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태워 먹었다. 벌써 몇 개 째인지 모르겠다. 부엌 가스렌지 위쪽 선반에다 '가스렌지 사용 시 부엌을 벗어나지 마세요!'라고 경고 메시지까지 붙여놓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
부엌 바로 옆 거실에 앉아 폰을 보거나 책을 읽다가 '어 이게 무슨 냄새지?' 하고 돌아보면 벌써 늦었다. 잠시 집 화단이나 텃밭에 갔다 온다고 현관 열고 나갔다가는 집안에 연기가 자욱하게 된다.
처음에는 당황하여 손도 데이곤 했는데 이것도 경험이라고 여유있게 가스불 끄고 젖은 타올로 냄비 손잡이를 잡아 싱크대 안에 넣는다. 그리고는 수돗물을 살짝 틀어 천천히 식힌다. ㅎㅎ
하도 자주 태워 먹으니 가능한 가스렌지 사용을 안 하게 된다. 그러니 국이나 찌개 같은 건 할 생각을 안 한다. 데워 먹는 것도 안 한다. 생선 굽는 것도 자제한다. 마눌님께서 냉장고에 넣어둔 김치 몇 종류, 몇 가지 장아찌 , 멸치 조림같은 조림 몇 가지 마른 김, 슬라이스 치즈 등으로 끼니를 때우게 된다.
오늘 아침은 마눌님께서 부산 가시면서 끓여놓은 국을 데워 먹으려다 생긴 불상사다. 안 먹어도 좋으니 국이나 찌개니 해놓지 말라 해도 말을 안 듣는다. '해 놓고 가면 알아서 먹겠지' 하는 심사다. 그 마음은 고맙지만 태우고 나면 한숨이 나온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그 탄 냄새 특히 플라스틱 타는 냄새는 참으로 고약하다. 온 문을 다 열고 페브리즈를 뿌려도 서너 시간이 걸려야 중화가 된다. 탄 냄비를 원상복구하는 일은 더 지난한 일이다. 하다하다 그냥 버린다. 좀 비싼 냄비를 그랬다가 잔소리를 길게 듣는다.
얼마나 살끼라고 궁상스럽게 살지 말자고 낡은 냄비를 모두 버리고 새로 바꾼 지가 얼마 전이다. 이리 자주 태워 먹을 줄 알았으면 고향집에 있던 옛날 냄비를 버리지 말고 그냥 쓸 걸 하는 생각도 든다.
건강에도 좋다는 비싼 냄비는 사양해야겠다. 폼나게 부엌살림하는 것도 재능이 있어야 가능할 것 같다. 저렴한 것을 구입하지만 다이소나 이케야 등에서 산 냄비는 저렴한 값을 한다. 한번 태워 먹으면 바로 헌 냄비가 되고 만다.
다대포 집에는 가스 타이머를 부착하여 간혹 잊어버리고 있어도 음식이 약간 탈 정도로 그친다. 고향집에도 타이머 부착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자꾸 미룬다. 이 미루는 버릇 언제 없어질까?
밖에 비온다. 반가운 비다. 작물에 물 안 줘도 된다. 초봄엔 비가 잦더니 늦봄에는 가물어 가짜 농부를 힘들게 하더니 오늘은 고맙게도 비가 내린다.
우산쓰고 들길이나 걸어봐야겠다. 엊그제 들길가에 산딸기가 더러 보였다. 요즘은 산딸기가 익어도 따 먹는 사람이 없다. 들에 사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