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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달라이 라마
저자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인들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 그는 13대 달라이 라마가 입적한 2년 후인 1935년 7월 6일, 티베트 동북부 암도 탁체르의 한 가난한 농가 외양간 짚더미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그의 이름을 라모 된둡으로 지었는데, 이는 ‘소원을 이루어 주는 여신’이라는 의미이다. 그는 2세 때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환생으로 인정받아, 4세 때 티베트의 수도 라싸의 포탈라 궁에 들어갔다. 라모 된둡은 ‘성스러운 분, 영광의 수호자, 진리를 설하는 분, 자비의 화신, 믿음을 지켜 주는 분, 지혜의 바다’라는 뜻의 ‘제춘 잠펠 나왕 롭상 예셰 텐진 갸초’라는 새 이름으로 개명했으며, 나중에 그는 ‘지혜의 바다’라는 뜻의 ‘텐진 갸초’란 이름을 즐겨 사용하게 된다. 1940년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그러나 당시 너무 어렸던 그는 실제로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15세가 되어 실질적으로 티베트를 통치하게 될 때까지 고승들에 의해 섭정이 이루어졌다. 장난기 많고 낙천적 소년이었던 그는 티베트 지도자로서 철저히 교육받았다. 또한 티베트를 방문한 몇몇의 서양인을 만나 풍부한 대화를 나눔으로써 티베트 밖의 세상에 대한 식견을 넓혔고 영어, 수학, 세계지리 등에도 관심을 가지고 홀로 공부하기도 했다. 그의 삶은 “나는 가장 불행한 달라이 라마였다.”는 그의 말처럼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니었다. 1950년 중국의 티베트 침공 이후부터 지방에서 티베트 독립을 요구하는 민중 봉기가 계속되었고 1959년 3월 10일 중국군이 달라이 라마를 납치해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시작된 민중 집회는 중국이 티베트를 단념하고 완전한 독립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대중 집회로 이어졌다. 그러나 1959년 3월 10일 하루 동안 시위에 참석한 1만 5천 명의 티베트인들이 사살되었다. 당시 티베트 인들의 민중 봉기를 진압한 과정에서 중국은 6천여 개의 불교 사원을 파괴했고 12만 명의 티베트 인을 학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인의 생명을 지키고 티베트 독립운동을 지속하며 국제적 지원을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인도로 망명할 결심을 하게 된다. 인도로 망명한 후 네루 수상의 지원을 받아 인도 동북부 지역인 다람살라에 티베트 망명 정부를 수립한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문제에 대해 국제연합에 도움을 요청했고, 결국 국제연합 총회는 1959년, 1961년, 1965년에 걸쳐 중국 정부로 하여금 티베트의 인권과 자치권을 존중하라는 결의안을 채택하도록 했다. 달라이 라마는 어떤 상황에서든 철저히 비폭력 노선을 견지하며 인류애에 호소해 왔다. 많은 티베트 인들이 완전한 독립을 요구하고 투쟁할 것을 요구했으나 그는 중국 정부에 완전한 독립이 아닌 자치권을 넘겨 달라는 보다 온건한 요구를 한다. 평생을 고난 속에서 보냈지만 늘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달라이 라마의 삶은 자신의 삶을 고통스럽게 생각하는 수많은 세계인의 공감을 얻었고, 결국 1989년 10월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실질적으로 세계인의 정신적 스승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 같은 달라이 라마의 정신세계에 깊은 감명을 받은 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은 열렬한 팬임을 공언하며 달라이 라마의 강연에 쫓아다닌다. 리처드 기어를 비롯해 스티븐 시걸, 줄리아 로버츠, 해리슨 포드, 샤론 스톤, 우마 서먼 등의 영화배우와 마틴 스콜세지, 올리버 스톤, 조지 루카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등의 영화감독이 그들이다. 달라이 라마의 인기는 1998년 6월 중국을 방문한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에게 “달라이 라마는 솔직한 사람이던데 한번 만나 보라.”고 조언했다는 소식에서도 실감할 수 있다. 2011년 3월 10일, 티베트 봉기(1959년) 기념 연설에서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는 정신적 지도자로서 티베트를 위한 활동은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렇게 달라이 라마가 사퇴 의사를 밝히며 후계자 선출을 선언한 것은, 중국이 후계 구도를 이용해 티베트를 흔들려는 계책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달라이 라마의 책은 대담집, 강연록, 잠언집 등의 형태로 세계 각국에 출간되었으며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주고 있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말부터 불교계를 중심으로 그의 방문을 추진해 왔으나 중국과의 외교 문제를 이유로 정부에서 불허하고 있다.
