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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취산 (靈鷲山510m)
<진달래 명산 영취산의 봄>
진달래명산 영취산은 장례문화인 조장(鳥葬)을 행하는 히말라야 풍습으로 사체를 즐겨먹는 독수리가 사체를 먹고 높이 날아올라 고통의 이 세상을 떠나 신령한 저 세상으로 옮겨 가는 것을 뜻한다. 한편 영취산은 고대인도 마갈타국의 왕사성 동북쪽에 있는 영취산으로 이산에서 석가모니가 최후에 설법을 했다는 유래에 따른 불교적인 의미가 있다. 영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옛적 버리다시피 이 산에다 가매장했다가 비가 오면 흙이 씻겨 사체가 드러나면 독수리의 밥이 된다. 함양 영취산, 양산 영취산, 창녕 영취산 등 전국에 여러 개의 영취산 중에 가장 인기를 누리는 산이 바로 여수 영취산이다. 동서로 길게 진례산 (進禮山510m), 영취산 (靈鷲山436.8m), 호랑산 (虎狼山481.8m)등 크게 3개의 산으로 이루어졌다. 여수의 진산으로 신령하다는 뜻을 가지기도한 이산은 진례산이 정상이지만 약15만평의 군락지가 있는 진달래 명산으로 봄철에 집중적으로 인파가 몰리는 까닭에 어감 상 봄 산의 느낌에 어울리게 3개의 산을 하나의 산으로 묶어 총칭하여 영취산으로 부른다. 산은 낮으나 정상에서면 여수시가지가 두루 조망되고 동남쪽으로 한려수도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진달래 명산으로 전국에서 가장 먼저 4월 6일 전후 진달래가 만개하면 산은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여 감탄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산상의 화원을 이룬다. 산은 낮지만 3개의 산을 종주하려면 4시간이 걸리나 진례산과 영취산 등 2개의 산으로 짧게 잡아 3시간이면 충분하므로 시간여유가 있으면 영취산 진달래와 함께 가까운 오동도의 동백꽃과 벚꽃을 보는 것도 좋다. 이곳 호국사찰 흥국사에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을 도와 싸웠던 의승수군(義僧水軍) 유물전시관이 있다.
粉紅빛으로 丹粧한 진달래 名山 靈鷲山 山行
<예비군 훈련장 부근의 여수 석유화학단지>
오늘 산행기점인 예비군 훈련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 만개시기가 이르다고 판단했음인지 예상했던 대로 주차장이 비교적 한산한 편이다. 최근 15년간 나의 산행기록에 의하면 영취산진달래 만개 기준일은 4월6일이다. 금년은 예상외로 개화가 일주일가량 빠르다. 만개기준 일을 며칠 앞당겨 찾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기준 일을 넘겨서 비바람을 맞으면 퇴색이 되고 꽃잎이 찌그러져서 볼 품 없다. 늦어도 4월10일은 넘기지 말아야한다. 새로 개통된 이순신대교를 지나 거북선대교에 이르렀을 때 바라본 영취산이 덤으로 맑은 날씨에 붉게 단장된 것을 보고 역시 잘 왔구나했다.
<정상 등로에서 바라본 동쪽사면>
10시25분 산행을 시작했다. 일기예보에 오늘은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 해서 대개 사람들은 우산까지 준비해왔다. 집을 나설 때 구름이 잔뜩 끼어 염려도 했으나 여수에 도착하니 날씨가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이때쯤이면 의례히 날씨가 맑아도 황사는 있기 마련인데 대기도 비교적 맑다. 20분 오르니 진달래 군락지가 펼쳐진다. 여기저기 감상하느라 힘든 줄도 모르고 시간가는 줄도 모른다. 오늘은 꽃이 피고 나서 비를 맞은 적이 없어 선명도가 좋다. 이때만 되면 해마다 오는 산 새로울 것은 없다. 다만 개화정도에 따라 날씨에 따라 느낌을 달리할 뿐이다.
