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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국가 대발해(大渤海) 해동성국(海東盛國)
慶 山 養 賢 會 渤 海 마 을 頌 岩 太 在 旭
목 차 (目 次 )
1. 序 論
2. 本 論
1). 발해사(渤海史)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가. 태(太)씨의 뿌리
나. 발해 그 후 역사 속에 사라지다
다. 세자 대광현(大光顯)의 고려 래투
라. 대(大)씨 에서 태(太)씨로 바뀐연유
마. 태(太)를 빛낸 사람들
바. 발해(渤海) 고황제(高皇帝)의 표준영정(標準影幀) 제작과정
사. 고구려(高句麗)와 발해(渤海)인의 후손 한국인(韓國人)
2). 고황전(古皇殿)에 봉안(奉安)된 고(古) 황제(皇帝)님의 위패(位牌) 순위
가. 위치와 배열
나. 종훈(宗訓)
다. 가훈(家訓)
3. 結 論
1.서 론 (序 論)
어느날 선조님들의 고문서를 뒤적거리다 四書를 발견하고 그중에서 周易書을 보는 순간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얼마나 탐독 하셨는지 흔적이 뚜렷하여 나도 해봐야지 하고 책을 펴 보았으나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혼자서 고민하든중 어느날 컴퓨터를 열다보니 서기 2013년 9월 부터 경산 정보 센타에서 주역을 배울수 있음을 알게되어 그때부터 열심히 배우기 시작했다 이제겨우 초보 단계이지만 선천시대(先天時代)와 후천시대(后天時代)를 보고 자아 발견을 하기 시작하였고 후천시대를 살아가야할 " 나 " 라는 겄을 알기 시작했다 나 를 중심에 놓고볼때 위로는 부모 조부모 증조 고조 수많은 선조님 이렇게 계속 올라가보면 조물주 즉 창조주가 있을겄이고 아래로는 자녀 손자녀로 해서 후손들이 계속 이어저 나갈겄이고 양옆으로는 형제 자매 전세계 이웃들이 있을겄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자기를 위해서 살고 있지만 진정 자기를 위하여 사는길이 무었인가를 착각하고 살고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후천시대를 맞이하여 살아가야할 우리는 " 나 "를 놓고 볼때
조물주.(창조주)
조상
부모
세계만인.국민. 형제 나 국가. 세계.만물 우주.
자녀
손자 손녀
후손.
"위"하여 사는 "나" 자기를 가장 위하는 겄이 내이웃과 이나라와 이세상 모든사람 나아가 나라와 지구 우주 만물을 사랑하고 위 하는 맘으로 사는 겄이 가장 자기를 위하여 사는 길이라는것을 알고 악으로는 성공할수 업다는 겄이 증명되는 보이는세상이 오고있기에 이세상 모든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어 사는 세상 이 아름다운 금수강산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는것이 가장 자기를 위하여 사는길이라는겄을 지해로서 깨우처야할때가 바로 후천 시대를 맞이하여 해야할 우리 모든 사람들의 책임 분담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이미 지상 천국이 다 이루워저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살뿐이다 .해서 무지가 가장 큰 죄라고 하는것이다.
차제에 오직 국가와 민족많을 위해 통치해온 해동 성국 대 발해 역사를 알리고자 함이첫째이고
둘째로는 발해는 원래 우리말 발(足) 과 해(太陽) 의 뜻으로 단군 조선 시대의 동이족(東夷族)을 지칭하는 말로 해의 발 이란 뜻이다.
작금 중국에서 동북공정 미명아래 고구려와 발해를 자기네 역사로 탈바꿈하기위해 발해 유적을 대대적으로 발굴하여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 하려 하고있다. 발해 3대 문황제의 넷째 정효공주 묘와 둘째 정혜공주 묘를 발굴 하다보니 발해의 황제 칭호가 나오고 감히 밝히지 못할내용들이 솓아저 나오자 이것을 숨기기 위해 비밀리에 발굴하고 있으며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철저히 보안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발해국은 독자적인 국가로 (698ㅡ926) 231년간 15대를 황제국으로 지금의 중국에서 해동성국 이라 불리울 많큼 대제국 이었으며 二대문황제때 당나라와 전쟁을 선포 한 것을 보아서도 알수있듯이 강한 대제국 이었음을 알리고 오늘날 이땅(대한 민국) 에서 그 후손들이 대를이어 뿌리내려 살고 있음을 만 천하에 알리고 중국의 만행을 더이상 볼수가 없어 중단 시키고자 함이다.
