켜켜이 쌓인 세월의 무게를 털어내고
황기 2602년 3월이라고 있고
우측으로는 일억일심이라는 글이 있지요
졸업기념 제 33회이고
공주본정공립 국민학교라고 나옵니다
황기라는 숫자는 일제가 쓰던 년도로
우리나라로는 단기 4275년이고
서력으로는 1942년이 됩니다
오천여년 역사를 지닌 나라가
스스로를 지키지 못 해
나라잃은 설움이 당시 졸업앨범에도
그대로 묻어 나옵니다
본정공립국민학교는
본정동에 있는 학교로
지금의 중동초등학교를 의미합니다
일억일심이란 말은
내선일체를 주장했던 일제가
왜인과 조선인들 일억명이 한마음이 되어
대동아공영권을 사수해 나가자는
비장한? 결의를 뜻하는 것이니
참으로 섬나라 일본인들의 속셈이
그대로 드러나는 글귀입니다
아래 사진은 대동아전쟁이 한창인때에
영국과 미국 함대를 섬멸했다는 기사를 내보내
자기네가 전쟁에 이기고 있다는 선전을 통하여
마지막 결전에 동참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정묘생이시므로 올해 여든 일곱되시는
우리절 신도 거사님께 부탁하여
켜켜이 쌓인 세월의 무게를 털어내고
당신의 서가에서 꺼내온 역사물입니다
보살님이 절에 오시면서 가져오신 앨범에는
또다른 앨범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1929년 공주고등 보통학교 제3회 졸업 앨범이니
거사님의 아버님께서 고등학교를 마치실때입니다.
29년도 앨범으로 보기에는 사진이 너무 선명하고
당시 1922년 개교한
공주고등학교와 공주시내의 전경등이
적나라하게 실려 있어서
공주의 역사와 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더할나위없이 좋은 자료가 될것입니다
당시에도 경주불국사로 여행을 가서
불국사와 석굴암 사진등이 실렸으니
일제치하에서 석굴암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살펴볼수 있는 좋은 자료라 생각합니다
나는 거사님께 앨범에 실린 사진을
공주를 이야기하는 자료로 사용해도 좋다는
승락을 얻었으므로
이미 자료를 가지고 계신 분들은 몰라도
그때의 정황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나 학교에서는
필요하시다면 사진을 찍어다가 자료로 사용하시도록
제공한 뒤에 거사님께 돌려드리려 합니다
당시에도 축구부 유도부 야구부가 있었는데
오늘날에도 야구부가 있어서 박찬호선수같은 이나
김경문감독같은 이들이 나오는것은
과거 선배들의 전통을 이어받은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시절의 학생들이지만
그 기상이나 패기만큼은 무엇이라도 해낼만큼
당당하고 의젓해보이니
과연 불굴의 의지를 지닌 대한의 남아라 할것입니다
고등학교 졸업앨범의 주인공이신 어른은
고등보통학교가 5년제였던 것으로 보면
18세 무렵이 될것이니1910년
한일 강제합병이 된해에 출생하신것으로 보입니다
오천년사에 가장 큰 비운의 시기요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될 역사지만
오늘날 우리가 그같은 아픔을 되돌아보고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갖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호시탐탐 한반도를 먹어보겠다고 노리는
일제의 야욕을
무력화하기 어려울것이라 생각되어
항상 경각심을 늦춰서는 안될때라 생각됩니다
해방과 독립이 된지 불과 일갑자를 지나면서
나라 잃은 설움이 아직 가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몸은 한국인이라고 하면서
머리는 일본인 앞잡이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어
일제가 한국 근대화에 기여했느니 운운하며
일제를 찬양하는데 일색이지만
이는 마치 불가에서 말하는
사자신중충이라 말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사자는 죽어도 백수의 왕인지라
다른 짐승들이 범접을 못하는데
다만 사자 몸속에서 생겨난 벌레들이
사자몸을 갉아 먹는다는 의미이니
우리들 속에서 자라고 있는 독버섯과 같은 존재인
즉 친일주의자들이나 뉴라이트 인사들이
국가 요소요소에 파고들어가 암암리에 주도해가는
국민 정신을 개조해보려는 움직임에
흔들려서는 안될것입니다
미국사람 믿지말고
소련사람에 속지 말며
일본사람 일어난다 라고
참설이 나돌던 대동아전쟁 이후의 일도
그들이 암암리에 우리나라 사람 머리에
최면처럼 심어놓은
일제의 재침략을 일컫는 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모두가 부처님 덕분입니다 나무석가모니불 ()()()
-원효사 심우실에서- (2013. 06. 24)
(글. 사진↓해월스님 ↑李海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