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여러분의 힘이 필요합니다

[이프]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의료사고에 관한 많은 글과 동영상들. 되도록이면 보고 넘어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볼 때마다 힘이 드는군요. 피해자인 환자 편에서 생각해 봐도 힘이들고,

가해자(?)인 의사 편에서 봐도 힘이 듭니다.

대부분의 의료사고의 본질은 사람이 죽었다는데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죽었답니다. 사람을 살려야 할 병원에서 사람이 죽었답니다.

비극은 바로 여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냉정히 말해서 의사들은 백번 죽어도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왜? 사람을 살리는 댓가로

부와 명예(점점 예전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지만)를 누리고 있는 그들이, 사람을

살려내지 못했거나, 혹은 죽였기 때문입니다.

위의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추간판 탈출증 수술을 받은 중년 여성이 사망했습니다.

그냥 척추 수술을 받으러 갔다가 심장이 멎어서 죽었다고 합니다.

그냥 척추 수술을 받으러 갔다가 숨이 가쁘고 심장이 멈춰서 죽다니...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현상일 것입니다.

정확히 현장에 있지 않았으므로 추측할 수 밖에는 없지만 저런 사고는 아주 없지는 않은

일입니다. 우리 몸의 혈액은 흐름이 차단 되거나 속도가 느려지면 굳어지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피부에 상처가 난 후 가만히 놔 두어도 피딱지가 생겨 저절로 지혈이 되는 원리입니다.

고인 물은 썩고, 고인 피는 굳는다고나 할까요.

더군다나 위의 여성은 당뇨가 있었다고 합니다. 당뇨는 혈액의 점성을 높이는 위험한 인자중

대표적인 것이지요.

또한 위의 여성은 추간판 탈출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심장은 우리의 몸 각 부분으로

혈액을 짜주는 펌프 역할을 하는데, 심장과 가장 멀리 떨어진 부분은 당연히 다리일 것입니다.

특히 동맥과 정맥 중 정맥은 심장의 힘이 미치지 못해 혈압이 낮은 혈관입니다. 그래서 다리

부분의 정맥은 다리 근육이 움직일 때마다 그 힘의 도움을 받아 혈류를 흐르게 하기도 합니다.

추간판 탈출증 수술과 같은 신경학적 수술을 하면 당분간은 침대에서 쉬어야하니 다리의 정맥혈은

당뇨로 인해 끈적끈적해 진 상태에서 움직이지도 못해 굳어버리기에 아주 좋은 조건을 갖추었을

것입니다. 물론 피가 굳는다고 해서 혈관 전체가 빡빡히 굳는 것은 아닙니다. 혈류 중에 떠돌아

다니는 피떡이 생기게 되는 것이지요.

이 피떡들이 혈류를 타고 온 몸을 돌아다니다가 폐 혈관에 가서 박히면 폐 색전증을 유발하기도

하고, 크기가 큰 것들은 심장의 혈류를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모두 수술 후 환자의 사망에 기여하는 중요한 위험인자들로 현대의학에서는

이를 예방하기 위해 고심을 거듭하고 있지만 때때로 발생되는 사고들은 어찌 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예방을 위해 환자에게 탄력 스타킹을 착용하게도 하고, 항응고제를 써서 피떡이 생기는 것을 막기위해

노력하기도 합니다.

위의 병원이 이러한 예방 조치, 또는 후속 조치를 했었는지 의문이 드는군요.

또, 수술하기 전 환자에게 설명과 동의의 절차를 거치게 되어 있는데 당연히 전신마취하에 행하는

수술이라면 위에서 말한 것들을 설명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피해자가 제공한 영상에는 이러한 내용들이 빠져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병원은 지탄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의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내년 1월 달이면 면허 시험을 치르는 예비의사로서 이러한 일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슬픈 음악과, 선정적인 문구를 동반한 동영상. 전문지식 없이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들. 그리고 위 동영상만 보아서는 환자와 보호자는 아무것도 몰랐다, 사전에 설명을 듣고 동의한 내용은 전혀 나와있지 않은 상황으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 이야기들.

