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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의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던 나답과 아비후에게 있었던 일은, 실상 아래 본문에서 보면 어떤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그리 커 보이는 죄악이 아닌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고, 게다가 단 한 차례만 무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죽임까지 당한 사건은 그들에 있어 제사장이라는 위치나 상징성이나 상황 및 시대를 넘는 파급력 등이 고려되었을 테지만 어쨌든..
단순히 구약의 제사나 경배나 사역이나 신앙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죄가 얼마나 무섭고, 우리 인생들과 현실에 가까우며,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고, 어느 정도로까지 행하시는지를 잘 보여 주는 사례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약의 초대 교회 공동체에 있어서의 자신의 명의로 된 소유물을 하나님께 헌물로 온전히 드리기로 결단한 사안에 있어 그 땅 판값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한 날에 죽임당한 사건도 결코 다르지 않은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죄악들에 대해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다 아실뿐만 아니라 아주 민감하시며 많이 싫어하시고 심히 위험하게 여기시며 하나님의 시간과 계획과 섭리 안에서 그에 합당한 조치를 행하시는 것이며..
어떤 면에서는 다른 그 누구보다 아래 본문에서도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특별히 거룩하게 구별하시고 신앙의 앞자리에 세우시며 제사장 직분까지 맡기신 자들이라도 죄에서, 그로 인한 진노에서 자유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이고, 오히려 그러한 때, 그러한 자들에게는 더욱 더 엄격하심을 보여 주시는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실상 그러한 죄악과 그로 인한 진노, 심판에 있어서는 아담과 하와의 때나 노아의 때에도, 사실은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의 모든 때에도, 특히 초대 교회 공동체 때에서조차도, 무엇보다 오늘날 우리들에 있어서까지도, 더 나아가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도 본질적으로 조금도 다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곧 바꾸어 말하면 온 세상이, 모든 인류가 모든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구주 예수님의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러한 십자가의 목숨값 구원의 보혈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은혜요 감사이며 능력이자 복인지를 방증하는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에 대해서도 직간접적으로 내포하며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사실과 실제는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중요하지만 실상은 오랜 시간 동안 신앙 생활한 이들도 막연하거나 자신 없어 하거나 혼동되거나 멀어져 있거나 자신도 모르게 심히 왜곡되어 있기도 한 경우들도 많기에, 뿐만 아니라 그러면서 실제로 신앙이 변질되거나 이상해지기도 하고, 미지근해 지거나 세속화되기도 하며..
게다가 그와 함께 깨어 있고 살아 있으며 견고한 신앙은커녕 반대로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적지 아니 미혹되고 넘어지며 이단, 사이비들에 빠지기도 하는 실정과 현실인 것이기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리와 이치와 원리와 역사에 대해 결코 포기할 수 없으며, 그 어떤 시대와 세대들에 있어서도 소홀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반대로 강조하고 또 강조하며, 반복하고 또 반복하지 않을 수 없는 최우선이자 원초적인 교리이며 영역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실상 기회가 될 때마다 다루지 않을 수가 없고, 사실은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다루지 않으면 안 되는 사안과 영역인 것인데 어쨌든 종종 비유를 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기는 하나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면 그러한 삼위일체는 사람의 얼굴이 시간이나 공간, 상태나 환경 등에 한정되고 제한되는 것을 제외하면 그러한 얼굴과 참 유사한 면들이 많다고 볼 수 있는 것으로 사실 사람 얼굴의 눈, 코, 입이 서로 결코 분리될 수 없고, 그러면서도 전혀 섞이지 않고 철저히 역할이 다르며, 그렇지만 다름으로 인해 더 온전히 조화되고 전적으로 하나되어 한 얼굴이 되며, 실제로 한 얼굴로서 온전한 기능을 하듯이..
그와 마찬가지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도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에서, 2000년 교회사에서, 또한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에 있어서도, 심지어는 태초의 천지창조나 창세 전에도, 더 나아가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도 그러한 삼위일체라는 존재나 개념대로 언제나 함께 하시고, 잠시도, 단 한 번이라도 분리되시거나 별개이시거나 섞이시거나 변개가 될 수 없는 분이신 반면 오히려 반드시 함께 하시면서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실 뿐만 아니라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분인 것이며, 특히 구원의 일들을 이루시고 실제로 경험케 하시는 분인 것이고, 다시 한 번 더 말하면 사실 삼위일체라는 개념 자체가 바로 그러한 의미이자 존재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단순하게라는 전제 하에 말씀드리면 성부 하나님께서는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 상 천지만물의 주인이시고, 생사화복과 흥망성쇠와 희로애락의 주재자이시며, 선악 간 모든 심판주이시고,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시면서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며,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함께 하는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로 우리 인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창세 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경험케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분인 것이고, 진정 그러한 위치와 역할과 권한이신 것이며..