<정상 등로에서 바라본 남쪽사면>
진달래꽃은 갈증해소, 피로회복, 기관지천식, 불면증, 관절염 등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안다. 진달래꽃은 생화를 그냥 먹어도 좋지만 누룩을 이용한 술을 6개월 이상 숙성시켜 먹거나한다. 나는 어릴 적 진달래꽃 속에 벌이든 줄도 모르고 입에 넣었다가 벌에 쏘여 입이 당나발(당나귀 입)이 되어 며칠 동안 밥을 제대로 못 먹은 기억도 있다. 남의 웃음거리가 되어도 자연 속에서 얻은 문제라 병원 갈 생각도 못해 봤고 그저 자연스럽게 나아버렸다. 봄이면 우리나라 어느 산에서나 흔히 피는 진달래, 꽃잎을 그냥 따 먹어도 되는 꽃, 어릴 적 진달래꽃잎 많이도 따 먹었는데 이제는 대기오염이 되어서 먹을 수 있을라나?
<정상 오름길의 457봉 등로의 진달래 군락지>
40분 올라 전망 좋은 457봉은 상암초등학교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능선 갈림길이다. 여기서 동쪽사면과 서쪽사면 그리고 산 아래와 산 위쪽을 두루 감상했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 찬바람에 동해를 입어 꽃을 맺지 못한 가지들도 많이 보인다. 평년작에 못 미친다. 그러나 자연은 아름다운 것 이를 섭리하시는 분이 계심을 나는 믿는다. 세상 꼴 보기 싫다고 말하는 사람 이곳에 한번 와 보라! 마음을 돌이켜 그 입으로 참 아름답다 말하리라! 그래 여기서 우헌 박상현(㝢軒 朴尙玄1629~1693)선생의 간화음(看花吟; 꽃을 바라보며 노래한 시) 한편을 읊어 보고 가자.
看花吟
世人徒識愛看花 (세인도식애간화) 사람들은 꽃을 겉모양만 좋아하고
不識看花所以花 (불식간화소이화) 어떻게 꽃이 되었는지 볼 줄모르네
須於花上看生理 (수어화상간생리) 모름지기 꽃에서 생명의 이치를 보아야하니
然後方爲看得花 (연후방위간득화) 그래야 비로소 꽃을 제대로 보는 기라
<영취산정상 진례봉 주변풍경>
이곳을 떠나 영취산정상 진례봉을 향해 계단을 타고 오른다. 진달래 꽃길을 따라 오르니 11시30분 영취산 정상 진례봉(進禮峰510m)이다. 정상에는 오늘도 시설물 설치작업으로 인부들이 자재를 나르고 있었는데 옛적 해안초소 막사가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 전망대가 들어섰다. 진례산이었던 정상표지 석은 새롭게 영취산(靈鷲山) 진례봉(進禮峰)으로 표기해 새롭게 세웠다. 오래전부터 개인적으로 영취산 산행기록을 남길 적에는 진례산, 영취산 호랑산을 하나의 산으로 묶어 진례산을 진례봉으로 영취산을 영취봉으로 기록해 왔는데 이제야 바로잡은 것 같아 반갑기 그지없다. 정상에서 사방으로 한 바뀌 둘러본다. 오늘 가야할 호랑산과 여수시가지 그리고 오늘 따라 유난히 푸르게 보이는 한려수도를 감상했다.
<봉우재에서 쳐다본 영취봉>
진례봉에서 계단을 타고 400m를 내려서 봉우재이다. 해마다 여기서 철쭉제 핼사가열린다.이 고개는 상암동에서 흥국사로 연결된 차량통행이 가능한 임도이다. 상암동이나 흥국사까지 2km 정도의 거리에 25분 거리다. 여기서는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많다. 영취봉까지 400m 거리에 다시 가파른 오름길이다. 오름길 공터에는 점심을 드는 사람들이 많다.
