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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은 옛날부터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르는 사람이 없는 오랫동안 사용해 온 한약이다.
그렇지만 인삼에 대한 좋고 나쁜점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갑론을박(甲論乙駁)하며 계속 논쟁해 오고 있다.
고인들은 ”인삼은 만병의 영약(靈藥)이다” 고 말했으며 ”천초지영(千草之靈), 백약지장(百藥之長), 시인삼의비침사갈(視人蔘爲砒鴆蛇蝎)”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인삼은 천가지 약초 중에서 가장 신통하고 영묘한 약이며 백가지 약 중에서 우두머리이다. 그러나 인삼보 는 것을 비상(砒霜)을 바라보듯 하고 짐새를 보듯 하며 독사와 전갈을 보듯 하라” 는 뜻이다.
여기서 짐새는 광동성에 사는 독조(毒鳥)로써 사람이 그 깃을 담근 술을 마시면 죽는다.
또 ”외인삼여호(畏人蔘如虎)” 라는 말은 ”인삼을 호랑이 보듯 두려워 하라” 는 뜻이다.
또 ”제통불가용인삼(諸痛不可用人蔘)” 이란 말의 뜻은 ”모든 통증에 인삼을 사용하지 못한다.” 는 말이다.
”인삼여라복급자동복(人蔘與蘿蔔及子同服), 작용저소(作用抵消)” 라는 말은 ”인삼과 무나 무씨를 함께 복용하면 인삼의 작용을 중화시킨다.” 는 뜻이다.
이상과 같은 인삼에 대한 견해 차이가 많이 있다.
인삼은 오가과(五加科) 식물이다. 고인들은 인삼에 대하여 ”형태여인(形態如人), 공삼천지(功蔘天地), 고명인삼(故名人蔘), 야유칭인신(也有稱人身). 유우인삼연심(由于人蔘年深), 근여인형(根如人形), 유신(有神), 고우유신초지명(故又有神草之名)” 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모양은 사람과 같고 효능면에서 보면 생명의 본원이다. 고로 인삼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또 인신(人身)이라고도 칭한다. 몇 백년 된 오래 묵은 인삼은 사람 모양과 똑 같고 정신이 깃들어 있으므로 신초(神草)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는 뜻이다.
명의별록(名醫別錄)에 보면 인삼을 ”인함(人銜) , 귀개(鬼蓋) , 황삼(黃蔘) , 혈삼(血蔘) ”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함(銜 : Xian)은 삼(蔘 :San)자(字)의 와전음(訛轉音)이다. 그리고 인삼이 성숙되는 단계가 있으므로 인함이라고 칭했다. 함(銜)자의 뜻은 군대의 계급이나 행정계통의 계급과 같은 등급을 말한다.
또 인삼은 배양향음(背陽向陰)한다. 다시 말하면 ”햇빛을 싫어하고 그늘을 좋아한다.” 는 뜻이다. 그래서 귀신을 가린다고 귀개(鬼蓋)라고도 부른다.
또 인삼의 색깔은 황색이며 토(土)에 속하고 비위(脾胃)를 보해 주고 음과 혈을 생산하므로 황삼과 혈삼이란 이름을 얻었다. 또 인삼은 정(精)과 영(靈)을 가지고 있으므로 토정(土精) 또는 지정(地精)이라고 부른다.
수(隋) 나라 문제(文帝) 때 상당(上黨 : 洛陽 의 북쪽) 고을의 어느 집 뒷뜰에서 매일 밤 사람부르는 소리가 났다.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이 집에서 500 미터 쯤 떨어진 곳에 인삼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다섯 자 깊이 쯤 땅을 파서 인삼 뿌리를 캐어냈다. 사람의 몸과 똑같고 사지가 모두 달려있었다. 그 날 밤 부터 사람부르는 소리가 그쳤다. 이러한 사건이 있은 후 부터 인삼을 토정(土精)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청 나라 때는 인삼을 봉퇴(棒槌)라고 칭했다. 봉퇴란? ”방망이” ”곤장(棍杖)” 을 의미한다.