2. 본 론 (本 論)
1) 발해사(渤海史) 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가. 태(太)씨의 뿌리
우리나라 태씨는 조선중기 태두남(太斗南) 서암(西庵)공께서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함에 자신을 기약하고 허백당(虛白堂) 김양진
(金楊震) 의 문하에서 대의(大義)를 통달 하였고 27세때 생원과 진사에 합격 하시어 후로 형조좌랑 개령현감 경상도사 사도시(司導侍)에점정과 성균관 사예(司藝)와 전라도 암행어사에 제수 되셨고 서울로 돌아와서 사헌부 장령이 되셨다 그뒤 남원과 선산의 부사에 제수 되셨다 다시 들어와서 성균관 직관과 사점시의 정이 되셨다가 통훈대부 사헌부 집의로 옮겻다 가정 16년 종부시의 정과 겸하여춘추관 편수관이 되셨다 향년 51세때 관직에서 돌아가셨다. 자는 망이(望而)요 호는 서암(西庵) 이시며 서기 1526년 태(太)씨 세계 의
세보를 편찬 하셨는데 다른세보와는 달리 발해사(渤海史) 는 물론 군사 지리 강역 까지 기술 하였다는 겄이특징이라하겠다.
시조는 고구려 장수 이셨던 대중상(걸걸중상) 진국왕 이시다 서기 668년 나 당 연합군에 의해 고구려 700년 사직이 무너질때 장자
대조영 장군과 함께 태백산으로가 고구려 유민과 속본 말갈 유민을 모은다 그후 서기 676년 거란족과 연합하여 영주에서 내란을 일어
켰으며 고구려 고지 회복을 위해 동쪽으로 이동한다 고구려와 말갈 유민을 이끌고 이동중 당나라 군과 장렬하게 싸우시다 서기 697년
섣달 붕어 하시다 그 뒤를 장자 대조영 장군께서 이어받아 계속 이동중 천문령에서 전투가 벌어진다. 대조영 장군께서 이때 이미 주역을 통달하셨고 서계(한자를 만들어 쓰기 전의 글자)를 해독 할줄 알았다 천문 지리와 병법에 밝으신 대조영 장군께서 대성을 거둠으로서 국가건설의 기반을 굳히고 그후 서기 698년 지금의 중국 지린성 둔화현
동모산아래 진국 이라는 나라를 세운다, 그후 부여, 옥저, 변한등 많은 부족국가들이 차래로 굴복해옴에 국호를 발해라 고쳤으며 개국 황제로서 오직 국가와 백성만을 위 하여 위 하는 정치를 펴신다, 치세 22년 69세로 붕어하신다.
대를이어 현군(賢君)이 계승(繼承)하여 덕치(德治)를 배푸시니 주변 부족들이 차례로 굴복해 옴에 세력을 크게 떨쳐 옛 고구려의
영토를 거의 되찾았다.
서기 719년 장자 대무예가 대를이어 무황제로 등극 서기 726년 아우 대문예로 하여금 흑수 말갈을 치게함 문예는 말을 듯지않고 당나라로 망명한다 당나라에서 문예를 받아준다 이때 무황제 께서 노하여 당나라와 전쟁을 불사 하겧다고 한겄으로 보면 발해는 독자적인황제국임이 입증된다.
치세 18년간을 누리시다 붕어하시자 세자 흠무 게서 광성 문황제로 등극 56년간을 통치하시다 그후 혼란기가와 4대와 5대를 겨우 2년을 넘지 못하고 붕어 하시자 문황제의 차남 숭린이 6대강황제로 등극하시어 일본과 사신이 오고가며 외교 정책을 펴시다 치세 15년간을 일기로 붕어하시자 7대 .8대.9대.두번째 혼란기가 오자 성무 고황제의 아우 대야발의 4세손 인수가 10대 선황제로 즉위하다 이때부터 다시 부흥한다 신라를 평정하고 주변 부족들이 차례로 굴복해 옴에 국토를 크게넓혀 나라를 5경 15부 62주로 편성하고 사방 5000리 라는 옛 고구려의 땅을 모두 되찾았다. 그후 남으로 신라 서로 당나라 동으로 일본등과 돈독히 수교하여 외교 정책을 펴시니 이때 당나라에서는 동방에 찬란한 해동 성국(海東盛國)이 세워 젖다고 했다.
선황제 치세 12년 11대 장황제 치세 26년 12대 안황제 치세 14년 13대 강황제 치세 23년 14대 위해 치세 13년 15대 애제 치세 20년
서기 926년 청태21년 내란과 혼란이 있자 그 틈을노려 거란이 침공해오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끋네 인선왕이 항복 하게된다.
발해의 연호. 시호.
