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출소 순찰차와 택시가 지프형 자동차인 것만 봐도 서암정사가 있는 경남 함양군 마천면은 지형이 꽤나 험한 지역인가 보다.
88고속도로 지리산 IC를 나와 60번 지방도를 타고 칠선 계곡 쪽으로 간다. 뭇 남정네들의 꿈이며 선망의 대상일지도 모르고, 아줌마들의 흥건한 농담에 숨겨 나올 법하여 한번씩은 꿈에서라도 흥얼거려 보았을지 모를 변강쇠타령의 발상지인 백장공원(변강쇠 옹녀공원)을 지나게 된다. 그곳에서 조금 더 들어가게 되면 개울 건너 평평한 논 가운데 느티나무와 어우러진 실상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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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끝자락 칠선계곡에 흐르는 물이 쉬었다 가라고 유혹을 하고 나란한 벌통에서 향긋한 꿀 냄새가 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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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임윤수 |
| 실상사는 얼마 전 새만금을 살리겠다고 전북 부안의 새만금 갯벌부터 서울 광화문까지 800리가 넘는 먼길에 삼보일배를 하며 골수 같은 땀을 퍼붓다 결국 실신까지 하였던 수경스님이 주석해 계신 곳이기도 하다.
실상사는 행정구역상으로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한다. 실상사 건너쪽인 60번 지방도를 따라 계속 올라가다 보면 알게 모르게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땅으로 들어서게 된다. 마천면은 지리산 칠선계곡으로 들어서는 입구이기도 하다. 지리산이라는 웅장한 이름에 걸맞게, 자락에 거느린 수많은 계곡과 산동네 중의 하나인 칠선 계곡 쪽으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면소재지를 지나 아치형 교각의 다리를 건너 오른쪽 계곡으로 조금 더 들어가게 된다. 길과 나란한 계곡이 마음을 유혹한다. 쉬었다 가라고, 큼직한 바위에 엉덩이 얹고 물에 발 한 번 담가 보라고 유혹한다. 산비탈 밭 두렁에 가지런한 벌통에서 지리산 토종꿀의 달콤함이 눈 맛으로 느껴진다. 흘끔흘끔 눈길주며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왼쪽 비탈 쪽에 벽송사 안내판이 보인다. 지리산 IC부터 이곳까지는 약 18Km가 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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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암으로 들어서는 입구엔 일주문을 대신한 두 개의 커다란 돌기둥이 있다. 돌기둥 뒤쪽의 사천왕들이 속세의 모든 것을 버리라고 하는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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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임윤수 |
| 가파른 경사를 오르려 핸들 잡은 손에 힘을 줄 때쯤 심상치 않은 바위가 나온다. 절을 다니면서 많이 본 듯한, 험상궂은 표정에 무시무시한 칼이나 창을 들고 있는 그런 모습이 조각된 바위가 양쪽에 있다. 여기서부터 서암정사의 경이로움은 시작된다. 비탈길에 차를 멈추기 뭐해 오르던 길 그냥 조금 더 오르면 넓은 주차장이 준비되어 있고, 더 이상은 차를 가지고 갈 수 없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차를 세워놓고 200여 미터 가파른 길을 걸어 올라가다 보면 좌측에 <同歸大海一味水> 우측에 <百年江河萬溪流>란 글씨가 또렷하게 각인 된, 장승처럼 우뚝 선 바위기둥을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몇 걸음만 더 들어가면 다시 두 개의 돌기둥이 나타난다. 왼쪽 기둥엔 <調御三千界> 그리고 오른쪽 돌기둥엔 <摩詞大法王> 라고 쓰여있다. 이 돌기둥들이 일주문이며 해탈문이나 불이문쯤 되는가 보다.
참배객 가는 길이라는 안내판을 따라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다 보면 키가 5m도 훨씬 넘는 우람한 사천왕상들이 우측 절벽에 일렬로 즐비해 있다. 여느 절들처럼 천왕문에 나란히 두 분씩 서 계신 것이 아니라 큰 바위에 입체적으로 나란히 조각되어 있다.