인삼을 봉퇴라고 부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청나라 때 백성들이 산에 올라가 인삼을 캐는 것을 법으로 금지했다. 즉 삼객훼제봉퇴(蔘客諱提棒槌)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인삼 캐는 사람들에게는 곤장을 선물로 주노라” 는 뜻이다.
또 ”채삼자(採蔘者), 수지일곤(手持一棍), 명색라목곤(暝索羅木棍)” 이라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하면 ”인삼을 캐다가 관가에 들키면 그 벌로써 곤장 120 대를 맞아야 한다.” 는 뜻이다.
백두산(白頭山)에서 생산되는 2 백 년 이상된 인삼을 노산삼(老山蔘) 이라고 부른다. 1 백년 이하의 인삼은 대소(大小)를 불문하고 대산삼(大山蔘)이라고 부른다.
인삼의 싹이 나올 때 짐승들이 뜯어 먹고 남은 뿌리에서 수 십년 후에 또 어떤 것은 50 년 후에 싹이 돋아나오는 것도 있다. 채삼인들이 발견하여 얻은 것을 배산삼(배(山蔘)이라고 부른다. 치료 효과는 대산삼과 똑 같다.
이산삼(移山蔘)은 30 년 내지 50 년 된 것으로써 다른 채삼인들이 보면 채취해 갈까? 두렵기 때문에 먼저 발견한 사람이 작은 실뿌리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조심 조심 뽑아다 자기집 뒷뜰이나 산야에 옮겨 심었기 때문에 옮겨 심어진 인삼이란 뜻으로 이산삼(移山蔘)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가장 보기력(補氣力)이 약한 것이 인삼 농장에서 재배한 것이다.
요녕성(遼寧省) 관전현(寬甸縣) 석주자(石柱子)에서 생산된 인삼을 석주삼(石柱蔘)이라고 부른다.
전설에 의하면 명나라 만력(萬曆) 년간(제13대 신종(神宗))에 석주자에 양치는 어떤 노인이 산에 양을 몰고 올라갔다. 갑자기 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양치는 노인은 비를 피하기 위하여 부서진 절간으로 들어갔다. 일 백 마리의 양들은 산벼랑 음지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양들은 서로 다투어 가며 어떤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노인이 양떼를 쳐다보니 양들은 인삼잎을 서로 빼앗아 먹고 있었다. 노인은 조심스레 인삼을 캐어냈다. 줄기는 길고 껍질은 늙고 진주알 처럼 생긴 꼬투리가 주렁 주렁 달려 있었다. 인삼의 수염은 길고 깨끗하였다.
채삼인들의 감정 결과 약 300 년 쯤 된 야 생인삼이라고 추정하였다. 촌 사람들은 이 야생인삼을 삼신(蔘神)이라고 불렀다. 노인은 신종황제에게 삼신을 상공(上貢)하였다.
신종 황제는 매우 기뻐하였다. 신종 황제는 석주삼(石柱蔘)을 ”대명국보(大明國寶)” 라고 칭찬했다. 다시 말하면 ”대 명나라의 국보” 라는 뜻이다. 신종은 백성들에게 석주삼(石柱蔘) 재배에 적당한 땅을 골라 재배하도록 명하였다.
명말청초(明末淸初) 때 매년 가을 인삼시장이 열릴 때 동북삼성(東北三省 : 黑龍江省, 吉林省, 遼寧省)의 인삼 집산지 영구(營口)에 전국의 인삼 상인들이 운집하였다. 석주삼(石柱蔘)이 영구(營口)에 당도하지 않으면 인삼 시장은 열리지 않는다.
영구(營口)는 발해해협의 동쪽에 위치한 도시로써 신의주에서 서쪽으로 190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요녕성의 항구도시이다.
중국의 인삼재배 역사는 지금부터 1600여 년전 서진(西晉) 말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러므로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인삼을 재배한 나라이다.