묘호 연호 시호 1 시호 2 이름 재위기간
세조(世祖) 중광(重光) 광복의 뜻 진국열황제(振國列皇帝) 중상(仲象) 696 ㅡ698(3년)
1 태조(太祖) 천통(天統) 고왕(高王) 성무고황제(聖武高皇帝) 조영(祚榮) 698 ㅡ719(22년)
2 광종(光宗) 인안(仁安) 무왕(武王) 무황제(武皇帝) 무예(武藝) 719 ㅡ737(18년)
3 세종(世宗) 대흥(大興) 문왕(文王) 광성문황제(光聖文皇帝) 흠무(欽茂) 737 ㅡ793(56년)
4 묘호 연호 시효 없음 원의(元義) 793 ㅡㅡ(5개월)
5 인종(仁宗) 중흥(中興) 성왕(成王) 성황제(成皇帝) 화여(華璵) 793 ㅡ794(1년)
6 목종(穆宗) 정력(正曆) 강왕(康王) 강황제(康皇帝) 숭린(崇璘) 794 ㅡ809(15년)
7 의종(毅宗) 영덕(永德) 정왕(定王) 정황제(定皇帝) 원유(元瑜) 809 ㅡ812(3년)
8 강종(康宗) 주작(朱雀) 희왕(僖王) 희황제(僖皇帝) 언의(言義) 812 ㅡ817(5년)
9 철종(哲宗) 태씨(太始) 간왕(簡王) 간황제(簡皇帝) 명충(明忠) 817 ㅡ818(1년)
10 성종(聖宗) 건흥(建興) 선왕(宣王) 선황제(宣皇帝) 인수(仁秀) 818 ㅡ830(12년)
11 장종(莊宗) 함화(咸和) 장왕(莊王) 장황제(莊皇帝) 이진(彛震) 830 ㅡ857(26년)
12 순종(順宗) 대정(大定) 안왕(安王) 안황제(安皇帝) 건황(虔晃) 857 ㅡ871(14년)
13 명종(明宗) 천복(天福) 경왕(景王) 경황제(景皇帝) 현석(玄錫) 871 ㅡ894(23년)
14 묘호 연호 시효 없음 폐위 위해(瑋楷) 894 ㅡ906(13년)
15 청태(淸泰) 애왕(哀王) 애 제(哀帝) 인선(認詵) 906 ㅡ926(20년)
나. 대 제국의 멸망.
서기915년 (청태10 년)거란 야율할저와 두 아들이 발해에 망명해왔다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도주함
서기919년 (청태14년) 거란이 요양성으로 발해 포로를 이주시킴
서기923년 (청태18년) 거란을 공격한 발해가 요주지사 장수실을 죽이고 거란인을 납치함
서기925년 (청태20년) 거란군이 부여부를 포위. 정당성 배구를 당나라에 보내 화의를 청함. 대세가 기울자 내란이 일어나고 신덕 등고려로 망명 이어 예부경 대화균 대균로 사정 대원균 공부경 대복모 좌우위장군 대심리 백성 100호를 이끌고 고려로 내투.
서기 926년 (청태21년) 정월 부여부가 거란군에 함락되고 상경성이 포위되자 애제(대인선)이 항복함으로 103개의 모든 성이 거란에 점령되어 15대를 이어 내려온 혁혁하든 대 발해는 백두산 화산 폭발의 분진과 함께 역사 속에 사라진다. 백두산 화산 폭발의 위력이
얼마나 컷는지 화산 분진이 일본 열도에 5미리가 쌓였다고하니 그 위력을 짐작할수있다.
다. 세자 대광현의 고려내투.
高麗史 권2, 太祖17년 (51)
(太祖十七年 : 934) 秋七月, 渤海國世子大光顯, 卒衆數萬來投, 賜姓名王繼, 附之宗籍, 特授元甫, 守白州,
以奉基祀, 賜療 佐爵 軍士 田宅 有着,
서기 934년 발해국 세자 대광현이 민중 수만을 거느리고 고려로 내려오니 고려 태조 왕건께서 건국한지 8년차 되든해라 고려 역시 고구려를 계승한국가라고 주장 했기에 너무나도 반가운 손님이었을 겄이다.그중엔 토기(자기)를 다루는 사람 철기를 다루는 사람 목공예를 다루는 기술자 등 예능인들이 많이 포함 되어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려를 반석위에 올려 놓을수있고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증명 할수있는 명분이 있기에 중후하게 예우하여 받아주시고 발해국 황제의 세자인지라 그 왕의 성씨인 대씨로서 정통성을 이어가게하고 왕실 족보에 올려주시고 세자에겐 원보(元甫) 라는 벼슬을 내려주시고 지금의 북한 개성엽 백주(白州) 현재 배주(白州) 흰백자 라고도 쓰지만 고을이름 배자라고도함.고을을 내어주시며 조상의 제사를 받들어 모시며 살아갈수있게 하시고 같이 내려온 신료 들에게도 골고루 벼슬을 내려주시고 군사와 민중들에게도 전답과 주택을 차등있게 골고루 내어주시어 대를 이어 벼슬길에 올라 편히 살아갈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뒤에 거란의 주가 힘 좋은 낙타 五十필을 고려왕에게 바치니 고려왕은 거란의 주가 일찍 발해와 우호관계를 맺어 화목했던 것을 알고 서로간의 옛 동맹간의 일을 돌아보지 않고 하루아침에 변해 발해를 멸망케 한 것은 무도한 짓이라 하고 절교하여 그들의 사신 三十명을 바다섬으로 유배시키고 낙타50필을 만부교(萬夫橋)에 매달아 굶어죽게 하였다. 고려 공양왕(恭讓王) 때에 정포은(鄭圃隱)정몽주 선생이 발해의 옛 도읍을 지나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唐室勞師定海東; 당나라가 군사를 내어 해동을 정리하니,
太郞隨起作王宮; 태랑이 따라 일어나서 왕궁을 건립하였네,
憑君莫話關邊策; 그대는 제발 국경의 확장책을 말하지 마라,
自是伊誰保始終; 자고로 누가 한결같이 보전하리,
渤海昔爲國; 발해가 옛날에는 나라였는데,
於焉遺址存; 어느새 빈터만 남았구나,
唐家許相襲; 당나라는 대대로 세습을 허락했고,
遼氏肆倂呑; 거란은 횡포하여 함부로 삼켜 내렸네,
附我全臣庶; 우리 고려에 내려와서 신세를 보전하여,
于今有子孫; 지금까지 그 자손이 남아있네,
居民那解此; 주민들이 어찌 내력을 이해하랴,
歎息駐征軒; 가는 걸음 멈추고서 긴 한숨 뉘었다네:
라. 대(大)씨 에서 태(太)씨 바뀐 연유.
