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이틀 앞둔 지난 일요일(23일),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의 지역구인 대구 서구의 한 미용실에서 들려온 소리다. 오는 12월 19일에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에 대한 이야기.
“그래. 언니는 누구 찍을라고요?”
한 손에는 파마약과 또 한 손에는 동그란 원통을 손에 든 미용실 원장님이 자리에 앉은 나이 지긋한 한 아주머니에게 묻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구에서만 50년을 산 토박이다.
“내? 나는 투표 안할라고”
“와예?”
“뭐 찍을 사람이 있어야지. 박근혜가 나왔으면 박근혜나 찍을라 그랬더만, 이명박이는 뭐 뉴스 보니까 이래저래 말이 많대”
그러자 앞서 한나라당 예찬론을 펼친 또 다른 아주머니가 한 소리를 늘어놓는다
“아이고, 그래도 한나라당 찍어야지. 한나라당 아이면 대구를 누가 살피주노”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고…….”
파마를 하며 자리에 앉은 아주머니는 금세 꼬리를 내리고 만다. 미용실 안에 있는 손님들은 모두 5명, 미용실 원장님을 합하면 6명이 된다. 미용실 안에 있는 6명을 대상으로 즉석 여론조사를 펼쳤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2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가 1표, 나머지는 기권이다. 우선 정동영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권모 아주머니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나도 한나라당이 되면 좋지만, 이명박이는 좀 얍삽하게 안 생깄나. 그에 비하면 정동영이는 인물이 훤하다 아이가”
관상학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 선거에서도 나름대로의 관상학이 선거의 중대변수로 작용할 것임을 암시하는 순간이었다.
그에 비해 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길 건너 대형 슈퍼집 아주머니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한다.
“정동영이 찍어서 누구 좋으라고? 전라도 놈들 좋으라고? 나는 그래 못한다. 그렇다고 이명박이 찍고 싶지도 않고…….”
슈퍼집 아주머니의 논리는 ‘이명박 후보를 선택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통합신당의 후보를 찍을 수도 없으니, 그냥 기권한다’는 간단한 논리다.
시장은 시장 나름대로의 논리
오후 5시를 넘은 해질녘의 시장이었지만, 여기저기서 울리는 경적소리와 장바구니를 움켜쥔 주부들을 부르는 호객행위 등 여느 재래시장과 다를 바 없는 대구 서문시장의 왁자지껄함이다. 대구 최대의 재래시장이라는 명성답게 입구에서부터 출구까지 약 2㎞의 시장 길이 발 디딜 틈도 없다.
아니나 다를까, 시장 구석에 위치한 ‘막걸리 한 병 천원’이라고 쓰인 선술집에는 일찍 장사를 마친 재래시장 상인들의 한풀이가 한창이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안주거리는 역시 대통령선거였다.
“어이 권 사장, 추석이 뭐 별거 있나. 팔면 파는 거고 못 팔면 못파는 거지. 그나저나 누가 대통령이 되던 먹고살게만 해줬으면 원이 없겠네”
이곳 시장에서는 작은 좌판을 벌이든, 상점을 가지고 있든 모두 사장으로 통했다. ‘권 사장’을 부른 상인은 ‘형님’으로 통했다.
“아이고 형님요. 그냥 이명박이 콱 찍으라 안 캅디까. 그래도 우리가 지 찍어주는데, 한나라당도 그렇고 이명박도 그렇고 남몰라라 그러겠습니까”
“야야. 우리가 속은 게 한 두 번이가? 옛날에는 김영삼이 찍어줬더만, 이래 만들었제. 이회창이 찍었디만, 되지도 못했제”
“나 참, 그러니까 더 찍어야 되는거 아닙니까”
요지는 ‘대구와 경북을 기반으로 하는 한나라당이기 때문에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준다면, 한나라당으로써는 배신하지는 못할 것이다’는게 시장상인의 논리였다.
동네의 조그마한 미용실에서부터 시장상인들, 그리고 집집마다 들려오는 연말 대선에 대한 대구지역의 민심은 ‘한나라당을 믿을 것이냐, 아니냐’로 정리되고 있었다.
유명한 영화 제목처럼 ‘미워도 다시 한 번 한나라당을 선택하자’는 입장에 대해, ‘누구를 찍어도 똑같으니, 차라리 기권하고 말자’는 논리가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 기자와 만난 대통합민주신당의 한 보좌관은 “이번 대선에서 대구지역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고전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며 “이에 비해, 범여권의 단일후보가 대선에 나선다면, 약 30%를 웃도는 득표율을 기록할 수도 있을 것이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