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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형병원, 겉만 화려하고 속은 곪아 터져
국제 수준 외상센터, 적자여도 투자하고 인력구조 유지해야
필수의료는 국가가 책임지고 의사·간호사 키우는 구조로
[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꺄악.” “어머, 어떡해.” “저 환자 살 수 있어요?”
영하권 한파가 몰려온 11월의 마지막날 저녁 7시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교육문화센터에서 열린 프로보노포럼에 참석한 변호사들. 그들은 난생처음으로 피를 흥건하게 흘리고 처참하게 찢어진 살과 장기(腸器) 사진을 보더니 나지막한 비명을 질렀다.
요즘 최고의 유명세인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이국종 교수가 마이크를 들고 강연장에 섰다. 그는 11월 13일 북한에서 귀순한 병사를 비롯한 150여명의 외상센터 환자를 치료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고 했다. 하지만 3달 전 수락한 변호사 대상 강의를 취소할 수는 없었다. 응급수술을 마치고 경기도 수원에서 서울 서초로 부랴부랴 달려왔다. 법과 제도에 가까이 있는 그들에게 우리나라 외상센터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외상센터를 지원해달라는 국민청원이 20만명이 넘었고 이에 대해 청와대가 답변한다. 청와대가 그를 부르고 국회가 지원을 늘리겠다고 말해도 외상센터의 적자를 모면하기 어려운 걸까. 교통사고, 추락 등 대형 사고를 당했을 때 환자를 살리는 취지의 외상센터가 제 역할을 하기 어려운 걸까.
"여러분, 대한민국에서 외상센터는 제대로 자리 잡기 어려울 거에요. 혹시 한 다리 건너서 의사들 많이 아시나요? 응급 상황이 생기면 그렇게 아는 사람을 통해서 병원을 가는 게 나을지도 몰라요. 대한민국은 사고가 크게 나면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사회예요. 현장에서 일하다 다치거나 사고가 나는 계층은 어쩌나요."
매섭게 몰아치는 한파만큼이나 그의 단호한 어조가 싸늘하게 다가왔다. 그래도 이 교수로부터 아직 대한민국 외상센터와 의료에 희망이 있다는 한마디를 듣고 싶었다. 2시간이 넘는 강연을 듣고 그를 에워싼 무리에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약간의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숱한 사람들 속에서 계속 사진을 찍히고 사인을 했다. 의사 중에서 이렇게 대중의 사랑을 받은 의사가 얼마나 있었던가. 그런데 그는 왜 힘들다고 말하는 것일까.
유명세? 돌아서면 다시 힘든 제자리 그대로
-석해균 선장에 이어 북한 귀순병사 치료까지 하다 보니 의도하지 않아도 더 유명해지는 것 같다.
“신문이나 방송을 볼 시간이 별로 없다. 공중파 방송에 출연한 일도 거의 없는데 어디서, 무엇을 보고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는 건지 모르겠다.
사실 그런 것과 달리 외상센터에서 묵묵히 환자를 수술하고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 너무 힘들다. 오히려 수많은 관심이 부담스럽다. 2011년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살린 다음에도 외상센터가 달라진 것이 있었나. 오히려 모든 인기가 식은 다음부터 달라진 것이 없는 의료시스템의 현실을 보면 너무 허탈하다.”
-외상센터를 지원하자는 국민 청원이 20만명을 넘었다. 청와대가 관심을 가지면 달라지지 않을까.
“국민들께 너무 감사하다. 하지만 이런 국민 관심은 3개월이면 사라질 수 있다. 이미 석 선장 때 경험했다. 그러다 보면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직접 관심을 가지면 정책 실행이 빠르긴 하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직접 보건복지부에 외상센터 설치를 지시했다. 그때 전국에 외상센터가 설치되면서 실무진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외상센터는 단순히 하드웨어를 설치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예산을 나눠 갖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서 일할 의사와 간호사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하루에도 수십번 후회, 고된 외과의사의 길
-외과의사는 그렇게 힘든가. 이번에 아주대병원 외상외과 전공의 지원자가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외과는 막노동이나 마찬가지다. 매일 핏물과 오물을 뒤집어 써가며 일한다. 피가 인체 무게의 5%로 채워져 있는데 여기서 절반만 모자라도 환자 사망으로 연결된다. 매일 헬기를 타고 위급한 순간에 헬기 안에서 손끝으로 피를 막고 응급수술을 한다. 이후에도 수차례 수술을 거치고 겨우 환자를 살려낸다.