저자 : 하워드 커틀러
저자 하워드 커틀러는 정신과 의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연설가인 하워드 커틀러가 달라이 라마와 함께 집필한 행복론 시리즈는, 붓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달라이 라마와 심리학 및 서구 과학에 기초한 커틀러의 서로 다른 관점을 흥미롭게 보여 준다. 1998년에 처음 발행된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은 행복에 관한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인간의 행복에 대한 심리학과 과학의 활발한 연구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긍정심리학 분야의 선구자인 그는 문학과 동물의학 학사 학위를, 애리조나 의과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피닉스에 위치한 굿사마리탄 메디컬 센터에서 정신의학 전문의 과정을 마쳤으며 미국 정신의학회와 신경학회로부터 전문의 학위를 받았다. 달라이 라마와는 1982년 티베트 의학 연구 일로 인도를 방문했을 때 처음 만났으며 그 후 수년 동안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 왔다. 커틀러는 미국에서 ‘행복의 기술AOH(The Art of Happiness) 워크숍’을 이끌고 있으며, 신경과학과 긍정심리학뿐만 아니라 달라이 라마와의 공동 작업에서 얻은 지혜를 토대로 행복에 이르는 법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현재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정신병원을 운영하면서 인간의 행복에 관한 학문에 있어 세계를 이끄는 전문가 중 한 사람으로 인간의 행복 발견에 헌신하고 있다.
역자 : 류시화
역자 류시화는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잠언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하이쿠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
산문집 <삶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
인도 여행기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지구별 여행자>
인디언 추장 연설문 모음집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번역서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티벳 사자의 서> <조화로운 삶>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용서> <인생수업>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새로운 지구> <티베트의 즐거운 지혜> 등
행복은 다른 존재에 의지해 얻는 공존의 산물 _류시화
1 우리 모두는 같은 존재
2 같아야 행복한가 달라야 행복한가
3 우리와 다른 그들
4 우리 안에 있는 신이 그들 안에도 있다
5 하나는 모두를 모두는 하나를
6 인간 본성에 대한 재논의
7 폭력에 대하여
8 우리는 왜 감정을 가지고 있는가
9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10 문제 많은 세상에서 행복 찾기
11 긍정의 발견
12 행복의 그물망
13 인간 존재라는 공통성
14 자비는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도구
라이 라마의 행복론> 이후 10년,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저명한 정신과 의사 하워드 커틀러가
다시 한 번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다
600만 티베트 인의 영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자선단체 식당에서 앞치마를 둘렀다. 노숙자들에게 수프를 퍼 주고 샌드위치를 나눠 주기 위해서였다. 그중 44세의 아르만도 마르티네스가 달라이 라마에게 말했다. “내가 걸친 옷은 모두 쓰레기통에서 주운 것이오.” 73세 달라이 라마의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흘렀다. “우리 모두는 타인에게 의존합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사람 사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행복하다고 생각하시고 스스로 존엄하다고 느끼십시오. 나도 홈리스입니다.”
- AP 통신 2009년 4월 26일 기사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미국의 정신과 의사 하워드 커틀러는 처음으로 달라이 라마를 만났을 때 이렇게 물었다.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는 망설임 없이 “물론입니다.”라고 대답했고, 그의 목소리에는 어떤 의심도 가질 수 없는 평화로움과 진실이 담겨 있었다.
‘행복에 대한 교과서’로서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아 온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에서 달라이 라마는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원하며 누구나 마음의 수행을 통해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후 10년, 세상은 경제 불황, 국제적 분쟁과 소규모의 전쟁, 환경오염과 자연재해, 편견, 의심, 무관심, 인종차별, 갈등, 폭력, 잔인성으로 인해 갈수록 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서 아직도 행복하지 않은 우리를 대신해 하워드 커틀러가 행복한 달라이 라마에게 묻는다.
