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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덕천성결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이명재 목사
과학이 고도로 발달하고 교통과 통신이 시공(時空)을 단축시켜 주고 있어 우리의 삶이 몹시 편리해졌다고 해도 200 여 Km를 한걸음에 달려온다는 것은 상식을 뛰어넘는 일이다. 그것도 한두 사람이 아닌 20 여명의 사람들이. 사람들이라고 해도 또 보통 사람들인가! 영혼 구원에 영일(寧日)이 없는 목사님 사모님들이 주를 이루는 대부대(?)가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하나님께 충성하고 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니까 가능하지 세상 타산(打算)만 하며 자기 유익을 구하는 사람이라면 엄두도 내지 안 했을 일이었다.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의 양극화 현상에 대한 우려가 높다. 거기에 중앙과 지방의 불균형 발전에서 오는 조화롭지 못한 사회에 대한 걱정들도 있다. 농촌 교회에 속하는 우리 교회는 성도 수와 재정 등을 말할 때면 초라함을 면할 수 없다. 이런 것을 하나님 앞에서의 충성심, 순종 등의 정도로 만회하려고 하지만 그것도 냉정한 현실 앞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이고 보니 사람을 만나는 것이 반갑기도 하고 또 한 편 두렵기도 한 이율배반적인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많다. 특히 교회에 손님이 찾아온다고 할 때 이런 마음의 회오리는 진폭이 더욱 크다.
빌립전도 훈련을 마친 교회들이 뜻을 모아 품앗이 전도라는 것을 한다. 이것은 빌립전도 훈련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는 마음의 반영일 것이다. 작년과 올해 연 2회에 걸쳐 부산에서 개최된 빌립전도 훈련을 받은 내가 품앗이 전도에 선뜻 참여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아무리 열정과 헌신이 투철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멀리 부산과 경남에서 경북 북부에 위치해 있는 우리 교회까지 품앗이 전도를 오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의 수고는 능히 감당할 수 있는 문제지만 20-30명의 고급 인력들을 멀리까지 오게 하는 것은 양심상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다.
사진설명-부산과 경남에서 오는 빌립전도특공대의 '품앗이 전도' 행사를 알리는 글자판이 강대상 앞 전면에 붙여졌다. 이 글씨는 먹물을 그림붓에 묻혀 내가 직접 쓴 것이다. 자칭 '명재체'라고 부르는 글씨인데, 힘이 꿈틀대는 것 같다는 찬사(?)을 듣고 있다.
그래서 나는 품앗이 전도를 신청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유혹(?) 역시 떨쳐 버리기 어려운 일이다. 부산에서 빌립전도 훈련을 함께 받은 같은 조 목사님 교회에서 품앗이 전도를 하는 날, 특별히 나를 초대하는 데 응하는 것 말이다. 그것까지 거부할 강심장의 소유자가 나는 못된다. 연이어 두 번 김해 한빛은혜교회(이충구 목사)와 진해의 용원산성교회(황홍길 목사) 품앗이 전도에 참여하게 된 것은 이런 마음의 산물이다. 그리고 한 번 더 노숙자 목회를 하는 참조은교회(담임 박영선 목사)에 가서 전도를 해 주었었다. 이런 우리 부부를 보고 갸륵한 생각이 들었던지 빌립전도협회 부산지회 지회장 이정순 목사님과 총무 전 문 목사님이 품앗이 전도 마지막 순서로 우리 김천 덕천교회를 잡아 준 것이다.
솔직히 기쁘기도 하고 한 편 부담이 좀 되기도 했다. 기쁨은 전도특공대라고 불리는 이들이 전도의 열정을 내뿜는 하루가 될 것에 대한 기대 때문이고, 부담은 귀한 분들을 멀리까지 오게 해서 생고생시키는 것 같은 생각 때문이다. 이런 것을 어떤 이는 '거룩한 부담'이라며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나는 아직 그런 배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주님께서도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롬 13:8)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조차 나는 아직 홀가분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부족한 사람이어서 그럴 것이다. 어쨌든 우리 교회 품앗이전도가 확정되어 진행되고 있는 일이니까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없다.