외과의사는 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온종일 서서 손으로 수술을 해야 한다. 수술을 마치면 진이 빠진다. 그러다 보니 체력적인 부담이 많다. 직업의 평균 수명이 짧다. 밤에는 또 어떤가. 남들 퇴근하는 시간에 야간 응급수술을 할 때가 많다.
그동안 몸이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 한쪽 눈이 뿌옇고 무릎관절과 어깨가 좋지 않다. 예전보다 소화할 수 있는 수술 건수가 많이 줄었다. 지금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낀다. 힘들어서 그냥 그만두고 싶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수술방에서 수술도구를 집어던지고 나가고 싶을 때도 많다. 그저 환자가 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하루하루 버티면서 제 자리에 있는 것이다.”
-다시 의대 시절로 돌아가서 진료과를 선택한다면 외과를 하고 싶지 않나.
”다시는 외과의사를 하고 싶지 않다. 대학병원을 그만두고 나가도 할 일이 있어야 되는데 외과, 외상외과는 나가서 할 일도 없다. 학생 시절로 돌아간다면 의대 자체를 안가고 싶다. 아니면 환자 생사(生死)의 갈림길에 있지 않은 진료과에 가면 좋을 것 같다. 지금도 외딴 곳에 가서 조용히 혼자 환자를 돌보는 일을 하고 싶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왜 의사가 됐지', '왜 외과의사가 됐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외상센터는 병원에 적자를 안기고 있나. 아주대 교수회 소식지 '탁류청론'에 외상센터가 연간 10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고 썼다.
”외상센터는 필요한 장비와 인력이 많다 보니 항상 적자다. 정확한 수치를 보면 2009년 3월부터 2010년 2월까지 1년간 8억4900만원의 적자가 났다. 2010년3월부터 2010년 10월까지는 8개월만에 적자 규모가 8억7100만원이었다. 이후 현재까지 매년 적자가 20억원까지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정부로부터 받는 외상센터 지원금으로 겨우 적자를 메우는 수준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성과급 액수도 형편없다. 3달에 한번 성과급을 받는데 한 번은 120만원이었고 그 다음은 98만원이었다. 생명을 살리고 힘든 일을 하는데 성과급 치고 너무 적지 않나. 성과급을 많이 받는 동료 의대 교수와 비교하면 연봉이 3배까지 차이 난다. 칼퇴근도 못하고 쉬지도 못하는데 허탈하다.
우리나라는 필수의료이자 공공의료에 대한 문제 의식이 없다. 외상센터는 전용 구급차나 닥터헬기의 문제가 아니다. 일하는 사람을 충분히 늘리고 또 그들을 계속 키우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보통 의사와 간호사가 외상센터에 오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힘들어서다. 그들이 환자 생명을 살리는 일에 힘이 덜 들게 느끼게 하려면 '돈'이 가장 정직하다. 외상센터를 운영할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가 아니라 반대여야 한다. 외상센터에서 일하는 의사와 간호사가 성과급을 더 많이 받는 구조여야 한다.
성형외과가 돈을 잘 번다는 인식이 있는데 돈을 많이 번다고 나쁜 것이 아니다. 성형외과는 환자를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만드는 기적을 일으켰다. 우리나라의 실력 있는 의사들이 기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외상센터도 그렇게 돈을 벌 수 있다면 실력있는 좋은 의사들이 몰리고 각종 사고로 죽어가는 환자를 살릴 수 있다. 환자 생명을 살리는 필수의료에 직결된 진료과 모두 마찬가지다.”