비록 많은 절들의 사천왕처럼 알록달록한 단청은 되어 있지 않지만 사천왕들의 부릅뜬 눈과 역동적 몸 동작 그리고 바위의 묵직함이 속세에서 묻혀온 잡된 생각과 허황 된 망상들을 다 달아나게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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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지개처럼 생긴 대방광문으로 들어서면 오래된 한옥 같은 미타전이 보인다. 대방광문은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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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임윤수 |
| 합장삼배하고 고개를 드니 무지개형태의 아치형 문 위에 "대방광문(大方廣門)"이라 쓰여진 돌로 된 큼직한 편액이 눈에 들어온다. 협곡 같은 입구를 따라 몇 걸음 더 걸으면 대방광문을 지나 화엄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그러고 보니 주변이 온통 큼직큼직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이쯤에서 그럴싸한 전각이 나타날 만도 한데 그렇지 않다. 멀지 않은 곳에 여염집 사랑채 같은 그런 한옥건물이 하나 보일 뿐이다.
건물 벽에 방하제연(放下諸緣)이라고 써진 팻말이 붙어 있다. 아직 버리지 못한 세속의 구연과 근심, 미련과 시기심 그리고 달콤했던 유희적 감각조차 다 떨구라는 뜻인가 보다. 정면에 미타전이라고 쓰여진 편액이 걸려있을 뿐 흡사 오래된 한옥의 가정집 같은 분위기다.
미타전 편액이 붙은 한옥 앞을 지나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저만치 봉긋한 언덕 같은 곳에 극락전(極樂殿)이란 글씨가 보이고 창문이 보인다. 언덕 주변이 참 잘 가꾸어져 있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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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긋한 봉우리 형태의 언덕에 굴법당이 보인다. 징검다리를 걷듯 뚜벅뚜벅 걷다 보면 굴극락전에 이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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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임윤수 |
| 안양문(安養門)이라고 새겨진 쪽의 문을 열고 굴법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법당에 들어서면 예를 갖추기 위해 습관처럼 하던 합장도 잠시 잊게된다. "아니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하는 반문만 계속된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도 믿을 수도 없는 그런 법당이 굴속에 있다.
겨우 정신 차려 합장삼배 올리고 휘둥그레진 눈에 초점을 모아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자연 동굴을 이루고 있는 바위의 사방과 천장에조차 온통 부처님과 불보살 그리고 그 권속들이 조각되어 있고 그 부처님과 불보살님들의 눈길이 모두 내게 쏟아지는 듯 하다.
굴법당 극락전은 들어서기만 해도 환희심이 넘칠 정도로 굴 전체가 섬세한 조각으로 장엄 된 아미타세계다. 아미타부처님을 중앙에 모시고 관세음보살님과 지장보살님 그리고 8대 보살님들과 10대 제자, 나한, 사천왕 등은 물론 용, 연꽃 가릉빈가(迦陵頻伽) 등이 굴법당 벽과 천장 전체를 빈틈없이 빼곡이 메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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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락전 내부가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든다. 동굴 내부는 틈 하나 없이 전부 조각되어 있다. 정면에 아미타부처님이 제일 안쪽에 지팡이를 들고 있는 지장보살님이 조각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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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임윤수 |
| 혹시 벽지를 바른 것이 아닐까 하는 의아심이 들 정도로 섬세하고 정교하게 조각된 법당 안을 단지 작품으로만 표현하자면 20세기와 21세기 양 세기에 걸친 걸작 중의 걸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석굴암과 비교를 한다는 것이 역사성으론 어불성설일지 모르나 장엄함이나 정교함과 섬세함이 석굴암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할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입구 제일 안쪽에 있는 지장보살님이 들고 있는 지팡이만 보아도 너무나 자연스럽고 섬세하다. 지장보살님의 손에 들려있는 구슬은 유난히 검은 색 광채를 띄고 있다. 그 옥구슬만은 다른 돌로 가공을 하여 얹어 놓은 것이려니 하였더니 그 또한 지장보살님과 일체를 이루고있는 원석에서 가공된 것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돌들이야 아무리 공을 들여 갈아봤자 빛이 나지 않지만 마천석재는 돌 자체가 옥 성분이라서 원하는 형상으로 가공하여 곱게 갈아주면 옥 특유의 광택을 내게 된다고 한다. 지장보살님의 손에 들고 있는 구슬은 바로 그렇게, 곱게 다듬고 갈아서 만들어 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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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면이 이어지는 부분은 물론 천장까지 보살과 권속들이 조각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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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임윤수 |
| 의도적으로 구슬을 만들어 손 위에 올린 것이 아니고 지장보살님과 일체의 돌에 구슬모양으로 조각을 한 후 깨끗하게 갈아주기만 한 것으로 주변의 희끄무레한 색깔과는 완전히 다른 옥 광채로 반짝이고 있다. 곱게 가공하면 옥광채를 띠는 이런 특성 때문에 마천석재라고 하면 전국에서도 유명하단다.
