의 어떤 자들이 어떻게 동조했는지에 대한 내력이 얼추 들어있다.
나쁜 사실은 숨기고는 좋은 것만 언급했어도 그 속내를 짐작한다.
일제시대를 겪었고, 해방 전후에 살았고, 한국전쟁을 겪었던 어머니한테서 들은 진실이 숨어 있기에.
무학자, 가난뱅이, 힘없는 백성이나 겪는 애환이 끈질지게 이어질 게다.
구한말, 일제시대, 인민군이 득세했던 그 시절에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일제와 북한 인민군에 대항했던가?
<웃긴다>이다. 내 결론은...
지금은 2020년 12월 말. 곧 년말이 끝나고 새해가 며칠 뒤에 시작될 게다.
정말로 황당한 신문기사에 나는 눈이 화들짝 떠진다.
<역사는 강자가 늘 새롭게 고쳐 쓴다>라는 시각을 가진 나.
나를 또 놀래킨다.
이쯤에서 중단하고는 위 뉴스를 제대로 읽어야겠다.
우리나라(남한) 코로나 통계(2020. 12. 23. 00 : 00현재)
확진환자 52,550 증가 1,092명
검사진행 153,109 증가 1,980명
격리해제 36,726 증가 798명
사망자 739 증가 17명
사망자... 그들의 시신은 장례식장에서, 아니 화장터에서 어떻게 대접을 받으며, 어떻게 처리됄까?
사체에 염(베옷을 입히고 손발을 묶음)이라도 제대로 할까?
장례식장이 아닌 화장터로 즉시 실려가서는 불길로 사라져야 한다.
죽은 자는 얼마나 억울하며, 그 유가족들은 얼마나 통탄해야 되냐?
장례절차도 모두 생략해서, 불 태워서 다 없애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어떤 장관은 남한에 향해서 총을 겨눈 북한을 걱정해 주신다니 정말로 <모지리>들이나 사는 세상이다.
오늘 뉴스에는 경기도 연천군 다락대 훈련장에서 K1E1전차가 전투훈련하는 사진이 떴다.
엄청나게 추운 혹한기에 포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이들이 사격훈련을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 모두를 겨냥했을까?
가장 시급한 본질은 38선 너머의 북한이다. 한때에는 한민족이었건만 지금은 총뿌리를 겨눈 적일 뿐이다.
<주적>에 관해서 할 말이 무척이나 많은 나한테 '철이 없는 이XX 장관이' 내뱉을 게다.
아쉽다. 그만 쓸란다.
촌구석에서 텃밭농사나 짓던 촌늙은이가 함께 살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서낭당 앞산에 흙에 묻고는 그참 서울로 올라왔다.
처자식이 사는 서울.
나는 서울에서는 할 일이 없다. 더군다나 금년 내내 <코로나-19> 때문에 외출도 하지 못한 채 내 방안에서만 맴돌면서 컴퓨터를 켜서 사이버 세상에서 뉴스나 읽는다.
답답하다.
날씨가 흐리면 화가 더욱 난다.
시골에서 살아야 하는데도 아내는 시골을 기피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