태(太)씨는 원래 대(大)씨 로서 고려사에 큰대(大)와 클태(太)는 통용되던 글자로서 동사 통감(東史 通鑑)에 고왕에 관한 기록을 할때 대조영(大祚榮)을 태조영(太祚榮)이라 기록 했다 하였고 시조 걸걸 중상(乞乞 仲象)의걸걸의 표현도 우리말로 크다는 의미이고 대한을 태한 대왕을 태왕이라 불럿고 태극 태양 태평양 이르고 보니 태(太)가 한없이 크네요.
고려사의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서기1217년 고려 고종 4년 고려사 129권 열전 42 에 낭장 대집성(大集成)을 차장군에 임명하다.
서기1228년 고려 고종 15년 고려사 22권 세가 22권 대장군 태집성(太集成)을 서북면 병마사로 삼다.
서기1228년 고려 고종 15년 고려사 23권 세가 23권 몽고군 침입시 서북면 병마사로서 후군진주 태집성(太集成)이 대승하다.
서기1232년 고려 고종 19년 고려사 23권 세가 23권 정 4품 이상 회의에서 천도를 주장하다.
서기1236년 고려 고종 23년 고려사 23권 세가 23권 수사공 태집성(太集成)이 별세하다.
서기1253년 고려 고종 40년 태금취(太金就)후군장 으로서 몽고군을 물리친 공으로 대장군에 오르다.
서기 1231년 서북 병마사로서 몽고군의 침공을 토벌한 공으로 협계(俠溪)군에 봉군되신 태집성(太集成) 후손들은 협계파(浹溪派)
서기 1259년 태금취(太金就)대장군께서 대거 침입한 몽고군을 물리친 공으로 영순(永順)군에 봉군되신 태금취(太金就) 후손들은
영순파(永順派) 현재 전국에 태(太)씨 본관을 파평 용인 양천 나주 남웡 진산 경주 상주 밀양 순흥 합천 영천 우이 의성 현풍
평산 백천 우봉 성천 임도 순천 등 이십여개로 사용 하고 있으나 모두가 협계와 영순 두 파에서 나가 거주지 별로 표기 하여
사용할 뿐이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대(大)씨 성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발해 광현 세자께서 고려로 내려온 79년후서기 1013년 대조영 황제의 7세손 이신 대연림 과 대정림 두형제가 많은 유민과 고려에 이주 경남 밀양 신라동 (현재 밀양 대산면)에 안착 했으며 지금은 전남 영광등 전국에 분포 되어 살고있다.
대(大)씨나 태(太)씨 나 시조가 같으니 뿌리는 하나인 겄이다.
마. 태(太)씨 를 빛낸 사람들.
고려 초의인물 11世 태화균(太和鈞) 삼한 벽상공신 문화시중.
12世 태심리(太審理) 문화시중.
고려 고종조 12世 태복모(太福謨) 공부경 태사태보.
12世 태복예(太福譽) 공부경
고려 현종조 12世 태도수(太道秀) 안융성 전투에서 거란의 소손영이 몰고온 군사를 격퇴 시킴을 상장군에 오르고 후 판병부 시랑
고려 숙종조 15世 태인점(太仁占) 대상 (영상)
협계 태씨 를 빛낸 사람들.
조선조 23世 태응진(太應辰)호는 초곡 이시고 1399넌 문과에 급제 가선대부에 올라 담양 도호 부사를 행하셨으며 뒤에 수선에 올라 병조판서를 행하셨다.
남원 8 충신 사실: 28世 태 색(太穡) 자는 군실(君實) 호는 공북재(拱北齎) 초곡공의 6세손 참봉을 지내셨다.
28世 태 우(太瑀) 자는 선충(善忠) 호는 매계(梅溪) 충의 지사.
29世 태시경(太時慶) 자는 영중(榮仲) 호는 경재(敬齋) 선무 원종훈에 녹훈.
30世 태귀생(太貴生) 자는 여인(汝仁) 호는 정기재(正己齎) 임진외란시 가재를 모아 군사와 군량과 무기를 구입
아들 상문 서제 천생 그리고 우 그 아들 시경과 의병을 일으키다.