성자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님께서는 창세 전부터 당연히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함께 존재하시면서 진정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시간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을 뿐 아니라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고, 게다가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며, 심지어는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신 그 목숨값으로 십자가에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의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에 있어 필요한 모든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시면서 어떤 모양으로든 있을 수 있고 실제로 있게 되는 모든 구원의 일들을 다 이루신 구원자이신 것이고, 무엇보다 말씀을 우리 인생들에게 다 보이시며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를 친히 경험케 해 주심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에 있어 모든 부분들에 있어서 온전하고 완벽한 중보자이실 뿐 아니라 하늘과 이 세상, 하늘의 신령함과 우리 인생들의 연약함들, 모든 평화와 구원의 일들에 있어 길과 통로와 대문과 열쇠 등과 같은 접점의 위치이시자 역할이시며 권한이신 것이며..
성령 하나님께서도 당연히 창세 전에 처음부터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함께 존재하시면서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영으로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분인 것이며, 무엇보다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으로서 말씀을 이 세상에 기록되게 하심으로 인해 우리 인생들이 직접 접할 수 있게 하신 실제적, 경험적인 힘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그러한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말 알고 깨달으며 믿고 행하며 증거하고 경험하며 누리고 성취되게까지 하시는 분이고, 바로 그러한 위치와 역할과 권한이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태초의 무에서 유로의 천지창조 때만 하더라도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말씀으로 명하시면서 온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이고, 진정 직접적이고 실제적인 현상과 경험들에 있어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영으로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며,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수면을 운행하시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정말 말씀 그대로 나타내시고 성취되어 지게 하시며 실제로 경험이 될 수 있게 하신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따지고 보면 특히 그러한 무에서 유로의 천지창조는 일반적 은총으로 그 또한 어쨌든 거저인 은총이자 값없는 은혜인 것이기에 그에 있어서도 믿음으로 값없이 성경의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경험하게 됨에 있어서처럼, 특히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 대략 2000년이 지난 오늘 우리들까지 단지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에 실제로 참예하게 되고 하나님의 것이 되며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들로 거듭나게 됨에 있어서처럼 사실상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이시기에 우리 인생들과 세상의 입장에서는 믿음으로 인한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이, 심지어는 그 어떠한 인생들이든 모두 값없이 누리게 된 천지창조와 함께 하는 일반적인 은총을 위시한 모든 은혜들까지도 따지고 보면 모두가 값없는 은혜이자 공짜 같은 선물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결코 단 하나도, 단 한 번일지라도 거저나 공짜일 수가 없는 것이고, 만일 그렇게 하신다면 성경의 수많은 부분들, 사건들과 부딪히지 않을 수 없으며, 그 자체로 모순이자 혼동이며 불합치인 것이기에 반드시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일반 은총과 특별 은총과 같이 그 어떠한 값없는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등에 있어서도 그에 합당한 값과 대가가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지불되고 필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실상 모두 본질적으로는 같은 이치와 원리인 것으로 특히 그중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무에서 유로의 천지창조에 있어서도 온 세상과 모든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의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과 같이 다 이루신 구원과 결코 별개일 수 없는 것이고, 사실은 완전히, 전적으로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그러므로 근원적으로는 그러한 무에서 유로의 천지창조부터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으로 인한 역사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바로 그러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본질적으로 그렇듯 그 자체가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신 분이며 말씀대로 모든 일들을 하나하나 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이기에..
진정 그러한 하나님 앞에서의 죄라는 것은 나답과 아비후에서 알 수 있는 것이듯이 세상의 민법이나 형법을 어기는 정도가 아니라 절대 진리이자 완벽한 하나님의 법인 말씀을 어기는 것, 곧 모든 말씀들 중 하나라도 어기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잘 통찰해 보면 오늘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의 이렇게 많은 하나님의 말씀들이 모두 하나님의 법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그렇기에 육신으로나 눈으로 범한 죄들까지, 더 나아가 생각이나 마음으로 범한 죄들까지 모두 다 포함되는 영역인 것이기에 그것을 다 지킬 수 있는 인생이 없는 것이고, 꼭 원죄까지는 거론하지 않더라도 사실상 이 세상에 있어 모든 세대를 거쳐 그 자체로는 의인이 있을 수 없는 것이며..