성도가 많은 교회라면 일을 나누어 해결하면 그만일 터이다. 손이 많다는 것은 일의 농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손이 없는 일을 한두 사람이 처리하려 하면 손발이 아무리 척척 맞아도 진척은 더디게 마련이다. 그것도 작은 교회 목회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려니 여기고 목회를 하고 있다. 우리는 빌립전도특공대 품앗이 전도의 날을 교회 쇄신의 날로 잡고 예배당과 사택 그리고 화장실과 마당, 텃밭을 정리하기로 했다. 예배당 형광등을 갈아 끼우고, 몰려오는 더운 날씨를 감안해 선풍기를 벽에 달았다. 사택도 평소와 달리 보다 간편하게 정리했고 화장실의 고장 난 변기도 고쳤다. 그것뿐이 아니다. 마당 잔디밭의 잡초를 제거했으며 텃밭에 골을 만들어 고추 가지 토마토 오이 등의 모종을 심었다. 실용성과 완상성(玩賞性)을 동시에 겨냥한 작업이다.
그래도 웅장하면서도 심플한 도회지 큰 교회에 비하면 소꿉장난 수준의 예배당밖에 안 된다. 이런 농촌 교회에 품앗이 전도를 오겠다는 것은 대단한 결단이 요구되는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오겠다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랴. 사실 현실적으로 따지고 보면 좀 모자라는 사람들처럼 여겨지기 십상이다. 거룩한 역린(逆鱗)이라고나 할까. 시대를 거슬러 살아가려는 모습에서 청초함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에 보기 좋게 거스르게 만드시며 기쁨을 누리시는 분 같기도 하다. 세상에서 당하는 소위 '왕따'를 하나님께서 좋아하신다면 기꺼이 감당할 우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제(5월 22일) 저녁 총무 전 문 목사님과 전화 통화할 때만 해도 15명이 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오늘 아침 8시 45분 출발하면서 통화할 때는 최종 19명이 온다는 예상 밖의 말을 했다. 거리를 고려할 때 정말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전 문 목사님의 사모님은 자리가 부족해서 눈물을 머금고 양보의 미덕을 보여서 함께 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내는 귀한 손님들에게 삼계탕을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일손이 모자라는 현실에서 나는 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워낙 섬기기를 좋아하는 아내이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솔직히 쉬운 길을 택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계산해 보니 음식점에서 식사를 대접하는 것과 집에서 준비하는 것이 비슷했다. 하지만 아내는 '정성'과 '사랑'을 음식 값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내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작은 교회에 큰 행사가 있을 때 차지하는 사모의 비중은 어느 교회를 가리지 않고 클 것이다. 그래도 불평불만 없이 일을 처리하는 아내가 고맙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God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는 속담이 있다. 서양 속담인 이 문장의 첫 단어, '하늘'은 영어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God)을 가리키는 것이다. 하나님은 선한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일꾼을 붙여 주시는가 보다. 준비의 분위기가 한층 무르익을 때 쯤 강전윤 권찰, 김영자 성도 부부, 김을봉 집사님, 백태연 할머니, 박철희 이선옥 두 권사님이 시간을 내어 일을 도와주기 위해서 왔다. 지금 농촌은 수확기와 함께 농번기의 절정에 속하는 때이다. 특히 포도 특구로 지정되어 많은 사람들이 포도 농사를 짓는 우리 지역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시간을 보낸다. 그도 그럴 것이 농사라는 게 제 시간을 놓지면 망치고 말기 때문에 농민들은 그 때를 놓치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다 쓴다. 정말 주일 성수를 어길 때도 바로 이 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필요한 시각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 달려와서 음식을 장만하고 청소를 하는 등 힘이 되어 주었다. 오래간만에 귀한 손님들을 맞이하면서 그분들을 위해 최소한 내가 할 드러나는 일은 어떤 게 있을까? 나는 그들을 환영하는 의미와 감사의 의미가 동시에 담긴 글자판을 만들어 강대상 전면 벽에 부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났다. "빌립전도특공대 품앗이 전도"라는 글자판이 그것이다. 내가 자칭 '명재체(明在體)'라고 명명한 붓글씨가 어색함 없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기뻤다. 분위기가 한껏 살아나는 것 같았다. 행사 날짜를 기억하고 붓글씨로 곱게 표현하는 것은 얼마나 좋고 의미 있는 일인가. 각종 행사장에 현수막을 만들어 여기 저기 거는 것도 이런 뜻에서가 아닐까 싶다.