인간은 왜 혼자서 살 수 없는가? 우리가 고독한 이유는? 우리는 언제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언제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가? 우리는 왜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가? 인간이 폭력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누군가가 우리를 괴롭힐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궁극적으로, 너무도 불행한 장소로 느껴지는 지금의 세상에서 과연 우리는 행복과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커틀러는 달라이 라마와의 새로운 대화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문을 연다. “오늘 아침, 저는 우리 모두가 같은 존재라는 개념에 대해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오늘날 세계는 사람들 사이에 고립감과 소외감이 널리 퍼져 있고, 분리된 느낌과 심지어 불신감이 지배적입니다.” 달라이 라마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이에 대꾸한다. “만일 지금 화성에서 온 외계인들이 지구를 협박한다면,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순식간에 하나로 뭉칠 겁니다! 모두가 단결해 ‘우리는 지구인!’ 하고 말할 겁니다.”
10년 만에 다시 나눈 행복에 대한 특별한 토론에서 달라이 라마는 ‘혼자 행복해도 되는가, 혼자서 행복할 수 있는가’ 하는 새로운 물음을 던진다. 내가 행복을 추구할 때 다른 사람의 행복은 어떻게 되는가. 개인의 행복과 사회 전체의 행복은 어떤 관계인가. 그러면서 그는 말한다.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는 존재는 없다고. 나의 행복은 타인에게 달려 있다고. 우리는 행복이라는 목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누구도 불행하게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인생의 가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어떤 일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 내가 행복해지고 싶다면 먼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
인생에 주어진 단 하나의 의무는 행복하라는 것
그러나 혼자 행복해도 되는가
최근 어느 금요일 오후, 직업이 없는 스무 살 청년이 누구든지 대화가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자신이 그 상대가 되어 주겠다는 메시지를 유튜브에 올렸다. “나는 당신을 만난 적 없지만 당신을 염려한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 주말 그는 그의 제안에 응하는 낯선 이들로부터 5천 통이 넘는 전화와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31쪽)
달라이 라마는 삶의 핵심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관점은 무엇이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드는지, 혹은 행복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다시 던지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물음에 대한 해답으로 달라이 라마는 관점을 ‘자기’에서 ‘우리’로 바꾸라고 제안한다.
“당신이 아무리 부자일지라도 사랑을 함께 나눌 인간 동료나 친구들이 없다면 고작 애완동물과 정을 나누는 신세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마음의 문제를 다루는 최고의 두 전문가는 우리가 고독을 느낄 때 그리고 우리에게 아픔이 있을 때, 그것을 진정으로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 바로 이 고독감이 현대 세계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그들은 공동체 의식의 결여가 온갖 문제를 만들어 내는 원인이라고 지적하면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단 하나의 강력한 진리를 제시한다.
“우리 모두는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는 단지 인간 존재이다. 모든 사람은 행복하기를 원한다, 바로 우리 자신처럼. “당신이 오랫동안 황량한 무인도에 좌초되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우연히 다른 인간 존재와 마주치게 된다면, 당신은 곧장 그 사람에게 친밀감을 느낄 것입니다. 설령 그가 당신과 아주 다르고 완전히 낯선 사람일지라도. 그때 인간 존재로서의 공동의 유대는 매우 분명해집니다.”
어떤 사람은 행복은 개인의 문제이며 사회문제들과 별개로 각자가 스스로 추구해야 한다고 믿는다. 또 어떤 사람은 행복은 사회적인 것과 맞물려 있기에 가난, 불평등, 편견, 정치적 억압 같은 조건들을 해소시키지 않으면 진정한 행복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달라이 라마와 커틀러는 다양한 접근을 통해 이 이분법적 구분을 깨려고 시도한다. 그들은 행복은 어느 한쪽이나 어느 한 가지 상황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 양쪽 모두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노력한다. 다시 말해 <당신은 행복한가>는 인간이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행복을 발견해 나갈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질문하게 만드는 중요한 책이다.
그는 위대한 분입니다. 나는 그를 사랑합니다. 우리 두 사람은 공히 위대한 장난꾸러기의 심성을 가졌습니다. 우리 속에는 언제나 밖으로 빠져나오려 하는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 속의 어린아이는 모든 것에 경탄합니다. 달라이 라마 또한 그러합니다. 그는 ‘성하’라는 타이틀을 지녔으며, 실제로 성스러운 분입니다. 그래서 특히 젊은이들은 성하의 이 같은 매력에 금세 이끌립니다. 그들은 진실하지 않은 사람과 쓸모없는 사람을 단번에 알아차립니다. 그들은 달라이 라마가 진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데즈먼드 투투(남아프리카공화국 대주교·1984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
분명 달라이 라마는 웃음의 달인이다. 우선 그는 모나리자형의 미소부터 콧등을 비틀면서 웃는 박장대소까지 모든 종류의 웃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그것도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닌 극히 자연스러운 웃음이다. 인상학을 오랫동안 연구한 어느 서양학자는 달라이 라마를 이렇게 평가한다. “그가 기쁠 때 그는 1백 퍼센트 기쁜 것이다. 그 감정을 불순하게 하는 다른 어떤 상념도 끼어들 수 없다.”
