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정평' 교육부장을 역임하신 배용한 선생님의 장문의 편지글입니다. 반백일에 가깝도록 노숙하시면서 어려운 합의를 이끌어내신 노고에 존경의 뜻을 담아 경의를 표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김헌택 제준 이냐시오 올림.
*6월 9일 이서를 떠납니다*
4월 23일, 여린 연둣빛 새순이 온 산을 물들이고 있을 때 이서로 왔습니다. 수위실 앞에 의자 놓고 한 사람은 앉을만하던 그늘이 오늘 보니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들에는 모내기가 끝나가고 저녁이면 개구리가 울어댑니다. 산은 온통 초록색이 진합니다. 언덕을 붉게 물들이던 복숭아나무는 살구 만한 열매를 달고 있습니다.
6월 9일, 48일간의 농성을 끝내고 조금의 아쉬움을 남긴 채 이서를 떠납니다. 그 동안 함께 해주신 모든 동지들께 깊이 감사 드립니다. 이 투쟁의 성과와 함께 길이 기억될 동지들을 생각합니다.
임기 내내 이 투쟁을 한 시도 놓지 않고 2년 간이나 이끌어오신 이찬교 전 지부장과 집행부 동지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오늘의 성과는 없었을 것입니다. 네이스 투쟁으로 짬을 낼 수 없을 듯 했던 원영만 위원장과 이상덕 사립위원장과 본부 동지들의 관심과 지도와 격려와 협조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대구지부의 장명재 지부장과 김윤종 사립위원장을 비롯한 대구지부 조합원 동지여러분은 우리 지부 어떤 조합원에 못지 않았습니다. 이 투쟁 성과의 절반은 대구지부의 몫이라 하여도 아깝지 않을 만했습니다. 경기도 하남 경도건설 앞에서 집회를 개최하였던 경기지부와 서울지부 동지들과 경남지부 등 전국에서 보내주신 관심과 격려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연대 단체 동지들의 사랑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다섯 시간을 달려 농성장에 방문하신 울진지회 조합원을 비롯하여 연일 농성장 방문과 집회 참석, 사이버 시위에 참여하고 정성을 다해서 이 투쟁에 함께하신 자랑스런 경북지부 각 지회 지회장님과 모든 조합원 동지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이 투쟁의 성과는 온전히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투쟁의 중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던 여덟 이서조합원의 노고에 대하여 힘찬 박수를 보내주실 것을 청합니다. 이들은 48일 농성 중에 낮에는 수업을 하며 학생들을 만나고, 저녁에는 마을로 나가 학부모를 만나고, 졸업생을 만났습니다.
이서학교 학생들은 스물네 시간 내내 수용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학부모들에게는 오직 자녀의 대학진학만이 유일한 목적이었습니다. 졸업생들에게는 다른 학교의 졸업생 만한 애교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지역에는 연대할 만한 단체 하나 없었습니다. 학교 안에서 우리 조합원은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싸움에 힘이 될만한 조건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감독청인 경상북도교육청은 뒷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교육위원회, 지방의회, 국회 어디 하나 비빌 언덕이 없었습니다. 재단 측 인사라는 사람들과는 대화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재단의 법적 대표자와 실권을 가진 이가 다릅니다.
절벽 같기도 하고 낭떠러지 같기도 한 길을 걸으며 어려워하기도 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험난한 긴 터널을 지나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절망의 늪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학부모를 설득했습니다. 그들을 투쟁의 주체로 설 수 있게 했습니다. 졸업생들이 움직였습니다. 남아 있던 교사들이 재단 퇴진을 외쳤습니다. 경상북도의회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경상북도교육청이 조사를 하고 감사를 했습니다. 공동대책위원회의 이름으로 대구경북 지역의 노동자, 농민, 학부모, 시민 단체가 함께 하였습니다. 학생들과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 그들이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투쟁기간 내내 우리는 이 싸움을 상승시켜왔습니다. 우리는 이 투쟁에서 꾸준히 작은 희망을 만들어 왔습니다. 작은 변화를 만들어 내고 우리가 싸움을 이끌었습니다.
짧지 않은 48일 간 교무실 바닥에서, 수위실 앞 천막에서 잠을 자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학부모가 교무실에서 우리 선생님을 끌어내는 상황을 목도하기도 했습니다. 눈물 바다가 된 스승의 날 행사도 있었습니다.
이제 미흡하나마 재단과 합의에 이르렀습니다. 두 해직교사의 복직과 여섯 조합원의 징계를 취소했습니다. 관련자의 사과와 재발 방지, 조합활동 보장 등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책임 있는 관련자의 책임을 묻게 했습니다. 이사 두 사람을 물러나게 했습니다. 징계위원회와 인사위원회에 관한 약속도 있었습니다.
우리 이서투쟁은 사립학교 투쟁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고 자부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경북지부 조합원 동지 여러분은 네이스 투쟁과 이서투쟁을 동시에 훌륭히 수행해왔습니다.
그러나, 이 싸움은 결코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서 동산에 진정한 학교민주화를 이루고, 학생들과 더불어 참교육의 꽃을 피워야 할 것입니다. 그 길은 아주 먼길일 것입니다. 지나온 길보다 더욱 험난할 길일 수도 있습니다. 이 길을 우리 이서조합원들은 당당히 갈 것입니다.
이서투쟁에서 우리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바는 사립학교법 개정입니다. 사립학교 교육을 올바로 세울 수 있기 위해서는 사립학교법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 밤 잠 못 이루고 있을 여덟 이서 조합원을 다시 생각합니다. 얼마 만인지 모르지만 집에서 다리 펴고 편히 잠들기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