사진설명-땡볕 아래 품앗이 전도를 마치고 돌아와서 빵과 과일 그리고 음료를 들며 복음을 전하면서 일어나 숨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아내는 오늘의 메뉴인 삼계탕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생각보다 많은 노력과 정성을 요구하는 음식 같았다. 닭의 배를 째고 찹쌀을 집어넣고 인삼과 대추 및 한약재를 넣어 푹 삶아야 제 맛이 나는 삼계탕인데 그럴 시간이 빠듯한 듯했다. 나는 또 다시 괜히 사서 고생을 한다고 생각했다. 중간에 점심 식사를 하고 오겠다는 전도 팀에게 우리 교회에서 준비하겠으니 바로 오라고 했을 때, 그러면 간단한 국수 정도로 준비하면 되겠다고 했는데 삼계탕을 준비하고 있으니 준비하는 사람이나 오는 손님들이나 누가 생각해도 좀 버거운 메뉴임이 분명했다. 그래도 더운 날씨엔 보양식으로 삼계탕만한 게 없다며 아내는 정성에 정성을 더해 밀고 나갔다.
오전 8시 45분 경, 지회장 이정순 목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으니 특별한 일이 없는 한 11시 30분 정도면 도착할 것이다. 이 목사님은 총 19명이 출발한다고 알려 왔다. 다시 한 번 빌립전도특공대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자신의 유익이 아닌 하나님의 일에 이렇게 마음을 다 해 움직인다는 것은 당사자들의 주님에 대한 충성심과 헌신성 그리고 마음의 천진난만(天眞爛漫)함을 말해 주는 것이다. 아이와 같은 마음, 주님은 이런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아이는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아이를 말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는 자가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부산과 경남에서 오는 19명의 빌립전도특공대가 바로 이런 자들이 아닌가 싶다.
초여름 날씨를 보이겠다는 기상 예보는 우리의 마음을 여름 한 가운데로 옮겨 놓게 했다. 나는 손님맞을 준비의 마지막 순서로 예배당의 선풍기를 손질했다. 바로 그 때 교회 마당으로 차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눈에 익은 차다. 카니발과 스타렉스, 흰색 카니발은 김해 한빛은혜교회 이충구 목사님의 애마(愛馬)이고 회색 스타렉스는 부산 주사랑교회 전 문 목사님의 발이자 많은 차량 봉사의 대임(大任)을 잘 수행하고 있는 바로 그 승합차이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달렸는가 보다. 시각을 보니 11시 15분이었다. 두 시간 반의 시간에 부산에서 이곳까지 달려온 것은 운전의 노련함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것도 여기저기에 들려 여러 사람들을 태우고 달려온 것을 생각하면 두 운전자는 베스트 드라이버(best driver)에 속하는 것이 분명하다.
