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고려사> 지리지의 강화자료
『三國史記』
「地理志」
海口郡 [1145년(고려
인종28)]

[原文]
海口郡
本高句麗穴口郡 在海中 景德王改名 今江華縣 領縣三.
江[沍]陰縣
本高句麗冬音奈縣 景德王改名 在穴口島內 今河陰縣.
喬桐縣
本高句麗高木根縣 海島也 景德王改名 今因之.
守鎭縣
本高句麗首知縣 景德王改名 今鎭江縣.
[번역]
『삼국사기』
「지리지」
해구군
해구군(海口郡)은
본래 고구려(高句麗) 혈구군(穴口郡)인데
바다 가운데 있다.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고쳤고 지금의 강화현(江華縣)이다.
영현(領縣)이
셋이다.
강[호]음현(江[沍]陰縣)은
본래 고구려 동음내현(冬音奈縣)이다.
경덕왕
때 이름을 고쳤고 혈구도(穴口島)
안에
있다.
지금의
하음현(河陰縣)이다.
교동현(喬桐縣)은
본래 고구려 고목근현(高木根縣)으로
바다의 섬이다.
경덕왕
때 이름을 고쳐서 지금도 그대로 부른다.
수진현(守鎭縣)은
본래 고구려 수지현(首知縣)이다.
경덕왕
때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의 진강현(鎭江縣)이다.
『高麗史』
「地理志」
江華縣 [1451년(조선
문종1)]
[原文]
江華縣
本高句麗穴口郡[一云
甲比古次]
在海中.
直貞州之西南
通津縣之西.
新羅景德王
改爲海口郡.
高麗初
更今名.
顯宗九年
置縣令.
高宗十九年
避蒙古兵入都 陞爲郡號江都.
三十七年
築中城 周回二千九百六十餘閒
元宗元年
復還松都.[府東十里松嶽里
有故宮基]
忠烈王時
倂于仁州 尋復舊.
辛禑三年
陞爲府.
有摩利山[在府南
山頂有塹星壇 世傳 檀君祭天壇]
傳燈山[一名
三郞城 世傳 檀君使三子 築之]
有仇音島
巴音島 今音北島 買仍島.
屬縣三.
鎭江縣 本高句麗首知縣
在江華島內.
新羅景德王
改名首鎭 爲海口郡領縣.
高麗更今名
仍屬有鞍島 長峯島.
河陰縣 本高句麗冬音奈縣[一云
芽音縣]
在江華島內.
新羅景德王
改名冱音 爲海口郡領縣.
高麗更今名仍屬
後屬開城縣 有主乙叱島.
喬桐縣 本高句麗高木根縣[一名
戴雲島 一云 隔林 一云 達乙斬]
在海中.
直江華縣之西北
鹽州之南.
新羅景德王
改今名 爲海口郡領縣.
高麗仍屬之.
明宗二年
置監務 有松家島.
[번역]
『고려사』
「지리지」
강화현
강화현은
본래 고구려 혈구군(穴口郡)
[일설에는
갑비고차(甲比古次)라고도
한다.]으로
바다 가운데 있다.
바로
정주(貞州)의
서남쪽이며 통진현(通津縣)의
서쪽이다.
신라
경덕왕 때 해구군(海口郡)이
되었는데 고려 초엽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현종(顯宗)
9년(1018)에
현령(縣令)을
두었다.
고종(高宗)
19년(1232)에
몽고병이 도성에 침입하는 것을 피하였다.
읍호를
승격시켜서 군(郡)으로
삼고 강도(江都)로
불렀다.
37년(1250)에
중성(中城)을
쌓았는데 둘레가 2천9백6십
간(間)이었다.
원종(元宗)
원년(1260)에
다시 송도(松都)
환도하였다.
[부의
동쪽 10리
송악리(松嶽里)에
옛날 궁터가 있다.]
충렬왕(忠烈王)
때
인주(仁州)에
병합되었다가 얼마 후에 복구되었다.
신우(辛禑)
3년(1377)에
승격하여 부(府)가
되었다.
마리산(摩利山)
[부
남쪽에 있다.
산꼭대기에
참성단(塹城壇)이
있는데 세상에서는 단군(檀君)이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단이라고 전한다.]
전등산(傳燈山)
[일명
삼랑성(三郞城)이라고도
하는데 세상에서는 단군이 세 아들을 시켜서 쌓았다고 전한다.]
구음도(仇音島)ㆍ파음도(巴音島)ㆍ금음북도(今音北島)ㆍ매잉도(買仍島)가
있다.
속현(屬縣)이
셋이다.
진강현(鎭江縣)은
본래 고구려 수지현인데 강화 섬 안에 있다.
신라
경덕왕 때 이름을 수진현으로 고쳤는데 해구군이 거느리는 현이 되었다.
고려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그대로
안도(鞍島)와
장봉도(長峯島)가
딸려 있다.
하음현(河陰縣)은
본래 고구려 동음내현(冬音奈縣)[아음현(芽音縣)이라고도
한다.]으로
강화 섬 안에 있다.
신라
경덕왕 때에 이름을 강음현(江陰縣)으로
고쳤는데 해구군이 거느리는 현이 되었다.
고려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그대로
딸려 있다가 후대에 개성현(開城縣)에
소속되었다.
주을질도(主乙叱島)가
있다.
교동현(喬桐縣)은
본래 고구려 고목근현(高木根縣)[대운도(戴雲島)라고도
하고,
격림(隔林)이나
달을참(達乙斬)이라고도
한다.]으로
바다 가운데 있다.
바로
강화현의 서북쪽이고 염주(鹽州)의
남쪽이다.
신라
경덕왕 때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는데 해구군이 거느리는 현이 되었다.
고려에서도
그대로 딸려 있었다.
명종(明宗)
2년(1172)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송가도(松家島)가
있다.
참고자료 :
江華地理志_삼국사기_고려사.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