31世 태상문(太常文) 자는 진옥(振玉) 호는 삼현정(三賢亭) 훈련 판관을 제수받고 진무원 종훈에 녹훈 되시고 작고
하시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추증 받으시다.
30世 태천생(太賤生) 자는 내인(乃仁) 선무원 종훈에 녹훈 되셨다.
31世 태팔회(太八恢) 자는 기팔(起八) 진무원 종훈에 녹훈 되셨다.
34世 태윤주(太允周) 자는 형중(亨中) 호는 매천(梅川) 정병 1000명을 이끌고 팔량치로 가서 적의 칼날을 막아내다. 이 모든 내용들이 호남절이록에 기재되어 있다. 그리고 남원 만인의총에 위패가 묘셔저 매년 9월 26일 전남 도지사 주관으로 제향식을 올리고 있다.
협계 태씨의 수가 적어진 이유중 하나가 정묘 호란 당시 팔(八)충신과 더불어 우리의 종친님들께서는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사는마음을 시조님으로 부터 이어 내려온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너무도 많이 희생 되었다.
영순 태씨를 빛낸 사람들.
중시조 이신 금취(金就) 대장군 께서 영순현을 재수받은이후 20대를 대를이어 벼슬길에 올랏으니 시조로 부터 37 대를 대를 이어 벼슬길에 올랏으며 26世 주환(柱獻) 27世 영재(永載) 28世 경록(慶錄) 29世 을수(乙守) 4대를 이어 경산군의 굶주리는 백성을 위해 규율미 이천 수백석을 내어놓으셨다고 완문에 기록되어 있는 겄을 보고 그 옛날 대조영(大祚榮) 황제 이후 29世에 이르기 까지 백성을 위하는 마음의 DNA 가 계속 해서 이어저 내려 오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 피는 못속인다는 말이 이래서 나온 말인가 봅니다.
36世손 태완선(太完善) 부총리의 이력 서기1950년 5월 제2대 국회의원.1960년 7월 제5대 국회의원.1961년 1월 부흥부 장관. 1961년 5월 상공부 장관. 1971년 6월 건설부 장관. 1972년 1월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이러한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후손 들에게 단 한점의 부끄러움이 없이 청렴 결백함 태종학(太鐘鶴)대구시장 태기표(太基杓)전북 지사 한나라당 전북 도당 위원장. 태범식(太範植) 대구
경북 국토 관리 청장 태황준(太璜準)대전 충북 국토 관리 청장 세상이 다 아는 한결같이 깨끝한 분들이시 않으십니까.
후천 시대를 맞이한 우리 모두는 지금의 생각과 사고 방식을 바꾸어 이 지상에 천국을 건설 하는데 이 지상 모든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 합니다 이미 이세상은 천국이 다 이루어저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후천시대는 절대자가 나와서 평정 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죄를 짖고는 살수 없는 악을 행하면 망할수 밖에 업다는 겄을 최고로 발달한 과학이 과학적으로 풀이 해석해 줄겄이라고 밑고 있기에 앞으로 이 지상의 모든 사람들이 지상 천국에서 서로 위하여 살아가는 행복한 삶이 기다리고 있음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시대가 반듯이 올겄이다 그 시대에는 인간 서서로 해야만 하는 책임 분담이 주워질 겄이라고 생각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누릴수 있는 그날을 기다리며 축복 드립니다.
바. 발해(渤海) 고황제(高皇帝)의 영정(影幀) 제작 과정
서기 2005년 12월 7일 경남 진해 에서 우리 나라에서는 제일큰 대조영함(大祚榮艦) 진수식에 종친님의 초대장을 받고 우리 종친 임원단 10 여명이 참석 해군군악대의 연주와 사렬식에 황제후손으로 큰 예우를 받고 함장으로 부터 함정에 게시할 대조영화제님의 영정을 요구함에 우리 종친회에서 영정을 제작 하기로 하고 우리 정부에서 제작해 줄겄을 국회를 통해 서류를 제출한바 몆달후 회답이 오기를 아직까지 정부에서 한번도 영정제작을 한 전례가 없었다며 서류가 반송되어 옮으로 우리 종친회의 힘으로 제작하기로 결정하고 추진 위원장에 태석배(주 동화산업) 전국 종친 회장님이 맡아 소요경비 약 1억 가운데 사비로 4,000 만원이상 투자 하시어. 추진
먼저 서울 대학교 발해사 전공 송기호 교수와 고구려 발해 학회장 한규철 경성대교수께 자문의뢰 하니 문화 관광부 표준영정 동상 심의 위원회의 심의 의결되어야만 표준 영정으로 효력을 인정 받을수 있다하여 먼저 미술해학부의 권위자이신 조용진 한남대교수의 도움으로 대조영황제의 용모특징 추출을 위한 기초 형질 조사를 하기위해 2009년 11월 과 12월 2010년 1월 12일 우리종친 78명을 대상 으로
105mm 망원렌즈를 이용하여 얼굴에서 182cm 거릴ㄹ 두고 정면 사면 측면 세 방향에서 정확히 촬영하였다.