- 황필호(종교철학자, <황필호, 달라이 라마를 만나다>의 저자)
달라이 라마는 만나는 모든 사람을 진심으로 대한다. 그것이 그의 가장 큰 매력이다. 그가 정말 진실한 사람이라고 나는 느꼈다.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은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진부할 수 있는 이야기를 통해 나는 세상을 달리 보는 눈을 얻었다. 그가 늘 이야기하는 가장 진부하며 진실한 말은 바로 이것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모든 사람이 행복하기를 나는 바랍니다.”
-비탈리 만스키(러시아 영화감독, 달라이 라마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선라이즈 선셋> 연출)
평화를 얻는 방법은 바로 자신을 버리고 타인을 위해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 분노와 증오를 사랑과 자애로 녹여 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달라이 라마는 몇 차례나 따뜻한 마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은 일을 해라. 그러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 박원순, 달라이 라마와의 2010년 9월 1일 자 인터뷰에서
달라이 라마로부터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굳이 하나를 꼽자면 자비다. 다른 사람에 대한 무한한 친절, 그리고 지혜와 자비를 함께 수행하는 것의 중요함이다. 내게는 한때 공산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달라이 라마는 달랐다. 그는 “다른 사람과 무언가를 나누는 것은 좋은 생각”이라며, 공산주의에는 단점이 있지만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뜻밖이었다. 달라이 라마는 ‘공산주의자는 모두 악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버리도록 나를 설득했고,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을 이해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그는 내 생각의 균형을 잡아 주었다.
- 로버트 서먼(미국의 불교학자, 티베트 불교 승려가 된 최초의 서양인)
달라이 라마는 자신에게 특별한 영적인 힘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우리와 똑같은 문제를 겪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충동을 정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는 특별하다.
- <뉴욕타임스>
나는 한국과 관련된 달라이 라마의 공식 행사에서 통역을 맡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긴장하여 실수가 많았습니다. 두 번째 공식 행사 전 달라이 라마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중요한 내용을 직접 가르쳐 주시기도 했습니다. 가까이에서 본 달라이 라마는 한 점의 거짓도 없는 진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나’라는 굴레에 사로잡혀 나의 것, 나의 이익, 나의 주장을 내세웁니다. 하지만 그는 남을 먼저 배려하고 타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행합니다. 저는 복잡한 정치적 이해를 떠나 개개인에게 평화를 전하고 어떻게 사는 게 가치 있는 삶인지 일깨우는 것이 달라이 라마의 역할이라 믿고 있습니다.
- 박은정(달라이 라마의 공식 한국어 통역자)
달라이 라마를 인간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는 신이 아니라 그저 정신적으로 대단히 성숙한 분일 뿐입니다. 달라이 라마도 음식 없이 살 수 없고, 잠을 자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감정을 가진 인간입니다. 그분을 신비하고 특별한 사람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불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평등합니다. 우리는 불성을 어떻게 발전시켜 정신을 성숙시키느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 텐진 최겔 나리 린포체(달라이 라마의 막냇동생)
석 달을 걸어 카일라스를 순행하던 나는 어느 날, 천상계에 올라 불교의 많은 역사적 스승들을 만나는 신비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카일라스에서 돌아와 달라이 라마께 내 체험을 말하려고 하는데, 달라이 라마께서 먼저 그 이야기를 했다, 내가 말하기도 전에. “당신이 본 것은 꿈이 아니라 실제입니다.”라고. 기절할 듯이 놀란 나는 그때야 비로소 달라이 라마가 왜 환생한 존재인지를 확신했다. 그날 달라이 라마로부터 관정을 받고 마음의 길을 열었다. 그것은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였다.