굴법당이 이곳 서암정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서암정사 굴법당에 경탄을 금치 못하게 되는 것은 서암의 모든 불상과 조각품들은 있는 그대로의 돌에 입체적으로 조각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다른 돌로 조각을 하여 붙였거나 세운 것이 아니라 돌 하나로 부처님도 만들고, 부처님이 들고 있는 장엄물들도 조각하였다는 점이다.
불경스럽게도 의구심이 많은 기자는 구석구석을 세세히 살펴보았다. 혹시 조각을 하여 붙인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못 미더움을 떨구지 못한 채.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원석에 입체적으로 조각을 한 것일 뿐이다.
돌에도 무늬가 있다. 돌을 붙이거나 덧대면 무늬가 어긋나기 십상이며 이음 부분에는 아무래도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다. 아무리 찾아보고 살펴보아도 완전한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음이 틀림없다. 이쯤에서 "나무 아미타불"을 경송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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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더미 같은 바위가 묘하게 블록을 쌓은 듯 정리되어 있고 바위 제일 위쪽에 비로자나부처님이 그리고 아래 세 개의 바위에 문수보살님과 보현보살님 그리고 선재동자가 조각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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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임윤수 |
| 극락전을 나와 다시 산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그곳엔 비로전이 있다. 맞추기 블록을 쌓아 놓은 듯 묘하게 놓여진 엄청난 규모의 바위들, 그리고 그 바위에 각인 된 제불 보살님들의 섬세한 미소와 표정! 비로전 또한 불심에 의해서가 아니더라도 저절로 우러나는 감탄에 의하여 손을 모으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삼각을 이루고 있는 네 개의 커다란 자연석 제일 위쪽에 비로자나부처님이 조각되어 있고 이 돌을 받치고 있는 아래 세 개의 돌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그리고 선재동자가 조각되어 있다.
비로전 입구, 비로자나부처님 좌측 커다란 바위엔 역시 산신님과 독성님이 살아계신듯 조각되어 있다. 산신님이 거느리고 있는 호랑이의 콧수염이 움직이고, 독성님 옆 꽃사슴의 숨결소리가 들릴 듯 조각들이 섬세하다.
서암을 만들고자 원을 세우고 원력을 모은 분은 원웅(元應)스님이지만 그 일을 받들어 10여 년 동안 동굴에 부처님과 불보살 그리고 그 권속들을 조각한 사람은 홍덕희라는 분이라고 한다. 원웅스님이 밑그림을 그리면 석공 홍덕희님이 정으로 한뜸한뜸 자수를 하듯 조각을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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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성님과 선녀 상이 조각되어 있다. 꽃사슴의 숨결이 들릴 듯 섬세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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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임윤수 |
| 한 때 다른 석공들이 일을 하기도 하였지만 불심이 없거나 미약한 관계로 제대로 불사가 진행되지 않아 모두 그만두었다고 한다. 나이 33세인 홍덕희님은 91년에 서암에 들어와 10여 년 동안 햇볕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하며 굴법당 조각에 전념하다 44세가 되어서야 제대로 햇빛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홍덕희님은 서암정사보다 조금 더 남쪽인 사천근방에서 또 다른 조각으로 불심을 다듬고 있다고 한다.
서암정사는 주지인 원응스님께서 1960년 초 벽송사로 오시면서 원력을 세워 현재 40여 년째 진행되고 있는 원력 불사의 결정체라고 한다.