나이. 키. 두최대폭. 두최대장. 두장폭지수. 안최대폭. 유양돌기폭. 좌우차. 폭경. 고경. 방사경.이렇게 해서 고경특징 폭경 특징 방사경 특징 해서 표정 특징 특정을 연구해서 후손들의 얼굴에서 씨족의 특징을찾고 이를 시대역산 증폭하여 3차원 정보를 획득하여 민두상 을 제작하였다.
서울대학교 김민지 강사의 복식고증 고증 방향으로 영정도에 표현되어야 할 복식 일습으로는 관모ㅡ금관, 의복ㅡ저고리,바지,중단,
아, 신발ㅡ화, 기타 장신구ㅡ과대, 귀걸이 총 8개 품목을 정하여 고증에 기초한 제작을 2009년 12월 말 완료 형태와 소재 색상 문양을 파악 하고 금관 장식 내모 대륜 세움 장식을 하고 착장하여 영정도는 좌상으로 묘사하기로 하고 의자에 앉은 자세로 촬영 64도를 영정도 초본 제작에 착수하여 심의 과정에서 몆차래 수정 보완 하였다.
서울 숙명 여자대학교 권희연 회화과 교수의 영정 제작 연구 표준 영정 추진 전과정을 총 책임자로 표준 화법으로 용안 용상 표제를 완성 하여 10회에 걸친 고증회의 끝에심의 들어가 6차레 동상 영정 심의 대위원회를 통해 2 차의 지적사항을 보완하여 2012년 10월
19일 9번 만에 심의의결되어 등제번호 86호로 가로 107cm 높이 189cm 크기의 전신교기좌상으로 정부표준영정 지정증을 교부 받았다. 원본 2위를 제작하여 원본 1위는 서울대 박물관에 봉안하고 원본 1위는 경북 경산시 남천면 송백(발해 마을) 고황전(高皇展)에 봉안(奉安)하고
사본 3위를 제작 1위는 강원도 속초 발해기념관에 배향하고 1위는 전남 남원 협계태씨 고황전(高皇展) 봉안하고 1위는 충북 옥천 증걸 고황전(高皇展)에 봉안하고 있으며.
발해 역대왕 (渤海歷代王)의 대제를 지금의 북한 배주(백주)에서부터 모셔 오시다 서기 1620년 광해군 12년 경북 예천군 예천읍 두평리에 광천전(廣川展)를 창건하여 모셔 오시다 서기 1847년 헌종 13년 경북 예천군 용문면 오산리에 오산전(吾山展) 을 중건하여 모셔 오시다가 서기 1920년 경북 경산시 남천면 송백(발해 마을) 상현전(尙賢展)을 중건하여 모셔 오시다 서기 1960년 현재의 송백(발해마을) 508번지로 이건하여 서기 2012년 10월 19일 발해 태조 고황제의 표준 영정이 등재번호 86호로 지정 됨으로 서기 2013년 춘분날 봉안대제를 올리고 지금까지 조상님의 위패와 함께 매년 춘분 대제를 봉안하고있다.
사. 고구려(高句麗)와 발해(渤海)의 후손(后孫) 한국인(韓國人)
한국인들이 고구려와 발해의 후손이라는 점은 혈연과 온돌 문화에서 찾아 볼수있고 세계에서 고구려 왕손이라고 자처하는자 발해 왕손이라고 자처하는 씨족은 한국에만 있다 우리나라 회성(橫城) 고씨(高氏)는 그들의 족보(族譜)를 근거로 고구려 와손임을 자처하고 있다. 그리고 또 우리나라 협계태씨(浹溪太氏)와 영순태씨(永順太氏) 밀양대씨(密陽大氏)등이 태조(太祖) 대조영(大祚榮)황제의 아버지 걸걸중상(乞乞仲象) 대중상(大仲象) 진국 열황제(振國烈皇帝)를 시조로 모시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인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고구려와 발해 후손을 자처하는 집단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전전 일본 총리가 나는 발해 후손이다라고 발표한적을 알고있다
발해주민은 중국의 역사서도 인정하듯"고구려와 풍속이 같았던" 사람들이었다. 라고하였고 한편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 했다는 것은 한국사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에 이어 신라와 발해의 "남북국시대" 가 전개되었다는 근거이고.이는 한국인이 발해의 후손을 자처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발해인은 유목과 함께 농경을 주로하고 살았다.그런데 그들의 농경문화적 전통은근대의 한국인과도 공통점을 갖고 있다.우연하게도 고구려와 발해유적이 있는 곳에는 많은 조선족과 고려인들이 살고있다. 이들은 주로 한말에 생활과 독립운동을 위해 건너간 사람들로서 대개가 그런곳에서 자리를 잡았다. 발해의 남경남해부가 북한에 있는 것은 말할것도 없고 160 여년을 수도로 삼았던 상경용천부 지역인 흑룡강성 영안현의 발해진에도 조선족 마을이 있으며, 중경현덕부와 동경용원부가 길림성의 조선족 자치주에있는 것등이그러하다. 러시아의 연해주에 있는 발해유적에서도 고려인들이많이 살았음이 여러 군데에서 확인되었다.문화적인 측면에서도 한국인은 고구려와 발해의 후손을 자처할 만하다. 고구려와 발해인은 당나라와는 대조적으로 온돌을 사용하였다.온돌이 보편화된 나라는 한국밖에없다는 점과 고구려 발해인이 온돌을 쓰던것은 같은 계통의 주민들이었음을 확인시켜주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것 역시 발해사의 민족사적 귀속문제에 대한 해답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이다.
