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초딩시절 사마귀들을 양 손에 하나씩 잡아서 서로 싸우게해서 이기는쪽이 사미귀를 잡아먹게 하는 그런걸 했는데 어릴때 왜 그랬는지 참... 인과응보가 무서워지네요 미안해 사마귀들아 용서해줘 내가 너희들을 위해 염불하고 나중에 성불하면 너희들 구제해줄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1. 100년된 두꺼비를 죽인 과보
지금부터 소개하는 이야기는 수년 전에 방영되었던 모방송사의 프로그램 "ㅇㅇㅇ 속으로"에 나온 내용이다.
오래 전에 시골 어느 작은 마을에서 결혼한지 얼마 안되는 부부가 살고있었다.
마침 부인은 임신중이었다. 시골생활이 한 여름엔 파리, 모기가 많기 마련인데 두꺼비가 파리,모기를 잘 잡아먹는다는 소리를 들은 남편이 두꺼비를 잡아와 집안에 들여놓으니 아닌게 아니라 파리, 모기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남편은 신이 나서 두꺼비를 자꾸 잡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백 살은 족히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두꺼비를 잡아와서는 아내의 약이 되겠다며 두 다리를 꽁꽁 묶어 방문 앞에 매달아놓았다.
부인은 두꺼비가 너무 오래되었기도하고, 집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파리, 모기가 없어지니까 그만 놓아주라고 사정했지만 남편은 부인의 말을 무시하고 두꺼비를 매달아놓은 채 두꺼비가 죽기만을 기다렸다.
그리하여 두꺼비는 산 채로 매달려 말라 죽었다.
산달이 되어 부인은 이쁜 딸을 낳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갓 태어난 아이의 발목에 잘록하게 묶인 자국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자국은 커가면서 없어지지 않았다.
아이는 발목이 잘록한 것이 부끄러워 항상 발목을 가리고 다녔다.
그렇게 10년이 흘러 딸아이가 열한살이 되었을 때였다. 그렇게 이쁘기만 하던 딸 아이의 얼굴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하였다.
피부가 두꺼비처럼 울퉁불퉁하게 변하더니 점차 피부색깔도 두꺼비처럼 거무튀튀하게 변해버렸다.
딸아이의 엄마는 가슴을 치며 통곡을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딸아이는 점점 더 두꺼비와 닮아가더니 몸형태도 두꺼비처럼 변해갔다.
아무 죄도 없는 딸의 운명은 아버지의 잘못으로 그렇게 두꺼비 형상으로 바뀐 채 부끄러워 밖에 나다니지도 못하고 항상 어둠속에 숨어사는 것이다.
지금은 깊은 산속 동굴 같은 어두운 곳에 숨어서 어느 봉사단체의 도움으로 살고 있다고한다.
이제 사십대 중반이 된 이 여자는 아직도 밝은 곳에는 아예 나오지를 못한다고한다.
출처: 동티 (김진영저, 영혼의 눈개정판, 도서출판 답게)
2. 피할 수 없는 과보- 염소를 괴롭혀서 죽인 과보
1975년 내가 태백산 도솔암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종교를 믿지 않는 어떤 집에서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생김이 아주 흉한 째보였습니다.
볼 두쪽이 쌍으로 째어진 째보여서 아이가 울때 마다 째어진 뺨이 팔딱거렸으며,뾰족한 턱의 모양이 무슨 짐승처럼 보이는 데다가 우는 소리는 꼭 염소울음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어찌나 불량스러웠던지, 돌이 막 지나 두 살된 아이 인데도 걷잡을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세수하기 위해 잠깐 벗어놓은 시계를 구정물에 집어 던지는가 하면 화장대의 화장품은 잡히는 대로 집어던졌으며, 병이고 항아리고 모두 다 깨뜨렸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를 두고 집안 식구들까지 기이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몇해 전, 식구들이 모두 영양실조에 걸려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그때 이웃사람들이 염소고기를 먹으면 좋다고 하기에 염소 한 마리를 구해서 잡아먹었습니다.
그런데 염소를 그냥 잡으면 노린내가 나서 먹을 수가 없으므로 죽이기 직전에 방법을 쓴다는 것입니다.
염소 목에다 줄을 걸고 무거운 짐을 끌게 하여 모진 고통을 주면 노린내가 없어진다는 말을 들었던 것입니다.
집안 식구들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 염소를 논밭으로 일주일 동안 쉬지 않고 끌고 다녔습니다.
탈진한 염소는 마침내 쓰러져 죽었고, 가족들은 그 염소를 삶아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 직후 곧 태기가 있어 이 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그 집안 사람이나 마을 사람들은 그 아이의 생김새와 울음소리,나쁜 짓만 골라하는 아이의 짓거리를 보고 "저것이 집안을 망치고 원수를 갚으러 태어난 것이 틀림 없다."며 하나 같이 걱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인과의 법칙을 벗어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반드시 어떤 원인에 의해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며, 원인 없이 결과란 있을 수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우주와 인생의 모든 것을 인과와 연기의 전개로 보며, 인과 의 도리를 벗어난 우연론이나 창조론은 전부 이단으로 봅니다.
어떻게 하다 우연히 생겨난 세계라거나 또 전지전능한 신이 이 우주의 생명체를 창조했다면, 설사 잠깐의 실수로 잘못 창조하고 잘못 관리했다면 즉시 다시 개조 하고 재창조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역사의 현실은 그렇지 가 않습니다.
우주와 인생의 신비는 오직 불교의 육도윤회를 통한 무시 이래의 인과법으로 풀지 않고서는 해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불교의 인과론이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운명론 과 같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운명론은 모든 것을 태어날 때의 사주팔자와 함께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자율적인 의지와 창조적인 노력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삶의 흐름을 바꾸어 놓을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불교의 인과론은 모든 것을 자신에게로 돌리고 있습니다. 나의 행위가 원인이 되어 현재와 같은 삶이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받고 있는 이 결과는 어제의 행위가 원인이 된 것이고, 오늘 내가 짓는 행위는 내일의 결과를 낳게 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불교의 인과론은 내일을 창조하고 오늘의 과오와 고뇌를 근원적으로 개조하기 위한 인과론 입니다.
숙명적인 운명론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절대로 가벼이 흘려서는 안됩니다.
인과의 법칙이 확연하고 과보의 응징이 엄격한 것은, 마치 그림자가 물체를 따르는 것과 같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출처: 일타큰스님저- 윤회와 인과응보 이야기 (도서출판 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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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 합니다
거룩하신 가르침에 귀의 합니다
거룩하신 스님들께 귀의 합니다
어서오세요
환영합니다.
원공법계 제 중생
자타일시 성불도
귀의불양족존
귀의법이욕존
귀의승중중존
중생무변서원도
번뇌무진서원단
법문무량서원학
불도무상서원성
원공법계제중생
자타일시성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