6·25때 지리산에서 무고히 죽어간 수많은 원혼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이고득락(離苦得樂)을 기원하며 아직도 대치하고 있는 남북한의 화합과 통일을 기원하고자 불사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좀체 수그러들지 않아 민심을 피폐케 하고 있는 동서 지역감정의 발로가 되는 모든 이기심과 분열을 없애고 부처님의 품안처럼 평안하고 자비심으로 살자는 마음에서 발원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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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타전 옆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도 부처님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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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임윤수 |
| 화엄도량인 서암에서 무엇보다도 소중한 성보는 국내에서 유일한 80권의 화엄경 금니사경전 (金泥寫經典)이라고 한다. 금니사경전은 원응스님이 85년에 시작해 참선하는 사이사이 감지(紺紙)에 금분으로 화엄경 60만 자를 옮겨 쓴 것으로 12년만인 1997년에 완성된 경전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서암엘 가면 볼 것도 많고 놀랄 것도 많다. 굴피로 지붕을 이은 토속집도 볼 수 있고 답답하고 세파에 찌들어 눅눅해진 마음을 후려하게 해줄 건너 쪽 지리산과 계곡도 한눈에 넣을 수 있다.
전문가들도 쉽게 구분하지 못 할 정도로 정교하게 위조와 복사가 가능한 것이 요즘 디지털장비이며 기술이다. 그러나 그 어떤 디지털장비와 기술로도 감히 연출하지 못할 장엄한 부처님 나라를 굴속에 새겨 넣고 혼을 불어 놓은 것은 역시 인간들의 숭고한 정신이고, 하늘도 탄복하고 부처님도 감탄시킬 수 있는 혼신을 다한 지성(至誠) 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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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탑 저 아래로 지리산 끝자락을 이루고 있는 추성리와 계곡이 한눈에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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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임윤수 |
| 바람조차 술술 빠져나갈 걸망이지만 육감을 감탄케 하는 서암에 깃 든 불심과 사람들의 정성을 한 걸망 담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떨굴 수 없다. 이 또한 탐심임을 알기에 허허한 마음으로 뚜벅뚜벅 대방광문을 다시 나섰다.
반문이 끊이질 않는다. 도대체 인간은 무엇이며 인간의 능력은 어디까지 가능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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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 하나 둘러메고 대구행 고속버스에 올라탔다. 겨울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기울던 어느 날이었다.
행선지는 서암 스님이 묵고 있는 제2석굴암. 팔공산이 북쪽으로 뻗어 오르다 뭉턱 끊긴 절벽 끝에 제비 둥지처럼 걸려 있는 사찰이다. 기자는 절이 건너다 보이는 소나무 숲에 이르러서야 발길을 멈추고 한숨을 돌렸다.
산중의 겨울 해는 유난히 짧은 법이다. 가뜩이나 하늘마저 잔뜩 찌푸려 있다. 골짜기는 이미 짙은 땅거미에 점령당했고 하늘과 맞닿아 있는 능선만이 희끄무레한 실루엣을 그려내고 있다. 산사의 밤은 고요했다. 풍경은 잠이 들고 돌다리 건너 멀리 법당에서 들려오는 독경 소리만이 은은하게 들려온다.
기자는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을 만나려고 천리 길을 달려왔다. 서암. 조계종단의 최고봉인 종정의 자리에까지 올랐다가 140일만에 종정직을 사임하고 탈종까지 감행한 선승. 그는 지금 납의 한 벌만을 걸친 채 구름처럼 물처럼 천하를 주유하는 자유인이다.
일상 속에서 진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활선(生活禪)의 주창자이기도 한 서암. 죽비를 들어 잠의 유혹에 빠진 비구의 어깨를 내리치듯 오욕과 탐진치가 소용돌이치는 속세를 향해 그는 어떤 '죽비'를 준비하고 있을까. 기자는 산문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스님." 승방 앞에서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주지 스님을 부르자 방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며칠 전에 서울에서 서암 스님을 뵙고 싶다고 전화했던 사람입니다." 주지 스님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합장했다.
"늦으셨군요. 그래, 공양은 하셨소?" "아직 전입니다." "그렇다면 공양부터 하셔야겠구만."
주지 스님이 일러준 대로 극락교를 건너고 대웅전 옆을 지나 돌계단을 올라갔다. '외인 출입금지'라는 문구가 쓰여있는 기와장이 땅 위에 푯말 대신 박혀 있었다. 그 경고문(?)은 속세와의 인연은 바로 여기서부터 끊어야 한다는 계명처럼 느껴졌다. 일자형의 긴 선방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어두운 마당을 밝혀 주었다.