- 청전 스님(달라이 라마의 제자, 다람살라에서 25년째 수행 중)
달라이 라마는 지금까지 내가 만나 온 이들 가운데 가장 단순하고 가장 복잡한 사람이다. 그는 예술가이자 농부이며, 우리 저마다가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로 우리를 데려간다. 완벽하게 단순명쾌한 달라이 라마의 말은 언제나 나를 꿰뚫는다. “나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그는 절대 가면을 쓰지 않는다. 그가 바로 달라이 라마다.
- 리처드 기어(미국의 영화배우)
<책속으로 추가>
“이 명상 수행에는 한 명의 친구, 한 명의 적, 한 명의 중립적인 사람을 시각화해서 상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그들 각자에 대해 마음이 평소처럼 반응하도록 내버려 둡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느껴지는 애착, 싫어하는 사람을 향한 적대감, 낯선 사람에 대한 무관심과 무감정을 관찰하면서. 그다음에 자신에게 묻습니다. ‘이 세 사람에게 나는 왜 다른 감정들을 느끼는가?’ 몇 가지 근거를 발견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친구는 당신을 위해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당신에게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당신은 그것이 정당한 근거인가, 합리적인 기준인가를 알기 위해 당신의 이성을 이용해 조사하고 분석합니다. 이런 식으로 분석하면서 당신은 한 사람을 친구라 부르고 다른 사람을 적이라 부르며 세 번째 사람에 대해 무관심한 이유와 근거가 영구적인 조건이 아니며 어느 순간에든 변할 수 있는 일시적인 것임을 발견할 것입니다. 친구가 당신에게 해를 입혀 적이 될 수도 있으며, 적이 당신에게 친절함을 보여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낯선 사람이 미래에 친구나 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명상할 때 당신은 그들 사이에 차별을 두고 심한 감정의 차이를 느낄 정당한 근거가 없음을 깨닫습니다. ‘친구’, ‘적’, ‘낯선 사람’이라는 호칭이나 이름표들은 덧없는 것이며 어느 때든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43∼144쪽)
“이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 본성의 근본적인 선함에 대한 깨달음이고, 그 깨달음에 바탕을 둔 행동이라는 것을. 그러한 깨달음이 표현되는 삶의 방식을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의 목적이고 목표입니다. 우리가 인간을 깨어나게 하려고 노력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본성이 긍정적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공동체의식, 타인에 대한 배려를 권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종교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단순히 철학의 문제도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182쪽)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시각 차이는 그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는가의 차이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적대적이고 폭력적이며 위험하다고 인식되는 인간 존재들로 채워진 세상인가, 아니면 본질적으로 친절하고 도움을 베풀고 다정한 사람들로 채워진 세상인가.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선함에 대한 깊은 깨달음은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줍니다. 개인 차원에서도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그러한 관점은 더 큰 행복과 타인과의 유대감을 갖는 데 도움이 됩니다.” (191쪽)
“두 번째 위험은, ‘악’의 꼬리표가 한 개인이나 집단에 붙여질 때, 그 사람이나 집단을 일종의 악마로 취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단 이런 인식이 뿌리내리면 비인간화의 과정이 발생합니다. 그들을 인간 이하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그 사람을 우리와 똑같은 인간 존재로 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공통된 기반을 잃게 됩니다. 그들은 인간 이하인 것입니다. 공통된 기반이 없다면 공감이 일어날 바탕이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그들에게 가하는 부당한 행동, 끔찍한 일, 잔혹 행위, 심지어 집단학살까지도 정당화시켜 줍니다.” (223쪽)
“삶은 때로 위험한 상황을 선물합니다. 그런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배울 때, 그 배움의 첫 번째 장소는 바로 우리의 기본적인 관점입니다. 삶은 결코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으며 위험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248쪽)