"서기 2000년 국세조사. 태씨본관: 24 (협계.영순.파평.용인.양천.나주.남원.진산.경주.상주.대산.밀양.순흥.합천.영천.우이.의성.현풍.
평산.백천.우봉.성천.임도.순천.) 모두 협계태씨. 영순태씨. 밀양대씨에서 분파되어 나간 거주지표시임.
본관별수:영순4142, 협계1348, 남원1105, 합천484, 상주380, 영천319, 밀양227, 통천69, 기타91, (총 8165명)
거지지별수:경북690, 대구686, 부산608, 서울1841, 경기1543, 전북825, 인천512, 대전377, 경남258, 강원227, 충북189, 충남145, 울산108, 광주64, 전남74, 제주도18, (총8165명)
2). 고황전(古皇殿)에 봉안(奉安)된 고(古) 황제(皇帝)님의 위패(位牌) 순위
가. 위치와 배열
1 위ㅡㅡㅡㅡㅡㅡㅡㅡ 9 위 중앙(고황제 영정) 10 위ㅡㅡㅡㅡㅡㅡㅡ19위
1위. 始祖 重光 振國烈皇帝
2위. 太祖 天統 聖武高皇帝
3위. 光宗 仁安 二代 武皇帝
4위. 世宗 大興 三代 光聖文皇帝
5위. 仁宗 中興 五代 成皇帝
6위. 穆宗 正曆 六代 康皇帝
7위. 毅宗 永德 七代 定皇帝
8위. 康宗 朱雀 八代 僖皇帝
9위. 哲宗 太始 九代 簡皇帝
10위. 聖宗 建興 十代 宣皇帝
11위. 莊宗 咸和 十一代 莊皇帝
12위. 順宗 大定 十二代 安皇帝
13위. 明宗 天福 十三代 景皇帝
14위. 無 十四代 瑋皇帝
15위. 無 淸泰 十五代 哀 帝
16위. 王世子 白州太 始祖考 光顯 元甫 府君
17위. 浹溪君 中始祖考 集成 守司空 府君
18위. 永順君 中始祖考 金就 大將軍 府君
19위. 西庵先祖考 通訓大夫司憲府集義 府君
나. 종 훈 (宗 訓)
身是吾 身口是吾 ;몸은 바로 나의 몸이고 입도 바로 나의 것이니
行身開口摠由吾 ;몸을 움직이고 입을 여는 것은 모두 나로부터 비롯된다
如何將此吾身口 ;여하튼 장차 이러한 나의 몸과 입을
妄動 輕言反害吾 ;경거망동하여 입을 가볍게 열면 오히려 나에게 해가 되느니라
莫言 人長短 ;남의 장단점을 말하지 말라
言人 我自傷 ;다른 사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는것은 나 자신을 상하게 하는일이니
言山言水外 ;산에 대한 이야기나 물에 대한 이야기 외에는
緘口過 平生 ;평생 입을 닫고 살기를
다. 가 훈 (家 訓)
盡人事 待天命 ;사람이 할 일을 다한 후에 하늘의 명을 기다려라
3. 결 론 ( 結 論 )
오늘날 잊혀저 가고있는 대 발해 제국과 태조 대조영 황제의 국가와 민족을 "爲" 하는 삶으로 옜 고구려의 땅을 모두 되찾고 많은 유민들과 여러 부족들이 굴복해 옴에 해동 성국 이란 대제국을 건섫하신 업적을 알리고자 함이요.
대한민국의 뿌리는 이씨조선 ㅡ 고려 ㅡ 발해 ㅡ 고구려 ㅡ 조선 ㅡ 단군조선 이라는 겄을알고 지금 우리는 후천 시대를 맞이하여 벌서 세상은 천국이 다 이루워저 있는데 무지(無知)해서 그것을 누리고 있지 몾할뿐이기에. 주역(周易) 건괘(乾卦) 단사(彖辭)에 수출 서물(首出庶物)에 만국(萬國)이 함녕(咸寧)하나니라.
선천팔괘(先天八卦) 후천팔괘(后天八卦)
乾 離.(夏
南 南
兌 巽 巽 坤
離.東 西.坎 春.震.東 西.兌.秋
震 艮 艮 乾
北 北
坤 坎.(冬
비사체(秘辭體); 평범한 문장으로 되어 있으나 수출 서물(首出庶物)의 수출(首出)은 그속에 비사(秘辭)가 있다고 하였고. 출(出)은
우리 한국(韓國) 이라는 뜻이고. 우리 나라에서 우주(宇宙)의 지배자(支配者)가 나와서 만국(萬國) 즉 모든 나라가 다 평안(平安)하다고하였다.