선방 지하에 있는 식당 문을 열었다. 설거지를 하고 있던 보살 두 분이 낯선 방문객을 따스한 눈빛으로 맞았다. 잠시 후 쌀과 보리가 적당히 석인 잡곡밥과 나물국에 5찬이 곁들여진 저녁 공양이 나왔다. 맛깔스런 무김치와 갓김치, 들기름에 볶은 호박전과 버섯무침, 시원시큼한 동치미는 담백했다. 시장하던 참이라 게눈 감추듯 해치우고 숟가락을 놓자 젊은 보살 한 분이 숭늉을 가져다주었다. 사기그릇에 담겨서일까. 숭늉 맛이 더없이 구수했다.
"스님, 서암 스님." 마루에 무릎을 꿇고 주지 스님이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흔들며 불러보았지만 방안에서는 아무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기자는 멀찍이 떨어진 채 선방 마루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연세가 많으셔서…. 내일 아침에 뵙도록 합시다." 두어 번 더 부르다가 대답이 없자 주지 스님은 기자에게 다가와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사람의 나이는 속일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초저녁잠이 든 서암 스님이 마치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정겹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객사에 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상이 돌변했다. 갑자기 매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요란한 풍경 소리가 적막했던 산사를 여지없이 뒤흔들었다. 수첩을 꺼내 하루의 여로를 더듬으며 울부짖는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번뇌도 이렇게 찾아오는 것일까. 삭풍이 문풍지를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창호지를 적신 뒤 머리맡까지 흘러 넘친 아침햇살이 기자를 흔들어 깨웠다. 방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햐! 밤새 세상은 온통 하얀 눈으로 뒤바뀌었다. 눈발을 토해 내느라 바람은 그렇게 밤새워 울부짖은 모양이다. 해탈이란 것도 정녕 이런 것이던가.
아침 공양을 마치고 법당에 매달려 있는 쌀과 초를 부엌으로 옮겨 달라는 할머니 보살의 부탁을 받았다. 손수레를 끌고 선방 앞마당을 가로질러 가다 보니 마루에 서서 이방인을 내려다보는 노승이 시선에 들어왔다.
"서암 스님께서 건너오랍니다." 앳된 얼굴의 비구니가 객사의 따뜻한 온돌방에서 쉬고 있는 기자에게 소리쳤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노승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염주알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아까 마루에 서 있던 바로 그 사람, 서암이었다. 방안을 둘러보니 회색빛 승복과 털모자 두 벌이 가지런히 벽에 걸려 있을 뿐 다른 장식물은 보이지 않았다.
"어둠을 가르는 한 줄기 섬광 같은 말씀을 듣기 위해 왔습니다." 삼배 합장을 올린 뒤 기자의 신분을 밝히며 이렇게 말하자 서암 스님의 안색이 갑자기 바뀌었다. 그는 한 동안 입을 굳게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했다. 기자가 막무가내로 간청하자 한 동안 묵묵히 앉아 있던 서암이 대답했다.
"멀리서 찾아온 정리를 생각해 몇 마디만 하지. 인터뷰라고 생각하지 말고 노인과 청년의 격의 없는 대화라고 생각했으면 하네."
기자는 대뜸 이런 엉뚱한 질문부터 했다.
- 스님,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권력 있고, 돈 많고, 오욕락이 행복인 줄 알지만 하루를 살아도 사는 의미를 알고 사는 것이 참 행복이지. 아침에 도를 얻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한 공자의 말씀이 조금도 틀리지 않아. 사는 뜻, 목적, 원리를 알지 못하고 백년을 산들 고깃덩어리에 지나지 않아. 사는 뜻을 알면 위대한 자기를 발견할 수 있지."
서암 스님은 진지했다. 선문답은 계속됐다.
- 어떻게 위대한 자기를 발견할 수 있나요. "향락에의 도취는 자기파괴에 이르는 첩경이지. 욕락에 초연하고 이성을 가꾸려는 노력을 해야 빛이 보이고 자기의 위대함을 알 수 있어. 참다운 자기 인생을 가꾸어 나가고 모든 사람들과 함께 잘 살 수 있는 등불을 밝혀야 해. 만인과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위대한 자기를 발견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지."
