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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중정요원 "최종길교수 고문받다 죽어" 최초의 양심선언, "사체 떨어트려 자살로 조작"
'유럽거점 간첩단 사건'과 관련, 1973년 10월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도중 피살의혹을 받아온 고 최종길 서울법대 교수의 유족들이 국가와 중정 주무 수사관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당시 최 교수 수사를 맡았던 중정 요원이 사망은폐 사실을 처음으로 법정에서 증언했다.
전 중정요원 "중정 발표는 조작된 것"
17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3부(재판장 이혁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재판에서 당시 중정 제5국 공작과장 안모(75)씨는 "최 교수는 간첩이라고 자백한 적이 없고, 간첩임을 자백하고 투신자살했다는 중정 발표는 조작된 것"이라고 증언했다.
안씨는 "중정은 간첩사건을 조사할 때 통상 고문을 가했고 고문을 받고도 자백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며 "최 교수 주무 수사관인 차모씨가 욕을 하며 `사실대로 불라'고 소리칠 때마다 최교수가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내는 것을 옆방에서 선잠을 자며 모두 들었다"고 말했다.
안씨는 "당시 수사계장이던 김모씨는 최 교수가 죽은 뒤 비상계단 앞에서 두 손으로 밀치는 시늉을 하며 `최 교수를 여기서 밀어버렸다'고 말했을 때 주무 수사관인 차씨가 밀었을 거라고 직감했다"고 말했다.
안씨는 "88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진정으로 재수사가 시작되자 당시 수사관들이 모여 말을 맞춘 뒤 서울지검 조사를 받았다"며 "최 교수와 유족들에게 너무 죄송하고 지금이라도 진실이 밝혀져서 최 교수와 가족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그분들이 조금이라도 위로받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고 말했다.
최 교수 조카 손모씨는 "큰 외삼촌(최교수의 형)은 외삼촌이 돌아가신 뒤 직장을 나와 30년째 신경안정제를 복용하다 얼마전 정신병원에 입원했으며 당시 중정 감찰실 직원이었던 막내 외삼촌(최교수의 동생)은 자신이 형을 중정에 직접 안내했다는 사실로 심한 정신적 고통과 양심의 가책을 받아왔다"고 말했다.
최 교수 사건을 최초로 폭로했던 함세웅 신부는 "최 교수 미망인은 워싱턴 포스트 기자가 최교수 타살의혹에 관한 인터뷰를 위해 찾아왔을 때도 집 앞 골목을 지키던 중정 요원들 때문에 문조차 열지 못하고 돌아가달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울분 때문에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며 "이 비극과 상처를 치료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이웃을 외면한 불의 정권의 공범일 뿐"이라고 말했다.
의문사지낭조사위 "타살 확실"
이에 앞서 지난 2002년 5월27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는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17개월간 조사한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의 진상규명 결과를 발표하면서 최교수는 타살된 게 분명하다고 밝혔었다.
진상규명위는 "최 교수가 간첩 사실을 자백했다는 당시 중정 발표가 거짓"임을 지적하면서 "최 교수는 중정의 고문과 협박 등 불법 수사에도 불구하고 강요된 진술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권위주의적 공권력 행사에 순응하지 않음으로써 소극적으로 저항하는 행위 또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한 활동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는 만큼 최 교수의 죽음은 민주화 운동과 관련이 있다"고 발표했다.
진상규명위는 또 "특히 최 교수의 경우 사망 이후에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켜 유신반대 등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근거가 됐던 점을 감안해 보면 최 교수의 저항은 민주헌정질서를 확립하고 국민의 자유권리를 신장시킨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덧붙였다.
김하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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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2004-03-18 09: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