실제로 요즘은 의료 소송이 많아져서 동의 없는 수술은 하지 않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병원이 아무런 사전 조치 없이 수술을 감행했고, 사람을 죽였고, 꼴랑 이천만원을 주고 오만하게 사태를 미봉하려 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위에서 말한 조치를 하지 않고 수술을 감행했고 그 결과에 대한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의사라고 부를 만한 가치조차 없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위의 조치를 모두 시행했다면, 이 이야기는 사건이 아닌 사고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고의 유무는 확률에 달린 문제이고, 신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의학은 불확실의 극치를 달리는 학문입니다. 교과서에는 온통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거나 연구가 수행중이다 라는 말이 씌여져 있습니다. 또한 의학은 확률의 학문입니다. 어떤 간단한 시술이나 수술도 백퍼센트 증세의 호전이나 질병의 완치를 가져올 수는 없는 것이 현대 의학의 수준입니다.

그리고 가장 치명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사실은 의료를 행하는 주체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소리지르고, 울고, 웃고, 떠들고, 실수하는 우리의 이웃들이 병원에 출근하여 가운을 입고, 수술복을 입고 의료를 행한다는 것입니다. 자동차 정비공에게는 실수가 허용 됩니다. 하지만 의사에게 실수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가 실수를 하는 순간 나 하나만 바라보고 수십년 고생해 오신 내 어머니가 죽고, 애지중지 금이야 옥이야 기르던 내 자식이 불구가 됩니다.

저는 의사들이 불쌍합니다. 내일 무슨 실수를 해서, 무슨 사고가 터져서 누구에게 어떤 피해를 줄 지 모르는 예비 범죄자들이 의사인 것만 같아서 그들이 불쌍합니다. 어떠한 실수도 범죄가 되어버리는 그들이 불쌍합니다. 물론 이것은 제가 의대생이기 때문에 드는 생각일 것입니다.

실제로 돈에만 눈이멀어 아득바득 살아가는 의사들도 많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도 금지옥엽 길러야 할 자식이 있을 것이고, 고향에서 소 팔아 의사 아들 만들었다고 자랑할 부모님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술을 행할 때 부터 이 환자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마음 먹은 의사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 하나만은 확신합니다.

위의 동영상이 어떤 부분을 강조했고, 어떤 부분을 생략했는지 저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선배의사들의 몇 퍼센트가 선량한 의사이고, 몇 퍼센트는 나쁜 의사인지도 역시 알 길이 없습니다.

또한 얼마만큼의 선량한 의사들이 자의건 타의건 간에 나쁜의사로 탈바꿈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의료 사고에 관한 법률 하나가 국회에 상정 중입니다.

법률의 내용은 "의료 사고 발생 시 환자와 의사간 의료 지식의 불평등을 고려해, 의사는 자신의 과실이 없음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법안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판결은 검사가 범인이 범인임을 입증했을 때 내려지게 됩니다. 그것이 이루어 지지 않는다면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고소가 기각됩니다. 그런데 법원은 지금 의사에게 스스로 범인이 아님을 입증해 내라고 합니다.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의 모든것이 걸려있는 병원과 환자들을 팽개치고 법원에 나가 범인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몸부림 쳐야 하는 상황이 가까운 시일내에 펼쳐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한가지, 의료사고의 입증을 하는 일은 환자의 몫도, 의사의 몫도 아닙니다. 그것은 의료사고를 담당한 검사나 변호사가 해야 할 일일 것일진대, 의료 소송에 대해 준비하기를 꺼려하는 법조계는 그 책임을 의사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병원의 문턱이 가장 낮은 나라중에 하나입니다. 동시에 수준 높은 의료 기술을 많은 국민에게 제공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명백한 의료 탄압형 국가이기도 합니다.

의사이기에, 억울하다는 말, 힘들다는 말은 해서는 안 됩니다.

나 하나만 바라보고 수십년 고생해 오신 내 어머니가 죽고, 애지중지 금이야 옥이야 기르던 내 자식이 불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두서 없이 적은 글이 꽤나 길어져 버렸습니다.

이런 하소연, 죄송합니다.

[Hara]

그 수술이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이유는 대체로 그런 것이군요. 덕분에 좀 이해.. 여튼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상, 주사위는 던져진거고, 오진과 실수를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만이 주어진 길일 듯.. 의사지망생이라면 말이죠. 반면 환자(이는 선택한 바는 아닌,)는 최선을 다해 오진과 실수가 없는 의료진과 병원을 찾아나서얄듯. 달리 방법이 없을 듯.. 사람이 완전하길 기대하는건 억측이므로. 이런저런걸 감안하더라도,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대충 공부해서 의사되어 뻔뻔하게 오진하고, 수술하고 하는 못말릴 의사들. 스스로 인정하지 않아 정말 여러 사람 죽어나죠.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