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에서의 연애결혼 – 사랑이 허락되지 않던 시대에도 피어난 꽃
"조선에도 연애결혼이 있었나요?"
의외로 많은 이들이 이렇게 묻습니다. 조선은 유교적 질서가 강했던 사회, 혼인은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자 부모의 뜻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 '당연한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은 금기였기에 더 애틋하고, 슬펐고, 때로는 목숨까지 건 뜨거운 감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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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담 대신 편지로, 가슴으로 전하던 사랑
양반가 자제들이 연애를 하는 건 불가능했을까요? 꼭 그렇진 않았습니다.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해 전국을 떠돌던 선비들 중에는 우연히 머문 객관이나 주막에서 한눈에 반한 여인에게 시를 건네기도 했고, 몰래 손편지를 주고받으며 마음을 키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부모와 사주팔자가 허락하지 않으면 이루어지기 어려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택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남몰래 사랑을 키우고, 정략결혼을 거부하고, 심지어는 도망쳐서라도 연인이 되길 택한 젊은 남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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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결혼의 대표적 사례 – 실록에 기록된 사랑
조선왕조실록 속에도 연애결혼이 드물게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은 정조의 외조부 홍봉한의 집안 이야기입니다.
그의 딸인 **혜경궁 홍씨(정조의 어머니)**는 사도세자와 정략결혼을 했지만, 그 집안의 다른 딸은 자신이 사랑한 평민 출신 남성과의 사랑을 선택했다는 기록도 전해집니다.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내 함께한 그 사랑은, 비록 불편했지만 당시에도 회자될 만큼 감동을 주었죠.
또한 민초들 사이에서는 더욱 자유로웠습니다.
서당 훈장과 기생, 머슴과 아씨, 시장 상인과 여종…
계급이 허락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허락한 사랑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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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기 속 피어난 연애, 그 아름다움
조선의 연애결혼은 희귀했기에 더욱 애틋했습니다.
부모의 뜻을 거역한다는 것은 천륜을 어기는 일, 파문이나 파혼, 심하면 가문에서 쫓겨나는 일도 감수해야 했죠.
그럼에도 연애결혼을 선택한 이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소설과 드라마의 단골소재가 될 만큼 우리 마음을 울립니다.
우리는 종종 말합니다.
"예전에는 사랑도 없이 결혼했다더라"고.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조선에도, 그 이전에도, 사랑은 존재했고…
그 사랑은 종종 모든 것을 건 용기로 빛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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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러분이라면 조선시대에 태어났어도 사랑을 선택하셨을까요?
누구나 사랑할 권리가 있는 시대, 우리는 참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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