오히려 반대로 다윗 같은 대단한 믿음의 선배도 머리털보다 많은 죄악들에 대해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예수님께서도 굳이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를 하신 것이며, 실상은 모든 인생들은 그 자신이 하나님을 알든 모르든, 하나님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지 간에 온 세상 천지만물, 모든 인생들의 주인이시고 주재이시며 기준이시고 선악 간 심판주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법, 말씀 앞에서 어기고 또 어기며 쌓이고 또 쌓이는 죄악들로 인해 그 누구라도 억만 죄인이 아닌 자들이 없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곧 처음에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다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가장 단순한 하나님의 말씀이자 법 앞에서 그것을 어김과 함께 죄가 처음 시작되고 에덴에서 쫓겨 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깨어진 것이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며 영적으로는 이미 죄악과 진노와 음부와 사탄과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가 된 것일 뿐 아니라 실상 모든 인생들마다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죄와 심판과 음부와 사탄이 득실대는 험한 세상에서 살면서 가면 갈수록 그 만큼 더 많고 다양해진 하나님의 법들 앞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살면서 결코 피할 수 없는 죄악들과 비참함들 가운데에서..
진정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 어떠한 인생이라도 그 스스로는 그러한 죄와 문제와 대가와 심판들을 단 하나라도 피하거나 해결하거나 예외가 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며, 진정 원죄를 거론하지는 않더라도 그 자체로는 모두 가 다 억만 죄인들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실상이라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오직 성자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님의 목숨값, 곧 온 세상과 온 우주, 모든 인류보다 더 크시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며,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이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의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의 구원에 믿음으로 참예케 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원론적으로, 그 자체로는 단 한 사람, 단 하나의 죄악에 있어서도 예외 없이 나답과 아비후처럼 어떤 식으로든 죄악에 대해 책임을 물으시며 심판하시고, 그러한 죄악의 모양과 정도와 강도에 따라, 또한 하나님 아버지의 시간과 계획과 섭리에 따라, 그리고 그 당사자의 영성과 그릇과 준비도 등에 따라 성령님께서는 어떻게 하시든 그러한 진노와 징계들, 심판과 형벌들도 실제가 되게 하시며, 좀 더 정확하게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 그대로 맛보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자 영적인 원리인 것이며,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현실인 것이고, 더 나아가 영원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세계인 것이며, 근본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 외에는 죄와 심판들에서 피하거나 극복하거나 최후 승리하거나 합력하여 선이 될 수 있는 다른 방법이나 경로가 있을 수 없는 것인데..
한 번 더 강조하면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모든 인생들마다 저마다의 무거운 짐과 멍에가 없을 수 없다는 것이며, 특히 그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그 예수님을 의지함이 없이는 이 세상에서의 다양한 모양의 진노와 심판들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심판과 형벌을 당하게 되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자명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한편으로는 구주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구원에 참예케 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범하게 되는 크고 작은 죄악들에 있어서는 그 의미와 개념과 실제 상 이미 하나님의 것이 되고 성령님의 실질적인 인치심이 되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으로 인해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뒤바뀌었고 영원까지 이어지게 된 면도 포함되며 인간의 행실에 따라 결코 결정될 수도 없는 구원이라는 것이 인간의 행실로 인해 중간에 구원이 취소되거나 또다시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있어서까지도 형벌, 영벌이 되는 것일 수는 없겠지만, 실상 만일 그렇게 행함에 따라 구원이 취소케 될 수 있는 개념인 것이고 죄악이 정말 구원을 중도에 돌이킬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면 모든 구원이 불안정해 지게 되고 구원이 취소되지 않게 되는 자는 이 세상에서 아무도 없을 것인데 ..
