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코디언 레슨을 다녀오는 길. 소래포구 역에서 내렸다. 몇 번 출구로 나갈까 고민한다. 1번 출구는 걸어서 집으로 가는 방향, 2번 출구는 집으로 가는버스를 타러가는 방향 출입구이다. 역에서 집까지는 1킬로미터, 걸어서 15분 거리. 다리가 멀쩡할 때는 한 번도 안 해본 고민이다.
이곳으로 이사 와서 처음에는 언제나 1번 출구로 나가 걸어서 집에 갔다. 역에서 내려 공원을 통과해서 집으로 걸어오는 길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모두 예쁘고 좋았다. 봄에는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고, 키 큰 나무들이 적당한 그늘을 만들어 주어 신나게 걸을 수 있는 여름, 곱게 물이든 단풍 사이로 아이들이 야구 하는 소리가 정다운 가을, 겨울에 눈이 내리면 환상적인 설국이 펼쳐져 지루할 새 없이 늘 신나게 걸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무릎이 많이 아파지면서 처음에는 중간에 쉬어가며 역으로 걸어갔다. 처음에는 한 번 쉬고, 더 아파져서는 두 번 쉬고 전철을 타러 다녔다. 나중에는 너무 힘이 들어 버스노선을 찾았다. 우리 집에서 전철까지 버스로 세 정거장. 그런데 배차시간이 길어서 ‘다리만 괜찮으면 걸어갈 수 있는데...’ 하고 투덜대면서도 버스를 타야 했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웬만한 거리는 늘 걸었다. 집 근처에 많은 공원과 산책길 들이 있어서 밤에 나가 걷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것도 문제가 생겼다. 집 가까이 있는 늘솔길 공원 메타세콰이어 숲에 좋은 맨발걷기 길이 있어서 자주 걸었었다. 그런데 무릎이 많이 아파지면서 공원까지 걸어가는 것이 힘들었다. 나중에는 공원주차장까지 차를 운전하고 가야 간신히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정도까지 되었다.
그렇게 2년을 보내고 작년 9월 인공관절 수술을 했다. 병원에서의 재활치료가 끝난 뒤에도 걷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빨리 회복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통증도 오래가고, 걷는 것도 늦는 것 같았다.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는다고 투덜대다가 몸이 좀 가벼워지면 혼자 좋아하고, 몸의 상황에 따라 감정도 오락가락하고, 쉽지 않은 날들을 보냈다.
수술한 의사 선생님은 다 잘 되었으니 걱정 말라고 하셨지만, 몸이 잘 따라 주지 않을 때에는 불안하기도 했다. 6개월이 지나면서 서서히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아픔도 줄어들고 움직임도 편해지고 좋아졌다. 역시 시간이 약인가?
걷는 연습을 시작했다. 매일 조금씩 걸었다. 처음에는 지팡이도 짚었고, 재활 운동도 열심히 했다. 수술 후 휘청거리던 몸에 균형 감각이 서서히 살아나고, 남의 살 같던 수술 부위에도 조금씩 느낌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수술 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기뻤지만, 몸은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전철 타고 다섯 정거장 가야 하는 아코디언 레슨에 용기를 내어 다니기 시작했으나 집에서 전철역까지 걷는 것이 쉽지 않아 전철역까지는 버스를 이용했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출구를 어디로 할까 고민하는 것을 보니 걸어서 집에 갈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왔다. 1번 출구로 나와 천천히 걷는다. 공원에 핀 이팝나무 꽃이 예쁘다. 한 번도 쉬지 않고 집까지 걸었다. 야호! 그동안 버스에 의지했던 길을 다시 걸을 수 있다. 이렇게 기쁠 수가!
그 후 매일 걷는 시간과 거리를 조금씩 늘렸다. 걷는 중간에 쉬는 시간은 조금씩 줄이면서 걸었다. 드디어 오늘 4킬로미터를 중간에 쉼 없이 걸었다. 이제 좀 더 연습하고 걸으면 전처럼 잘 걸을 수 있겠지. 갑자기 두 다리에 힘이 생긴다.
다시 걷는 것. 이것이 이렇게 좋은 것을. ‘그는 걸었네 뛰었네 찬양했네’ 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하나님 감사합니다.