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기술부는 '2009 개정교육과정' 도입에 따라 2014년까지 전국 모든 중·고등학교에 교과교실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인천시교육청도 특수목적고등학교나 특성화고등학교, 소규모 학교 등을 제외한 대다수 중·고등학교에 교과교실제를 운영할 예정이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교과교실제를 도입할 환경이 아직 덜 갖춰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교과교실제 추진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앞서 교과교실제를 도입한 학교 교사와 학생,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통해 교과교실제의 장·단점을 짚어보았다.
선택 교과목에 맞는 교실 찾아가 수강... '학생 중심의 수업' 취지
교과교실제는 '2009 개정교육과정'에 따라 수요자(=학생·학부모)의 선택과 수준별 맞춤 학습을 중심으로 추진하는 제도로 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한다. 기존에는 교사가 교실에 들어와 수업을 했다면, 교과교실제는 대학처럼 학생들이 자신이 선택한 교과목에 맞는 교실을 찾아가 수업을 듣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실마다 해당 교과목의 특성에 맞는 각종 학습 교구와 기자재를 갖춰야하고, 수업시간도 50분에 10분 쉬는 것이 아니라 90~100분의 블록타임제로 운영된다. 교사는 강의 위주의 수업보다는 모둠별 토론이나 탐구, 프로젝트 활동 등 학생 중심의 수업을 해야 한다. 영어나 수학 과목의 경우는 학생 수준에 따라 수준별 교실을 개설해 운영한다.
교과교실제는 선진형 학교와 과목중점형 학교로 나뉜다. 선진형 학교는 모든 과목을 교과교실제로 운영하는 학교이고, 과목중점형 학교는 일부 과목만 교과교실제로 운영하는 학교이다.
학교장이 학교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한 후 신청서를 제출하면 시교육청이 현장 실사를 거쳐 선정한다. 선정된 학교는 그 해 교실 증축비나 기자재비 등 예산 4억~15억 원을 교과부로부터 지원받아 교과교실제를 위한 시설을 구축하고 이듬해에 운영을 시작한다. 기간제교사나 시간 강사, 행정보조 요원 채용 등을 위한 운영비를 선진형은 1억 5000만 원, 과목중점형은 7000만 원을 지원받는다. 과목중점형 학교는 3년 동안 교육과정을 운영한 뒤 선진형으로 전환할 수 있다.
2012년 현재 인천에서 교과교실제를 운영하는 학교는 선진형 15곳, 과목중점형 65곳이다. 2012년에는 과목중점형에서 선진형으로 전환한 학교 1곳을 포함해 7곳이 선진형 학교로, 29곳이 과목중점형 학교로 지정돼 시설 구축을 마쳤다. 2013년에는 선진형(전환 포함) 27곳, 과목중점형 43곳이 시설 구축을 준비 중이다.
부평에선 산곡·진산·부개·상정·부흥·영선고등학교가 과목중점형 학교로 운영 중이며, 부광·부광여·세일고와 부일여·부평서·부흥·산곡남·산곡여·산곡·상정중학교가 지난해 과목중점형 학교 시설 구축을 마치고 올해부터 운영할 예정이다.
"공부해야겠다"는 동기 부여... 우열반 형식, 선택권 없어
단순히 교과교실제의 목적만을 보면,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에 따라 듣고 싶은 과목을 수강하고 자신의 수준에 맞는 교실을 선택해 수업을 들을 수 있는 데다 강의식 위주의 수업보다는 토론이나 탐구 수업을 많이 할 수 있어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을 바꿔낼 수 있는 좋은 취지로 보인다.
하지만 학교 현장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애초의 취지에 맞지 않게 우열반 형식으로 편법 운영되는 학교도 있고, 교사들의 준비가 미흡한 점 등,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선진형 학교로 운영 중인 연수구 한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은 <부평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동기를 유발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우열반 형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어·수학·영어·과학 과목을 성적에 따라 상·중·하반으로 나눠서 수업을 들어요. 선생님들이 수준에 맞게 수업을 진행해 주시니까 편하고,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겨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한테는 선택권이 전혀 없어요. 그냥 성적대로 반을 나누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미 과목이 다 정해져있다 보니 강제로 들어야하는 겁니다.
그리고 어느 반에 가는지 친구들이 알기 때문에 많이 불편해요. '하' 반에 있는 애들을 친구들이 막 놀리는 경우도 있고요. 기말고사나 중간고사를 보고 성적이 오르면 '상' 반으로 갈 수도 있지만 그런 친구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하' 반은 너무 떠들고 시끄러워서 수업 분위기가 안 좋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공부 못한다고 죄인 취급 받는 그런 기분이 든다고도 하고요."
과목중점형 학교로 운영 중인 부평구 소재 중학교의 한 학부모는 "아이가 성적에 따라 '상' 반과 '하' 반으로 나눠 우열반처럼 수업을 진행한다고 한다"며 "애초의 취지는 그렇지 않을 텐데, 학교에서 이를 악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블록타임제로 다양한 수준별 수업 가능...학생생활지도는 어려워
반면, 부평구 소재 과목중점형 고등학교의 한 교사는 "영어를 상·중상·중하·하반으로 나눠서 4개 교실에서 수업하고 있는데, 영어는 기초 지식이 없으면 다음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서 수준별로 진행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며 "학생들의 호응도 좋다"고 말했다.
이어 "경시대회나 영어팝송대회로 학생들의 흥미를 높이기도 하고, 교실 당 학생 수도 적고 전용 교실에서 블록타임제로 다양한 방식의 수업을 하니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 방식을 벗어나는 수업이 된다. 수업을 할 수 있는 좋은 시설은 갖춰졌지만 학생들의 영어 성적이 오르는데 기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남구 소재 선진형 고등학교의 교사는 "블록타임제 수업이라 강의식 수업을 지양하고 토론식 수업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좋은 점은 분명히 있다"며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주기는 하지만, 들을 수 있는 과목이 많지 않다보니 선택권은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교사의 준비 정도가 문제인데, 교과교실제에 맞게 준비를 열심히 하는 교사들도 있지만 옛날 방식을 추구하는 교사들도 있고 이로 인해 괴로워하는 교사들도 있다"며 "수업을 하다보면 중간에 강의가 비는 시간이 생기는데, 이럴 때는 학생들이 전부 자율학습을 해야 된다. 학생 휴게 시설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울러 "반 개념이 많이 사라져 학생 생활지도에 어려움을 느끼는 교사들도 많다"며 "교과교실제가 취지는 좋지만 현장에서 운영하면서 나타나는 문제점도 많다. 하지만 운영하는 학교들에서는 이런 문제점은 되도록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점이 문제인 것 같다.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좀 더 내실 있게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천시교육청 교육과정기획과 담당자는 "지난해 5월과 10월 운영 학교들을 파악한 결과, 교사들이 새로운 수업 방법의 시도와 생활지도에 어려움을 느끼고, 학생들은 가방을 메고 교실을 찾아 이동하는 것에 피곤하다는 반응을 보였다"며 "교과교실제의 성공적인 연착륙을 위해 업무 인력을 보강하고 운영 학교 컨설팅 지원에 적극 주력할 방침이다. 또한 지원 영역을 시설, 교육과정(수업개선), 생활지도, 학교 운영 등으로 구분하고 영역별 컨설턴트를 확보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