어쨌든 사실상 다윗이나 솔로몬, 모세, 요나, 베드로 등과 같은 믿음의 대선배들도 한 때이긴 했지만 크고 작은 죄악들을 범했고 그로 인해 결코 작지 않은 징계들을 당한 것들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듯이 현실적으로 오늘날도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 험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살면서 크고 작은 죄악들을 범하곤 하고, 여러 가지 모양의 죄악과 세속과 불신앙들 등으로 작지 아니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이 되기도 하는 실상들 속에서 분명한 것은 그에 있어서 결코 아무런 일이 없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며, 그러한 죄악의 모양이나 정도나 강도에 따라, 또한 하나님의 시간과 계획과 섭리에 따라, 그리고 그 당사자의 영성과 그릇과 준비도 등에 따라 모든 것을 감안하신 대가나 값들이 있게 되는데 참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비의 심정으로 더욱 사랑하셔서 라도 그 백성들이 그러한 죄악들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고 최대한 빨리 돌이키며 제대로 된 믿음에 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시간까지 그러한 죄악들에 대해 책임을 물으시고, 일정 시간까지 하늘의 힘과 은혜와 응답들을 막으시곤 하며, 더 나아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같은 징계들로 결코 작지 않은 시련과 곤고들, 때로는 수치와 비참함들까지도 맛보게 하시곤 한다는 사실을 늘 깨어서 기억하며 살피고 돌아보면서 각성하고 자복하며 싸우는 등과 같은 방법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가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절대적으로 다른 방법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기에 하루바삐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고..
특히 그 누구보다도 오늘날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모든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은 날마다 순간마다 내 힘과 세상적 방법들이 아닌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구하고 덧입으면서 죄악들과는 싸우고 범한 죄들은 더 늦기 전에 즉시로 회개하고 돌이키며,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더욱 말씀을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의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을 살아 있는 믿음이라 하고, 깨어 있는 신앙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특히 그로 인해 바로 그때에, 그러한 믿음 가운데, 본질적으로는 그 말씀의 신앙과 함께 말씀의 영으로서의 원래의 역할이시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섭리대로 죄로 인한 징계도 경험케 하시지만 그러나 실상 그 이상으로 말씀, 말씀의 신앙과 함께 능력과 복들을 직접적, 실제적으로 경험케 하시는 성령님이신데, 어찌됐든 무엇보다 성령님께서는 그 자체가 말씀의 영이시기에 그러한 말씀의 신앙, 말씀의 결단과 몸부림과 열정들과 함께 더욱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권능으로 충만케 될 수 있는 것이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성령님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 상 직접적으로는 말씀대로의 믿음과 함께, 특히 구주 예수님 이름에 약속되신 영이시기에 구주 예수님 이름의 기도와 선포와 함께 온갖 하늘의 힘과 은혜들, 은사와 응답들, 이적과 복들을 실제로 생각 이상, 상상 이상으로 누리고 경험케 하시는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말씀 그 자체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다른 면으로 보면 그와 같은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이 바로 이 땅 가운데 임해 있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인 것인데, 곧 그러한 하나님 나라라는 것 또한 본질적으로 절대 진리이자 완벽한 하나님의 법인 말씀이 모든 핵심이자 중심인 것으로 바로 그러한 말씀으로 통치하는 나라인 것이기에 당연히 그러한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또한 말씀의 사람, 말씀의 신앙과 함께 역동하고 강렬하게 되는 것으로 그러한 말씀대로의 믿음과 열정이 하나님 나라 역사의 실제와 경험들, 생생함과 강렬함들에 있어 본질이자 실체이며 열쇠인 것이고, 그 또한 마찬가지로 근원적으로는 말씀 그 자체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날 우리들은 모두 다 모든 삶의 자리들, 다양한 영역들에 있어서, 또한 날마다 순간마다에 있어서 나답과 아비후 같은 크고 작은 다양한 모양들의 비참함이나 징계냐, 아니면 성령님의 역사로 인한 하나님 나라, 에덴동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와 같은 하늘의 힘과 승리들, 은혜와 복들을 실제로 누리고 맛보면서 능력과 축복과 부흥의 통로가 되고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느냐는..
우리의 자유의지적 선택에 있어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음과 함께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 죄와 세속의 병든 신앙이 아닌 오직 말씀의 신앙, 다시 말해 말씀과 기도와 찬미로 무기 삼는 신앙, 곧 어느 정도로 말씀으로 인한 깨어 있고 살아 있으며 치열한 믿음이 될 수 있느냐와 생각 이상으로 깊이 직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하셨느니라 아론이 잠잠하니"(레10:1~3)
('페북두란노서원66'중에서 인용과 추가/밀알서원)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12월 11일(수)2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