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봄 그리고 초여름이 시작될 때 제가 자주 찾는 곳은 산청군 신안면 원지 둔치입니다.
서부경남에서 지리산으로 들어갈 때 반드시 통과하는
원지시외버스터미널(산청군 신안면)에서 차로 5분,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습니다.
경호강과 양천강이 이 고장 최단 남녘에서 만나는 이곳은 이 지역 주민들뿐만아니라,
본격적인 여름이 되면 외지에서도 많은 분들이 오는 그야말로 가족과 지인들의 쉼터입니다.
오늘은 한 주일이 시작되는 평일 오후라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아 솔직히 저로선 산책과 사색에 더욱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이 고수부지엔 둘레길이 잘 되어있거든요.
이 길을 따라 왼편에 마주보이는 다리를 통과하여 원지 둔치에 갈 수도 있고 우측으로 직진하여 바로 갈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목적지는 한 곳이니 아무 문제 없으며, 어느 길을 가더라도 녹음이 우거져 시원한 바람과 함께 즐거운 산책이 가능합니다.
이곳에 도착하면 시원스레 보이는 시멘트 광장과 바로 앞에 잔디 밭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제 곧 여름이 시작되면 주말 오후엔 가족끼리, 친구와 지인끼리 잔디 밭에 옹기종기 모여 고기를 구워 먹거나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울 것입니다.
단지, 작년 산불에 이어 극심한 수해로 아직 이곳이 완전히 정비는 되지 않았습니다.
왼쪽엔 양천강이 흐릅니다. 희마하게 보이는 다리 끝편엔 조그만 암자가 있고 암자를 지나 잘 정비된 데크를 따라 30여 분을 걸어가면
단성면에 위치한 성철 스님의 생가와 절이 있습니다.
생전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하고 말씀하신 그분의 고고함과 불교, 삶의 철학이 문득 생각나네요.
여기는 원지 둔치의 오른 편, 잔디 밭과 이어진 경호강이 보입니다. 그 너머로 단성면 일대와 저 멀리 지리산도 보이는 듯....
드디어 원지 둔치의 끝(비상 활주로 끝)에 있습니다. 멀리 통영- 대전 고속도로가 보이네요.
여기서 양천강과 경호강이 만나 서진주의 진양호에 흘러가고 종국에는 바다로 떠나겠지요.
바다 ... 그렇습니다. 제가 살았던 도시에도 바다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동네작가 이전에 저 역시 귀촌자의 한 사람으로 가끔 이 강을 따라 고향의 바다에 가고 싶은 때도 있었습니다.
낯선 환경과 사람 사이에서 '섬' 같은 기분이 들 때면 저는 이곳, 원지 둔치를 자주 찾습니다.
깨끗한 자연과 잘 정돈된 데크길 그리고 숨이 탁 트이는 강을 보면서 갈팡질팡하던 마음을 추스릅니다.
오늘 따라 원치 둔치에서 시가 하나 떠오릅니다.
마침 작년 겨울에 원지 둔치를 배경으로 쓴 '겨울 단상'이란 시를 남깁니다.
마침 기다리던 완연한 봄도 왔고 해서...
겨울 단상
저물녘 원지 둔치의 겨울 풍경은
애끓는 그리움과 보고픈 얼굴이 겹치면서
흩뿌리는 기억의 파노라마처럼
차츰차츰 소실되고
사라져 간다
푸르디푸른 강물 너머에
숯덩이 같은 욕망과 헛웃음 같은 영혼이 부대끼며
마지막 겨울 나무의 아쉬운 낙엽처럼
사박사박 떨어지고
벌거벗어 간다
신기루 같은 동녁의 겨울 기러기는
저무는 해와 해거름 반달 사이로 희미해지면서
도시와 시골의 경계처럼
경호강과 양천강 강물로 나뉘고
멀어져 간다
그런 상념에 젖은 채
날카로운 눈빛 번뜩이며
숨 삭이며 기다려온 나는
한 뼘 하늘이 가까운 둔치 강변에서
투명한 바람 너머
봄,
그대가 오길 기다린다
하염없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