간단하게 예배를 드렸다. 부산 삼어제일교회 전이철 목사님이 오늘의 품앗이 전도를 위하여 예배 전 기도회를 인도한 뒤, 빌립전도협회 부산지회장 이정순 목사님의 사회로 예배가 시작되었다. 기도 순서를 맡은 충무 전 문 목사님이나 말씀을 전한 지회장 이정순 목사님이 우리 교회를 아름다운 전원교회로 보아주어 고마웠다. 사실 예배당의 초라함은 농촌 교회임을 감안하더라도 그 협소함이 이를 데 없는데, 포도밭에 둘러싸여 있는 교회의 모습이 너무 편안하다며 덕담들을 해 주었다. 도회지에 적응된 눈으로 우리 교회를 본다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예배 말미에 나는 우리 교회 소개와 오늘 전도 나가면서 주의해야 할 것들을 설명했다. 농촌 교회에서 하는 품앗이 전도는 처음이어서 참석자들 모두 기대반 긴장반의 모습들을 보였다.
우리는 모두 4개조로 나누었다. 1조는 용배 마을, 2조는 인근 상가, 3조는 도산 마을, 4조는 남전 마을. 담당 지역 파악을 위해 내가 차로 대상 마을을 한 바퀴 돌면서 소개한 뒤 시작할 곳에 내려주는 식으로 특공대들을 투입했다. 땡볕 더위를 대비하는 여자 목사님 사모님들은 챙이 넓은 모자를 꺼내 햇볕 아래 얼굴을 숨기는 일을 잊지 않았다. 나는 2조에 합류했다. 이충구 황홍길 목사님과 박미량 전도사님과 함께 마을 인근 상가를 공략하기로 했다. 식당과 모텔, 주유소 그리고 목재소, 차량 정비업소 등을 샅샅이 쑤시고(?) 다녔다. 전 문 목사님은 우리의 품앗이전도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동영상을 찍겠다며 동행했다.
반응들이 좋았다고 했다. 불교 세(勢)가 강한 곳에 비교적 그리스도인들을 많이 만났다고 했다. 몇몇 사업장에서는 덕천성결교회 이명재 목사님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며 평소 꾸준히 복음을 전한 것이 좋은 인상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1시간 반 정도의 작업을 끝내고 교회로 돌아오니 오후 3시 반이 되어 있었다. 보고회가 열렸다. 복음 제시 몇 명, 영접 기도와 출석 결심 등 조별로 상세하게 보고해 주었다. 몇몇 가정은 교회에 나오기로 했다면서 빠른 시일 안에 재방문할 것을 부탁했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영혼 구원은 다양한 방법으로 다가가야 함을 알 수 있었다. 각 가정의 숟가락 숫자까지 파악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나였지만 나의 눈이 닿지 않은 집이 있었다는 말이 되어 하나님과 당사자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사진설명-전도 보고회를 마친 뒤, 참석자들이 승리는 우리의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모두들 하나 된 마음으로 흐뭇함에 겨워하고 있는 표정들에서 신심이 엿보이는 것 같다.