“타인들과 근본적인 인간 차원에서 관계를 맺으면 자유의 느낌이 있습니다. 그것이 마음의 문을 열어 주어, 다른 사람들에게 더 쉽게 가닿을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신뢰의 느낌이 있고 불안감이 사라집니다. 그런 차원에서 관계를 맺으면 다른 사람을 만날 때 굳이 서로를 소개할 필요가 없습니다. 처음 만날지라도 이미 그 사람을 알고 있다고 느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진정으로 낯선 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때 자연스런 공감 능력이 더 잘 표현될 것입니다. 그런 공감이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면 중 하나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인간 존재의 근본진리를 자각할 때 타인에게 자동적으로 공감과 친밀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 근본진리란, 나 자신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도 행복을 원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며, 행복을 추구할 똑같은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 다른 사람의 행복에 진심 어린 관심을 가지고 다가갈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자비입니다.” (425∼426쪽)
다람살라에서 오간 이 첫 번째 대화들에서 우리는 한 가지 주제에 도전했다. 어떻게 하면 삶의 방향을 ‘나’에게서 ‘우리’로 이동시킬 것인가가 그것이었다. 그로부터 채 일 년이 지나지 않아 나는 우리의 대화를 계속하기 위해 다시 다람살라로 향했다. 그사이에 9·11 테러가 일어났으며, 이것은 전 세계에 걸친 테러와의 전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단순히 ‘우리’로 방향을 돌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우리’가 있으면 ‘그들’도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기억하면서 우리는 이제 ‘우리와 맞서는 그들’이라는 고정된 사고방식이 일으키는 문제들에 맞닥뜨렸다. 편견, 의심, 무관심, 인종차별, 갈등, 폭력, 잔인성 등 인간이 서로를 대하는 온갖 추하고 끔찍한 태도들에. (30쪽)
“오늘날 세상에서 당신은 연결감과 결속감이 없는 공동체나 사회를 발견합니다. 그때 당신은 그곳을 지배하는 고독감을 봅니다. 나는 공동체의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당신이 아무리 부자일지라도 사랑을 함께 나눌 인간 동료나 친구들이 없다면 고작 애완동물과 정을 나누는 신세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그러나 가난한 공동체라 할지라도 그곳에서는 가난한 사람들끼리 서로의 정을 나눕니다. 그곳에는 일종의 닻이 내려져 있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하나의 정신적 닻이. 반면에 공동체의식이 없으면 당신이 고독할 때, 그리고 당신에게 아픔이 있을 때, 그것을 진정으로 함께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나는 이런 종류의 고독감이 어쩌면 오늘날 세계의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것이 개인의 나날의 행복에 분명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입니다.” (32∼33쪽)
“핵심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타인과 관계 맺을 때 우리를 서로 다르게 보이게 하는 것을 바탕으로 관계 맺는가, 아니면 우리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을 바탕으로 관계 맺는가? 이것이 근본적으로 우리가 타인과 분리감을 느끼는가, 아니면 타인에 대해 친밀감과 연결감을 느끼는가를 결정합니다.” (58쪽)
“방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티베트 어와 영어의 차이가 어쩌면 기본적인 관점의 차이를 설명해 줄지도 모릅니다. 티베트 어에서 ‘나’와 ‘나를’은 ‘아’입니다. 그리고 ‘우리’와 ‘우리를’은 ‘아초’입니다. 이와 같이 단어 자체로 놓고 보면 티베트 어는 개인으로서의 ‘나’와 집단으로서의 ‘우리’ 사이에 밀접한 연결이 있습니다. ‘우리’라는 뜻의 ‘아초’는 문자 그대로 ‘나의 집합’, 혹은 ‘많은 나’를 의미합니다. ‘수많은 나’와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당신이 더 큰 집단과 하나가 되고 그 집단의 일부가 될 때, 그것은 개인의 자아를 잃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아가 커지는 것과 같습니다. 반면에 영어의 ‘나’와 ‘우리’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두 단어의 뿌리가 다르고 연관이 없는 듯한데, 그걸 뭐라고 하죠?”
“어원학적인 것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어원학적으로 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따라서 ‘나인가 우리인가’에 대한 당신의 질문을 보면 서양에서는 ‘나’와 ‘우리’가 서로 대립하는 느낌이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집단과 일체화되거나 더 큰 집단의 일원이 되면 마치 개인의 정체성을 포기하거나 잃는 것처럼 여기는 것 같습니다.” (76∼77쪽)
“어떤 사람은 더 많은 교육을 받았으니 더 능력이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덜 교육을 받았을 것이며, 어떤 사람은 부유하고 어떤 사람은 가난하며, 어떤 사람은 외모가 뛰어나고 어떤 사람은 잘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큰 요소는 남아 있습니다. 그런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제나 서로에 대한 존경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인간의 존엄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 근본적인 차원에서 누구나 존경받을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103쪽)
첫댓글 달라이 라마 , 하워드 커틀러 지음 / 역자 류시화 옮김 / 역자평점 7.6 / 출판사 문학의숲 | 2012.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