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내 곁에
정 우 민
‘내 사랑 내 곁에’는 1990년 11월 32세의 나이로 요절한 가수 김현식의 유작 앨범의 타이틀곡이다. 유난히 외로움을 많이 타던 김현식은 주체할 수 없는 음악열정과 현실에 대한 괴리감을 늘 술로 달랬다. 애절한 바이올린 반주 속에 피 토하듯 부르던 노래가 이 영화의 제목이다. 노래 제목을 영화로 만든 과거의 영화가 그러하듯 ‘신파’ 냄새가 물씬 풍긴다. (녹음이 잘 안 될 때는 깡 소주 한 병을 원 샷 하면 노래가 절로 나왔다던 김현식은 알려진 것과 달리 간암이 아닌 간경화로 사망하였다)
법학도이던 백종우(김명민 분)는 어느 날 루게릭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온몸이 서서히 마비되어간다. 루게릭병은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으로 전신근육의 진행성 마비와 위축을 특징으로 하는 신경계 퇴행성 질환으로서 운동신경세포가 파괴되면서 발병 후 수년 내 사망에 이르게 되는 질환으로 아직까지 최료 방법이 없는 난치성 신경질환이다. 미국에서 10만명 중에서 1명 꼴로 발병하고 있다. 이 병은 1930년대 미국의 유명한 야구선수 루게릭이 이 질환으로 사망하자 그를 기리기 위해 “루게릭병” 으로 명명되었다. 뉴욕 양키즈에서 강인한 체력으로 ‘철마’라 불리던 루게릭은 ALS로 진단 받고 37세에 갑자기 은퇴하고 2년 뒤 이 병으로 사망한다.
백종우를 보살펴 주던 유일한 혈육인 어머니가 화장실에서 일 보다가 갑자기 돌아가시게 된다. 어머니의 염을 하고 나오던 여자 장례지도사 지수(하지원 분)를 종우는 휠체어에 앉은 채로 우연히 만나게 된다. 지수와 종우는 과거에 한 동네에서 이웃사촌으로 지내던 사이였다. 지수는 의족을 차고 장의사를 하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요즘 유행하는 ‘무슨 무슨 상조’에 소속된 장례 지도사인 것이다.
잘 생긴 옛날 이웃 오빠에 갑자기(?) 반한 지수는 마지막까지 자신을 지켜 달라는 종우의 부탁을 끝까지 들어준다.
지수가 시체 닦는 일을 해서 지수의 손이 소름 끼친다하여 이미 두 번이나 이혼한 상태이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만나지 1년 뒤 결혼을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신혼 보금자리는 다름 아닌 병원이 되고 만다. 종우의 병은 점차 악화되고 사이비 침술에 희망을 걸었다가 그의 마비는 더욱 악화된다.
병이 진행될수록 감정 조절도 안 되는 종우는 지수가 아주 질리겠금 해서 그녀를 떠나 보내려 한다. 잠시 그를 떠났던 그녀는 그의 진심을 알고 다시
돌아 오지만 종우는 손가락 한 개만 움직이는 상태가 되다 완전한 언어 장애가 오고 마지막엔 눈동자외는 몸의 어떤 곳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 저주스런 병에 걸린 종우는 정신이 멀쩡하면서 자신의 몸이 하나씩 마비되어 가는 걸 지켜보다 결국은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다 세상을 떠난다. 지수는 남편의 싸늘한 시신을 곱게 염해서 보내준다.