보고 결과 1조가 1등 3조가 2등 4조가 3등 2조가 4등으로 성적이 발표되었다. 모두들 너무 열심히 해서 성적의 순서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부상으로 주어진 보리건빵은 우리 교회 전도용으로 기증하겠다고 말했다. 작은 농촌 교회를 사랑하는 인정의 발로(發露)여서 마음이 뭉클했다. 우리는 다시 품앗이 전도와 참여한 교회 그리고 특히 우리 덕천성결교회의 기도 제목을 놓고 통성으로 기도했다. 기도는 마음과 뜻을 모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지만 모인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어 주는 의미도 결코 적지 않다. 일정을 마무리하고 가까운 직지문화공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직지사 앞에 차를 세우고 먼저 백수문학관을 들렀다. 찬찬히 따지고 보면 백수 선생의 시조는 우리와 가까이 있는 셈인데, 모두들 정완영 선생의 아호 '백수'에 사고(思考)를 모으고 있는 것 같았다. 백수건달, 즉 '하는 일 없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 따위의 의미로 사용하는 '백수'를 호로 쓰는 시조 시인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정완영 선생의 시조는 우리가 학교 다닐 때 국어 교과서에서 배운 잔상(殘像)들이 남아 있을 것이었다. 대표적으로 '조국(祖國)'과 '부자상(父子像)'이 그러한 시조들이다. 마침 전시관 안내를 위해 나온 문학관 직원에게 시인이기고 한 황홍길 목사가 왜 하필 '백수'냐고 뜬금없이 질문을 던졌다. 가이더(guider)는 정완영 선생은 우리 김천 출신 시조 시인이신데, 고향을 너무 사랑하셔서 '김천(金泉)'할 때 뒤 글자 '샘 천(泉)'자를 해자(解字)하면 '흰 백(白)'과 '물 수(水)'가 되어 그것을 아호로 삼으신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목회자들은 모두 예술성이 뛰어난 것 같다. 예술가적 자질들을 다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당장 품앗이 전도 참석자들의 면면들을 보더라고 시인도 있고 성악가도 있고 화가도 있으며 문학청년, 문학소녀 아닌 사람이 없을 정도니 말이다. 직지 문화 공원에는 이런 사람들의 취향을 잘 반영해 이름에 걸맞게 '문화'에 방점을 찍어 조성한 공원이다. 당장 수십 개의 시비(詩碑)들과 여러 나라 유명 조각가들의 작품이 그것을 웅변해 주고 있다. 우리가 애송하는 시들은 거의 빠지지 않고 큰 바위에 음각되어 있는 것을 볼 때 김천의 문학적 수준을 말해 주고 있는 듯해 뿌듯하다. 옥의 티는 많은 유명 시인들의 시 중 소위 ‘참여 시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시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 '찬(讚) 직지문화공원'이라는 글에서 이 점을 지적하며 적어도 고 은, 신경림의 시 정도가 첨가 되었다면 더 할 나위 없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한 적이 있다.
임원들이 저녁을 쏘겠다고 했다. 어느 식당이 좋겠느냐며 나에게 도움을 요청해 왔다. 나는 보리밥으로 유명한 한 음식점과 냉면 잘 하기로 소문 나 있는 곳을 소개했다. 점심을 삼계탕으로 대접 받았으니 저녁 식사는 시원한 냉면이 좋겠다고 했다. 부곡동 강성면옥은 구미 영동 상주 등 먼 곳에서도 일부러 찾는 유명한 냉면집이다. 내가 22명이 오후 6시 정도 도착하겠으니 자리 좀 마련해 달라고 예약을 했다. 냉면은 원래 북한 음식이고 더운 여름보다는 겨울에 찾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 우리는 날씨가 덥기 때문에 시원한 냉면을 먹고 싶어 유명한 냉면집을 찾은 것이다. 비빔냉면은 '비파', 물냉면은 '물파'라고 약칭을 정하고 주문을 받으니 대략 반반으로 나뉘었다. 누군가가 '물파'를 '노태우파'로 정정하자고 제안해서 웃음을 터뜨리게 했다. 이충구 목사님의 식사기도 후 우리는 기호에 맞게 식초와 겨자를 정도껏 쳐서 맛있게 냉면을 해 치웠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라는 이별을 아쉬워하는 노래가 있다. 품앗이 전도로 뜻과 힘과 온갖 정성을 모아 합력(合力)해서 복음을 전한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나는 일일이 감사 인사를 나누고 김천 톨게이트 입구까지 차량을 안내하며 끝까지 고마움을 표현했다. 손을 흔들어 감사함과 아쉬움이 교착(膠着)된 마음을 전하니 떠나는 자들 역시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이런 맛깔스런 매력도 이 먼 곳까지 와서 품앗이 전도를 하는 이유 중 하나이지 싶다. 맑은 저녁 하늘이 평화의 상징처럼 펼쳐져 있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습을 내려다보시고 빙그레 흡족한 웃음을 띠고 계신 것 같았다. 내가 너희들을 다 안다고 하시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