그런데 석주삼(石柱蔘)은 지금부터 400여 년전에 재배하기 시작했다. 석주삼(石柱蔘)은 중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명성을 얻었다. 매년 영구에서 인삼 전시회가 열리면 해외에서 인삼 상들이 운집하여 제일 먼저 ”석주삼(石柱蔘)이 어디 있느냐?” 고 물어 본다.
석주삼(石柱蔘)은 왜 유명한가? 우선 출포(出圃) 연한이 20 년이다. 보통 재배 인삼은 출포년한이 4년 내지 5년 혹은 6년 이다. 석주삼(石柱蔘)의 사포닌(Saponins) 성분은 보통 삼 보다 15% 이상 더 높다. 야산삼과 거의 같은 사포닌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그래서 석주삼(石柱蔘)을 야산삼이라고도 부른다.
과학자들이 석주삼(石柱蔘)의 씨앗을 석주자의 토양과 같은 인근 지역에 심어 실험 재배하였다. 석주삼(石柱蔘)을 다른 고장에 심어 실험하여 보았으나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결과는 인삼의 품질이 석주삼(石柱蔘)에 미치지 못했으며 열성변이(劣性變異)가 일어났다. 야산삼(野山蔘)은 40 년 내지 50 년 이상 되어야 무게가 한 냥(兩) 정도 된다. 한 근(斤)은 16 냥(兩)이며 600g 이다. 그러므로 한 냥(兩)은 37.5g 이다.
산삼은 오래 묵은 것일 수록 성(性)이 온화하며 그 효능이 월등하게 높다. 왜냐하면 하늘의 맑은 공기를 충분히 흡수하고 땅의 지기(地氣)를 오랫동안 받았기 때문이다.
민간에서 보통 7 냥(兩) 짜리 산삼은 그냥 산삼이라고 부르고 8 냥(兩) 짜리 부터 보삼(寶蔘)이라고 부른다. 1989 년 8 월 31 일 세 명의 채삼인들이 길림성(吉林省) 무송현(撫松縣) 노수하(露水河)의 원시림 속에서 한 개의 노산삼을 캤다. 인삼 전문가들의 감정 결과 무게는 305g이며 생장 연수는 500 년 이었다. 삼중에서 가장 진귀한 보물이다.
이러한 특대노산삼은 지금까지 본 사람이 없으므로 세계 각국에서 인삼 장사들이 서로 먼저 사고싶어 하므로 경매에 붙여 미화 20 만 달러에 팔렸다.
동한(東漢) 말년 의성(醫聖) 장중경이 쓴 상한론(傷寒論)과 금궤요약(金櫃要略) 속에 보면 인삼을 사용한 처방 만 41 개가 실려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지금부터 2 천년 전에도 한대의가(漢代醫家)에서 인삼을 즐겨 사용했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삼국시대의 신의(神醫) 화타는 ”편고불수(偏枯不遂) , 피부불인주효(皮膚不仁奏效) ” 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반신불수에 걸린 사람들과 피부의 지각마비가 된 사람들의 치료에 인삼이 주효하다” 는 뜻이다. 불인(不仁)은 지각마비를 의미한다.
당나라 때 손사막의 저서 천금비급방(千金備急方)에 보면 인삼을 사용한 방제가 무려 358 개나 된다. 또 왕도(王燾)의 저서 외대비요(外臺秘要)에 보면 인삼을 사용한 방제가 576 개나 실려 있다. 명나라 때 장개빈(張介賓)의 저서 경악전서(景岳全書)에도 인삼 처방이 509 개나 수록 되어 있다. 이시진의 본초강목에도 인삼 약방이 62 개가 기록되어 있다.