- 요즘 세상에는 희망을 잃지 않고 산다는 것만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간이란 항상 희망으로 사는 존재야. 희망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이지. 하지만 무엇보다 사는 뜻을 알고 사는 게 중요해. 진지하게 사는 사람이라면, 나는 왜 사는가,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내 인생은 어디로 돌아가는가 항상 생각하지. 그 화두를 평생을 걸고 해결하려는 사람이야말로 진지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런데 실제로 누구나 진지하게 사는 것은 아니야. 그 모습을 보면 천태만상이요 천차만별이지. 남에게 피해만 주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짐승만도 못한 사람도 있지."
그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다.
"공장 사장이 독한 폐수를 몰래 버리면 환경이 파괴되기 전에 이미 마음이 병든 것이야. 생명이 죽는 데 어찌 그럴 수 있겠어. 저만 살려고 하면 저도 못살고 남도 죽이는 결과를 낳지. 설사 남 모르게 한다 하더라도 자기 양심까지 속일 수는 없지. 남이 죽더라도 돈만 벌면 최고라는 정신에 문제가 있어. 1천만원 번다면 5백만을 들여서라도 폐수 처리 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해. 콩 심으면 팥 안 나와. 악한 일 했는데 선의의 결과가 나올 리 없지. 죄 지으면 남이 몰라도 이미 그 양심은 감옥에 들어가 있는 셈이야."
- 전직 대통령 중 한 사람은 뇌물을 받았다고 해서, 또 한 사람은 내란을 일으켰다고 해서 감옥에 갔습니다. 그런 대통령을 모셨던(?) 국민들은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곤혹스럽기만 합니다.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에 우왕좌왕(右往左往)할 필요도 없고, 일사일사(一事一事)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필요도 없어. 그들은 분명 큰 죄를 지었지. 스스로의 표현대로 못난 짓을 한 거야.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야.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에게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어. 처벌하라고 할 때는 역사에 맡기자고 하고 왜 이제 와서야 응징을 외치냔 말야. 국민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것도 당연하지. 전직 대통령들을 두둔하자는 게 아냐. 하지만 그들과 한솥밥을 먹던 김영삼 대통령이 과연 그들을 단죄할 자격이나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군. 모든 게 어린애 소꿉장난 같아."
그는 우리 사회가 극심한 혼돈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윤리 도덕이 사라지고 백성은 도탄에 빠져 갈 길을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깊은 산중에 앉아 있는 그가 어떻게 세상일을 알 수 있을까.
"아, 이 세상에 같이 사는 사람으로서 세상이 움직이는데 내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모를 수 있나. 나라가 온통 흔들리는데 어찌 나 혼자만 안 흔들릴 수 있나."
- 정치인들은 사는 뜻을 알고 있다고 보십니까. "정치인들이야말로 오늘날 가장 똑바른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할 사람들이지. 하지만 대다수는 정신이 병들어 있어. 그런 넋빠진 인간들이 정치를 하니 제대로 될 리가 없지. 단 한 명도 제대로 된 놈이 보이지 않아."
- 지식인은 어떻습니까 "탁류와도 같은 세상에서 정신세계를 책임진 지식인들의 역할은 막중하지. 그런데 그들마저 오욕에 흠뻑 젖어 버렸어. 그들이 할 일을 안 하니 정신세계가 썩는 것은 당연하지. 사람을 만들어야 하는데 주머니에 지식만 꾸역꾸역 채워 넣으려 하고 있어. 그러니 교수가 제 애비를 죽이고 학교에서 폭력이 판을 치지. 이 모든 것이 그런 넋빠진 지도자와 지식인들 때문이야."
그는 이수성 서울대 총장의 총리 취임에 대해서도 마뜩찮은 듯 했다.
"소위 명문대 총장 하던 사람이 뭐 하랬다고 턱 나가서 하니 얼마나 딱한 일이야. 학자의 가치관이고 뭐고 없으니 한심한 노릇이지. 백과전서와 옥편 같은 지식 주머니와 보따리만 있지 참된 지식인이 없어. 한심한 나라야. 일자무식이라도 옳고 그른 것은 판단할 줄 안다고."
- 지식인이 행정부에 들어가 개혁 작업에 동참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말장난 하지 말라고 해. 광야에서 외치는 사람들이 있어야 안에서도 제대로 할 수 있는 법이야."
그렇다면 그는 희망을 어디서 찾고 있는 것일까.
"유일한 희망은 청년이야. 하나의 등이 천만개의 등을 밝히고도 불이 남듯 청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를 밝혀야 해. 그 불을 높이 밝히면 나라가 밝아질 수 있지 않겠어?"
