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거리>와 삼막사 ‘마애불’
1. 중앙일보에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알리는 기획기사가 연재 중이다. 그 중에는 서울대 주변 ‘녹두거리’의 쇠퇴를 알리는 내용도 실려 있다. 갑자기 그곳을 가고 싶었다. 서울대 주변을 가끔 방문했지만 녹두거리를 특정해서 걸을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관악구에서도 ‘녹두거리’ 안내간판을 걸고 관광 상품화하고 있는 듯했다. 녹두거리 맞은편에는 나의 모교인 ‘신림중학교’도 있다. 비록 과거 70년대 내가 다니던 장소와는 다른 곳이지만 말이다.
2. 녹두거리는 초입 부분에 상점들이 몰려있고 연이어 이어지는 언덕길에는 원룸촌이 빼곡이 자리잡고 있다. 과거 산동네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1980년대 이곳은 해방과 저항의 뜨거운 움직임이 넘실대던 장소였다. 학생 시위 후 숨어들던 곳이며, 새로운 미래에 대한 뜨거운 토론이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80년대 학생운동의 대표적인 장소 중에서 그나마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는 곳이 이 곳이다. 연세대와 신촌사거리는 상투적인 상업적 모습으로 바뀐지 오래이며, 고려대 앞은 외국인을 위한 숙소와 판매점이 장악하고 있다. 녹두거리 또한 과거와는 달라졌지만 기본적인 공간의 형태가 그대로여서인지 과거의 향취는 남아있었다.
3. 80년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는 <그날이 오면>이라는 사회과학 서점이다. 이 또한 과거의 장소에서 조금 이동했지만 80년대의 기억을 담고 있는 유일한 장소일 듯싶다. 서점 안에는 일반 서점에서 보기 어려운 사회과학 서적이 빼곡하게 꽂혀있다. 사회과학, 그중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은 변혁의 세계를 꿈꾸던 젊은이들의 필독서였다. 현재와는 다른 세계, 인간의 진정한 자유를 성취하는 유토피아적 이상에 대한 욕망을 책을 통해 습득했고 실천했던 것이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사회과학’ 서적은 시대의 통찰을 잃고 거대담론의 논쟁은 사라져갔다. 기본적인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고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하자, 세계는 복잡하고 미묘한 갈등으로 적과 친구의 경계가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그 이후 인간들의 추악한 욕망을 둘러싼 정치논쟁과 인정투쟁 만이 확산되었을 뿐이다. 서점을 둘러본 후, 책 한 권을 골라 계산했다. 가끔 이 곳에 들르는 것도 괜찮을 것같다. 분명 다른 분위기의 책들을 만나는 경험을 만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돌을 찾는 여정>
4. 서울대 주변은 ‘관악산’이 있어 언제든 기분좋게 방문할 수 있는 장소이다. 오늘은 삼막사 코스로 이동했다. 길이 평이하고 거리가 멀지 않아(관악산 입구에서 약 4km 정도) 가볍지만 충분한 운동이 되는 코스였다. 삼막사는 익숙했지만 실제로 방문한 적은 없다. 삼막사에서 예기치 못한 즐거움을 얻었다. ‘돌을 찾는 여정’을 만났기 때문이다. 삼막사 입구에서 약 500m 계단을 따라 걷다보면 작은 전각이 나타나고 그 안에는 마애삼존불이 안치되어 있었다. 조선 영조 때 만들어졌다는 마애불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얼굴로 반겨주었다. 본존불인 치성광여래의 얼굴은 넓적하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가벼운 미소를 띠고 있다. 옆에 있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 또한 옅은 미소를 보이며 전각을 방문한 여행객을 반겨준다. 이 삼존불은 무속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통 불화로 제작된 경우가 많지만 삼학사 삼존불은 특이하게도 마애불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위엄과 권위보다는 부드러움과 소박함으로 등장한 마애불을 본다. 이 또한 이곳을 방문할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관악산과 삼성산은 익숙한 장소이다. 그럼에도 삼막사는 새로운 장소로 나에게 다가온다. 그렇게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은 문뜩 등장하는 것이다. ‘녹두거리’도, ‘삼막사 마애불’도 일년에 한 번씩은 방문하고 싶다. 신림 전철역 주변의 혼잡함과 몰개성에 조금 실망했었는데, 다른 신림의 장소를 발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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