사료에 의하면 일본 명치유신(明治維新) 이전의 노인들은 자기 부모나 남편이 병에 걸려 있을 때 인삼을 살 돈이 없을 경우 자기 몸을 팔아 인삼을 사서 부모에게 혹은 남편에게 바쳤다. 그러한 사람들을 효자(孝子) , 효녀(孝女) 혹은 열부(烈婦)라고 칭했다. 그 당시 일본 사람들이 얼마나 인삼의 효능에 대하여 믿고 있었는지를 가히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도경본초(圖經本草)에 보면 ”사이인동주(使二人同走) , 일함인삼(一含人蔘) , 일공구(一空口) , 각주분삼오리허(各走奔三五里許) , 기불함인삼자(其不含人蔘者), 필대천(必大喘), 함자(含者), 기식자여(氣息自如)” 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두 사람에게 달리기를 시켰다. 한 사람은 입에 인삼을 물고 뛰고 또 한 사람은 입속에 아무것도 없이 뛰었다. 각 각 20리를 뛰었다. 인삼을 입속에 물고 뛴 사람은 숨을 자유자재로 쉴수 있었고 빈입으로 뛴 사람은 마지막 까지 완주한 후에 큰 기침을 계속 하였다.” 는 뜻이다.
지금부터 900 년 전에 인삼의 효능을 사람을 실험대상으로 사용하여 연구한 좋은 한 예이다.
영국의 약학계에서 다음과 같은 인삼 복용에 관한 주의사항을 발표하였다.
인삼과 술을 함께복용하지말것. 인삼과 매운 음식과 커피와 정신병 약을 함께 복용하지 말것. 그리고 40 세 이하의 신체 건강한 사람과 정력 충만한 사람과 쉽게 정신 긴장되는 사람과 쉽게 흥분하는 사람과 히스테리가 있는 사람과 발광한(發狂漢)들과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인삼의 복용을 피해야 된다. 또 급성병증이나 발열이 있는 환자나 급성 관상동맥 혈전(血栓)이 형성된 사람과 출혈증상에도 인삼 복용을 금한다. 혈액항응제(血液抗凝劑)와 심장병 약과 진정제와 콜레스테롤 약물 치료제 등을 복용하는 환자들도 인삼의 복용을 피해야 되며 아이들과 임신부도 인삼의 복용을 피해야 된다.
이상은 모두 영국에서 실시한 임상경험의 결과이므로 참고하기 바란다.
현대 의학 연구에 의하면 우주인들이 인삼 복용 후 공간적 특수 환경에 적응력이 증가되었다고 보고되었다. 또 고원반응(高原反應) 예방효과도 높았다. 서장(西藏)지방의 고원지대에서 실험한 결과 인삼을 3 일 간 복용한 사람들은 고산반응 발병율이 오직 10% 밖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원인은 산소가 부족한 환경속에서 견디어 내는 힘과 피로를 이겨내는 힘과 인체내의 세포들이 산소가 부족한 환경속에서 신속하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인삼이 높여주기 때문이었다.
인삼과 삼칠(三七)을 함께 사용하면 흉비(胸痺)를 치료해 준다. 흉비는 관심병(冠心病 : Coronary Heart Disease)과 협심증(狹心症 :Angina Pectoris)을 일컫는다. 이 처방은 심기(心氣)를 돕고 어혈을 풀어준다.
어느 90 세 노파는 70 세 때 심교통(心絞痛)으로 고생했는데 매일 인삼과 삼칠을 등분한 산제(散劑)를 하루에 3g 씩 20 년간 복용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심교통이 발생하지 않았으며 혈압도 시종 정상의 범위를 유지시켜 주고 있다고 말했다.
왕맹영(王孟英)은 ”용지부당(用之不當), 삼출불이비노(蔘朮不異砒碯)” 라고 경고했다.
다시 말하면 ”잘못 사용하면 인삼과 백출도 염화암모니움(Sal Ammoniac)을 포함하고 있는 노사(碯砂)와 비소(砒素)와 같은 독약과 다를바 없다” 는 뜻이다.
인삼을 잘못 복용하면 고혈압, 신경과민, 불면증, 새벽설사, 안절부절 못하는 증상, 피진(皮疹), 소양증(瘙痒症), 소아(小兒) 성조숙(性早熟) 등과 같은 인삼중독종합증(人蔘中毒綜合症)이 발생하기 쉬우니 조심해서 복용해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