-이른바 '문재인 케어'라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이 나왔다. 외상센터의 적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대한민국은 정책 없는 고도성장을 이뤘다. 의료도 마찬가지다. 대형병원들이 외형적으로는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마치 그 속은 어두운 블랙홀과 같다. 의사와 간호사는 필요한 수의 3분의 1 정도만 뽑고 있다. 그만큼 내부를 뜯어보면 치료의 질(퀄리티)이 엉망인 경우가 많다. 국제 기준에 한참 모자란다.
우리나라는 중환자실조차 환자 2명 이상에 간호사 1명을 배치한다. 말만 중환자실이지 중환자실이 아닌 셈이다. 석 선장 때 갔던 오만 병원은 환자와 간호사 비율이 1.3대 1이었다. 우리나라 병원은 오만에 있는 병원보다 못하다.
외상센터의 연간 간호사 사직률이 30%가 넘는다. 그만큼 일이 힘든데 사람은 부족해서다. 충분한 의사와 간호사를 뽑고 사람을 키우는 인력 시스템에 투자할 수 있도록 재정과 교육,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이는 눈 앞의 인건비 예산이 늘어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국가는 필수의료를 공공의료로 보고 이를 충분히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민간 병원이 전체 병원의 90%가 넘는다.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필수의료가 외면받고 있다. 이 부분은 국가가 나서야 한다.”
'필수의료' 의료계와 국민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때
-헬기를 타고 환자를 구출하러 간 일이 지난해 166건이라고 했다. 주민 반발로 일부 헬기장이 없어졌다는 이야기가 사실인가.
”헬기를 갑자기 타는 것과 매번 실전 연습을 한 것은 차이가 크다. 이번에 미군 헬기를 타고 이동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군은 평소 훈련이 잘돼 있어서 신속하고 안전하게 북한 병사를 이송할 수 있었다. 미국은 군인이나 군병원 의사들이 매번 헬기를 타고 훈련을 한다. 영국은 기상조건이 비행하기 힘들어도 세계적인 외상 분야 석학이 작은 헬기를 타고 훈련한다. 일본은 전체 병원이 헬기와 연동되고 수시로 강화훈련을 한다. 헬기 훈련은 11톤 이상의 헬기 프로펠러에서 나오는 바람을 맞아도 아무렇지 않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의료진조차 헬기장 앞에서 사진만 찍고 정작 헬기를 타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헬기 이착륙장소도 부족하다.
강북의 한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시끄럽다는 이유로 헬기장을 없애라고 해서 중랑천 한 가운데에 헬기장을 설치했다. 여기는 비가 많이 오면 물에 잠긴다. 헬기장이 왜 거기에 있어야 하나. 단지 시끄럽다는 이유로 다른 환자를 살리지 못해도 좋다는 것인가. 만약 본인이 사고를 당해서 헬기로 이송해야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의료소송에서 사비를 들인 사연도 있다는데.
”한 번은 9살 어린이가 버스에 치이는 사고로 수술을 받았다. 그와 부모님은 거의 다 나을 때쯤 병원에서 도망쳤다. 버스회사가 병원비를 물어내야 하는데 병원 책임이 크다며 8000만원 상당의 소송이 들어왔다.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MRSA)라는 의료 감염을 초래해 병원비가 많이 나왔다는 것이다.
다행히 최선을 다해 치료를 했다는 법원의 중재로 버스회사가 병원비를 갚도록 하는 화의(和議)가 선언됐다. 대신 의료 감염에 쓴 항생제 비용 250만원을 내라는 명령이 나와 사비로 냈다. 그냥 이쯤해서 끝난 것이 고마웠다. 환자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도망칠 정도로 살아줘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살인미수 범인이 병원에 온 일도 있는데 일단 의사는 사람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환자 생명부터 살려야 한다고 본다. 병원에 환자가 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환자의 중증도만 생각할 뿐이다.”
-거침없는 쓴소리를 해서인지 의료계에서도 적이 너무 많다. 지난해 국정감사 사건도 충격적이었다.