후천(后天)의 간방(艮方)은 작년겄이 종(終)되고 신년의것 태동(胎動)하는 시초(始初)가 되니 모든일은 간방(艮方)에서 종시(終始)가되다고 하였다.
건괘(乾卦) 마지막을 성인(聖人)으로 끝맺었다 후천 성인(后天聖人)은 미시(未時)에 동방(東方)으로 부터라 하였고.
"항성(亢星)" (28 宿中 하나). 천도(天道)가 항성(亢星)에 오면 개벽이 된다고 한다 극(極)과 숙(宿)하면 말세(末世)가 된다고 하였다.
"기수(氣數) ㅡ 천기 지운의 괘다 또는 象卦理時의 適時를 말한다.
한국의 氣卦를 받아 보려고 일본이 우리나라 충청도 부여에다 神宮을 지을려고하였다.이는 일본의 역학자 앵택(근위총리의 先生임)이가 丁亥년(1947년 12월 27일 마지막날임을 알고 격인(格仁)가 직접 나와서 기공을 했다고하며 풍수지리설상 부여는 지명이 남은겄을 붙잡는다는 뜻인바 지금도 우리는 안전한 곳이라면 부여가 제일 이라고 한다.
인도 타 ㅡ골 의 시.
일찌기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나는 밝은 동방의 등불이 되리라
마음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들린곳 지식은 자유롭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는 곳
진실은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 나는 곳
끊임 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모래 벌판에 길 잃지 않는 곳
무한히 퍼저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 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께어 나소서
이 모든 겄을 종합해 볼때 일제 강점기를 지나고 6.25. 동란을 격고 나서 약 60 여년 동안 급속도로 발달한 경제성장으로 이미 이 세상은 외적으로는 지상천국이 다 이루워저 있으나 많은 사람들이 우둔하여 헛된 욕망과 아무 짝에도 쓸수없는 욕심을 내려 놓을줄을 모르고 무지로 살고 있으니 천국이 보이지 않을 뿐이며 사람의 두뇌는 태어나서 100만 분의 1 도 제대로 활용도 못해보고 죽는다고 하니 앞으로 후천시대를 맞이하여 살아가야할 우리들 이기에 진정 자기를 위하여 사는길이 무었인가를 알아야 할때가 되었다고 보며 예를 들어 이순신 장군 유관순 의사 의 삶을 보고 우리나라 국민 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남아있는 겄을 보면 답이보인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제 이 세상은 지금까지의 모든 비리와 부정부패들이 하나하나 드러나는 세상이 되었다.이러한 시대를 맞이한 우리 모두는 부모의 심정으로 돌아가서 (자기는 도둑질을 하여 세상을 살아온 사람도 자식에게 만은 도둑질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듯이) 후천시대는 양이 지나고 음이 다스리는 시대라 했으니, 지금이 그러한 시대가 되고 있지 않은가.지금의 최고 지도자들은 진정 자기를 위한 길이 무엇인가를 착각하고 자기 가정과 자기 주변을 먼저 챙기다 보니 결국은 모든 비리가 들통나 개망신을 당하는 꼴을 직접 보는 시대가 되었으니 이제 우리 모든 정치가나 모든 종교 지도자들은 지금의 시대를 바로 알고 가장 자기를 위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알고 무지가 가장큰 죄라고 하였으니 참 을 위하여 위하는 정치가 위하는 많은 종교 지도자 위하는 많은 교사 교수 등 많은 지도자 밑에 가장 자기를 위하여 사는 길이 무었인가를 아는 온 세상 사람들로 이루워저 살아가는 세상 지상천국(地上天國)은 바로 내 앞에 있다는겄을 너무 어려운 경서들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주역서를 쉽게 풀이해석 전달 할수있는 덕망있는 학자들 지도자 들이 많이 배출 되어지기를 바라면서 결론을 내린다.
참고 문헌
1. 史料
"三國史記; "三國遺事; "高麗史; "遼史; 舊唐書; 新唐書; "史記; "帝王韻紀; 續日本記; 資治通鑑; "渤海國誌; 桓檀古記; 渤海考; '唐會要;
"浹溪太氏族譜; 永順太氏族譜; 密陽大氏族譜;
2. 單行本
김홍신; 전 15대 ㅡ16대 국회 의원. 대하소설 대발해.
송기호;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발해를 찾아서 연해주 답사기. 와 많은 저서.
한규철; 경성대 교수 고구려 발해학 회장. 발해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 등 많은 저서.
이효형; 발해유미사 연구.
김종복; 발해 정치 외교사.
김학준; 연해주 크라스키노 발해성 2012년도 발굴조사.
3. 刊行本
안동 국학 진흥원.에서 발간하는 "국학연구; 15집 ㅡㅡ24집.
한국생활사박물과, 발해 가야생활관.
大山 金碩鎭; 周易傳義大全釋海 (上 下)
亞山 金炳浩; 亞山의 周易講義 (上 中 下)
서기 2014년 8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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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보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