김립(金笠)선생이 여기서 그리 멀지 않는 화순 땅에서 방랑생활을 마감할 때 쯤 꽃피는 어느 봄날 무등산에서 아마도 이 시를 지었지 않나 하고 나는 강한 느낌을 받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는 이 좋은 계절에 나는 오늘 여기서 김삿갓 난고 김병연 (蘭皐 金炳淵1807~1863)선생의 시를 생각해 본다.
삿갓의 노래
浮浮我笠等虛舟 (부부아립등허주) 정처 없이 떠도는 내 삿갓 마치 빈 배와 같이
一着平生四十秋 (일착평생사십추) 한번 쓰고 다닌지 사십 평생이어라
牧豎經裝隨野犢 (목수경장수야독) 더벅머리 목동의 소몰이 갈 때의 차림새이고
漁翁本色伴白鷗 (어옹본색반백구) 갈매기 벗하는 늙은 어부의 모습 그대로 일세
醉來脫掛看花樹 (취래탈괘간화수) 술에 취하면 의복 벗어 나무에 걸고 꽃구경하며
興到携登翫月樓 (흥도휴등완월루) 흥이 나면 손을 들어 누각에 올라 달구경 하네
俗子衣冠皆外飾 (속자의관개외식) 사람들의 의관이야 겉모습 치장하기에 바쁘지만
滿天風雨獨無愁 (만천풍우독무수) 내 삿갓은 비바람 몰아쳐도 근심걱정 없다오.
<영취봉 정상부>
영취산 영취봉(靈鷲峰436,8m)이다. 고대인도 마갈타국의 왕사성 동북쪽에 있는 산으로 석가모니가 최후에 설법을 했다는 유래에 따른 불교적 의미가 있다. 안내판에는 시루봉으로 적고 있다. 그냥 영취산 영취봉이라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다만 바위가 많아 맹금류가 서식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것 같다.
옛적 출산율이 높은 반면 영 유아 사망률도 높았던 시대에 이산에 사체를 많이 묻은 것으로 추정된다. 빗물에 씻겨 사체가 드러나면 사체를 즐겨 먹는 독수리나 까마귀들의 밥이 된다. 이 새들은 다 같이 검정 색에 사채를 즐겨 먹지 마는 까마귀는 지면에서 낮게 날고 독수리는 높이 나는 특성이 있다. 죽음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여드는 법, 기독교문화권에서 상복으로 이용되는 검정색은 광야의 구릉지대 바위절벽에 서식하면서 광야 길을 가가다가 쓰러져 죽은 사람이나 낙타 등 동물의 사체를 먹고산다. 성경에 근거하여 “죄의 삯은 사망이라” 스스로 죄인임을 믿는 사람들이 입는 상복이다. 경찰의 독수리마크도 죄인을 잡는다는 의미와도 같다. 이와 반대로 한국 사람은 환경적인 측면에서 겨울이 길고, 오랑케의 침입이 잦아 흰 눈 색깔과 같은 보호색인 흰옷을 입었다. 우리 역사상 3년에 한번 꼴로 전쟁을 치러야했던 전쟁문화는 대가족사회에서 늘 상중에 있어 흰옷이 상복이 되었다. 히말라야 산록의 불교 문화권에서는 화장(火葬) 또는 조장(鳥葬)을 치르는데 사체를 먹은 독수리가 하늘로 높이 날아오르면 죽은 사람의 영혼은 신령한 세계에 이른다고 믿어 영취산이다. 불교적인 용어로는 영축산이라고 말한다. 영취산은 이름의 뜻과는 상관없이 어감 상 진례산이라고 하는 것 보다 영취산이 봄의 산, 진달래명산으로 어울리는 까닭에 나같은 등산인들은 정상 진례산(進禮山)과 영취산(靈鷲山), 호랑산(虎狼山)을 포함하여 총칭 영취산이라 부른다.