”2016년 복지부 국정감사에서 다른 권역외상센터의 누군가가 국회의원실에 ‘중증 외상환자가 아닌 환자(ISS 8점)에 불과한 석 선장을 데려와 수술하는 멋진 쇼를 해서 외상센터를 설립했다’고 토로했다. 외상센터 전담 전문의들이 사표를 내는 일이 번번이 일어나는 것이 힘들다고 했다. 외상센터 쇼맨십이 강한 사람(본인)을 잣대로 현실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ISS 8점이면 중증도가 상당한 것이다. 당시 석 선장은 사지(四肢)의 세 부분이 부러질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피가 썩고 고름이 차서 내장기관이 부풀어 올랐다. 감염을 막으면서 겨우 살렸다. 외상센터는 지원금을 받으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정부가 일할 의사가 없는 상태로 외상센터를 확대하기만 한 것이 문제를 일으켰다고 본다.
의사의 의무만 생각하면 너무 머리가 아프다. 환자를 살리는 진료과는 환자가 오지 않아도 국가 차원으로 투자하고 성과급을 많이 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의사와 간호사 개인이 희생하길 바란다면 지속할 수 없다.”
외상센터, 함께 일하는 '사람'이 희망이다
-외상센터의 방향성은 어떻게 가야 하는가. 예산이 지원되면 나아지지 않을까.(실제로 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여야 합의로 외상센터 내년 예산 212억원을 증액해 612억원을 편성했다.)
”예산을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한두개를 만들더라도 제대로 된 외상센터가 필요하다고 수없이 외치고 또 외쳤다. 정부 공무원은 처음 주장한 사람의 의견을 듣고 전문가라 주장하는 주변 이들의 의견을 들어본다. 그러나 혼선이 생기고 위험하다고 느끼면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 그러다 그 공무원이 1~2년 사이에 부서이동을 하는 일이 많다.
우리나라는 어떤 정책적 결정이 내려지면 그것을 끝까지 뚫고 갈 힘이 없다. 정책이 일관성 있게 실현돼야 한다. 지금처럼 예산을 전국 17개 권역외상센터(현재 9개 운영 중)가 나눠가지는 구조로는 안 된다. 어떤 외상센터는 환자도 없고 수술건수도 없지 않나. 거기에 지원되는 지원금(80억원)과 인건비(전문의 1명당 1억2000만원)로 다른 진료를 하는 경우도 많다.
정부는 진짜 외상환자를 치료할 외상센터를 소수로 만들어서 거기만큼은 외상환자 치료에 완전히 집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외상센터는 수익과 관계없이 국제 수준으로 인력을 채용하고 오로지 외상환자를 위해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주장은 몇 년간 반복했지만 달라진 게 없다.”
-어떻게 해야 외상센터, 그리고 외과에 지원을 많이 하게 될까.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있지 않나. 영국은 왕자가 직접 헬기를 타고 둘러보면서 사회 문제를 해결한다. 영국 사회를 지탱하는 문화적인 힘이라고 생각한다. 영국 왕자가 직접 헬기장을 다니다 보니 헬기장이 탄탄하게 구축됐다. 영국과 같은 정신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재차 이야기하지만 우리나라 사회는 돈이 걸려있을 때 가장 깔끔하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돈이 필요하다. 특정 진료과를 기피하는 이유는 돈이 되지 않아서다. 사명감으로 평생 살 수는 없다. 이건 개인이 먹고사는 문제다.”
-이 교수께서 힘들고 어려울 때 자신을 스스로 지탱하는 힘은 무엇인가. 너무 차가운 표정만 보인다. 좀 웃어달라. (여러 번 요청해 웃는 사진을 겨우 한 장 찍었다.)
”진정성,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고 본다. 외상센터에서도 여러가지 갈등이 생긴다. 환자가 치료를 거부할 때 진정성을 가지면 치료를 받겠다는 의지가 커진다. 진정성을 갖고 매진할 때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외과도 진정성 있게 접근한다면 성형외과처럼 기적을 만들 수 있다. 우리나라 외상센터도 외형이 아닌 시스템을 국제 수준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젠 너무 지쳤고 시간이 얼마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