이 영화에서는 신경계 중환자들이 모인 6인실 병동을 배경으로 다양한 형태의 가족애를 선보인다. 식물인간인 남편이 깨어나기만을 9년째 한결 같이 기다리는 노부인(남능미-최종률) 남편이 깨어나는 꿈을 꾸고 방송국 사람들을 다 부르고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기다리는 등 소동을 피웠지만 남편은 결코 깨어나지 않는다. 혼수상태에 빠진 아내를 지극정성 간호하는 남편(임하룡-임성민), 임하룡이 화장실 간 사이에 아내가 기적같이 잠시 깨어났다 다시 무의식에 빠져 화장실 간 자신을 땅을 치며 통곡한다. 잘 나가던 체조 선수였다가 경추손상으로 사지마비가 된 어린 딸 앞에서 눈물을 감추고 가슴으로 통곡하는 어머니(신신애-손가인) 가인은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가수인데 이 역할을 위하여 일부러 체중을 늘렸다고 한다. 껌 좀 씹은 듯한 싸가지 없는 반항 연기를 제대로 한다. 회사와 병원을 오가며 24시간 형을 뒷바라지하는 동생(임종윤-임형준) 등, 사연은 제 각각이지만 모두 자신의 삶을 희생한 채 환자 곁을 지키는 가족의 헌신적 사랑을 담은 모습들이 가감없이 펼쳐진다.
이 영화의 감독은 박진표 감독으로 ‘너는 내 운명’과 ‘그 놈 목소리’를
감독하였다. ‘너는 내 운명’에서는 에이즈에 걸린 아내에 대한 지극한 남편의 사랑을 보여줬고 ‘그 놈 목소리’에서는 유괴범에 아이를 빼앗긴 부모의 애끓는 심정을 보여주었다. 이 감독은 휴먼 스토리를 나름 잘 펼치는 것 같고 의사인 내가 봐도 의학적인 자문을 아주 철저히 받은 것을 영화 속에서 잘 알 수 있다.
주인공 김명민은 루게릭 환자가 되기 위해 20kg이나 감량을 하였다 한다.
실제 영화에서 그의 모습은 cachexia 그 지체였다. 벗은 몸으로 엎드린 장면에서 엉덩이 살이 전혀 없었다.
김명민의 ‘메소드 연기(method acting)'는 대단한 경지에 이른 것 같이 보인다. 메소드 연기란 연기자가 철저히 등장인물화 하되 자신의 연기 상태를 냉정히 판별하도록 훈련하는 것을 말한다. TV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인간적 고뇌에 가득한 장군 이순신을, 대학병원 외과 교실에서의 권력 암투와
위암 전문인 자신이 위암에 걸려 사망하는 ‘자이젠 고로’를 연기한 '하얀거탑'의 천재 의사 장준혁역을 맡았었다. 첼로를 하였다는 사실에 자부심만 가지고 전혀 연습하지 않는 아줌마에게 ‘똥덩어리’라고 비하한 유행어를 유행시킨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는 노력형 건방진 천재 지휘자 강마에를 연기하였다. 스스로를 지우고 극중 인물을 온전히 자기에게 덧씌우는 '메소드 연기'의 진수를 펼친 김명민은 감량의 후유증인지 요즘 텔레비전 광고에서 아직도 헬쓱한 모습 그대로이다.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사람은 농구팀 모비스의 코치였던 박승일씨이다.
루게릭 병에 걸려 눈동자 외에는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안구 마우스’로 쓴 처절한 투병일기 ‘눈으로 희망을 쓰다’가 그것이다.
같은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박사는 1942년생으로 21세 때에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었다니 무려 46년간 생존해 있는 셈이다. 남들은 짧으면 일 년, 길어야 오년을 넘기기 힘들다는데 이 사람은 어떻게 46년 동안이나 살아있는 걸까? 전혀 육체를 움직이지 못하고 오직‘생각’만 할 수 있는 그는 위대한 과학적 업적을 남겼다. 호킹의 생존은 기적중의 기적이다. 호킹박사 스스로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의 가장 큰 업적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다’.
추가:
1.영화의 배경이 된 부산 ‘고신 의료원’의 옥상에서 본 송도 앞바다에 정박된 배가 가득하다. ‘물 반 , 고기 반’이 아니고 ‘물 반 , 배 반’이라
장관이다.
2.영화 ‘박하사탕’에서 설경구의 마누라로 나와 운전교습강사와 바람피우다 현장에서 남편에게 잡히는 역할을 했던 ‘김여진’이 냉정한 여의사로 나온다. 김명민이 혀 깨물고 자살시도 후 살아 남았을 때 이렇게 말한다.
‘자살하려고 혀 깨물었나봐 근데 지도 죽는 게 무서웠는지 살살 깨물었네 귀엽게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