<영취산정상 진례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호랑산 전경>
영취봉을 떠나 능선을 따라 5km 거리 호랑산으로 향한다. 간간히 진달래 터널길이다. 돌탑 군을 지나 호랑산 가는 길과 흥국사 가는 길의 이정표가 없는 능선삼거리다. 앞서가던 한사람이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망설이고 서 있었다. 그는 나를 만나자 반가와 어쩔 줄 모른다. 인천에서 왔다는 그는 초행길임을 밝히고 흥국사로 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 되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 길을 여러 차례 다녀봐서 잘 알지만 그도 혼자요 나도 혼자다. 가야할 방향이 다르니 끝까지 안내할 수도 없다. 인천에서 6시에 출발해 10시 조금 넘어서 산행을 시작 했단다. 예비군 교육장에 인천차가 먼저 와 있기로 일찍도 출발 했구나 했었다. 그러니까 나보다 한발 앞서 출발했는데 봉우재에서 일행들은 흥국사로 다들 내려가고 혼자서 여기까지 왔단다. 나와 똑같은 입장이다. 예비군 교육장에서 진례봉과 봉우재를 거처 흥국사로 내려가면 산행거리 4,5km에 두 시간 거리밖에 안 된다. 그 멀리서 두 시간 산행을 위해 여기까지 오다니 오늘하루 시간이 아깝지 않는가? 나는 늘 그렇지만 이 길이 내 생애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산행에 임한다. 이심전심 마음이 통하여 호랑산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서로 산행경험을 주고받으며 걸어 내려오니 절 고개다. 이 고개는 호명동과 흥국사로 통하는 임도가 지나가는 고갯길이다.
<가까이서 본 호랑산>
다시 능선 오르막을 올라 13시50분 호랑산(虎狼山481.8m)이다. 이산 안내판에서 유래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신라 화랑도가 무예를 연마했다 해서 화랑산(花郞山)이 호랑산(虎狼山)으로 불려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라고 적고 있으나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군대가 골목 아이들의 병정놀이처럼 해발400m 급의 야산에서 무예를 연마했다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 추정으로 생각된다. 호랑산은 얼핏 그 이름을 산중에 왕 호랑이로 알기 쉬우나 이름의 뜻과는 관계없이 옛적 전깃불이 없을 적에 밤에 불을 밝히는 호롱불을 의미한다. 야행성인 호랑이가 밤이면 눈에 불을 밝히는 것과 호롱불을 밤에 밝히는 것은 같다. 그러나 진례봉이나 영취봉에서 서쪽으로 호랑산을 관산해보면 호랑산의 봉우리가 뾰족하게 솟은 것이 영락없이 호롱불을 닮았다. 하지만 전깃불을 사용하는 지금은 호롱불을 모르는 사람도 많겠다. 때문에 호롱산을 호랑산으로 잘못 사용되어지는 이름이 아닌가 생각한다. 호랑산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현풍 비슬산에 관기봉, 창원 불모산에 시루봉과 생긴 모양이 닮은꼴이다. 능선위에 뾰족하게 솟은 것이 그렇고, 그 위에 또다시 바위가 층층이 얹혀있는 것이 그렇고, 다 같이 진달래가 좋은 산이라 그렇다.
호랑산에 도착해보니 우리일행 산대장이 나보다 먼저와 있었다. 이산가족 상봉이 이런 것 이 아니겠는가? 혼자일 줄로 알았는데 반가울 지고! 나와 함께 갔던 인천사람도 여기서 일행 한 사람을 만났다. 인천에서 온 두 사람을 먼저 보내고 우리 두 사람은 느긋하게 호랑산을 내려와 절 고개를 지나 절골 계곡 임도를 따라 걸으며 산행경험담을 주고받았다. 국내외 산행 30년 경험담은 고생담이 대부분이지만 흥미진진했다. 동행자가 있으면 역시 힘이 덜 든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흥국사에 도착했다.
<호국사찰 흥국사의 봄 풍경>
영취산(靈鷲山) 흥국사(興國寺)는 1195년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1158~1210)이 창건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을 도와 출전하기위해 수백 명의 승군이 주둔했던 호국 사찰로 의승수군(義僧水軍) 유물전시관이 있다. 흥국사 대웅전(大雄殿;보물 제396호), 홍교(虹橋;보물 제563호), 후불탱화인 후불영산회상도(後佛靈山會上幀;보물 제578호),노사나불괘불탱(盧舍那佛掛佛幀;보물 제1331호),수월백의관음도(水月白衣觀音圖;보물 제1332호)등 문화재가 있다.