- 청년들에게 문제는 없습니까. "청년들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이지 지금 잘 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야. 청년들이라도 제대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하는데 뭘 모르고 데모하는 것 같애."
- 그렇다면 청년들이 가져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요.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세상을 지옥으로도 만들 수 있고 천당도 만들 수 있다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해. 내 자신이 창조자라는 생각을 가져야 하는 거지. 그럴 때 역사도 보이고 자기의 튼튼한 힘도 보인다 이 말이여."
- 자신을 먼저 찾을 때 역사에 대한 통찰력을 얻는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지. 자기 중심을 세워야 위대한 이론을 바로 볼 줄 알고, 바로 판단할 줄 알고, 바로 비판할 줄도 알게 된다 이 말이여. 남의 엄한 소리 듣고 그저 따라가는 것은 위험해."
그는 우선 좋은 책을 많이 읽을 것을 권했다. 책을 읽되 자신 속에 비추어서 비판하며 읽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무엇이든지 비판정신을 가지고 임할 때 산지식이 된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내 나이 여든 둘일세. 자동차도 오래 타고 다니면 폐차시켜야 한다더구만. 껍데기를 빌려 짧지 않게 세상을 살았으니 이제 돌아갈 때도 됐지. 나도 청년의 새 몸을 입고 다시 돌아와 거들어야겠어."
- 해방 50년은 곧 분단 50년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남과 북은 여전히 갈려서 싸우고 있습니다. "이북과 이남이 원수처럼 살고 있지만 진짜 원수는 일본과 미국이야. 강대국이 남과 북을 갈라놓은 거야. 그들은 약소민족을 돕는 게 아니야. 미국이나 일본은 말로는 통일을 원한다고 하지만 우리의 통일을 절대 바라지 않아. 다 야심을 가지고 하는 말이지. 그런데도 우리 국민들은 바로 보지 못하고 당하고만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지. 남과 북을 어린애 싸움시키듯 하고 있어. 절대 통일은 우리 민족이 이뤄야 해. 그런데 정부는 정신차리지 못하고 매일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고 있어.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백성을 잘 살게 만드는 것이 정치라는 것을 남과 북의 지도자들이 알아야 하는데…."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범에 물려 가고 물에 빠져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말이 있잖아. 제 정신을 차려야 한단 말이야. 지금 제대로 되는 것 있나. 세계는 눈을 뜨고 있는데 제 정신이 없어."
- 김영삼 대통령은 세계화를 주창하고 있는데요. "세계화면 제일인가. 저 하나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제 나라 바로 잡지 못하면서 무슨 세계화야. 성현들도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고 했잖아. 서양에서도 동양에 눈을 돌리고 있는데 도리어 우리는 자신의 위대함을 보지 못하고 있어. 지도자들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갈 길 몰라하는 백성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하는데 걱정이야."
그는 "바른 이치를 알아야 해. 외부적 혼돈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있어야 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역사 바로 세우기나 세계화 이전에 '자기 중심 세우기'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 국민들은 책임이 없습니까. "국민들도 올바로 판단하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만 보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거지. 눈밝은 사람이 나와 밝은 횃불을 들어야 하는데."
- 희망을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자각운동을 해야 해. 희망을 주먹이나 칼자루에서 찾을 수는 없지.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아는 판단에서 희망은 나와. 올바로 아는 것이 힘이야. 모든 국민이 정신 차리고 나서면 대통령과 정치가들이 저렇게는 못해. 옥도 쪼지 않으면 그릇이 될 수 없고 사람도 공부하지 않으면 도를 몰라. 하루를 살아도 떳떳하게 사는 철학을 가진 국민이 많을 때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어."
서암 스님은 대화가 끝나고 기자가 삼배합장을 하려 하자 만류했다. 형식보다 진정한 마음이 중하다는 말과 함께. 기자가 마당을 가로지르고, 극락교를 건너고, 산문을 지날 때까지 서암 스님은 내내 마루에 서 있었다.
하산길의 하늘은 투명했고 햇살은 따사로웠다. | | | |
첫댓글 도안님 다운 글을 퍼 오셨군요.....
그러게요.
경치가 끝내주는곳이여....함 가보셩~~~~
별로 인기없네~~ 언덕 분위기 땜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