<흥국사의 홍교>
벚꽃이 만개한 흥국사를 지나 주차장에 도착하니 예정보다 30분 빠른 15시 정각이다 .오늘 행로는 예비군 훈련장~진례봉~ 봉우재~영취봉~절고개~호랑산~절고개~흥국사~주차장, 13,5km에 산행시간 4시간35분이다.
2013년 4월2일 화요일 맑음
첫댓글 영취산 진달래 감상 .. 앉아서 구경 잘 했습니다.
사진 감사합니다.
멋진 진달래 감상 잘 했습니다.
진달래 꽃들의 장관입니다.
고맙게 감상 했습니다.
벌써 남쪽 산하에는 진달래가 만발했네요 잘 보고갑니다
진달래도 벚꽃도 장관이네요.
잘 감상합니다.붉은 진달래 여리디 여린 꽃빛을 보면 가슴이 설레입니다.
산이 좋아님 여행다니시고 멋지게 사십니다.저도 그리해야 하지요.
저는 명산을 못가고 산책하다가 길에서 봅니다.
영취산엔 진달래가 벌써 피었군요........^^
이번 산행기는 예상 외로 많은 분들이 찾아 주시네요.
제가 안내를 해드린 까닭인가 봐요.
일일이 답글을 드리지 못함을 양해바라며 감사를 드립니다.
산이 좋아님 !!
사진과 더불어 이렇게 산행일기 쓰시는것도
대단하신 능력이십니다.
느낌과 한시가 곁들여져서 더욱 좋습니다.
제가 읽어 보고 불편한 점은 글씨를 넓게 쓰셔서
아래 커서를 이리저리 옮기면서 읽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댓글도 오픔 갚픔이라 서로 배려하는 마음도 있고
홍보효과도 크게 작용 한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재미있는 산행일기 기대합니다.
금제님 감사합니다. 저는 불편을 못느껴 그렇게 해 왔지요.
그동안 저의 산행기를 읽으실 때 불편을 끼쳐드려 송구스럽습니다 .
다른 분들도 불편을 느끼셨겠지요.
다음 산행은 부산 금정산으로 예정되어 있는데
다음부터는 거리를 좁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가지로 조언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나날 되십시요.
산이좋아님. 사진 글 모두가 일품입니다.
수고하셨고 영취산의 새로운 모습을 글로 사진으로
다시 새깁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공유 할수있다는것, 즐거운 일이지요.
김립선생은 의복을 나뭇가지에 걸어 두고 꽃 구경했다고 노래했지만 저는 모자를 걸어두고 꽃구경했지요.
꽃에 눈길을 빼았기고 나니 모자가 보이지 않더라고요.
내 빨간 새 모자! 지금껏 이렇게 잃어버린 모자가 수십개...ㅎ ㅎ
봄이되니 시도 봄에 대해서 보내주시고 눈 또 한 즐겁게 감상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時節이 何 殊常 할지라도 봄의 꽃들 처럼 웃음꽃이 피는 꽃다운 이 봄이 되시기를...
언제 한번 간다간다하면서도 가보지 못했네요
이번에도 멀리서 지나갈 일이있었는데 바뻐서 올라가 보지를 못했습니다
아깝기 그지 없습니다
기회는 늘 있는게 아니겠지요.
지금쯤은 영취산 진달래는 지고 있을 텐데요.
어제 토요일 도봉산에는 앞으로 두 주가 있어야 진달래가 피겠더라고요.
ㅎ ㅑ ~ 말이 필요없네요.
사진으로 보셔도 좋지만 실제로 보시면 더 좋습니다.
금년에는 진달래가 낙화가 되었는데도 유난히 많은 인파가 몰렸다는소식을 들었읍니다.
그 이유를 저는 감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드리긴 좀 뭣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